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9791158662882","title":"조선왕실의 태실 의궤와 장태 문화","description":"\u003cdiv class=\"info_text\"\u003e조선왕실은 갓 태어난 왕실 자녀의 태(胎)를 소중히 간수하여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묻었다. 그 과정을 ‘장태(藏胎)’ 혹은 ‘안태(安胎)’라고 했다. 이는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온 왕실의 오랜 전통이었다. 이처럼 왕실 자녀들의 태를 특별히 관리한 이유는 태의 처리가 국운(國運)과 관련이 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를 소홀히 다루면 국가와 왕실에 불운이 미친다고 여겼다. 따라서 태실 조성은 왕실의 주요 의례로 간주되어 엄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태실은 그 주인공이 왕위에 오르면, 국왕 태실의 위용에 맞게끔 석물을 설치하여 단장했다. 이를 ‘더하여 봉안한다’는 의미로 ‘가봉(加封)’이라 했다. 가봉 태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심하게 파손되기도 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수개(修改)였다. 태실의 가봉이나 수리가 있을 때면, 해당 관청에서는 매번 그 과정과 절차, 필요한 인력과 물품 등의 내역을 빠짐없이 의궤(儀軌)나 등록(謄錄)으로 기록해두었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이러한 태실 관련 의궤가 오늘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장태 문화의 실체를 살필 수 있다. \u003cbr\u003e\u003cbr\u003e이 책은 현존하는 태실 의궤를 중심으로 조선왕실의 장태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어떻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고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했는지 살폈다. 먼저 「조선왕실의 장태 의례: 아기씨의 안녕에서 여민락의 민본으로」는 장태 의례의 핵심이 아기씨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안녕을 축원하는 데 있음을 살폈다. 장태가 왕실 아기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영·정조 대를 거치면서 왕실의 복록을 백성과 함께 나누려는 민본의 이념이 강하게 투영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 사례를 영·정조 대의 장태 의례 간소화 조치에서 찾았다. 「조선왕조 태실의 석물 단장과 수리」에서는 국왕 태실의 석물 단장과 수리의 영역을 다루었다. 왕의 태실은 그 위용에 맞게끔 석물을 설치했고, 이후 뜻하지 않은 재해와 고의적인 파손 등 보존상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이를 신속히 해결하고자 했다. 그 과정을 현존하는 장태 관련 가봉 및 수개 의궤에서 살펴보았다. 「태실 조성의 특징과 수호사찰의 운영」에서는 가봉 태실의 석물은 왕실을 중심으로 한 석조미술의 발전 양상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였다고 강조한다. 태실비와 태지석 등의 유물을 각종 의궤와 연결시키면서 조선시대 석조미술의 발전 과정을 조망하고, 태실의 시대 변천과 함께 이를 관리하던 수호사찰도 살펴보았다. 「서삼릉 태실의 조성과 태실의 현황」에서는 먼저 서삼릉 태실의 조성 과정과 현재의 태실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전국의 명당에 있던 태실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고양시의 서삼릉으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태실의 원 소재지에 남아 있던 태실의 현황도 일부 검토했다. 또한 보존 상태가 좋은 충청도 지역 태실의 탐방 코스 개발 등 다양한 방안도 제안했다.\u003c\/div\u003e","brand":"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윤진영","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4260324401457,"sku":"9791158662882","price":13.0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82\/9730\/1297\/files\/9791158662882_1.jpg?v=1779238648","url":"https:\/\/gimssine.com\/products\/9791158662882","provider":"GIMSSINE","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