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 생활

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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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예禮의 나라, 조선을 통치한 사족과
그들의 삶을 관통한 의례를 통해
조선의 내밀한 모습을 재구성하다!
오랜 시간 민간에서 소장해온 일기와 편지 등의 사료를 발굴ㆍ번역해온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가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제26권 『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 생활』를 출간했다. 조선시대 의례는 사족들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 시기 사족들은 관례, 혼례, 상례, 제례, 그리고 관직에 나아가 참여하는 국가 전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례적 절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갔다. 특히 이들이 남긴 일기 속에는 의례 생활과 관련된 다양하고도 개인적인 경험이 잘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운천호종일기』에는 임진왜란의 전쟁기, 국가의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선조의 외교 의례가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면밀히 나타나 있다. 또한 16세기 후반, 나라의 재앙을 쫓고 복을 기원하던 기양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초간일기』도 눈길을 끌며, 『역중일기』, 『하와일록』 등에는 18세기 사족 집안에서 치러진 관혼상제의 예가 사례별로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가 승문원에 발령받은 후 치러야 했던, 일종의 신고식이었던 면신례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다. 소중한 선조들의 기록 유산을 통해 조선시대 의례 생활의 생생한 실상과 조선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자.
저자

신진혜,김성희,박미선,윤혜민,임혜련

저자:신진혜
광주과학기술원인문사회과학부조교수
고려대학교한국사학과대학원에서「조선후기종묘의례연구」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공저서로는『조선시대의례연구의현황과지평의확장』『외규장각의궤연구:공신녹훈(功臣錄勳)』등이있으며,논문으로「임진전쟁기종묘의소실과재건과정연구」「정조2년(1778)영조·진종의廟와의기록」「조선후기各道의薦新進上과그禮獻의의미」외다수가있다.

저자:김성희
국사편찬위원회편사연구사
동국대학교사학과에서「조선숙종의군신의리정립과존주대의」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공저서로『조선시대의례연구의현황과지평의확장』『서울역사답사기5』등이,공역서로『ConfucianReforminChosonKorea-YuHyongwon’sPangyeSurok』『조선후기북방사자료집』등이있으며,논문으로「화양구곡조성의시공간적배경과역사적함의」「『하멜보고서』에기록된타자화의패러독스」외다수가있다.

저자:박미선
전남대학교인문학연구원부교수
고려대학교한국사학과에서「朝鮮時代國婚儀禮硏究」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공저서로『조선시대사람들은어떻게살았을까1』『함께하는시간-가족커뮤니티의개념들관계편3』『양반과왕실의문화교류-조선시대예제와의례문화의확산』등이있으며,논문으로「조선후기호남양반의서행西行경로와여행풍경」「『충효록』의편찬과가문의식」「초등학교교과서를통해본가족담론의변화」외다수가있다.

저자:윤혜민
건국대학교사학과조교수
건국대학교사학과에서「17세기후반국왕의정국운영과戚臣의역할:효종·현종·숙종을중심으로」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공저서로『조선시대의례연구의현황과지평의확장』『외규장각의궤연구:공신녹훈(功臣錄勳)』등이있으며,논문으로「함양(咸陽)남계서원(藍溪書院)의장서(藏書)운영」「17세기홍문록(弘文錄)을통한인사운영실태와그변화양상」「정조대연사례(燕射禮)의설행(設行)과그의미」외다수가있다.

저자:임혜련
한남대학교교육연구소연구교수
숙명여자대학교사학과(한국사전공)에서「19세기垂簾聽政硏究」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저서로『정순왕후,수렴청정으로영조의뜻을잇다』가있고,공저서로『조선의역사를지켜온왕실여성』『한양의여성공간』『경종대정치적길항과그유산』등이있으며,논문으로「『槐院新參同會錄』을통해본숙종대承文院分館과免新禮시행양상」「몽오김종수의정조묘정배향과출향,복향의의미」「조선시대왕비·대비의언문교서작성과수렴청정시변화」「19세기‘垂簾聽政儀’의시행과즉위의례」외다수가있다.

기획:한국국학진흥원인문융합본부

목차

책머리에

1장
『운천호종일기』에수록된임진전쟁기선조의외교의례시행과의미신진혜
머리말|임진전쟁기외교의례의양상|『운천호종일기』선조26년8월의의례기록분석|맺음말

2장
권문해의『초간일기』에기록된16세기후반외방기양제의사례와그의미김성희
머리말|권문해의생애와『초간일기』|『초간일기』수록기양제의기사의역사성|『초간일기』수록기양제의치제기록분석|맺음말

3장
18세기대구옻골최흥원가족의기제사실천양상박미선
머리말|백불암최홍원과그의가문|기제사실천의양상|기제사실천의특징|맺음말

4장
『하와일록』을통해본안동사족류의목의일생의례윤혜민
머리말|부친류선조에대한상례|관례와혼례의실행|맺음말

5장
일기를통해본승문원관원의면신례시행양상-『계암일록』과『청대일기』를중심으로임혜련

머리말|문과급제자의승문원분관과면신례|면신례의시작,신급제침희|승문원권지의회자|허참례시행,면신례의마침|맺음말:면신례의폐해,그럼에도중요한의미

출판사 서평

예禮의나라,조선을통치한사족과
그들의삶을관통한의례를통해
조선의내밀한모습을재구성하다!

오랜시간민간에서소장해온일기와편지등의사료를발굴?번역해온한국국학진흥원인문융합본부가‘국학자료심층연구총서’제26권『일기로본사족의의례생활』를출간했다.조선시대의례는사족들의삶과는떼려야뗄수없는관계였다.이시기사족들은관례,혼례,상례,제례,그리고관직에나아가참여하는국가전례에이르기까지수많은의례적절차속에서자신의삶을영위해나갔다.특히이들이남긴일기속에는의례생활과관련된다양하고도개인적인경험이잘기록되어있는데,특히『운천호종일기』에는임진왜란의전쟁기,국가의환란과어려움속에서이루어진선조의외교의례가어떻게시행되었는지면밀히나타나있다.또한16세기후반,나라의재앙을쫓고복을기원하던기양제의의미를담고있는『초간일기』도눈길을끌며,『역중일기』,『하와일록』등에는18세기사족집안에서치러진관혼상제의예가사례별로잘드러나있다.마지막으로조선시대문과급제자가승문원에발령받은후치러야했던,일종의신고식이었던면신례에대한기록도흥미롭다.소중한선조들의기록유산을통해조선시대의례생활의생생한실상과조선의내밀한모습을들여다보자.

임진왜란이라는국가존망의위기속
불타버린종묘보다명황제에대한예를선택한선조의굴욕외교

임진왜란이라는대규모전란기는백성은물론왕실과정부도피난길에오르게된초유의비상시국이었다.조선은오례五禮를중심으로국가의례를주관해온나라이지만,전란을맞아이를그대로구현하는데에는어려움이있을수밖에없었다.특히이시기에는명군이조선에파병되어있었으므로명나라사신에대한외교적의례가더욱중요했다.이시기,선조를호종扈從(임금이탄수레를호위하는사람)하며사관史官이었던김용이선조26년8월부터12월,선조27년6월까지자신이선조를모시며직접보고들은사실을기록해3책분량의필사본『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를남겼다.
이일기에기록된바에따르면,선조는임진전쟁초반에는명나라에서조선의상황을객관적으로파악하게하려는의도로명사신과의접견과연례절차를초라하게준비하면서조선의어려움을전달하려고하였다.하지만선조26년평양탈환이후강화교섭시기에접어들면서는선조가몸소명군을예우하고,명장수에대해감사의뜻을담은배례인사배와고두례를행하거나명하졸들까지예의하려고하였다.『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정해진절차가아닌사배를추가로시행한다거나황제가아닌명제독을위해고두례를시행한것은조선이처해있었던특수한상황을여실히보여준다.존망의갈림길에서있었던선조는국왕으로서자신이할수있는모든예우를동원해명나라의원조를이끌어내고자했고,이후선조는환도하면서불타버린조선의종묘와명황제가운데어느쪽에먼저예를표할지논의하는과정에서사적인예보다는중국에대한사은이먼저라고말할정도로외교의례의중요성을강조했다.

국가의어려움은곧위정자부덕의탓…
유교적통치의중요수단으로활용된기양제

조선시대에수령은국왕의통치를대행하는존재였고,수령의주요직무중에는지역의행정이나민사를보는일외에도각종의례를제주로서집전하는것이포함되어있었다.또한이시기국가에긴급한재난이나어려움이발생하는것은곧위정자의부덕이나잘못때문이라고여겼기때문에기양제祈禳祭(재앙을쫓고복을비는제사)는매우중요한의례였다.
16세기후반조선중기문신이었던권문해가남긴『초간일기草澗日記』에는자신이수령으로서거행한각종기양제에대한기록이있다.그의기록에따르면가뭄이지속되자장님무당이나승려와같은비유교적인물들을모아기우제를지내기도하고,제사를지내줄후손이없이억울하게죽어전염병을일으킨다고여겼던여귀의원혼을위로하기위한여제를지내기도했다.혹은성변星變(별의위치나빛에이상이생김)이나지진과같이괴이한기상이변현상이생겼을때에는해괴제解怪祭를행하거나,물난리가났을때는날이개기를빌면서기청제祈晴祭를지낸기록도남아있다.

조선시대관혼상제에나타난사족의삶
성장과함께체득해나간유교식일생의례

『하와일록河窩日錄』은안동하회에살던류의목이라는사족이12세에서18세까지(1796~1802년)10대시절에쓴일기다.조선시대사족의10대시절기록은그자체로귀하기도하거니와어떤교육을받으며조선사족사회의구성원으로성장하였는지를잘보여주기에중요한사료다.이기록에는15세때부친상을치르며시묘살이를하지않고신주를집으로모셔오는반혼의모습,상례중유교적결례를범해친족들의도움을받는상황,국상이있을때는소상을연기하거나친족들의상례참여등을통해복잡한의례절차를배워나가며류의목이성장하는모습이소상히묘사되어있다.특히『가례』를준용하되일부속례관행을실행한점이눈길을끄는데,이는류의목의관혼례에서도잘드러난다.류의목은3년부친상을마치고혼례를올리기위한사전단계로간소하게관례를치른다.이때혼례를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즉신부집에서혼인을치르고일정기간그대로친정에머물다가시가로가는방식인신속례로행하는데,18세기말에서19세기초까지도『가례』를따르되일부시속時俗의현실을반영하는의례를따랐다는사실을알수있다.
한편,조선시대사족들의제례시행은백불암최흥원이쓴일기인『역중일기曆中日記』에잘나타나있다.최흥원은종가의종자로서기제사를실천했지만무조건절대적가치로여긴것은아니고,질병등일상에서여의치않은상황이발생할때에는가족에게위임하기도했다.8,9촌까지넓은일족이참석했던기제사는‘궐명厥明(날이바뀌는첫새벽,망자가사망한당일새벽)’에제상을준비하고‘질명質明(날이밝으려할무렵)’에참여자들이의복을갖추어입고,‘닭이울면’시작하는식의시간적기준에따랐다.공간은집안내대청이나안채등은물론,초당,산소아래촌집,혹은아우의집에서지내기도했는데이때는신주를내지않고지방을써서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