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마태수난곡〉연구를위해나는나의40대를바쳤다.그성과가바로이책이다.광대한작품세계를대상으로삼는만큼,나는가능한한폭넓은관점을이에담아보고자노력했는데,그러는가운데중시한것은그리스도의수난과바흐의음악을따로떼어놓지않고,양자를밀착시켜가며서로의관계에서포착하고자하는일이었다.〈마태수난곡〉은마태복음서가전해주는그리스도의수난을주제로삼고있으며,바흐의음악또한끊임없이그내용으로방향을잡아가면서쓰여있다.그래서우리역시,수난그자체에대한충분한고찰을빼놓고는이작품을이해할도리가없다.
바흐가라치프치히의토마스칸토르로부임하고나서최초로연주한수난곡은〈요한수난곡〉이다.여기서는이멋진작품이처해온변용에대해,아우트라인을설명하기로한다.〈요한수난곡〉은1724년성금요일(4월7일)에성니콜라이교회에서초연되었다.바흐는당초성토마스교회에서의연주를생각하며인쇄가사본에도그런뜻을표하며준비를시작하고있었는데,2대교회에서교대로수난곡을연주할차례가그해에는성니콜라이교회였으므로,시의회의명령에따라,어쩔수없이협소한성니콜라이교회로자리를변경했다.이상연때부터는자필총보의일부와파트보의일부가전승되고있음에지나지않지만,전체의윤곽은대체로오늘날상연되는것과똑같았을것으로생각된다.
‘시온의딸’과‘믿는자들’은피칸더의가사에서는성서의세계와현실세계를매개하는역할을하고있다.즉,‘시온의딸’이수난의사건을눈앞에서보는‘증언자’에해당함에대해‘믿는자들’은사건의경과를보며희로애락을가지고반응하는‘지금’의경건한신도다.시온의딸은그들에게생생한보고를하고,이를들은신도들은그때마다팽팽한반응을보인다.이렇게해서1700년에걸치는시간간격에다리가세워지고,수난사건이동시진행형의리얼리티를획득하는것이다.
피칸더를문학사에남을대시인이라고보는사람은없다.그러나,동시에,그가매우재주가있고유용한유형의시인이라는점을부정하는사람도없다.칸타타와수난곡의경우,시인에게필요한것은,독창적인아이디어구사라기보다는,루터파의교의에어울리는내용의가사를작곡하기에알맞은시형식으로지어내는일이다.바로이러한능력으로볼때,피칸더는뛰어나있었다.그중에서도그가훌륭했던것은기존음악의가사를바꾸어놓는패러디의영역이었다.비속한표현을한다면,그는개사곡改詞曲을만드는명인이었다는이야기가된다.
악스마허의연구가우리에게가르쳐준것은,그러기위한절호의자료가바흐자신이가지고있는장서중에있다는것이었다.왜냐하면바흐는당시중시되었던신학의문헌을폭넓게수집해서자신의책장에진열해놓았던것이다.바흐의종교관,세계관으로우리를이끌어줄참고자료로서,장서가지닌가치는높다.그런데기묘하게도바흐의장서연구는,예를들어악보연구와비해볼때,비교도되지않을정도로뒤져있었다.독일에서조차,음악에대한연구자들은지금까지거의장서에는관심을보이지않은채,그래서배경에대한충분한지식없이바흐를,그리고〈마태수난곡〉을논해왔던것이다.
바흐연구가엄밀한자료연구에의해크게진전했음은사실이지만,그반면,자료만능,실증만능의풍조가음악연구의폭을좁게만들어놓았음도부정하지못할것으로생각한다.사변적인연구에대한회의는분명정당한것이지만,그것이호오(好惡)의경지까지이르게되면,연구는자승자박에빠져든다.물론,그러한풍조가생긴이유는근거를결여한심독을횡행시킨쪽에도존재한다.바흐연구의본고장인독일에서는,실증위에굳게서고자하는음악학학자들과.그리스도교적인해석을어디까지나진전시키고자하는신학계의연구자들사이에는거의불모라고여겨질만한대립이있다.내가장서연구의중요성을주장하는것은어느한쪽의입장에서있기때문이아니다.나는이러한원리적대립을초월해서음악연구에생명을불어넣기위해서도사변적연구에정당한위치를부여,연구의경직화를막아야한다고말하고있는것이다.나는근거없는공상적인연구에열중할정도로어리석지는않다고자처하고있지만,실증할수없는것이라고해서한마디도하지않는것이양심적인학자의태도라고는결코생각하지않는다.
코랄은물론시와선율로성립되어있다.그러나양자의결합은긴밀하다기보다는매우자유로운것이었다.우리는코랄을음악의일종으로생각하지만,전통적으로는,코랄이란시를가리키는것이라고생각하는편이틀림이없다.‘루터의코랄’하면,루터가작곡한코랄이아니라,루터가작사한것이다.그렇게생각하고보면,복수의가사(즉코랄)이공통의선율로불리기도하고,하나의가사에다른선율이붙여지기도하는현상을이해할수있다.예컨대,오늘날교회의결혼식에가보면,통속적인선율에맞추어축하의찬송가를부르는일이있다.이는종교적인가사를널리친밀해진선율에담아서노래하는방식이고,이것이바로코랄의원리다.선율을곡마다새로만들었더라면,종교개혁시대의코랄의급속한보급은불가능했을것이다.이는,시와음악의교묘한역할분담이지,결코아무렇게나한것은아니다.그배후에는,좋은음악은세속과종교의구별없이하느님을찬양할때하느님께서도마음에들어하실것이라는루터의음악관이존재하는것이다.
4개의복음서중마가와누가는제사장들의음모의보고시점부터,그리고요한복음은예수의일행이기드론의골짜기를넘는시점부터수난기사로들어간다.예수자신의수난예언을첫머리에두는구성으로되어있는것은마태뿐이다.이예언은사실(史實)의기록이아니라,복음서편찬단계에서더해진아이디어라는것이현대성서연구의상식이지만,수난곡을개시하는장면으로서는,이예언이이곳에존재하는효과가매우크다.바흐의경우,첫합창곡마지막에이름을밝힌예수가곧중요한말을한다는타이밍이되는만큼더더욱그렇다.
복음서기자는여기서관점을전환해서삽화적인정경을이야기하기시작한다.촉촉한정감을띤화자에의해,그는우리의판타지를베다니라는마을로끌고들어간다.‘베다니Bethanien’라는말에는G음에서B♭으로라는6도하강을배당했다(4c15~16).B♭음은플랫조의이른바근간을이루는소리이지만,이수난곡의가창부에서사용되는것은이것이처음이며,귀를기울이기에충분한효과가있다.말하기의선율은어느사이엔지C장조에서D단조로바뀌며한여성의등장을묘사한다.이뒤로한바탕이어지는에피소드가우리의마음을사로잡는것은에피소드자체의특이성에더해,최초의레치타티보와아리아(알토)가플루트의연주를동반해가면서이장면에들어오기때문일것이다.〈마태수난곡〉을듣는사람은여기서비로소,이작품에대해곧잘언급하는‘자애’를가슴하나가득이받아들이게된다.
참회와회개가이죄많은마음을잡아찢는다─,이통절한텍스트를바흐는성격적인음형을구사해가며극명하게그려냈다.애당초에바흐의표현은악보의모양으로부터도거의알아볼수가있다.그것은로망파시절과도같은슈티뭉(기분,분위기)의표현을중시하는발상과는달리,바흐의작곡이,당시의수사학적음악이론에근거해서,각낱말에그정념표현에알맞은음의배열(수사학에서말하는figura)을대응시키는방법을취하고있기때문이다.
이아리아는바로크오페라에서의아리아의정형이라할다카포형식을취하고있다.다카포란‘머리로부터’라는뜻인데,다카포아리아란,변화하는중간부를거쳐,주부(主部)를반복하는형식(도식화하면ABA)의아리아다.이러한형식이바로크음악에서많이사용된것은,대칭을내포하는정리된감각에대한기호와,재현A부에서의즉흥의가능성,그리고무엇보다도단일테마에의한통일적인구성이가능하기때문이다.왜냐하면,당시사람들은아리아를각각하나의닫혀있는감정세계를이루는것으로생각했기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원래교의가운데‘어머니’라는자리를가지고있지않다.그리스도교는원래,모든것을‘아버지하느님’으로수렴시키는일신교다.그러나,원래다신교적인토양을가진유럽인지라이를보충하고싶어하는요구가필연적으로움터나왔다.중세이후의가톨릭세계에서,그것이마리아숭배를잉태한일은주지하는바와같다.그러나,루터파는‘오직성서’라는입장을고수하는터에마리아의역할을확대해서,그녀에게모성을짊어지게할수는없었다.그결과로서,아기키우는예수,혹은젖을먹이는예수라는조금은이상한표상이,민중을향한설교전통에끼어든것이다.슈피타가이아리아를‘마리아의탄식을표현한것’으로오해한것은,그런의미에서자연스러운일이라하겠다.
바로크시대의레퍼토리를조사해보면,B단조가출현하는비율은분명히적다.18세기에는용례가서서히늘어가기는하지만,그래도#2개라는단순한외양치고는사용되는일이적은것이다.그중에서도바흐만큼은〈평균율〉은말할것도없고,다른작품에서도참으로빈번하게B단조를사용하고있다.이는이른바표현의처녀지였던B단조의예리한울림이,바흐의창조의욕을자극했기때문으로생각된다.B단조의특수성은,그후,모든조를평등하게울리게하는평균율의보급에의해상실되고말았다.그러나남겨진바흐의악보는,그가B단조를활용해서,말하자면여기에시민권을부여했음을증명하고있다.
예수에대한배반예언은F단조를주체삼아노래로불리고‘밀고하는verraten’‘화가있다wehe’라는말에는불협화음으로강조가되어있다.여기서유다가‘저입니까?’하고묻는데,그는다른제자들처럼예수를‘주Herr’(그리스어퀴리오스)라고부르지않고‘라비Rabbi’(선생)라고부르고있다.라비란유대교의전통적인호칭이고,유대교사람들이예수와의논할때에도사용되던것이므로,유다가예수의정신세계에속해있지않았음은분명하다.이물음에대한음악은,다른제자들의그것과는반대로위로부터아래로의인토네이션으로처리되어있어,마치,유다가처음부터자신이배반자라는것을긍정하고있는듯한인상을준다.
이곳에있는베이스아리아는약간복잡한성격을가지고있다.우선그것은대체로낮은음역에처해있으며,바이올린의유니슨에의한오블리가토도이에대응해서,어둡고가라앉은음향을가진다.그리고약박자로6도상행했다가금방밑으로되돌아오는테마만들기(‘기꺼이gerne’의개념을담은것),악절의마디를앞으로다가놓는싱코페이션,후반에서의악절의불균형한연장,노래부와저음부에서의마디의엇갈림등,주제에는여러겹의정제되지않은서법을볼수있다.아마도이는행위의성질에서유래하는의도적인조처일것이다.
이부분의바흐의악보를보면,복음서기자의주화음과반주의속화음이같은박자로기록되어있어서,기보된대로연주하면불협화적인충돌을일으키고만다.테오도르야코비는이를바흐의의도적인표현수법이라고하지만,대개의연주에서는통주저음이들어오는지점을한막자늦춤으로써충돌을회피한다.바로크음악의연주관습에서보자면,그것이정석일것이다.그러나,알트니콜필사보에서는,반주부가노래파트가끝난다음에1박자뒤에들어오게되어있다.따라서이충돌에는‘입맞춤’을인상짓게만들고자하는바흐의의도가깃들여있는것으로보는편이좋을지도모른다.
〈마태수난곡〉의제2부는‘여자들가운데서가장아름다운자’가예수를찾아헤매는정경으로시작된다.예수는붙잡혔고,제자들은뿔뿔이흩어져버렸다.이러한전환뒤에시작하는곡치고는이는매우효과적인설정이다.그러나,우리는수난곡의핵심으로들어가는입구가,관능적이라고까지여겨지는향기를발산하는정경으로개시된다는점에일종의당혹감을느끼지않을수가없다.분명,첫합창곡에도‘신랑’‘신부’의표상이들어있기는했다.그러나,그것이코랄전체의공동체정신에수렴되어있었던첫합창곡과비해볼때,아리아에의한제2부의개막곡에는한층더화려한취향이있다.그러나,이는바흐/피칸더의중요한노림이었음이틀림없다.
바흐는만년에상연할때,기악파트에비올라다감바를더했다(악보례29).제1부에서언급한바와같이,이는제2그룹의통주저음악기로쳄발로를사용했기때문에약해진음향을보충하기위해취한조처다.따라서뒤르가권하는것처럼,오르간을사용할수있는경우에는감바를생략하는것이원전에어울리는방식일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