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의 역사 (인도를 지배한 마지막 거대 제국, 무굴! 황금과 피로 쓴 제국의 역사, 세계를 압도한 찬란한 문명의 절정 | 반양장)

무굴 제국의 역사 (인도를 지배한 마지막 거대 제국, 무굴! 황금과 피로 쓴 제국의 역사, 세계를 압도한 찬란한 문명의 절정 | 반양장)

$29.22
Description
지금 우리는 왜 무굴 제국을 알아야 하는가?
인도를 지배한 마지막 거대 제국, 무굴.
세계를 압도한 찬란한 문명의 절정.
무굴 제국의 역사를 총망라한 국내 최초의 책!
오늘날 세계는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 인구 1위,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 경제국 중 하나,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이루는 외교 강국. 국제 안보와 경제 질서 재편의 중심에 인도가 있다. 그렇다면, 이 눈부신 도약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해답은 무굴 제국에 있다.
이 책은 무굴의 시작부터 멸망까지를 다룬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통사다. 무굴 제국은 단순한 왕조가 아니다. 힌두교와 이슬람, 수많은 언어와 민족이 뒤섞인 광대한 대륙을 융합과 포용, 공존의 방식으로 통합하고 통치했던 거대한 정치 실험장이었다. 또한 세계 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던 초강대국, 세계 무역의 중심지이자 유럽보다 두 배 많은 인구, 유럽 3분의 1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 개혁과 혁신을 통해 확립한 강력한 행정 제도, 문화와 종교의 융합 속에서 꽃핀 정치·예술·사상의 황금기, 이 모든 것이 무굴 제국이었다. 무굴 제국은 인도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유럽 열강이 동경했던 ‘황금의 땅’이었음을 보여 준다.

인도는 풍성한 인구와 자원을 바탕으로 17세기의 무굴 제국처럼 세계 경제의 선두권에 부상하고 있다. 무굴 제국을 들여다보면 인도라는 나라가 단순한 신흥 강국이 아닌, 찬란한 문명의 맥을 이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세계사는 더 이상 유럽의 독무대가 아니게 된다. 세계사의 축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 봄으로써 지금의 세계 질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

마이클피셔

저자:마이클피셔
미국오버린대학교의로버트댄포드역사학석좌교수.시카고대학교에서남아시아연구로역사학석사와박사학위를취득했으며,16세기이후인도와유럽에서빚어진인도인과유럽인사이의상호작용에관심을갖고연구하고있다.2007년에는사회과학분야에서뛰어난교육업적을인정받아교육우수상TeachingExcellenceAward을수상했다.
《인도사AHistoryofIndia》《세바다너머:무굴제국의여행자이야기BeyondtheThreeSeas:Travellers’TalesfromMughalIndia》등무굴및인도역사를다룬15권의저서와50여편에이르는다양한글을집필했다.또한인도델리대학교,자와할랄네루대학교등에서방문교수를지냈다.

역자:최하늘
한국외국어대학교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사학과에서동양사석사과정을마쳤고현재터키에서박사과정중이다.번역기획공동체‘창窓’에서번역가로활동하고있으며,주로몽골제국시대이후의중앙유라시아와오스만제국에관심을쏟고있다.옮긴책으로는《비잔티움의역사》《흉노와훈》《티무르의발흥과지배》(근간)등이있다.

감수:이옥순
인도델리대학교에서인도사로석·박사학위를받았고연세대학교연구교수와서강대학교조교수를,(사)인도연구원원장을지냈다.지은책으로는《무굴황제》《우리안의오리엔탈리즘》《인도현대사》《인도는힘이세다》《최소한의인도수업》등이있다.

목차

한국독자를위한저자서문
감수의글
연대표
일러두기
들어가며_시간과공간에따라변화한무굴제국

제1부무굴제국의기원과창건(1526~1540,1555~1556년)

제1장인도북부정복이전의바부르
무굴제국의기원이된칭기스왕조와티무르왕조│경쟁자사이에서보낸바부르의청년기│바부르의카불시절│1526년,바부르의첫번째정복
제2장바부르황제의무굴제국만들기
낯선남아시아의환경│남아시아문화와공동체의상호작용│농경·목축·삼림에기반한남아시아경제│남아시아의정치세계│무굴제국창건
제3장후마윤황제와인도인
후마윤의황제계승│후마윤이거둔초기의군사적성공│후마윤의무굴제국상실│무굴제국재건을위한후마윤의원정

제2부악바르황제재위와무굴제국의확립(1556~1605년)

제4장무굴제국의중심이된악바르황제
악바르의급작스러운즉위와경쟁자들│섭정의그늘에서벗어난악바르│결혼동맹으로지지자를확대한악바르
제5장악바르황제와무굴제국의제도
자민다르가지배한농촌경제│지방엘리트에의존한무굴제국의지방행정│무굴제국의만사브제도
제6장수도에따른악바르황제재위기의변화
아그라시기,1556~1571년│파테푸르시크리시기,1571~1585년│라호르시기,1586~1598년│데칸의전장과아그라에서보낸말년

제3부무굴제국의전성기(1605~1707년)

제7장자항기르황제와무굴궁정의개화
경쟁자와반란을물리치고황제가된자항기르│화려한예술과혁신의궁정│누르자한과샤자한의계승분쟁
제8장샤자한황제와무굴제국의발돋움
되풀이되는반란과데칸에서의전쟁│중앙아시아를향한원대한야망│샤자한의투옥으로끝난계승분쟁
제9장무굴제국의정점이자쇠퇴의시작,알람기르황제
알람기르의즉위와통치면모│데칸원정과어두운미래│확대되는전쟁과무굴제국의퇴보

제4부무굴제국의해체와기억(1707년부터현재까지)

제10장무굴제국의소멸
바하두르샤와어지러운계승│섭정의지배를받는살라틴과황제들│최후의무굴황제들
제11장무굴제국의의미에대한논쟁들
17세기의무굴제국에관한다양한시선│18세기이후의무굴제국역사서술과중요성│영국식민통치시대,1857~1947년│독립이후무굴제국역사의의미모색

그림·지도·계보도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무굴제국의황제들과그가계:1526년에서1857년까지
무굴제국을이해하는핵심개념들

출판사 서평

지금우리는왜무굴제국을알아야하는가?
인도를지배한마지막거대제국,무굴.
세계를압도한찬란한문명의절정.
무굴제국의역사를총망라한국내최초의책!

오늘날세계는인도를주목하고있다.세계인구1위,빠르게성장하는주요경제국중하나,세계최대의민주주의국가이자미국과중국사이에서전략적균형을이루는외교강국.국제안보와경제질서재편의중심에인도가있다.그렇다면,이눈부신도약의뿌리는어디에있는가?그해답은무굴제국에있다.
이책은무굴의시작부터멸망까지를다룬국내최초로소개되는통사다.무굴제국은단순한왕조가아니다.힌두교와이슬람,수많은언어와민족이뒤섞인광대한대륙을융합과포용,공존의방식으로통합하고통치했던거대한정치실험장이었다.또한세계GDP의약4분의1을차지했던초강대국,세계무역의중심지이자유럽보다두배많은인구,유럽3분의1에달하는광대한영토,개혁과혁신을통해확립한강력한행정제도,문화와종교의융합속에서꽃핀정치·예술·사상의황금기,이모든것이무굴제국이었다.무굴제국은인도가‘가난한나라’가아니라유럽열강이동경했던‘황금의땅’이었음을보여준다.

인도는풍성한인구와자원을바탕으로17세기의무굴제국처럼세계경제의선두권에부상하고있다.무굴제국을들여다보면인도라는나라가단순한신흥강국이아닌,찬란한문명의맥을이은존재임을알게된다.그순간,세계사는더이상유럽의독무대가아니게된다.세계사의축을서쪽에서동쪽으로옮겨봄으로써지금의세계질서를새롭게바라볼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

세계사의또다른중심이자유럽이동경했던황금의땅
황금과피로쓴제국의역사,
번영과파멸이교차하는거대한역사의무대

무굴제국은1526년중앙아시아출신의바부르가인도를정복하고세운이슬람왕조로,약3세기동안세계최고의부를일구어번영을누리다1857년막을내렸다.이나라는인도역사에서가장중요한시기로평가되지만,사실공식적으로‘무굴’이라는국명을사용한적은없다.‘무굴’이라는이름은왕조를세운바부르와그후손이속한부족을가리키는말로,몽골을뜻하는페르시아식표현이다.

이책은무굴제국의정치와외교는물론,종교와문화,예술,국제관계에이르기까지제국의전생애를입체적으로조망한다.무굴제국의시작은‘세계의정복자’칭기스칸과티무르의후손바부르의피의정복에서시작된다.이후악바르,자항기르,샤자한,알람기르로이어지면서17세기를제국의전성기로인도한다.이시기의무굴제국은경제적으로나문화적으로전성기일뿐만아니라영토또한사상최대판도를기록하게된다.〈감수의글〉에따르면,《옥스퍼드영어사전》이영향력있는인물이나지배자,기업계와언론계의거물을‘모굴Mogul’이라고표기하게된것은무굴황제의묵직한존재감과그들이다스린제국의위상을반영한것이다.

무굴제국은인류역사상손꼽히는대제국이었다.동시대중국을제외하면,당시세계에서가장강력하고부유한국가로떠올랐으며,그번영의흔적은지금도곳곳에서확인할수있다.1850년대인도로부터강제로헌납받아현재런던탑에전시되어있는코흐누르(일명코이누르)다이아몬드,전설로남은‘공작옥좌’만보더라도무굴제국의눈부신부를짐작할수있다.코흐누르다이아몬드는당시전세계가이틀하고도반나절을쓸값어치에해당했고,각종보석과금으로장식된이옥좌는무려7년에걸쳐완성되었다.
무굴제국이이처럼막대한부를축적할수있었던것은지정학적위치덕분이었다.중앙아시아와중국,멀리는유럽을잇는비단길과동아시아에서아메리카로이어지는해상교역로의중심에위치한무굴제국은교역과무역의요충지로서풍요를누렸다.
그부를바탕으로무굴황제들은예술과문학,건축을아낌없이후원했고,이는곧찬란한문화적전성기로이어졌다.특히악바르황제가닦은제국의토대위에서자항기르와샤자한황제는무굴예술과건축을한층정교하고세련된형태로꽃피웠다.타지마할,델리의붉은요새,아그라요새등은무굴제국의황금기를상징하는걸작들이며,오늘날까지도그찬란한영광을고스란히전하고있다.

하지만알람기르사후유약한황제들이잇달아즉위하여제국의행정과통제는드넓은영토에미치지못하게된데다섭정들이황제보다강력해지는등혼란에빠졌고,이런상황에서영국동인도회사는점차광대한인도영토의정복자이자지배자로진화하여결국영국의식민지배를받기에이르고만다.

무굴제국은찬란한황금과피로쓰인대서사시이다.번영과파멸이교차하는거대한역사의무대,그중심에무굴이있었다.

융합과포용,공존의방식으로
거대한인도대륙을통일한무굴제국의모든것

같은시기강력한이슬람제국으로는사파비왕조와오스만제국이있었지만,무굴제국이이들과뚜렷이달랐던점은지배층과피지배층간의종교적간극이었다.지배자는이슬람을따랐지만,압도적다수의백성은힌두교신자였기때문이다.
이러한특수한상황속에서무굴제국은배척이아닌포용,동화가아닌융합을택했다.힌두전통과페르시아양식이만난무굴세밀화,이슬람건축위에힌두조형미가더해진웅대한무굴건축,힌두교경전과대서사시를페르시아어로번역하고,음악을통해서로다른문화를연결하려한시도들이모두가융합의결과였다.비록이문화가기층까지깊게뿌리내리지는못했지만,다양한언어와종교,문화가느슨한형태로공존했던무굴제국의유산은이후영국식민통치와현대인도국가형성에도지대한영향을남겼다.
무굴제국은단순한과거의제국이아니다.지금도여전히유효한‘다름속의공존’이라는질문을우리에게던진다.서로다른종교와문화가충돌하는오늘의세계에서,무굴제국의실험은지금우리가나아가야할방향에대한하나의단서를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