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론

관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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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볼테르가 치열하게 전개해온 사상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역작으로, 종교적 편견과 맹신에 저항해서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관용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술 계기가 된 장 칼라스 사건을 개관하고 여기에서 얻은 각성의 내용을 서술했다. 신앙의 자유와 박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비롯해 중국에서 벌여졌던 논쟁에 대한 보고서 등 다양한 내용에 대한 견해를 수록했다.

저자

볼테르

본명은프랑수아마리아루에이다.1694년파리에서유복한공증인의아들로태어나예수회학교에서수학했다.부친의희망에따라법률을공부했으나곧문학에관심을두고자유사상가들의모임에서타고난재치로?명성을얻었다.1717년섭정오를레앙공작을풍자한시를쓴죄목으로바스티유감옥에투옥되는데출옥후감옥에서집필한비극'오이디푸스'가큰성공을거두고,이때부터볼테르라는필명을사용했다.하지만1726년한귀족청년과의다툼끝에억울하게다시감옥에갇혔다.영국망명을조건으로곧석방되긴했으나프랑스사회의불평등과부조리에환멸을느끼게된다.3년간영국에서사상적자유를만끽하며견문을넓히고프랑스로돌아와오늘날'구체제에던져진최초의폭탄'으로평가되는'철학편지'를출간했다.하지만책은금서조치당하고또다시체포영장이발부되자연인샤틀레부인의영지로피신해10년동안머물러집필에몰두했다.1744년에복권되어궁정의사료편찬관이되지만권력에대한비판을멈추지않아반감을사다.결국프랑스를떠나1750년프로이센왕프리드리히2세의초청으로베를린에체류하게되지만베를린아카데미원장인모페르튀이와의논전끝에다시망명길에오른다.1758년스위스와프랑스국경지역페르네에정착하여대표작'캉디드혹은낙관주의'를집필했고반봉건반교회운동의지도자로서특권층을비판하고종교적맹신의희생자들을위한부정재판탄핵운동을벌이는등끊임없이권력에광신에맞서투쟁한다.그의이러한저항정신은훗날프랑스혁명의정신적토대가되었다.1778년'이렌'의상연을위해고국에돌아왔다가84세의나이로숨을거두었다.

목차

목차
인간정신의자유에대한옹호ㅣ송기형·임미경
1.장칼라스사건의개관
2.장칼라스의처형에서얻은각성
3.16세기종교개혁에대한이해
4.종교의자유는위험한것인가
5.관용의허용
6.불관용은자연법인가
7.고대그리스에도종교적박해가있었을까
8.로마인들도인정한종교의자유
9.순교자들
10.거짓성인전설과박해의위험성에대해
11.종교적불관용의불행한결과들
12.유대교에서불관용은신의율법인가
13.유대인들의크나큰관용
14.예수그리스도가가르친관용
15.불관용또는종교적박해에대한반론들
(중략)
20.사람들을맹신에묶어두는것이유익한가
21.미덕은앎보다더소중하다
22.관용은보편적이라는점에대해
23.신에게올리는기도
24.후기
25.칼라스사건의귀결
보유:최종판결의의의
볼테르의주석
칼라스사건일지
볼테르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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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관용론』(1763)은계몽사상가로유명한볼테르(Voltaire,1694~1778)가18세기유럽을휩쓸던종교전쟁의광풍에희생된한가장(家長)의억울함을호소하며‘관용’의개념을역설한책이다.볼테르는이책에서탐사보도성격의글쓰기와시각자료의적극적인활용등오늘날저널리즘의표본을보여주며당시막세상에빛을비추던계몽주의사상과자유주의사상등을효과적으로제시해종교전쟁의종지부를찍고프랑스혁명을앞당기는데공헌했다.
“네가타인에게당하고싶지않은일을너역시타인에게하지마라”는...
『관용론』(1763)은계몽사상가로유명한볼테르(Voltaire,1694~1778)가18세기유럽을휩쓸던종교전쟁의광풍에희생된한가장(家長)의억울함을호소하며‘관용’의개념을역설한책이다.볼테르는이책에서탐사보도성격의글쓰기와시각자료의적극적인활용등오늘날저널리즘의표본을보여주며당시막세상에빛을비추던계몽주의사상과자유주의사상등을효과적으로제시해종교전쟁의종지부를찍고프랑스혁명을앞당기는데공헌했다.
“네가타인에게당하고싶지않은일을너역시타인에게하지마라”는유명한명제가실린『관용론』은오늘날에도주목받고있다.실제로프랑스에서는지난해『관용론』이처음출간된지250여년이지나다시베스트셀러의반열에올랐을정도다.‘『샤를리에브도』테러’와난민문제등을계기로관용과불관용의문제가다시수면으로떠올랐기때문인데‘혐오’가일상이된우리나라에서는어떤바람을일으킬지주목되는이유다.
한길사에서는지난2001년처음출간된이책이우리사회에여전히울림을준다고판단해완전히새로번역해다시출간했다.초판에서오역한부분을바로잡음은물론이고특히볼테르가히브리어와라틴어로쓴부분을다시손봤다.
장칼라스사건의진실을파헤친
『관용론』
어떤이들은자비나관용그리고신앙의자유란가증스러운것들이라고주장하지만,그러나진정으로반문하건대자비나관용그리고신앙의자유가그와같은재앙을초래한적이과연있었던가?_48쪽
『관용론』을통해인간의자유와존엄을억압해온옛체제의낡은권위를무너뜨리고야만적형벌제도에대해계몽의승리를거둔볼테르.
성실한신교도칼라스는신교와가톨릭사이의광신적대립이지배했던프랑스남부의툴루즈에서모범적인가장으로평온하게지내고있었다.1762년5월9일,그의큰아들마르크앙투안이삶을비관한끝에목을매고자살한다.이사건을보려고모여든군중가운데누군가가칼라스의큰아들이가톨릭으로개종하려했기때문에가족들이그를죽였다고소리쳤다.이런소문은신교도에게적대적이었던툴루즈시민들사이에걷잡을수없이퍼져나갔고시정부는성난여론에떠밀려아무런증거도없이칼라스가족을체포했다.거듭되는가혹한심문에도칼라스가족은범행을부인했으나맹신과편견에오도된재판관들은증거가불충분한데도이가장을수레바퀴에매달아사지를찢어죽이는거열형에처했다.
칼라스사건의전말을알게된볼테르는재판절차의부당함에분개했고이사건속에자신이공격하고자하는옛시대의종교적맹신과야만적형벌제도의문제점이고스란히담겨있음을절감했다.이후볼테르는칼라스의복권을위해『관용론』을쓰고각종팸플릿을제작해유포하는각종노력을기울였다.특히동·서양의역사와『성서』강론,도덕론등각종자료를뒤져가며불관용에대한반론의논거를정리한『관용론』은볼테르특유의감각과재치덕분인지당시독자들의반응이매우폭발적이었다.결국‘파리’,즉중앙정부가이사건을인지하게되었고1765년칼라스의무죄와복권이선고되었다.볼테르가인간의자유와존엄을억압해온옛체제의낡은권위를무너뜨리고야만적형벌제도에대해계몽의승리를거둔것이다.
자연법에어긋나는,예속을강요하는
세속적종교권력비판
이번축제의백미는저교수대위에서칼라스일가를바퀴에매달아죽이는행사가될것이라고누구나거리낌없이말했다.하나님의뜻에따라이죄인들을우리의신성한종교에제물로바쳐야한다는것이었다._33쪽
고문으로초주검이된칼라스가형장으로향하기전가족들과마지막인사를하고있다.볼테르는삽화전문가에게칼라스사건을그림으로그려달라고부탁한후이그림들을선전에적극적으로활용했다.
맹신에빠져칼라스를사형장으로내몬대중에대한볼테르의한탄섞인평이다.볼테르는이런‘마녀사냥식’처벌을비판하며각종역사적사례를제시한다.우선고대아테네에서는사형판결을내리려면의사결정에참여한시민반수의찬성에더해서50명이더찬성해야만했다.또한오스만제국의황제는다른종교를믿는부족을평화롭게통치하고있고,콘스탄티노플에서는20만명에달하는그리스정교도가아무런위험없이생활하며,술탄은그리스의몇개섬을위해가톨릭주교들을임명해파견한다.그뿐인가.아메리카대륙캐롤라이나의법률에따르면어떤종교가법적으로승인받기위해서는한가족의가장인신도가일곱명만있으면된다.이러한종교의자유때문에무질서가초래된적은없었다.이러한사례를통해볼테르는당시툴루즈를비롯한프랑스사회의이성의불완전함과법률의불충분함을비판한다.
그렇다면종교가다르다는이유로박해를일삼는광신도들의수를감소시킬묘안은무엇일까.그것은광신이라는이정신의질병에이성의빛을쬐는것이다.이성은인간을계몽하는데효과는느리지만실패하지않는처방이기때문이고,이성은온화하고인정미가있으며너그러움을불러일으키고미덕을확고히하며기쁜마음으로법에복종하도록하기때문이다.그렇다면이성은진보와행복을보증하는가?아니다.이성은그효율성과합리성외에관용의정신이뒷받침되어야한다.따라서종교가다르다고박해하는일은볼테르가보기에매우어리석고잔인한것이다.볼테르는다음과같이비유한다.
이것은호랑이같은맹수들에게나어울릴만한법이다.아니그보다더끔찍하다.왜냐하면호랑이들은먹을것을다툴때만서로를물어뜯지만,우리인간은말몇마디때문에서로를죽였던것이다._66쪽
관용은가장겸손한형태의
인간에대한사랑
옮긴이는해제에서관용을“소극적인정과방임을넘어다른종류의사고방식과행위양식을존중하고자유롭게승인하는태도”라고정리한다.그렇다면왜,언제부터관용은문제시되었는가?옮긴이는절대적진리를요구하는일신교의정립과함께관용이문제로부각되었다고말한다.기독교가국교로승인된후부터종교개혁시대이후까지관용의정신은무시되는경우가많았던것이다.볼테르에따르면기독교도들은자신의종교를온세상에알리기위해서라면무슨일도마다치않았다.
시리아내전을피해유럽으로피란하던중지중해에서배가난파돼익사한알란쿠르디(왼쪽).혐(嫌)이주노동자시위대.이런갈등을해결하기위해선무엇보다관용의정신이필요하지않을까?
그러나고대그리스인들은종교적감정이매우강한민족이긴했지만에피크로스학파가신과영혼의존재를부인하는것을기꺼이용인했으며로마인들역시그들의번영과제국팽창을종교의다양성을인정해주는관용정신을바탕으로이루어냈다.심지어플리니우스는자신의저술첫머리에서신의존재를부정하고,신이있던자리에대신태양을놓았으며,키케로는지옥에대해“아주어리석은노인들조차믿지않는다”고말했다.이처럼로마인들은신앙의자유를인간의권리가운데서가장신성한것으로여겼다.볼테르는물론네로황제때의기독교박해도언급한다.그러나“네로황제시대에불운한유대교도들과기독교도들이당한재앙을종교적불관용탓으로돌리는것은무모한일이다.”왜냐하면당시의종교적박해가국익에기인한정치적인박해였기때문이다.이러한역사적인사례들과문헌들을섭렵해가면서볼테르는소위기독교의순교자들에대한신화를낱낱이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