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9791199895508","title":"건설자 정주영이 말하다","description":"\u003cdiv class=\"info_text\"\u003e단군이래 가장 역동적이던 1980년대 중엽, 지방 국립대학에서 서울의 사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무원 신분이아니다 보니 시간 내기가 수월했다. 10여 년간 홍콩과 타이완의 서점들을 과할 정도로 드나들었다.\u003cbr\u003e대륙을 뒤로하고 세계를 향한, 홍콩 대형서점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종이를 처음 만든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u003cbr\u003e대륙에서 들어오는 중국 서적들의 수준과 다양함에 놀랐다. 우리에겐 생소한 인물에 관한 화전(畵傳)에 눈길이 갔다.\u003cbr\u003e문인, 혁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학자들의 화전 볼 때마다 감탄했다. 회고록이나 평전, 산처럼 쌓인 관련 연구서적보다 우리가 몰랐던 시대의 이해에 수월하다는 확신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중일전쟁 시절 중국의 4개 주력 부대 중 하나로 세계에 명성을 떨친 신사군 사령관 예팅(葉挺)의 화전은 글도 글이지만 생동감 넘치는 주인공의 사진들이 한편의 거대한 파노라마였다.\u003cbr\u003e인구 13억의 중국에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있는, 한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 한 분을 화전을 통해 중국에 자랑하고 싶었다. 홍콩에서 오랜 인연을 맺은 중국 인문 사회과학의 산실 삼련서점(三聯書店)의 베이징 총부(總部)도 내 제안에 동의했다. 건의도 아끼지 않았다. “인물 선정이 중요하다. 대상이 정해지면 선정 이유를 설명하는 서문을 직접 써주기 바란다.”\u003cbr\u003e염두에 둔 인물은 없었다. 우리의 위대한 다음 세대들이 국제무대에서 자랑하고 싶어 할 사람,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분이면 어떻게 했을까라며 자연스럽게 떠오를 얼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마워해야 할 사람 한 분을 찾기가 간단치 않았다.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역사 속에 넣어 보기를 반복했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이 있었다.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u003cbr\u003e도서관에서 옛날 신문 뒤지던 중 추운 겨울날 고속도로 건설 현장 사진을 접했다. 작업복 차림에 흰 입김 내뿜으며 즐거워하는 현대그룹 창업자 아산 정주영(峨山 鄭周永) 회장의 사진 보고 눈이 번쩍했다. 함께 서있는 정장 차림의 고관들 보며 웃음이 나왔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초라해 보였다. 듣기 민망한 비웃음을 한 귀로 흘리며 시작한 우리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의 1\/3을 현대가 완성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u003cbr\u003e아산에 관한 자료들을 파고들면 들수록 아산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공헌에 경탄을 거듭했다. 외우 안병우 교수 덕에 그간 본 적 없는 다량의 미공개 사진도 입수할 수 있었다. 원고 작성과 사진 분류에 1년 이상이 걸렸다.\u003cbr\u003e중국이 자랑하는 서적 장정 예술가 닝청춘(寧成春)의 작품 《현대지로(現代之路)》가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 11월 8일 금요일, 중요 일간지들이 아산의 동정을 보도했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鄭周永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의 최고 수뇌부가 7일 중국으로 떠났다. 목적은 중국 최고의 명문 출판 기구 三聯書店이 정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화전으로 제작한 《현대지로(現代之路)》의 사인회와 출판기념회 참석이다. 중국행에는 정몽구 그룹 회장을 비롯한 아들 4명과 동생, 매제, 조카들이 동행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가족이 한꺼번에 해외 행사에 참가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u003cbr\u003e화전은 조만간 화보집 《건설자 정주영》과 함께 한국어 판도 낼 예정이다.” 같은 날 황혼 무렵 베이징호텔(北京飯店)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장관이었다. 당과 정부 고위층은 물론, 중국인들이 보지는 못해도 성명은 귀에 익숙한 문화계와 학계, 교육계 인사들이 운집해 아산의 업적에 무릎을 치며 가을밤을 즐겼다.\u003cbr\u003e이듬해 5월 서울에서 열린 한글판 《세기의 가교》와 화보집 《건설자 정주영》 출판기념회의 열기는 베이징보다 더했다. 이날 아산의 인사말 한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그간 나와 함께해 준 근로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한다.”\u003cbr\u003e1999년 가을 정몽구 회장님이 《현대지로(現代之路)》의 영문판 출간을 희망했다. 약 7개월이 걸린 《THE ROAD TO HYUNDAI》 가제본 보여드리며 “맘에 드세요?” 했더니 “멋있다. 아버지는 아산 두 글자면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라며 흡족해하시는 모습 보고 기분이 좋았다. 2000년 2월에 출간한 《아산 정주영 어록》에는 峨山을 크게 표기했다.\u003cbr\u003e이듬해 3월 21일 아산이 한 세기와 작별했다. 거인의 영면에 북한도 조의를 표했다. 이틀 후 아태 평화 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4명의 조문단이 빈소가 차려진 청운동 자택을 찾았다. 북이 남에 보낸 첫 조문단이었다.\u003cbr\u003e나도 빈소를 찾았다. 청운동 자택은 조문단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정몽구 회장님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문 마치고 나가던 중 복도 왼쪽에 문이 살짝 열린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1인용 침대와 평범한 철제 캐비닛만 있는 작은방이었다. 낯설지 않은 직원 두 사람이 버릴 물건이라며 캐비닛 안의 종이 뭉치들을 박스에 담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자세히 살펴봤다. 아산이 생전에 했던 특강, 사장단 회의록, 인터뷰, 축사 등을 200자 원고지에 옮겨 적은 소중한 자료들이었\u003cbr\u003e다. 마침 방에 들른 정몽구 회장님에게 “이건 보관해야 할 중요한 자료”라고 하자 “네가 전부 갖고 가라”기에 숭실대학 건너편의 개인 서고에 옮겨 놓고 잊고 지냈다.\u003cbr\u003e캐비닛을 다시 연 것은 22년 뒤, 서고의 수도관이 터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서였다. 서고를 가득 메운 습기와 곰팡이 냄새를 거두며 캐비닛을 열었다. 원고지들은 습기로 달라붙어 있었지만, 글자들은 오랜 세월 그 순간을 기다려온 듯 선명했다.\u003cbr\u003e2023년 가을, 다시 세상에 나온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곰팡이를 걷어내고, 희미해진 글씨를 복원하며 방대한 기록을 다듬는 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u003cbr\u003e22년 만에 유물처럼 발굴된 아산의 말과 글, 그 육성과 사유의 흔적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었다. 원문만 국배판 400페이지 12권 정도였다. 임의로 4권 분량을 추려내고 다시 1권으로 요약해 우선 선보인다.\u003cbr\u003e살아도 죽은 거나 진배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아산의 위대한 심장이 멈춘 지 사반세기(四半世紀)가 흘렀지만 거인(巨人)이 추구하던 도전과 혁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2026년 5월 29일 0시 18분 김명호(金明壕)\u003c\/div\u003e","brand":"삼련서점(SEOUL) - 김명호","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4599183204657,"sku":"9791199895508","price":32.0,"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82\/9730\/1297\/files\/9791199895508_1.jpg?v=1781439235","url":"https:\/\/gimssine.com\/products\/9791199895508","provider":"GIMSSINE","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