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양장본 Hardcover)

파주 (양장본 Hardcover)

$14.00
Description
작가-작품-독자의 트리플을 꿈꾸다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28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스물여덟 번째 안내서. 201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소설집 『아이젠』으로 독자들을 만난 김남숙은 그간 “날것의 감성 혹은 타고난 (듯 보이는) 감각”(소설가 조해진)을 발휘해 이미지를 잡아나가는 소설을 써왔다.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 「파주」가 수록된 김남숙의 두 번째 소설집 『파주』는 “어둡고 건조한, 어쩌면 지독하기까지”하지만, “종내에는 산뜻하게”(노태훈 평론가) 다가오는 세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불가피하게 쓸쓸하고 여지없이 슬프지만, 결국에는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펼쳐져 있다.
저자

김남숙

저자:김남숙
소설가.소설집『아이젠』,산문집『가만한지옥에서산다는것』을썼다.2024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소설파주
그런사람
보통의경우

에세이나무의주인

해설시시한나―노태훈

출판사 서평

작가-작품-독자의트리플을꿈꾸다
자음과모음트리플시리즈28

한없이시시하고끈질기며
영원히궤적을남기는,시시한복수

2024젊은작가상수상작인「파주」는크게좋을것도나쁠것도없는남자친구‘정호’와동거하는나의이야기다.그들의앞에어느날‘현철’이나타난다.현철은정호의군대후임으로,정호에게군시절동안괴롭힘을당했다고주장한다.그는정호가자신에게저지른일들에대한보상으로1년동안매달100만원을주기를요구한다.정호는그경고를무시하려하지만현철은소심하게,그러나강력하게그를몰아붙인다.그가겨우겨우들어간회사에괴롭힘을알리고,이후에도끊임없이그를협박할것이라면서.그걸해결하기위한방법은단돈100만원을1년간주는것이라면서.
「파주」에서우리를잡아끄는것은차가운겨울날맨발에슬리퍼를신은평범한청춘의모습이다.주변에산재한이들의모습은평범하고,시시하고,하나의풍경처럼느껴진다.하지만이들의삶에갑자기찾아온복수심으로가득한시시한‘현철’때문에나는그간“선명하고무해한눈동자”를반짝인‘정호’가누구인지도무지알수없고,‘현철’이궁금하지만그는그저“얼굴이붉어진채로어딘가슬프게울고난사람”의얼굴만을보여준다.

“현철은내친구도,가족도,그무엇도아니었다.그저갑자기나타났고,그저기억하는사람에속할뿐이다.그리고나는여전히현철의말을기억한다.
가끔씩은보게될거야.
나는현철이한말중그말을제일좋아한다.”

논술학원강사로일하고있는‘나’는정호가현철에게어떤일을저질렀는지궁금하지만그것을끝끝내알지는못한다.그러면서도가끔은현철을떠올린다.“번거롭고사치스럽고,말하자면슬픔에가까운그런기분.그리고그때마다귓가에는서걱서걱알수없는소리가들린다.나는이소리를혼자서파주소리라고부”르면서.

아무것도아니기보다
아무것도할수없는사람

두번째소설「그런사람」은후아힌에서휴가를즐기는‘나’의이야기다.리조트에체크인해두달간수영장과피자집을오가며,맥주를마시는일상은나른하고즐거워보인다.후아힌에서의생활은시시하고평온했다.갑작스레나를‘선생님’으로호칭하며연락해온‘원석씨’가아니었더라면.원석씨는몇년전‘나’의소설수업을받았던소설가지망생이다.그는잊고싶었던기억들을깨우는,심지어적극적으로발굴해내려하는인물이다.겨우몇달간수업을받은이임에도불구하고,젊은여성소설가인‘나’에게집요한접근을시도하고,선생님을아끼고좋아한다고말한다.

“아니요.선생님은계속하실걸요.지금잠깐쉬시는것같아요.저는알수있어요.선생님은그런사람이잖아요.제가알거든요,그걸.그래서제가선생님을너무좋아한거예요.”

‘나’는이제그가좋아한선생님이아니다.소설도쓰지않는다.소설을쓰지않게된이유에대해서는누구에게도말하지않았다.그러나그는계속해서연락을취하고,만남을요청하고,끝내자포자기하듯만남을수락한‘나’에게선언한다.

“저는선생님이어떤사람인지알아요.선생님은…….
그가중얼거리듯다시한번말했다.
아니요.저는아니에요,그런사람이.
나는힘주어말했다.그말을뱉자얼굴이열에달아오르는게느껴졌다.합석을아무렇지않게받아준것에대한후회가밀려왔다.속이타는것처럼뜨겁고손에서땀이묻어나왔다.이불쾌한심장소리.그런사람,그런사람이뭔데.나는갑자기극심한피로감을느꼈고,잠시멍해져있었다.”

그리고그는지금까지내가잊고싶어했던것,선배라믿었던이와좋아한다믿었던이들에게당한폭력을목격했음을고백한다.또한자신이그끔찍한과거에서벗어날수있게해주겠다는오지랖을선보인다.그러나‘나’는그러한도움이전혀필요없다.‘나’는그저술을마시고,잠시간무엇인가를잊고,시시한삶을이어가고싶을뿐이다.이생면부지나다름없는‘원석씨’의도움따윈필요없이.그리고그순간부터후아힌은도피의장소에서도피해야할장소로변모한다.

폭력속에서헤매기
혹은폭력의미로를따라그리는방식으로

마지막소설「보통의경우」는전국방방곡곡을돌아다니는데일리프로그램을제작하는방송외주업체에서일하는‘지수’가등장한다.그녀는방송작가라는피라미드의맨아래쪽에위치해있는데,자신의위에서그나마친밀했다고느끼던희수언니의퇴사로막내생활을계속해왔다.희수언니는퇴사하기전에비밀을고백하듯그를불러“한번볼래?”라고말했고,전등이나간주차장일층에서모자와가발을한꺼번에벗었다.“언니의머리는정수리왼쪽의한줌정도남은머리카락을제외하고는솜털도없이민둥했다.두피가전체적으로붉었으며울퉁불퉁했다.”
나는그것을보고놀라지만,이러한환경에서일하는그들에게는어쩌면당연한것이라고생각했다.끝없는야근과지난한회의,업무와무관한듯한잡일.그러나모든것은‘융통성있게’라는말로포장된다.융통성있게살아가는일은그를어느새희수언니와같은위치에서게한다.끊임없이두피가간지럽고머리카락이빠져병원을열군데쯤돌아다니는생활.그러면서도아무에게도이를고백하지못하고그저사무실에빼곡한인원들에게“혹시가려우세요”라고묻고싶은충동을참는것.

“화면이꺼지자,축축하고음습한얼굴이검은화면에비쳤다.화면속의내가화면밖의나를노려보는것같았다.아무도나를사랑할수없다는생각이스쳤다.그런생각이들자,나같은걸아무도사랑할수없다는것을아주옛날부터알고있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었다.”

이충동에더불어,모두가스트레스로과밀된회사에서는‘나’에대한괴롭힘이시작된다.“이모든상황에대한스트레스를한번에풀수있는열쇠는없었다.이작은사무실안에서작지만확실하게스트레스를풀수있으며동시에대리만족할수있는것이필요했다.그곳에서나는장난감같은존재였다.먹으라고한다면나는먹어야했다.”남은음식들을먹으며몸무게가불어난나를그들은비웃었고,이후에는새로운프로그램을담당하게해주겠다는이유로협찬코너에가짜사례자로등장하게한다.그녀는이제다시굶어야하고,10킬로그램을빼야하고,머리카락은계속해서빠지며두피는간지러웠다.

『파주』에등장하는삶의공통분모는비루함이다.김남숙은어둡고건조한문체로비루한인생들의시시함을지속적으로복기해나가나,그속에서번뜩이는날것의감성은날카로운이미지로다가와박힌다.‘전망없는세대’로일컬어지는청년들의무기력한태도의기저를저릴만큼훑어나가는이소설은언젠가소진될밝음을우리에게명시하는동시에,그럼에도삶을이어나가는태도와그끈질김에대해생각하게한다.그것은어떤것일까.“시시하지만시시하기때문에남은삶을어떻게든살아나갈”자세일까?“대단한기쁨도,거대한슬픔도시시한인생에는끼어들지못할”것이고,그렇다면이러한삶은이어지기에그자체로대단하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