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9791168872028","title":"주문공가례(영인본) (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u003cdiv class=\"info_text fw_bold\"\u003e초판본 원본 원문한자본 \u003cbr\u003e주자가 유가(儒家)의 예법의장(禮法儀章)에 관하여 상술한 책.\u003c\/div\u003e\n            \n            \n            \u003cdiv class=\"info_text\"\u003e송(宋)나라의 주자가 만든 가정의 의례서(儀禮書).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라고도 한다. 《문공가례(文公家禮)》라고도 한다. 5권. 부록 1권. 그러나 이것은 후인(後人)의 의탁(依托)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에 전해진 것은 고려 말 주자학과 함께 전래되었다. 그뒤 명(明)나라 성화(成化)연간에 구준(丘濬)이 위의 《주자가례》를 기초로 하여 여기에 의절고증(儀節考證)·잡록(雜錄)을 추가하여 《문공가례의절(文公家禮儀節)》 8권을 만들었다.\u003cbr\u003e\u003cbr\u003e관(冠)·혼(婚)·상(喪)·제(祭) 사례(四禮)에 관한 예제(禮制)로서의 이 《주자가례》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자학이 국가 정교(政敎)의 기본강령으로 확립되면서 그 준행(遵行)이 강요되어 처음에는 왕가와 조정 중신에서부터 사대부(士大夫)의 집안으로, 다시 일반서민에까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u003cbr\u003e\u003cbr\u003e그러나 송대(宋代)에 이루어진 이 가례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아 많은 예송(禮訟)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주자학과 함께 조선이 세계문물에 뒤지는 낙후성(落後性)을 조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면 예학(禮學)과 예학파의 대두는 예와 효(孝)를 숭상하는 한국의 가족제도를 발달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u003cbr\u003e\u003cbr\u003e 주자가례 [朱子家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u003c\/div\u003e","brand":"한국학자료원 - 주자","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2451516711217,"sku":"9791168872028","price":70.0,"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82\/9730\/1297\/files\/9791168872028_1_53f7cd3d-1601-448f-aec9-567033842eca.jpg?v=1769851256","url":"https:\/\/gimssine.com\/products\/9791168872028","provider":"GIMSSINE","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