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아름다움과경이로움의합주
-이병석시집『비바람속에서도꽃은피고』
태권도명인으로최고급수인9단에이른무도인(武道人)이병석시인이첫시집『비바람속에서도꽃은피고』를도서출판모아드림기획시선152번으로출간하였다.
미국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살고있는이병석시인은전북고창출신으로사회복지학을전공하여박사학위를받았다.미국으로이주하여이국(異國)땅에태권도의지경(地境)을확장하면서,그동안〈EastCarolinaUniversity〉와〈ChowanUniversity〉그리고〈MidwestUniversity〉의겸임교수를지냈다.태권도9단의경륜에걸맞게세계태권도연맹기술위원,국기원명예자문위원,태권도국제심판등의경력이있다.그런가하면미국지방의시의회인권위원장,공화당노스캐롤라이나주상공회의명예의장등의전·현직을감당하면서여러훈장·메달과미국대통령자원봉사평생공로상의수상자이기도하다.기실한국인으로서미국사회의중심에서활동하면서,이와같은성과를이루고온당한평가를받기는지난(至難)한일이아닐수없다.
그러나이보다도더놀랍고감동적인사실은그가오랫동안시를써왔고더불어그시가모국에서주목을받았다는것이다.지난해2023년《경북일보》주최〈청송객주문학대전〉에서시부문입상,그리고재외동포청주최〈재외동포문학상〉에서시부문대상을받았기때문이다.또한그의시가인천광역시지하철센트럴파크역의특별전시장에1년간전시되는좋은소식이있기도했다.
미려(美麗)에대한발견과외경(畏敬)
시를지육(智育)과덕육(德育)의합일이라고한다면,태권도는덕육과체육(體育)의합일이다.머리를써서언어와운율을조합하는일이나,손발을움직여합당한무력(武力)을생성하는일은,모두인간의가치와위의(威儀)를높이는동일한목표를가졌다.국제적명성을가진태권도지도자가한권의시집을상재(上梓)하는것이결코가벼운‘사건’이아니라는뜻이다.태권도는우리나라에서창안되고발전된무술로,이른바대한민국의국기(國技)다.1950년대에정립되어이제는전세계로확산되었으며,그규정및경기진행에한국어를사용한다.이병석명인은바로그국제화의현장에있다.
이번에펴낸그의첫시집『비바람속에서도꽃은피고』는4부로나누어져총71편의가편을수록했다.시집을펼치면그의세계관이나그가세계를바라보는눈이사뭇서정적이면서도선량하다는후감(後感)을얻을수있다.망설일것없이공자가말한‘사무사(思無邪)’나『논어』에서이른‘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을떠올리게된다.생각에사악함이없고,시가새와짐승과풀과나무의이름을많이알게해준다는뜻이다.이병석시인은그와같이순후한마음으로세상의아름다움을바라보았고,그가운데서삶이형성하는경이로움시로포착했다.이미려(美麗)에대한발견과외경(畏敬)의인식은그의시세계를일관하는정제된시의식이다.그리고그양자가연합하여결이고운합주(合奏)를들려주는것이그의시다.
김종회문학평론가는해설에서“이병석시인은순후한마음으로세상의아름다움을바라보고,그가운데서삶이형성하는경이로움을시로포착했다.이미려(美麗)에대한발견과외경(畏敬)의인식은그의시세계를일관하는정제된시의식이다.그리고그양자가연합하여결이고운합주(合奏)를들려주는것이그의시다.쉽고편안하게읽히지만,시의내면에숨어있는함의(含意)는결코가볍지않다”고평했다.
사랑의눈으로부른맑은노래
이시집의1부에수록된시들은모두연가,곧사랑노래다.편안하고쉬운언어로노래하지만,그언어의행간에담긴의미는중후하다.마치성경의아가서에서솔로몬이쓴연시(戀詩)처럼.여러시의언사와어투를살펴보면,그의사랑은여일하게자신의아내를향하고있다.이와같은심사는미상불두사람모두에게하늘의축복이다.하지만이렇게만말한다면,이는시가가진다층적의미를간과하는우(愚)를범할수있다.시인은풀한포기바람한점을보고도명상한다.그것들이모여서삼라만상(森羅萬象)을이루기때문에.아내를사랑하는그마음으로인하여이웃을,세상을사랑하는마음이탄력을얻을수있기에단선적인사랑에그치지않는다.
바닷가왕국
천사들마저도질투하게사랑한
포우와버지니아는
바다향이올라오는
볼티모어의한언덕에누워
한줌으로흙으로함께하며
가끔씩기억되어
찾아와불러주는시인의노래
애너벨리에잠을자고있다
시와시인은가고
그들의사랑마저
떠나고없어도
그들을기억하고노래하는사람들이
그언덕에올라
바다바람을노래부르며
사라진왕국의이야기를한다
애너벨리의슬픈사랑의이야기를
-「포우와버지니아」전문
이시는미국의자연주의시인이자소설가인에드거앨런포와그가사별(死別)한어린아내버지니아글렘의이야기를담은시「애너벨리」와오버랩하여읽을수있다.세상에서가장슬픈이별이사별일까.시인은지금자신의삶과사랑에감사하며,그감사가극명(克明)한까닭으로이와같이애절한시심(詩心)에까지발걸음의보폭을넓힐수있었을것이다.항차시인이아니라할지라도이러한마음의쓰임새는상찬(賞讚)할만하다.
자연친화로부터사모곡까지
시집의2부에서는먼저1부에이어별,은하수,마른나뭇잎,동굴,딱따구리등의제재(題材)를동원하면서맑고따뜻한자연친화의사유(思惟)를보여준다.그가운데어린시절‘꿈에보이던교정’의기다림이있고,좀더확장하면‘바다소리바람소리교회의종소리어울어져들리던곳’에남아있는‘해리’의안부도있다.시라는날개를달고한달음에시인은옛추억의장소에이르렀다.이처럼무소부재(無所不在)한시적상상력의자장(磁場)은마침내이제세상을멀리떠난부모의기억을호출한다.누구나감당해야하는그별리(別離)의아픔이더욱애잔하고절실한것은,시인의어머니에대한사랑이그만큼깊었던까닭에서다.오죽하면그러한절박함에대한비유를‘바하칼리포르니아전갈’에게서가져왔을까.
하늘이내려와나무위에앉고
숲에머물렀다
나무들사이로
길이열리고
개울이흐른다
하늘이흐른다
숲의가장자리에는
깊은눈망울을가진연못이있고
그눈에하늘을담았다
하늘이내려와거기에담겼다
구름은숲에서나와나무를오르고
하늘에피었다
지는해를등에얹고
붉은꽃을피웠다
-「만남」전문
인용된시는자연과의친애(親愛)를넘어,이제는그관계성의종국(終局)에놓인무심(無心)의경지를지향하고있다.얼핏보면도가(道家)의자연사상을해명하는듯하나,궁극에서는밝은눈으로포착하는건실한관점을잃지않았다.하늘이숲에머물고,나무들사이로길이열리고,또개울이흐르는풍경의상상화한폭을그리는시인이여기에있다.시인은숲가장자리의연못에하늘이내려와담겼다고말한다.이백의『산중문답』이나지난세기청록파의시편들에서볼수있는,청명한자연의숨결을뒤따라간행보(行步)다.거기에또있다.황혼의구름을두고‘지는해를등에얹고붉은꽃을피웠다’라고썼다.‘지는해’에이르기까지의행적을바탕으로‘붉은꽃’을관찰하는시적방정식은,삶의현실에발을두고자연의경이로움을발화(發話)하는시인의태도를말한다.
계절과꽃그리고순정한시심
시집의3부에실린시들은한결같이사시사철의계절을묘사의대상으로하고,또그계절의얼굴이되는꽃에시적의미를부가하는형식을갖추고있다.한해의서두를여는‘새해’의시,철따라형용이다른계절의시,일찍이괴테가하늘에는별이요땅에는꽃이라고노래한그꽃의시들은,이병석에이르러순수하고아름다운삶의다른이름들이된다.어느시인이변화하는계절의묘미를노래하지않겠는가.또어느꽃인들그자태가소중하고뜻깊지않겠는가.하지만이시인의시에서만나는그계기나경물(景物)들은,시인의내면이명경처럼맑고순전하다는사실을지속적으로감각하게한다.
「구름,바람,햇살」에서는이시인이계절의외형에해당하는구름,바람,햇살의세가지소재로자신의시적소망을나타낸다.그가구름이고싶은것은,온갖생물들이즐거이살수있게하는‘촉촉한눈’을가졌기때문이다.그가바람이고싶은것은,들판과산을축복하는‘귀한손’을가졌기때문이다.그가햇살이고싶은것은,꽃밭을화사하게하고하늘을꿈으로채우는‘따뜻한가슴’을가졌기때문이다.이렇게보면이시인이야말로계절의변환을통해호혜평등(互惠平等)과만민경애(萬民敬愛)사상의시현(示現)을주장하는사람이다.자신이‘그러한존재이고싶다’는시적염원은,그야말로정당한시인의자리에선이의발상이다.시는그언어가곱기만해서값진것이아니다.
자기성찰과신앙고백의시들
동양문화권에서널리알려진증자(曾子)의일일삼성(一日三省)은사람에대한충실,벗에대한신뢰,학습에대한열심을반성하는것으로,『논어』의〈학이(學而)〉편에나온다.이시집의4부에서볼수있는,시를통한자기성찰의유형은여러가지모습을보인다.일상적인일들,자화상,옛일의회상,삶의근본적의미등이여기서시의옷을입고등장한다.한편으로는시인이신실한신앙인인터이므로,그성찰의현현(顯現)이자기신앙의주인인신의뜻을묵상하는지점에이른다.뿐만아니라스스로의생애를공여한국기(國伎)태권도에의존중,우리겨레의이름으로길이반추해야할류관순과윤동주를향한경애(敬愛),남북분단현장의판문점경계석에대한염려등공동체적반성론도그의시세계에서자리를지키고있다.
「이랴워워」도참재미있는시다.‘이랴’는소를몰때앞으로가게하는말이며,‘워워’는그소의걸음을멈추게하는말이다.시인은이두명령어를사용하여‘나의인생을조율해주는’누군가를상정하고있다.두말할것없이그의절대자인신이다.이랴를통하여시적자아의멍에와걸음걸음이‘다른이의가야할길’이되기를기구(祈求)한다.더불어워워를통하여‘세상을향한부정적마음’을,자만과욕심을멈추게해달라고요청한다.누구나자신에게일어나기를원하는일이있고,자기가가담하기를원하지않는일이있다.그러나이시에나타난기도처럼선량한반성을신의안전(眼前)에제출한다면,그는한인간으로서도또신앙인으로서도보기드문수범(垂範)사례다
비가내린후
무지개가보이지않아도
눈이내려
가야할길을잃어버렸어도
내길을만들며가리라
-「내가는길보이지않아도」부분
위시는신의눈길아래에서,또신이만든세상의모든자연현상앞에서,겸손한자아의원망(願望)을피력해보인작품이다.‘내가는길보이지않아도’라는제목은,그러므로그렇게자신을낮추는명료한신호다.바람과별의격려,친구와‘그대’가보내주는믿음,비와눈이앞을막는역경의극복등이시에서열거된항목들은‘내길’을추동(推動)하는보석같은존재들이다.문제는가는길이보이지않고,안개가시야를가리고,가야할길을잃어버렸어도,‘내길을만들며가리라’는시인의확고한결단에있고그마음에있다.그러기에불가(佛家)에서는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하고,성경에서는‘무릇지킬만한것보다네마음을지키라’(잠4:23)라고가르치는것이다.이와같은시적의지는어쩌면무도의초발심(初發心)과소통되는것이아닐까여겨진다.
시인의정체성과시에거는꿈
왜이병석은이렇게지속적으로시를써왔을까.무엇이그로하여금무인(武人)의길과다소상거(相距)가있어보이는이길을가게했을까.이질문에대한답변을위해서는,왜시인이시를쓰는가에대한창작심리학적논리를환기하는것이유용할것같다.시인은자기내부에있는표현욕구를그대로둘수없어서시작(詩作)을한다.또는그시대와사회에대한심리적책임감,곧기록욕구를감당하기위해서이기도하다.이병석의시창작또한이와별반다를바없을것이다.다만우리가유의할것은,그의길이시와는좀다른모양이나빛깔을가졌더라도그에게시를배태(胚胎)하는예민한감성과이를시가되도록표현하는문장의기량이넉넉했다는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