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미학의 힘 (대중을 현혹한 파괴의 예술가)

히틀러와 미학의 힘 (대중을 현혹한 파괴의 예술가)

$37.00
Description
독일을 사로잡은 히틀러의 성공과 몰락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안다. 뭘 더 알아야 하나?” 한 저명한 유대인 지도자가 히틀러의 젊은 시절에 관한 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했을 때 한 말이다. 사실이 그렇다. 히틀러에게서 인간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라면 말이다. 그가 증오와 폭력, 전쟁과 인종 학살을 행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행위의 동기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역사상 독재자들은 대중을 통제하고, 존경을 얻고, 권력을 과시하고, 자신을 기념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히틀러는 ‘미학’을 활용하고 자신의 통치를 문화적 차원에서 정당화했다. 그는 차원이 다른 독재자였다. 파괴와 인종 청소는 새로운 건설로 가기 위한 길이었다. 예술은 권력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었다. 그는 제3제국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화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이 책은 정치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히틀러의 기록을 모았다. 미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뒤틀린 욕망이 어떻게 세계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 등장한다. 예술이 독재자에게 어떻게 아우라를 씌울 수 있는지, 독재자가 예술에 심취했을 때 어디까지 파괴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독자들은 예술에 심취한 히틀러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겠지만, 비로소 역사적 비극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저자

프레더릭스팟츠

저자:프레더릭스팟츠(FredericSpotts)
미국의전직외교관이자문화역사가.스와스모어대학교를졸업하고터프스대학교플레처스쿨에서석사학위를,옥스퍼드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20년넘게미국외무부에몸담으며워싱턴DC,프랑스파리,서독본,이탈리아로마에서근무했다.유럽의정치와문화분야에관한폭넓은저술활동을했으며,이책은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의국제문제연구소에방문학자로재직중이던2003년에썼다.이외에도『독일의교회와정치(TheChurchesandPoliticsinGermany)』(1973),『바이로이트:바그너페스티벌의역사(Bayreuth:AHistoryoftheWagnerFestival)』(1994),『부끄러운평화:프랑스예술가와지식인이나치점령에서살아남은방법(TheShamefulPeace:HowFrenchArtists&IntellectualsSurvivedtheNaziOccupation)』(2008),『저주받은유산:클라우스만의비극적인삶(CursedLegacy:TheTragicLifeofKlausMann)』(2016)을썼다.특히바이로이트에대한그의연구는해당분야의표준으로여겨진다.

역자:윤채영
서울대학교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과정을수료,고려대학교국어교육학과를졸업했다.옮긴책으로『마크로스코』,『제임스앙소르』,『후쿠자와유키치다시보기』,『왜다시자유인가』가있다.

목차

이책을둘러싼이야기들
머리말
참고문헌에관하여

1부_마지못한독재자
1장_보헤미안예술애호가
2장_문화철학
3장_거대한역설

2부_예술적인지도자
4장_정치가인예술가
5장_예술가인정치가

3부_파괴의예술가
6장_새로운독일,새로운독일인
7장_죽음의정화

4부_실패한화가
8장_악전고투하는수채화가
9장_위작화가들과수집가들

5부_예술독재자
10장_모더니스트라는적
11장_국가사회주의리얼리즘의실패
12장_예술품수집가

6부_완벽한바그너숭배자
13장_히틀러의바그너인가?바그너의히틀러인가?
14장_‘바이로이트공화국의총통’

7부_음악의마스터
15장_에우테르페의강간
16장_음악후원가
17장_지휘자와작곡가들

8부_건축의마스터
18장_건축을통한불멸
19장_정치적건축
20장_독일리모델링
21장_미학과교통

맺음말
감사의말

참고한도서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예술은어떻게파시즘의무기가되는가”
독재자예술가의초상을그린문제적저작

히틀러에대한기존연구들은대부분그를반유대주의와학살,전쟁과파괴를일으킨정치적인물로만다루어왔다.히틀러전기를쓴역사학자이언커쇼도“정치바깥에서히틀러의삶은대체로공허하다”라고했다.그러나히틀러는인종주의만큼이나예술에관해서도진지한관심을보였다.그의정치적행위를단순한권력욕의결과로본다면이커다란비극의절반만보는셈이다.

이문제적책은2002년출간되었을당시「인디펜던트」로부터그해최고의책중하나로선정됐다.“철저하게새로운해석”,“근본적인재평가”,“지금까지정치나인물전기분야에서찾아보기어려웠던참신한시각”이라는평가를받았고,「컨템퍼러리리뷰」는“이제부터우리는히틀러에관해새롭게이해해야한다”고긍정적으로논평했다.「뉴욕타임스」의평론가는이책을“읽고나면울적한기분이든다”라면서도나치즘에관한주요연구들가운데한자리를차지할것이라평했다.주목할만한점은이책이유대인저널과백인민족주의커뮤니티인스톰프런트에서동시에좋은평가를받았다는점이다.

미국의전직외교관이자문화역사가인프레더릭스팟츠가쓴이책은아돌프히틀러의예술가적측면이정치적활동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독창적으로탐구한다.20년넘게미국외무부에몸담으며유럽주요도시에서근무,유럽정치와문화에대해폭넓은연구를해온저자의학문적엄밀함과필력이빛을발한다.이책에서히틀러는단순한악의아이콘이아니라예술가적기질을가진정치가로재조명된다.그의복잡한성격과정치적행동을입체적으로드러낸다.무엇보다이책은히틀러가어떻게대중을선동하고,나치즘을문화적운동으로발전시켰는지이해하는데중요한단서를제공한다.독자들은예술과정치가어떻게얽혀있는지,예술이어떻게정치적도구로사용될수있는지볼수있을것이다.역사,예술,정치등여러분야에서도나치즘의연구를심도있게해줄것이다.

“파괴는건설로가는길이었다”
유럽재건의꿈과창조적열망의이중성

히틀러는자신을본질적으로예술가로여겼다.젊은시절그는화가를꿈꾸었고,빈미술아카데미에두번지원했으나모두거절당했다.이러한실패는그의자아에깊은상처를남겼고,그로인해그는예술가로서의꿈을포기하지않으면서도다른경로를찾게되었다.바로정치였다.그러나정치에입문한후에도히틀러는예술을통해사회를변화시키고독일과유럽을재건하겠다는강렬한욕망을버리지않았다.그는건축,회화,음악등다양한예술분야에서자신의비전을펼쳤으며,독일민족의우월성을강조하고,국민을결집하고자했다.전쟁은그러한자신의이상을실현하려는과정이었다.설령그전쟁이유럽을파괴하고,수많은인명을희생시키는결과를초래했더라도말이다.그에게파괴는건설로가는길이었다.

히틀러의예술가적면모는그의리더십스타일에서도잘드러난다.그는대중을사로잡기위해뉘른베르크당대회를비롯한장대한퍼포먼스와상징적인연출을즐겼다.그의연설은철저히연출된이벤트였으며,이를통해대중의감정을자극하고,자신의메시지를효과적으로전달했다.밤시간대의조명을활용한다거나,빨강과검정의스바스티카깃발로연단을장식하는등,자신의비전을실현하기위해대중의감정을조작하는데에도능숙했다.이는그의정치적성공의중요한요소였다.이런퍼포먼스가대중들에게정치참여감각을선사했기때문이다.그러나동시에이러한능력은그가대중을파괴적인전쟁으로이끄는원인이되기도했다.
결국이책에서히틀러의예술가적기질은그의인간적면모보다는그가지닌파괴적힘과창조적열망의이중성을드러낸다.히틀러는문화국가를표방한수많은예술정책으로자신의이상을실현하고자했으나그결과는비극적인전쟁과파괴일뿐이었다.이책에담긴수많은인용문과풍부한사진자료들은발터베냐민이이야기했던‘정치의예술화’가어떤양상으로전개되는지생생하게보여준다.예술과정치가어떻게결합할수있는지,그리고그결합이얼마나파괴적인결과를초래할수있는지를보여주는극적인예다.

문화는권력을획득하는수단이자
권력이추구하는목적그자체였다

히틀러의예술정책의핵심은자신이좋아하는것을모든독일인이좋아하는것이었다.그는고전주의와낭만주의에매료되어있었다.이러한전통을따르는예술가들을후원하는제3제국의예술정책은선전부장관과제국문화회의소소장인요제프괴벨스에게맡겼다.괴벨스는예술작품을철저히검열하고,나치이념에부합하는작품만을전시하도록했다.그러나그작품이란철저하게히틀러의입맛에맞아야하는것이었다.정책들은철저하게히틀러의지시에따라실행되었다.게다가그지시는자의적인판단이아니라하인리히호프만,게르디트루스트,아르노브레커,벤노폰아렌트,한스포세등히틀러가예술적식견을인정한자들의의견을반영한경우가대부분이었다.

히틀러는건축분야에서는알베르트슈페어와헤르만기슬러같은건축가를통해거대한공공건물과기념비적인구조물을설계하고건설했다.특히제3제국에서의경험을책으로펴낸바있는슈페어는히틀러의비전을충실히따르며,베를린의‘게르마니아’프로젝트를포함한여러상징적인건축물을만들어냈다.조각분야에서대표적인사례는아르노브레커와요제프토락이다.히틀러는특히브레커에게대규모작업실을제공하고,수많은공공조각프로젝트를맡겼다.브레커는이상적인아리안인종의우월성을표현하는작품들을제작했다.

음악에있어서히틀러는리하르트바그너의숭배자였다.그는바그너의후손들과친밀한관계를유지하면서그들의활동을적극적으로후원했다.바그너의음악은히틀러에게강력한영감의원천이었다.동시에바그너의오페라를통해독일민족의영혼을표현하고자했다.단순한예술적동경이아니라그들을통해자신의이념을확산하고자하는의도였다.그렇게바그너의음악은나치이념을홍보하는도구로사용되었고,당내부의반발에도불구하고바그너의오페라를위한축제를지원했다.그밖에도지크프리트바그너와빌헬름푸르트벵글러와같은음악가들을지원하며,그들의작품을통해자신의이념을확산시키고자했다.

독일을매혹시킨딜레탕트
편협한취향이비극이되기까지

독일을‘문화국가’로재건하고자했던히틀러는모든예술과문화를철저히통제하려했다.특히모더니즘예술을독일문화의타락으로보았으며,이러한예술이유대인의영향아래있다고주장했다.그는유대인이언론과예술평론을통해모더니즘을확산시키고,이를통해독일의전통적인가치를훼손한다고믿었다.특히히틀러는유대인들이모더니즘예술을구매하고,이를통해경제적이익을챙기며,독일의문화적순수성을해친다고비난했다.이는예술계에서유대인의영향을철저히배제하려는시도로이어졌다.

히틀러는큐비즘,다다이즘,표현주의등을‘타락한예술’로간주하고배격했다.파울클레,바실리칸딘스키,에른스트루트비히키르히너와같은화가들은히틀러의탄압대상이되었다.이들은히틀러의명령에따라작품이제거되고전시가금지되었으며,퇴폐미술전에서조롱과비난을받았다.1937년뮌헨에서열린퇴폐미술전에서는650점이상의작품이전시되었고,이들대부분은이후파괴되거나판매금지되었다.전통적인미학의우수성을강조하는과정에서유대인예술가와그들의작품이철저히배제된것이다.이러한탄압은많은예술가들이독일을떠나망명하게했다.

결국제3제국의문화국가비전이란히틀러자신의예술관을독일국민에게강요한것에불과했다.그결과로독일예술계의문화적다양성과창의성은급격하게쇠퇴했다.문화국가라는비전을내세운히틀러가정작예술과문화에서도파괴를가져왔던셈이다.게다가반유대주의는예술분야에국한되지않고제3제국정책의중요한축이되었다.그결과는우리가아는바처럼커다란비극이었다.그리고이모든게히틀러의예술관과문화적순수성을지키려는명분아래이루어졌다는점이이책이말하고있는비극의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