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23.00
Description
한·중·일의 역사 비교를 통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양반》의 저자이자 ‘궁도박사’로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저자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론이자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인 ‘소농사회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40년 한국사 연구 성과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하였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2002년 도쿄대학에서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지난 10년 동안 연구한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양상, 이와 깊이 결부되어 있었던 양반의 존재양식, 신분제의 독특한 양상을 살펴본다. 또한, 토지소유와 신분과의 분리, 인구사와 가족사 등을 중국과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조선시대의 특성을 규명하고 있다.
이 책은 한·중·일 삼국의 역사 비교를 통해 토지소유와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과 친족 등에 이르는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고 있다. 나아가, 한국사의 근대이행과정과 역사적 경험을 오로지 자본주의로의 귀결로 상정한 채, 조선후기를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봉건적 해체기로 인식하는 한국의 역사학계와 지식인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

미야지마히로시

저자미야지마히로시(宮嶋博史)는1948년일본오사카에서출생하여교토대학문학부를졸업했고같은대학대학원에서문학연구과석사및박사과정을수료했다(동양사학전공).이후도카이(東海)대학문명학부강?사,도쿄도립대학인문학부조교수,도쿄대학동양문화연구소교수를거쳐2002년부터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교수로재직중이며,2010년부터는도쿄대학명예교수도맡고있다.그동안한국의조선시대와근대시기의경제사,사회사,사상사분야에집중적인연구를하했고동시에한국사의특징을동아시아적시야에서파악함으로써한국학계와외국학계의소통을위해고민해왔다.주요저서로『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1991년,도쿄대학동양문화연구소),『兩班』(1995년,중공신서,한국어판:『양반』노영구옮김,1996년,도서출판강),『明淸と李朝の時代』(공저,1998년,중앙공론사,한국어판:『조선과중국근세오백년을가다

목차

목차
1부동아시아사의서유럽모델론비판,‘소농사회론’
1장‘소농사회론’을구상하기까지
나의연구이력,‘도쿄에서서울로’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뜻밖의오해
‘소농사회론’이라는가설
2장동아시?아소농사회의형성
주자학과소농사회
소농사회의형성과정
소농사회,동아시아역사의분수령
3장‘소농사회론’그이후의공부
호적대장과역사인구학
동아시아속의한국과일본
나의연구정리
2부동아시아에서본조선시대
4장사대부와양반은왜토지귀족이아닌가
양안,검지장,어린도책비교
한ㆍ중ㆍ일토지대장의공통성
특권적토지지배의소멸
5장조선시대신분제논쟁
왜신분인가?
중국과일본의신분제유형
양반은신분인가?
6장양반은어떻게만들어졌나?
지배계층의정의
과거시험,양반으로의도약대
문과급제자,특정의소수가문이독점했을까?
문중별문과합격자분석
조선시대지배계층재생산메커니즘
7장한국의역사인구학은가능한가?
인구사와역사인구학
외국의역사인구학에서무엇을배울것인가?
한국역사인구학의과제
8장사회적결합에서본동아시아
사회적결합을비교하는의미
가족,친족결합의비교
조선시대‘계’와사회적결합의특징
3부동아시아사의가능성
9장민족주의와문명주의,3ㆍ1운동에대한새로운인식
『독립선언서』
조선민족대동단의『일본국민에게고함』
일본의태도
10장‘화혼양재’와‘중체서용’의재고
『미구회람실기』와‘항해술기’에대해
일본,중국과구미의만남그리고그비교
‘화혼양재’와‘중체서용’에서‘동도서기’로
11장유교적근대로서의동아시아근세
‘동아시아근세론’의문제점
주희와중국적근대
동아시아의유교적근대
12장역사학자의소설읽기,황석영의소설『심청』
화폐와여성
19세기후반이라는시기설정
동아시아에서구미의존재를어떻게자리매길것인가
왜심청인가?
현실은소설보다도더욱복잡하고중층적이다
4부21세기동아시아학과한국학을위한제안
13장동아시아세계속의한국학
‘지역연구’비판
동아시아사연구에서의유럽중심주의
동아시아사속의한국사를위하여
14장21세기동아시아연구와대학의역할
동아시아각국의대학편성,그문제점
전통과의단절을왜문제시해야하는가?
전통과근대의이분법을넘어서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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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소농사회론’과40년한국사공부의집대성
“한ㆍ중ㆍ일역사비교를통해찾은한국사에대한새로운이해”
『양반』의저자이자궁도박사(宮嶋博史)로잘알려진미야지마히로시교수(성균관대?학동아시아학술원,도쿄대학명예교수),그가처음으로제창한이론이자동아시아사와한국사의서유럽모델론비판인‘소농사회론’에대한자신의생각과40년한국사연구성과를한글로써서집대성한『미야지마히로시,나의한국사공부』를펴냈다.
이책은중국의사대부,일본의사무라이,그리고한국의양반을비교하고,명·청대의어린도...
‘소농사회론’과40년한국사공부의집대성
“한ㆍ중ㆍ일역사비교를통해찾은한국사에대한새로운이해”
『양반』의저자이자궁도박사(宮嶋博史)로잘알려진미야지마히로시교수(성균관대학동아시아학술원,도쿄대학명예교수),그가처음으로제창한이론이자동아시아사와한국사의서유럽모델론비판인‘소농사회론’에대한자신의생각과40년한국사연구성과를한글로써서집대성한『미야지마히로시,나의한국사공부』를펴냈다.
이책은중국의사대부,일본의사무라이,그리고한국의양반을비교하고,명·청대의어린도책,도쿠가와시대의검지장,조선의양안을비교하는등동아시아적시야에서한·중·일역사의비교를통해한국사의새로운이해를찾는다.저자는서구적근대와달리동아시아의근대는중국은명대에,한국은조선시대중기인‘16세기’부터시작되었다고한다.그때의전통이지금우리의삶에영향을주고있기때문이다.따라서근대사연구는개항기때부터가아니라조선시대에서시작되어야한다고강조한다.
특히‘주자학’을다시보자고한다.인간의본래적인평등성을전제로하면서도학습에따라인간을차별화하고사회질서를잡으려는주자학은적어도18세기말까지는가장개명된합리적사상이었다.그에입각한국가사회체제도무척선진적인것이었음은물론이다.따라서조선시대의주자학수용노력은당시로서는가장진전된중국모델의수용과정,요즘말로하자면‘세계화’였다는것이다.이책은이처럼동아시아의시야에서주자학적국가체제를확립해가는한국사의과정을,이를주도한양반들에초점을맞춰서살펴보고있다.
이책의말미에서제시하고있는미야지마교수의‘유교적근대’라는개념은현재와직결되는시대라는의미가근대라고할때이제까지의패러다임에서완전히벗어나중국과일본,한국까지동아시아의역사이해에서새로운지평을열어줄수있을단초이다.서구적근대화가상대화되고다양한근대개념이병존하는현재의시점에서근대새로운이념과이에기초한사회를구상할수있는지여부에어쩌면인류의미래가걸려있을지도모른다는저자의지식인이자역사학자로서의사명감이40년이라는연구의시간만큼이나묵직하게담겨있다.
미야지마히로시교수의『나의한국사공부』는한국사의근대이행과정과역사적경험을오로지자본주의로의귀결로상정한채,조선후기가빨리지나갔으면좋았을봉건제해체기로인식하는한국의역사학계와지식인사회에경종을울린다.
식민지근대화론자인가?-‘도쿄에서서울로’그의앎을향한이력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오해를받으면서도도쿄대학교수를박차고성균관대학으로자리를옮겨화제가된바있는것처럼미야지마히로시는한국사와의인연이남다른역사학자이다.이책의1부는‘소농사회론’이란담론을전후한문제의식의변화과정에관한경위,즉역사학자로서그의연구이력서에해당하는내용을담고있다.
‘학원분쟁’(60년대말부터일본에서크게일어난학생운동)이휩쓸당시교토대학을다닌그가한국사공부에관심을갖게된계기는‘부락문제연구회’라는서클활동에서만난재일한국인(조선인)과그에대한차별문제였다고한다.대학원을진학하자그의주임교수는“미야지마군,한국사를공부하는것은좋지만대학에취직할것은단념하게.”라는말에충격을받았다는기억에서부터한국어문법과발음을배우던이야기,그리고그의첫성과이자저작인『조선토지조사사업사의연구』(도쿄대학동양문화연구소,1991년)가나오기까지교토에서도쿄로,도쿄에서다시서울로이어진그의앎을향한이력이마치지도에그린듯이선명히다가온다.
“당시규장각은서울대도서관1층에있었는데양안을보려면마이크로필름을빌려가지고4층으로가서봐야했다.내가한국에온그무렵에는학생운동이활발해서도서관앞광장에서는매일같이집회가있었다.‘아침이슬’노래가끝나면곧데모가시작되고경찰이최루탄을쏘는그런나날이었다.도서관안에서그모습을보면서나는왜이런연구를하고있는가를반복해서자문할수밖에없었다.월드컵응원,촛불시위가있을때면1987년6월의그열기가다시떠오른다.”
첫책이출판된직후인1991년4월그가다시한국에왔을때흥미롭게도국내학계는그를‘식민지근대화론자’로각인한다.“오자마자내책에대해한국학계로부터많은비판을받았다.비판의주된내용은토지조사사업을근대화를위한사업으로평가한내입장에대한것이었다.이런비판은나에게그야말로뜻밖이었다.”
미야지마교수에게덧씌워진‘식민지근대화론’이란간단히말해일본의식민통치가한국근대화를이룩한원동력이었다는일제미화론이다.미야지마교수의반론은이렇다.
“토지조사사업이한국의토지제도를근대화시켰지만그것은일제의혜택이아니라조선시대에이미수조권적토지지배가해체과정에있었기때문에가능했다.”며한국사학계의주류적견해인내재적발전론에입각하여토지조사사업을토지수탈을위한것이라고파악하는것은자기모순이라꼬집는다.왜냐하면조선후기부농형의토지소유가발전했다면토지조사사업이시행되었던들쉽게토지를약탈당했을리없을것이고,사업자체가엄청난어려움을겪었을것이라보는것이다.“내가보기에토지조사사업으로인해농민들이토지를대량으로상실했다는견해만큼당시의농민을우습게보는시각도없다.이러한견해가일제를미화한것이라는비판에대해서는지금도도저히납득하기힘들고,내책을제대로읽었는지의심스러울뿐이다.”
미야지마교수의입장을정리하면,일제의토지조사사업이한국토지제도를근대화시킨것은분명하지만그러한토대는조선시대토지제도자체가근대화에도달할만큼이미성숙되어있었기때문이라는것이다.
‘소농사회론’의결정판,
“동아시아전통사회의모습과근대이행과정의특질을밝히는것”
과연그는‘일제미화론자’인가?『미야지마히로시,나의한국사공부』에는그를향한각종비판에대한자신의생각이어떠하며,역사학자로서구축하려는역사상이무엇인지를잘집약하고있다.이를극명하게보여주는것이‘동아시아소농(小農)사회론’이다.
1994년「동아시아소농사회론의형성」이란논문으로처음제기한이담론의목적이“동아시아전통사회의모습과근대이행과정의특징을파악하는것”이라는미야지마교수는“얼핏보면시대와지역에관계없이소농사회는극히보편적인존재라고생각되지만17~18세기의동아시아에서처럼소농이압도적인비중을차지하는사회는오히려예외적”이라한다.소규모자급자족농민들이밀집해살고있던동아시아는대규모부농중심의서구와는다른형태의사회였으며,그래서근대화의길도달랐다.중국에서는명대에,한국과일본에서는17세기경에성립한동아시아소농사회는단순히농업기술상의변혁이나농촌구조상의변화에그치는것이아니라고강조한다.
“거시적으로보면오늘날까지이어지는동아시아사회구조의특질은이소농사회의성립과더불어생겨난것이며,이러한의미에서동아시아의역사를소농사회의성립전후로크게둘로나눌수있을정도로획기적인변화였기때문이다.소농사회의성립을전후로하는동아시아사회구조의대변동에비한다면전근대로부터근대로의변화는오히려상대적으로작은것이었을뿐아니라동아시아의근대는실로많은것을소농사회의유산에서힘입었다고볼수있다.”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