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14.00
Description
밀리의 서재 X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광기의 시대에 던져진 스무 살 청년의 삶
10년의 추적 끝에 되살아난 할아버지의 육필 원고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조선 반도에는 가족 가운데 젊은 청년 한 명 정도는 일본군으로 징집되거나 이들을 보조하는 노동에 징용되어야 한다는 불가항력적 시대의 고통이 있었다. 4남 3녀 집안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최영우 역시 형제들의 짐을 질 수밖에 없었다.

포로감시원 채용에 지원한 그는 두 달간 졸속 훈련을 받은 후 남방으로 배치됐다. 2년 만기 근무 계약직에 50엔 정도의 봉급을 받는 ‘군속’이었지만, 실상은 일본군 이등병보다 못한 최말단 대우를 받았다.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연합군 포로들, 참 생경한 만남이 이국의 땅에서 이뤄졌다. 동서의 낯선 문명과 말 한 마디 소통조차 원활치 못하게 한 언어의 장벽, 그리고 음습한 밀림과 적도의 이질적인 환경 속에서 이십 대의 청춘들은 부대끼며 생존을 이어갔다. 자의적인 판단, 의지와는 동떨어진 비참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내던져진 청춘들 속에 조선인 스무 살 청년 최영우도 있었다. 결국에 그는 심신이 쇠락하고 영혼마저 만신창이가 되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희미하게나마 꾸었던 꿈과 이상은 산산조각났다.

최영우가 남방에 온 지 1년도 못 되어 전세가 반전되며 연합군이 승기를 잡아 나갔다. 포로감시원 신분은 포츠담 선언으로 패전국 일본에 귀책되어 180도 뒤집힌다. 그들은 어느새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전범 재판정에 서게 됐다. 그렇게 반강제적 분위기 속에서 ‘자발적 지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른 이유로, 젊은 조선인 청년들은 B·C급 전범의 낙인이 찍혔다.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무려 148명, 이 중 23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책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패망과 연합국의 승전 처리기인 1947년까지 만 5년 동안 스무 살 조선인 최영우가 남긴 육필 원고를 10여 년 동안 그의 손자가 직접 탐사하고 새롭게 발굴해 재구성한 르포르타주다. 미지의 땅인 ‘남방’으로 떠나기 전, 사냥개처럼 날래고 용감했던 젊은 청년의 기개가 시대의 파고에 꺾이고 뒤엉킨 기록이자, 스무 살 청년이 간직한 애틋한 감정과 로망도 흘긋흘긋 묻어나는 진솔한 기록이기도 하다.

스무 살 최영우,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창씨개명’과 ‘내선일체’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제국주의에 반강제적으로 투사된 청춘이었다.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큰 이슈에 묻혀 말 한 마디 못하고 숨조차 죽여야만 했던 시대의 아픈 손가락을 들춰 보며, 뒤늦게나마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저자

최양현

첨단영상기술기반의실감콘텐츠와영화를제작하는‘파란오이’대표겸감독.서울예대에서영화연출,중앙대에서국문학,KAIST문화기술대학원에서첨단영상기술을공부했다.영화〈조치원해문이〉〈지하실〉〈엄마를부탁해〉다큐멘터리〈우포늪의사람들〉TV단막극〈독도평전〉등을제작했다.외조부가남긴글을해제하고보충,재구성했다.

목차

여는글
평범했던스무살청년5

포로감시원3년,그리고포로신분2년12

이야기에들어가며
스무살의젊은청년최영우36
포로감시원의정체46

1장.우리는남방으로간다
끝나지않는항해53
육지를밟다61
말랑제5분견소69
화란인들이살던주택가와휴양지75
위안소11호실81
자카르타총분견소로이동하다86

2장.급박해지는전선
수마트라행포로수송선의침몰95
일반인을억류소로몰아넣다105
교통망개척을위한포로들의대이동111
하푸카스여인과의만남119
친구의충격적인증언129
글로독수용소로전근하다141
포로가된독일의잠수함승무원146

3장.일본의항복선언
천황의축어를읽다155
조선인민회결성163
인도네시아독립군과화란군사이의전투168
갑작스러운승선명령175
싱가포르창이전범수용소179
고통스러운수용소생활186
치피낭형무소192
석방과교수대사이에서197

이야기를마치며
고향으로돌아왔지만204
미완성의일기211

부록
포로감시원의전범재판에관하여218

참고자료224
도판출처227

출판사 서평

피끓는혈기로꿈과이상이넘쳐났던스무살청년최영우.이젊은이를나락으로내밀고폭풍속에허우적대도록한그난폭한시대를부질없이원망해본다.그시기는이땅에서다시는재현되지말아야할,아니생각조차하고싶지않은어둠의시간이었다.그는빛도보이지않고끝날것같지않은역사의깊은터널을힘겹게통과한무명의젊은이중하나였다.

하지만그를함부로폄훼하거나나약하다고평가할수는없다.그의마음을무자르듯단정지어헤아리고서글퍼할필요도없다.슬픔이란단어는이럴때흔히쓰는진부한것이아니다.그는그나름대로온힘을다해자신의시대를통과했고운명처럼주어진결과를감내했을뿐이다.엄혹한세상이제시한선택지는적었고,그는그선택지안에서자신의삶을살아내기위해최선을다했다.

질풍광기의시대에소수의제국주의자들에의해저질러진전쟁은수많은무명의개인에게큰고통과피해를주었다.무엇보다전쟁의최전선에서야했던젊은이들이희생양이되었다.서로자유롭게어울리며친구가되어교류했어야할전세계의청년들이먹고먹히는살육의현장에있어야만했다.전쟁은인성과감성은커녕이들에게승리를위해서는인간이지녀야할최소한의인권과존엄조차짓밟아도된다고강요했고,순수함과열정이가득했던그들의내면을황폐화시켰다.스무살조선인,자신의정체성조차모호했던그역시이서글픈비극의역사에반강제적으로내던져진젊은이들중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