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흐테르, 피아니스트 (양장)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양장)

$43.00
Description
위대한 음악가에 대한 전기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그동안 이 위대한 러시아 음악가에 대해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책은 브뤼노 몽생종의 『리흐테르: 수수께끼』가 유일했다. 그러나 이제 카를 오게 라스무센의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라는 책이 출판됨으로써 새로운 이해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몽생종의 책이 리흐테르에 대한 일종의 짧은 스케치라면 라스무센의 책은 한 위대한 영혼이 걸어간 발자취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본격적인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원래 2007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덴마크어로 집필된 까닭에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해지기 어려웠지만 2010년에 미국 보스톤의 노스이스턴 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어로 번역되면서 그 진가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풍월당이 펴낸 그의 책은 헝가리어, 핀란드어, 영어에 이은 네 번째 언어로 된 번역 출판이다.

저자

카를오게라스무센

None

목차

음악으로하여금말하게하다‥7
이미지와환영幻影‥33

제1부

“어딘가다른소년”‥55
오데사:빛과어둠‥87
“내게는스승이세분계셨다:아버지,바그너,그리고겐리히네이가우스”‥107
모스크바‥121
한발비켜나경험한제2차세계대전‥149
니나리보브나도를리악‥165

제2부

프로코피예프‥183
음악,권력,그리고음악의정치학‥209
쇼스타코비치‥233

제3부

가슴을찢는슬픔‥265
세계무대에선피아니스트‥295
방랑자‥331
피아노,피아니스트,음악,그리고관객‥375
차례

제4부

보이지않는장벽너머의인간‥435
페레스트로이카와글라스노스트‥477
만년‥483
끝‥503
후주‥509
음악적유산‥517
후기‥533
스뱌토슬라프리흐테르의녹음들‥539
참고문헌‥549
사진출처‥553
찾아보기‥554

출판사 서평

공개되지않았던자료를바탕으로한전기

저자인덴마크의작곡가카를오게라스무센은가족기록보관소의여러희귀한자료들을면밀히조사하고,리흐테르와함께했던사람들과의심층적인인터뷰를통해그의비밀스러웠던삶을다각적으로조망한다.그는이책의바탕을이루는전기적인사실들을비판적으로검토하여그간있었던많은오해와곡해,모호했던사실관계따위를바로잡았다.전기작가들의공적인기록외에도그의아내이자동료,매니저였던니나도블리악이나나탈리야구트만,엘리자베트레온스카야같은동료음악가들의증언을살펴보면서그와가까운사람들만이느낄수있었던친밀함과비밀스러움을독자들에게전달하고있다.

리흐테르는1949년스탈린상을수상한이래소비에트전역에서대단한각광을받았고,러시아와동유럽전역을연주여행하며유명세를높인뒤마침내서방세계로진출했다.1960년에이루어진뉴욕카네기홀에서의미국데뷔공연은어마어마한찬사를받았다.그러나까다롭고내성적인모습으로유명한리흐테르는청중이미세한음의변화를느낄수있는소규모의공연장을좋아했다.

음악가가그려낸음악가

이책의장점중에가장특별한것은무엇보다라스무센자신이음악가라는점이다.그는음악의본질과음악을대하는자세에서리흐테르의특별한점을찾는다.스뱌토슬라프리흐테르의피아니즘은깊고도넓어몇마디개념으로포착하기어렵다.고전,낭만같은사조,시대상의구분이나나라별전통,특정작곡가와의친화력등우리가피아니스트에대해생각할수있는어떤유형및범주에갇히지않기때문이다.예를들어러시아피아니스트하면흔히떠올리게되는‘강철같은타건’이라든지‘불꽃튀는기교’만으로는그의피아노를다담을수없다.고전적인균형미나환상을불러일으키는낭만적상상력또한리흐테르건반예술의일부일뿐이다.

그렇다고그는모든것을소위‘리흐테르스타일’대로치는,다시말해자신만의주법,해석법따위를확립해두고그틀안에서모든것을아우르려는‘지배자형’피아니스트도아니다.그의음악세계는더없이다채롭지만,그렇다고해서그가기이한효과나별난실험을탐한것도아니다.어떤작곡가의스페셜리스트를지향하거나기념비적인전집프로젝트를완성하는것과도거리가멀지만,리흐테르의연주는그어떤스페셜리스트의것보다도특별하다.비결이무엇일까궁금해지지만그의대답은늘간명해서“나는작곡가가쓴것을연주한다.그이상도그이하도아니다”라고말할뿐이었다.

저자카를오게라스무센은이수수께끼같은피아니스트를언어로붙잡으려애썼다.그의『스뱌토슬라프리흐테르평전』에는카멜레온,독수리,야누스,잡식성피아니스트,광인,방랑자,최면술사,마술사,음악의입을여는영매같은표현들이등장한다.과연그의피아노만큼이나다채롭다.라스무센은이러한다채로움이결국은음악그자체에서흘러나온것임을강조한다.리흐테르는“음악작품은오로지언제나새롭게탄생하는근사치로서만존재함을잘알고있었다.”음악이만일늘새로이태어나는존재라면,연주또한새로워야마땅하다.그럴때의다채로움은꾸며낸것이아니라존재자체의본질인셈이다.작곡가와작품들이저마다다른말을하는데어떻게같은목소리,같은뉘앙스로전달할수있단말인가.

또라스무센은리흐테르가“자신이연주하는음악의색깔을입는다”고지적한다.“슈만을연주하는그의피아노소리는따뜻한노래처럼들리고,리스트를연주하는소리는불꽃을튀기는듯빛나고,기운을주체할수없는것처럼들리며,브람스를연주할때의소리는묵직하고옹골찬음색이두드러지고,프로코피예프를연주할때의소리는면도날처럼날카로운공격성이부각된다.”그러나이러한다채로움의비결은의외로단순하다.“리흐테르는언제나사랑을앞세웠다”는것이다.

작품과사랑에빠지는능력.음악에몰입하는능력,그럼으로서작품이스스로말하게하는능력에관한한리흐테르는누구도따라올수없는능력의소유자였다.다른식으로표현하자면그는시를쓰는것과같은방식으로음악을대했다.마치서정시인이대상에몰입함으로서성찰의깊이를얻어내듯이그는작품에몰입하여음악에동화되고자했다.완벽성을위해봉사했던미켈란젤리나차가운거리두기와실험을즐겼던굴드와는달리리흐테르는끝없이작품에다가가려했다.작품과자신사이에어떤거리도없을때까지다가가서그속에서음악의음성을듣고찾아냈다.마치작품과은밀한대화를나누듯이말이다.그래서리흐테르의피아노에는언제나은밀하게속삭이는듯한친밀함이담겨있다.

이러한음악적은밀함,친밀함을지켜내기위해차라리이세상다른것들로부터거리를둔피아니스트였다.심지어관객마저도리흐테르는멀리했다.그는어느인터뷰에서자신은관객에게영향을받지않는다고,아니그들이의식조차되지않는다고말한바있다.그러나이것은사람을기피하는데서나오는무조건적인‘울타리치기’가아니었다.이때의관객이란그저유명인을보고싶어서공연장에몰려드는,개인화되지못한,정체불명의다수를뜻한다.리흐테르는무리가보내는무분별한찬탄이나그로인해얻어지는유명세로부터음악적진정성을지키려했을뿐이었다.

다른한편으로관객을의식하지않는다는말에서음악을향한그의‘서정적몰입’이얼마나강력한지를읽어낼수도있다.서정시인은시를읊조릴때주위모든잡다한것을잊는법이다.그런까닭에만일작품과개인적관계를맺고싶어하는관객이있다면그는시베리아오지까지라도찾아갔고,한때창고에불과했던프랑스의투렌같은곳을최고의연주회장으로탈바꿈시키기도했다.이런리흐테르의뜻을모르는이들에게리흐테르는은밀한수수께끼다.그러나그뜻을알아듣는이들에게는더없이친밀한친구가된다.

말을걸어오는친밀함에는속마음을헤아리는깊은정신성뿐아니라피부로전해지는온기가포함되어있다.신중한내향성뿐아니라때론주변을모두산화시킬것같은육체적격렬함도동반된다.리흐테르는이두가지사이에서아찔한균형을유지했다.어쩌면이는그가살아온시대의요구이기도했다.검열과감시속에서속마음을감추고입을닫아야했던시대,오로지손으로,몸짓으로진실을드러내야했던시대를그의몸과마음은기억하고있다.또리흐테르의연주는아무리기교적인난곡에서도기술적으로치우치는법이없다.라스무센의말대로작품안에서“육체와영혼이각각서로를발견하는그지점을찾아내는능력”이야말로리흐테르가가진독보적인재능이었다.“언제나변화무쌍하고예측불가능했으며,잠시도정주하지못하고무엇인가를찾아헤매는방랑자적속성”은무엇보다그의라이브공연에잘묻어난다.

리흐테르에게있어서호기심,새로움,신선함,영감,방랑등은모두같은말이다.건반위의방랑을통해리흐테르는보통의가녀린이미지너머로육중한쇼팽의소리를상상해내고,독일작품에는슬라브적요소를,러시아작품에는게르만적요소를섞으며,바흐와모차르트에낭만적환상을,브람스에경쾌한발랄함을주저없이덧입힌다.이처럼리흐테르가남긴음반들은“음악이언제나정신이자삶이며영혼이자육체라는점을강조하고있어들을때마다가슴이훈훈히데워진다.”

내면으로의망명

한편저자는리흐테르의시대가어떻게그의인격과정체성에영향을미쳤는지에대해서도대단히상세하고사려깊게기술한다.동시대의작곡가이자체제의희생자이기도했던작곡가프로코피예프와쇼스타코비치등과의교류에서리흐테르가느껴야했던감정의소용돌이를라스무센은매우적절하게그린다.스탈린의장례식에서그가연주하게된경위를포함해서수많은일화와금욕주의자로알려진리흐테르가어떻게음식으로동료들을축하하는것을좋아했는지도자연스럽게알게된다.리흐테르의아버지가반역죄로억울하게재판을받아소련당국에의해처형당한사실은그가정치권력을대하는태도를결정지은사건이다.또한그가사랑했던어머니가아버지를버리고애인과함께독일로이주한사건또한그의정신에영영아물지못할상처를남겼다.

그이후그는고국인러시아와조상의뿌리와음악적스승들의땅독일에대해격렬한양가감정에시달리며살아가게되었다.스탈린과히틀러가맞붙은세계2차대전의참상과독일인이냐,러시아인이냐,유대인이냐에따라운명이달라져야했던홀로코스트의부조리,나중에닥쳐온사회주의리얼리즘의부자유와억압,자신의동성애성향과이를금기시하는러시아사회의외협등리흐테르가삶에서맞닥뜨린비극은그에게길고도무거운침묵의삶을안겨주었다.그러나그러한비극의그의내면까지잠식한것은아니었다.그는몸짓으로,악기로말했고,참혹한시대에도인간다움은죽지않고살아남는다고증언했다.

선별된디스코그래피와풍부한색인

스뱌토슬라프리흐테르는20세기의가장위대한피아니스트이고가장방대한디스코그래피를남긴피아니스트이기도했다.그러나동시에해적판과출처불명의녹음도많아감상자들의눈을흐리는경우도많다.라스무센은그의모든음반을낱낱이설명하기보다는그의주요레코딩을선별하고리흐테르의음악세계를친절하게해설한다.리흐테르를처음접하는감상자라면라스무센이언급하는전설적인음반들로감상을시작해도좋을것이다.특히굴드,미켈란젤리,호로비츠등당대의명피아니스트와리흐테르를비교하는대목들도흥미롭다.여기에더해광범위한색인은이책만이가지는장점이다.독자들은한음악가의평전을통해19세기말에서20세기에이르는러시아문화사의주요인명을이책을통해요약적으로접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