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삼부작 1 : 어린 시절 - 암실문고

코펜하겐 삼부작 1 : 어린 시절 - 암실문고

$13.00
Description
출간 50년 후 세계 문학계가 재발견한 걸작

“어린 시절은 관棺처럼 좁고 길어서,
누구도 혼자 힘으로는 거기서 나갈 수 없다.”
비극적인 여성 작가의 삶.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조명받는 이 주제를 다룬 책은 그만큼 치열한 경쟁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는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유명한 작가의 삶을 그리거나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을수록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공식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3부작’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태풍처럼 그 틀을 부수었다. 덴마크 바깥에는 반세기 가까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가 무려 50여 년 전에 쓴 회고록이 독자와 비평가의 압도적인 찬사를 얻은 것이다.

3부작의 첫 책인 『어린 시절』은 유년기의 애수를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면에서 엘레나 페란테를 연상시킨다. 특히 몽상에 자주 잠겼던 어린 시절을 그리는 디틀레우센의 묘사는 시인을 꿈꾸는 아이의 마음을 따라 길고 아름답게 이어진다. 그러나 디틀레우센은 그와 상반되는 방식도 곧잘 사용한다. 어떤 상황을 덩어리처럼 압축해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방식은 때로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고, 때로는 완전히 지친 것처럼 무겁고 무감각하다. 이렇게 작품 속의 시간 감각은 작가의 내적 체험과 비슷하게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사건들 사이에 독특한 리듬감이 발생한다. 시인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디틀레우센의 개성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아름다운 문장, 독특한 리듬감을 지닌 『어린 시절』은 ‘코펜하겐 3부작’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의 지지를 얻었다. 이 작품만을 따로 떼어 아련한 드라마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다. 독자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아련하고 단정한 슬픔 속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거기서 자라난 어둠이 만개하는 모습까지 지켜볼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건 『어린 시절』은 기억에 남을 만한 작은 상처를 제공할 것이다.
선정 및 수상내역
- 2021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TOP10 선정

저자

토베디틀레우센

저자:토베디틀레우센
20세기덴마크를대표하는여성작가.1917년에코펜하겐에서1남1녀의둘째로태어났다.아버지는공장노동자였으며어머니는전업주부였다.어릴때부터책을좋아했고언어구사에특출한재능을보였지만가난한집안사정때문에고등교육을포기해야했다.섬세한감수성을지닌그는노동자지역에서함께자란또래아이들과쉽게어울리지못했고,어머니와의애착관계형성에도어려움이있었다.이결핍은훗날디틀레우센의삶에많은시련을안겨주지만,동시에가장풍부한작가적영감을안겨주는원천이되기도했다.
10대후반에가정부,사무비서등여러직업을전전하던디틀레우센은작가이자비평가인비고F.묄레르와만나면서그간염원하던문학계로진출했다.1939년첫번째시집인『소녀의마음』을출간한뒤로시집과소설을꾸준히내놓았으며,1950년대에는동화를,1960년대부터는에세이를여러권발표했다.
디틀레우센의작품들은생전에덴마크내에서는많은사랑을받았으나,그를해외에알린작품은사후인1985년에미국에서출간된두권의회고록『어린시절』(1967)과『청춘』(1967)이었다(그뒤의이야기를담은『의존』(1971)은2019년에야영어로번역되었다).특히미국의여성주의작가이자활동가로명망이높았던틸리올슨은이회고록을접한뒤디틀레우센을해당세대에서가장중요한작가중한명으로꼽았다.당시만해도구세대적인작가로여겨지던디틀레우센은이후본격적인재평가를받았고,인간내면의불안을관찰하는데있어독보적인능력을가진작가로자리매김했다.

역자:서제인
기자,편집자,작가등글을다루는다양한일을하다가번역을시작했다.거대하고유기체적인악기를조율하는일을닮은번역작업에매력을느낀다.옮긴책으로『잃어버린단어들의사전』,『노마드랜드』,『아파트먼트』,『아무도지켜보지않지만모두가공연을한다』가있다.

목차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출판사 서평

출간후50여년이지나
『뉴욕타임스』올해의책10선에선정된회고록

비극적인여성작가의삶.최근들어집중적으로조명받는이주제를다룬책은그만큼치열한경쟁과마주해야한다.이때는실비아플라스나버지니아울프처럼유명한작가의삶을그리거나사회의부조리에맞서는내용을담고있을수록주목받을가능성이높다.그러나그공식에거의부합하지않는토베디틀레우센의회고록‘코펜하겐3부작’은조용히사라지지않고오히려태풍처럼그틀을부수었다.덴마크바깥에는반세기가까이거의알려지지않았던작가가무려50여년전에쓴회고록이독자와비평가의압도적인찬사를얻은것이다.

정의正義에서벗어남으로써
정의定義에서탈출하다

1930년대부터1950년대까지,작가의유년기부터서른남짓까지를회고하는이3부작은엘레나페란테를연상시키는설정과아름다운문장으로시작한다.그러나그끝은노스탤지어로부터멀리벗어나있다.흔히애수와소회로채워지는회고록을특별한작품으로승화시킨비결은바로냉정함이다.그는어느타인보다더냉정하게,마치환부를관찰하는의사처럼스스로의결점들을관찰했고,그관찰결과에아무런판단도덧붙이지않았다.합리화도,자책도,원망도없다.심지어디틀레우센은단한번도자신이어떤존재인지자문하지않는다.회고를통한감정적인결론이존재하지않는것이다.이런특징은작가의고백이독자의공감이나연민으로이어지는회고록장르의심리적전통을파괴해버렸다.실로전위적인결과였다.

1985년에『어린시절』과『청춘』을통해처음으로디틀레우센을접한미국여성주의문학계는두작품의이러한특징을격찬했다.디틀레우센이‘불의를깨닫고정의를추구(해야)하는여성’이라는정치적프레임마저벗어던지고오류와불안에기꺼이노출된여성-인간을출현시켰기때문이었다.자신에게부여된정의와윤리로부터스스로의욕망을따라이탈하는것,이는파멸을부르는불의이면서더높은단계의해방이기도했다.당시미국여성주의운동을대표하는인물중한명이었던틸리올슨은디틀레우센의회고록에실린이런문제의식을파악하고그를당대에가장중요한작가중한명으로꼽기도했다.그리고이문제의식은그로부터30년이넘게지난오늘날의독자들에게도새로운숙제처럼다가온다.

또한이냉정함과초연함은특별한종류의온기도가져다준다.자기연민이없는디틀레우센은자신의불행을외부에투사하지않고,따라서적을만들지않기때문이다.그는심지어자신의조국을점령한독일군병사들조차미워하지않는다.시대와운명이그들을거기로이끌었을뿐이고,그것은모든인간에게주어진숙명가운데하나였던것이다.모든인간이자신에게주어진불공평한의무와욕망을짊어진채살아가야한다는사실을어릴때부터깨달았던디틀레우센은타인의과오와오류를자신의그것처럼조용히바라본다.손쉽게내편과상대편을가르지않고온인간이근본적으로같은결핍을지닌동족임을이해한것이다.회고록사상가장냉철한관찰자의내면에담긴이역설적인따뜻함은오래도록잊기어려운감흥을선사할것이다.

시인이산문을쓸때의두가지능력
아름답게늘이기,그리고압축하기

3부작의첫책인『어린시절』은앞서언급했듯유년기의애수를아름답게묘사한다는면에서엘레나페란테를연상시킨다.특히몽상에자주잠겼던어린시절을그리는디틀레우센의묘사는시인을꿈꾸는아이의마음을따라길고아름답게이어진다.그러나디틀레우센은그와상반되는방식도곧잘사용한다.어떤상황을덩어리처럼압축해간결하게전달하는것이다.그방식은때로섬뜩할정도로냉정하고,때로는완전히지친것처럼무겁고무감각하다.이렇게작품속의시간감각은작가의내적체험과비슷하게길어졌다짧아지기를반복하며,그과정에서사건들사이에독특한리듬감이발생한다.시인으로작가생활을시작한디틀레우센의개성이잘드러난부분이다.

향수를불러일으키는소재와아름다운문장,독특한리듬감을지닌『어린시절』은‘코펜하겐3부작’가운데가장많은독자의지지를얻었다.이작품만을따로떼어아련한드라마로기억하고싶어하는사람도많았다.독자는이작품을다읽고나면직접결정할수있다.아련하고단정한슬픔속에남을것인가,아니면거기서자라난어둠이만개하는모습까지지켜볼것인가.어느쪽을선택하건『어린시절』은기억에남을만한작은상처를제공할것이다.

책속에서

나는컵들을부엌으로내갔고,내안에서는보호막같은길고신비로운말들이서서히마음을가로질러가기시작했다.마치노래나시같았던그말들은위로가되고리드미컬한데다굉장히깊은생각을담고있으면서도절대고통스럽거나슬프지는않았는데,그건내가이미오늘의나머지시간들이고통스럽고슬플거라는사실을알고있어서였다.
-12쪽

어린시절은관棺처럼좁고길어서,누구도혼자힘으로는거기서나갈수없다.그것은늘그자리에있고,모두가그것을분명하게볼수있다.
-46쪽

나는어느잡지에서이런구절을읽는다.‘자리에앉아우리주님께서너무도훌륭할만큼능력있게만들어주신두주먹을노려본다.’이것은실업자들에관한시의한구절이고,우리아버지를떠오르게한다.
-58쪽

높은실업률이스타우닝의탓이라고말하는사람은우리어머니만은아니다.하지만스타우닝은그게아니라고,실업문제는순전히전세계적인경기침체때문이라고말하고,나는‘침체’가재미있고매력적인표현이라고느낀다.나는상상한다.별하나없는,위로할길없는회색빛하늘에서빗줄기가쏟아지는동안모두가자기집차양을내린채불을끄는장면을.그깊고깊은슬픔에잠긴세계를.
-106쪽

내게는무척신경쓰이는일이있다.이제나는어떤진짜감정도느끼지못하는듯하고,그래서항상다른사람들의반응을흉내냄으로써내게도감정이있는척해야한다는것이다.나는오직내게간접적으로다가오는것들에만마음이움직이는모양이다.집에서쫓겨난불운한가족의사진을신문에서보고눈물을흘릴수는있지만,현실에서그것과똑같은흔한광경을볼때는마음이움직이지않는다.나는언제나그랬듯지금도시와서정적인산문에는감동하지만,그글속에묘사된사물들에대해서는철저히냉정한마음이된다.현실이중요하다는생각은내게거의떠오르지않는다.
-160쪽

나는창턱에있던제라늄화분들을옮겨놓고는아기별이초승달요람위에서빛나고있는하늘을올려다본다.초승달요람은흘러가는구름사이에서부드럽고조용하게흔들린다.나는너무자주읽어서긴단락들을통째로외운요하네스빌헬름옌센의「빙하」에나오는몇몇구절을혼자거듭읊어본다.‘그리고이제저녁별처럼,그러고는아침별처럼,어머니의가슴에서살해당한소녀가빛을낸다.끝없는길위를홀로헤매며혼자서도잘노는아이의영혼처럼,하얗게자신에게몰두하는것.’
-167~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