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 텍스투라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 텍스투라

$20.00
Description
“고통과 고통 사이 평온하고 맑게 갠 자연 속에서
그가 미소 짓고 있다.”

규범과 정상성 바깥에서
금지된 무한을 향해 폭발하는 광기와 예술
사유 아닌 감각으로, 말이 아닌 음악으로
몸의 열림과 생의 약동을 생생히 그려낸 ‘잔혹의 시’
20세기 프랑스의 작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의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가 읻다의 산문 문학 시리즈 ‘텍스투라’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연극과 시, 영화와 회화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활동한 전방위 예술가 아르토는 ‘잔혹극’으로 대표되는 고유의 연극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독자적인 문학적 탐구를 통해 발전시킨 ‘기관 없는 신체’, 의미와 재현에서 해방된 음성 언어 등은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수전 손택 등 후대의 여러 철학자와 비평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20세기의 전위극과 부조리극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아르토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에 관해 쓴 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와 함께 회화 및 연극을 다룬 짧은 글 다섯 편, 그리고 아르토의 그림을 부록으로 수록하여 아르토의 예술론과 작품 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책을 엮고 옮긴 프랑스 문학 연구자 이진이는 해제에서 아르토의 문학과 연극이 당대 정신의학의 권위와 사회 구조에 저항하는 적극적 실천이었음을 논하며 광기와 예술, 그리고 사회의 관계를 성찰한다.

“아니다, 반 고흐는 미친 게 아니었다.”
스스로 빛을 밝힌 자, 빈센트 반 고흐
누가 그를 광인으로 규정하는가

1947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회화전이 열렸다. 한 예술 주간지는 전시 소식을 알리며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조아킴 비어의 글을 통해 화가와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비어에 따르면 반 고흐의 일생 대부분은 신경 정신적 퇴화의 증거로 가득차 있고, 광기가 그의 천재성을 낳았으며 그의 예술 활동은 정신적 문제들에서 기인한다. 이 글을 접한 앙토냉 아르토는 “한낱 의사의 빌어먹을 수술칼이 위대한 화가의 천재성을 내리 만지작거리게 둘 수 없다”고 격분하며, 이에 대한 반박으로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를 집필했다.
이 글에서 아르토는 병리학적 진단으로 대상화된 반 고흐의 생을 의학의 폭력으로부터 구출하여, 그의 생이 지닌 날것의 경련을 시적 언어로 되살리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아르토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를 통해 포착하려는 반 고흐의 삶은 그가 잔혹극의 무대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 삶과 다르지 않다. 이때 아르토가 말하는 ‘잔혹’이란 피가 튀는 잔인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건조한 사실들의 나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존재의 심장 박동, 그 생명의 헐떡거림과 경련으로서의 ‘생’” 그 자체다.(옮긴이 해제, 171쪽) 아르토는 사유를 넘어선 감각으로, 말이 아닌 음악으로 반 고흐의 그림 속에서 꿈틀대는 생의 약동에 다가간다.

“달아오른 폭탄 냄새를 맡아보지도, 아찔한 현기증을 느껴보지도 못한 사람은 마땅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 이것이 가련한 반 고흐가 이글대는 불꽃으로 표명하고자 했던 위안이다.”
본문 중에서

아르토는 이 과정에서 반 고흐에 대한 정신의학적 판단과 규정, 나아가 정신의학이 지닌 권위와 사회 구조 자체를 근본부터 재론하며, 사회와 정신의학의 공모 관계를 통찰한다. 거짓과 위선, 부르주아적 관성과 타자에 대한 멸시로 병든 사회는 정신의학을 발명해 자신의 호위병으로 삼고, 정상성이라는 규범에 따라 개인을 통제하고 평준화하려 한다. 자유분방한 생의 박동은 의학과 사회에 의해 광기로 축소 해석된다. 그러나 반 고흐는 이러한 사회와 공범이 되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광인의 길을 선택한 ‘진정한 광인’이다. 아르토에 따르면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 니체, 횔덜린, 로트레아몽과 같은 작가들 또한 사회가 금지한 무한을 살고자 했던 ‘진정한 광인’에 속하며, 이들은 규범 바깥에 놓인 “진실을 발설하지 못하게 사회가 입을 틀어막고자 했던 사람”이다.(42쪽)
아르토 역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당해 약 9년간을 감금 상태로 지낸 적이 있다. 그가 경험한바 정신의학은 ‘완벽한 정상인’을 만들기 위해 정신을 해체하고 통제 가능한 것, 정상적인 것을 기준으로 재건하려 든다. 그러나 아르토는 자신의 고통을 의학에 양도하여 사회가 정한 신체적, 도덕적 표준에 포섭되기를, 그리하여 ‘치료’되기를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나는 내 고통의 주인이다.” “내 안의 것에 대한 심판자는 오직 나다.”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내적 풍경은 결코 사회가 정한 단 하나의 표준적 풍경화에 맞춰질 수 없다. 반 고흐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밝히기 위해 모자에 열두 개의 초를 달고 밤 풍경을 그리러 밖으로 나간 명민한 이였다. 그렇게 태어난 그의 작품들은 폭발 직전의 에너지를 오롯이 간직하고, 아르토는 화폭을 경련케 하는 이 진동에서 음악이 솟아남을 느낀다. 반 고흐의 이 음악에 아르토는 텍스트의 독재에서 벗어난 음성 언어, 말 바깥으로 떠난 방언으로 화답한다.

회화와 시, 연극을 관통하는
생의 진동과 잔혹의 시학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에는 아르토가 연극을 통해 쌓아올린 고유의 예술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보기에 기존의 서구 연극은 현실적 질서를 단순히 재현하고 갈등을 관습적으로 해결할 뿐, 기존하는 도덕적, 사회적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연극은 저녁 시간의 여흥으로 전락하여 관객을 단순히 엿보는 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연극은 부당한 사회 상태를 전복하고 관객의 신경과 심장을 깨워야 한다. 이에 아르토는 새로운 연극인 잔혹극을 제안하여 배우의 몸, 공간의 공기, 관객의 몸을 진동시키며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무화시키고자 한다. “빠져나올 수 없는 답보 상태와 고통 속에서도 돌파하여 작동하는 이 생, 순수하고 냉혹한 이 감정, 이것이 바로 잔혹이다.”(《연극과 그 이중》) 반 고흐의 그림에는 아르토가 연극을 위해 찾아 헤매던 잔혹의 감정이 선연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데 아르토는 연기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인만큼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다섯 편의 글은 그가 자신의 전시 〈앙토냉 아르토가 그린 초상화와 데생〉을 위해 쓴 것으로, 연극과 시, 회화를 관통하는 그의 예술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연극이란 단지 “무대 위의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 불덩이와 진짜 고깃덩어리로 된 도가니”로서 생의 감정을 일깨워야 하며(149쪽), 이는 회화를 비롯한 다른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이 편린들은 상이한 예술 분과들이 어떻게 하나의 관점 아래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예술의 저항적 책무를 잔혹의 언어로 선언한다.

저자

앙토냉아르토

저자:앙토냉아르토(AntoninArtaud)
본명앙투안마리조제프아르토(AntoineMarieJosephArtaud).1896년프랑스마르세유에서태어났다.18세부터각종신경성질환때문에유럽각지의요양·치료시설을전전했다.1920년정신과의사에두아르툴루즈가있는파리로상경해,그가편찬하던《드맹Demain》지에시와서평을썼다.1921년샤를뒬랭극단의배우로연극에입문했다.1923년잡지《누벨르뷔프랑세즈(LaNouvelleRevueFrancaise)》에시두편을보냈으나게재거부되었고,이과정에서편집인자크리비에르와주고받은서신이1924년출간되었다.이로써본격적으로문단에들어서며1925년다양한장르의짧은글을모은《신경저울(LePese-Nerfs)》,《림보의배꼽(L'OmbilicdesLimbes)》을발표했다.초현실주의에참여하고영화배우로활약했으며영화시나리오를썼다.1926년알프레드자리극단을만들어실험적연극을연출했다.1931년파리식민박람회에서본발리춤에영감을받아‘잔혹극’으로대표되는고유의연극론을쓰기시작했다.1935년잔혹극《첸치일가》가실패한뒤멕시코와아일랜드를여행했다.1937년아일랜드에서일어난모종의사건으로인해프랑스로강제추방된후정신병원에수감되었다.입원중이던1938년연극론《연극과그이중》이출간되었다.1946년퇴원후《사회가자살시킨자,반고흐》를집필하고,직접그린초상화와데생으로전시회를준비하며여러편의글을썼다.1948년《사회가자살시킨자,반고흐》로생트뵈브상을수상했으며,같은해파리근교이브리의요양원에서직장암혹은마약성진통제과용으로사망했다.

역자:이진이
서울대학교불어불문학과에서학사와석사학위를취득하고파리대학교(구파리7대학교)에서박사과정을밟았다.지은책으로《불가능한목소리》(공저)가있다.

목차


사회가자살시킨자,반고흐
―서문
―사회가자살시킨자

부록
―배우를미치게만들기
―사람의얼굴은임시적으로…
―사람의얼굴
―갤러리피에르에서낭독하기위해쓴세편의글
―연극과과학


옮긴이해제·‘진정한광인’아르토의반고흐론,혹은잔혹의시

출판사 서평

“아니다,반고흐는미친게아니었다.”
스스로빛을밝힌자,빈센트반고흐
누가그를광인으로규정하는가

1947년,파리의오랑주리미술관에서빈센트반고흐(VincentvanGogh,1853-1890)의회화전이열렸다.한예술주간지는전시소식을알리며정신과의사프랑수아조아킴비어의글을통해화가와그의작품을소개했다.비어에따르면반고흐의일생대부분은신경정신적퇴화의증거로가득차있고,광기가그의천재성을낳았으며그의예술활동은정신적문제들에서기인한다.이글을접한앙토냉아르토는“한낱의사의빌어먹을수술칼이위대한화가의천재성을내리만지작거리게둘수없다”고격분하며,이에대한반박으로〈사회가자살시킨자,반고흐〉를집필했다.

이글에서아르토는병리학적진단으로대상화된반고흐의생을의학의폭력으로부터구출하여,그의생이지닌날것의경련을시적언어로되살리고자한다.이런점에서아르토가〈사회가자살시킨자,반고흐〉를통해포착하려는반고흐의삶은그가잔혹극의무대에올려야한다고생각한삶과다르지않다.이때아르토가말하는‘잔혹’이란피가튀는잔인함을가리키는것이아니라,건조한사실들의나열로는포착할수없는“살아있는존재의심장박동,그생명의헐떡거림과경련으로서의‘생’”그자체다.(옮긴이해제,171쪽)아르토는사유를넘어선감각으로,말이아닌음악으로반고흐의그림속에서꿈틀대는생의약동에다가간다.

“달아오른폭탄냄새를맡아보지도,아찔한현기증을느껴보지도못한사람은마땅히살아있다고할수없다./이것이가련한반고흐가이글대는불꽃으로표명하고자했던위안이다.”-본문중에서

아르토는이과정에서반고흐에대한정신의학적판단과규정,나아가정신의학이지닌권위와사회구조자체를근본부터재론하며,사회와정신의학의공모관계를통찰한다.거짓과위선,부르주아적관성과타자에대한멸시로병든사회는정신의학을발명해자신의호위병으로삼고,정상성이라는규범에따라개인을통제하고평준화하려한다.자유분방한생의박동은의학과사회에의해광기로축소해석된다.그러나반고흐는이러한사회와공범이되기를거부하며스스로광인의길을선택한‘진정한광인’이다.아르토에따르면보들레르,에드거앨런포,니체,횔덜린,로트레아몽과같은작가들또한사회가금지한무한을살고자했던‘진정한광인’에속하며,이들은규범바깥에놓인“진실을발설하지못하게사회가입을틀어막고자했던사람”이다.(42쪽)

아르토역시정신병원에강제입원을당해약9년간을감금상태로지낸적이있다.그가경험한바정신의학은‘완벽한정상인’을만들기위해정신을해체하고통제가능한것,정상적인것을기준으로재건하려든다.그러나아르토는자신의고통을의학에양도하여사회가정한신체적,도덕적표준에포섭되기를,그리하여‘치료’되기를거부하며다음과같이언명한다.“나는내고통의주인이다.”“내안의것에대한심판자는오직나다.”개개인이지닌고유한내적풍경은결코사회가정한단하나의표준적풍경화에맞춰질수없다.반고흐역시이사실을잘알고있었으며,그는자신의길을스스로밝히기위해모자에열두개의초를달고밤풍경을그리러밖으로나간명민한이였다.그렇게태어난그의작품들은폭발직전의에너지를오롯이간직하고,아르토는화폭을경련케하는이진동에서음악이솟아남을느낀다.반고흐의이음악에아르토는텍스트의독재에서벗어난음성언어,말바깥으로떠난방언으로화답한다.

회화와시,연극을관통하는
생의진동과잔혹의시학

〈사회가자살시킨자,반고흐〉에는아르토가연극을통해쌓아올린고유의예술론이고스란히녹아있다.그가보기에기존의서구연극은현실적질서를단순히재현하고갈등을관습적으로해결할뿐,기존하는도덕적,사회적체계에의문을제기하지는못했다.이에따라연극은저녁시간의여흥으로전락하여관객을단순히엿보는자로만들어버렸다.그러나연극은부당한사회상태를전복하고관객의신경과심장을깨워야한다.이에아르토는새로운연극인잔혹극을제안하여배우의몸,공간의공기,관객의몸을진동시키며무대와객석의구분을무화시키고자한다.“빠져나올수없는답보상태와고통속에서도돌파하여작동하는이생,순수하고냉혹한이감정,이것이바로잔혹이다.”(《연극과그이중》)반고흐의그림에는아르토가연극을위해찾아헤매던잔혹의감정이선연히살아숨쉬고있다.

그런데아르토는연기하는사람,글쓰는사람인만큼이나그림을그리는사람이기도했다.이책에부록으로실린다섯편의글은그가자신의전시〈앙토냉아르토가그린초상화와데생〉을위해쓴것으로,연극과시,회화를관통하는그의예술론을선명하게드러낸다.연극이란단지“무대위의화려한볼거리가아니라,/불덩이와진짜고깃덩어리로된도가니”로서생의감정을일깨워야하며(149쪽),이는회화를비롯한다른예술또한마찬가지다.이편린들은상이한예술분과들이어떻게하나의관점아래연결될수있는지보여주며,예술의저항적책무를잔혹의언어로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