{"product_id":"9788993297348","title":"둔촌 이집선생 시문","description":"\u003cdiv class=\"info_text\"\u003e이집(李集, 1327~1387) 선생은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되어 심한 간섭과 수탈을 받던 ‘원간섭기(1259~1356)’와 고려 말의 역경과 혼란의 시대를 궁경독서(躬耕讀書)하며 살다 간 고독한 은둔자였으며, 초월과 달관의 자유인이었다. \u003cbr\u003e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으로 경기도 광주의 향리 이당(李唐) 선생의 아드님이다. 21세에 진사과(進士科), 28세에 대과(大科)에 급제하였으며, 성격은 솔직 담백하고 뜻이 곧아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였다. \u003cbr\u003e선생은 1368년(공민왕 17) 42세 때에 신돈(辛旽)을 논박하다 미움을 받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경상도 영천으로 피신하여 최원도(崔元道)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3년 후인 1371년(공민왕 20) 45세 때에 신돈이 주살되자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정3품)에 임명되었는데, 곧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川寧縣) 전야(田野)에 묻혀 살면서 ‘둔(遁)’을 생활신조로 삼고   시를 지으며 일생을 마쳤다. \u003cbr\u003e선생은 탁월한 문장과 높은 학문, 고덕(高德)과 지절(志節)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으며, 시에 특히 뛰어나 직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시풍으로 당대에 이름을 얻었다.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를 많이 지었다.  \u003cbr\u003e선생의 유시(遺詩)는 313수 정도로, 시제(詩題)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이 당대 최고의 제현(諸賢)인 이색(李穡), 김구용(金九容),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정도전(鄭道傳), 우현보(禹玄寶), 허금(許錦) 등이고, 60여 명이 넘는 고려 말을 풍미했던 거유(巨儒)들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과 깊은 우정이 시에 풍부하게 남아있어서, 여말선초의 ‘역사와 인물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u003cbr\u003e광주이씨(廣州李氏) 대종회 이주영(李柱榮) 회장은 발간사에서 “선대의 유산과 문헌을 국역(國譯)하여 널리 알리고 후대에 남기는 사업이야말로, 우리 광주이씨 문중의 존재 의의를 뚜렷이 남기는 역사적 과업이라 할 것입니다.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 권문세족의 부패와 민생의 피폐, 불교의 타락, 그리고 신진 사대부의 성장으로 특징되는 고려 말의 시대상을 한시로 노래한 선생의 각고(刻苦)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곧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더욱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u003cbr\u003e(사)한시협회 문산(文山) 우종철(禹鍾哲) 감사가 〈둔촌 이집 선생 시문)〉을 신역(新譯)하였고, 반농(半農) 이장우(李章佑) 학술회원이 교열을 맡았다.\u003c\/div\u003e","brand":"승연사 - 둔촌 이집","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2916317684017,"sku":"9788993297348","price":31.86,"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82\/9730\/1297\/files\/9788993297348_1.jpg?v=1771833907","url":"https:\/\/gimssine.com\/products\/9788993297348","provider":"GIMSSINE","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