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크림빵 (우신영 장편소설)

죽음과 크림빵 (우신영 장편소설)

$17.50
Description
거대한 외피 속 무른 크림만을 품은 여자가
온통 거칠고 질긴 세상을 견딘 유일한 방법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새소설〉 시리즈가 새롭게 발전한다.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콘텐츠를 추구하는 ‘뉴-어덜트’를 위한 작품을 엄선해 선보인다. 그 시작을 맡은 우신영의 신작 장편 『죽음과 크림빵』은 지금까지의 〈새소설〉과 다른 차원의 맛을 선사한다. 혼불문학상 수상작 『시티 뷰』로 인간의 욕망과 결핍을 다층적으로 형상화했던 작가는, 『죽음과 크림빵』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체제의 잔혹함을 대학이라는 구조 안에 녹여냈다. 삶의 부조리와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매혹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소설이다. 쓰디쓴 죽음과 달콤한 크림빵의 부딪힘이 만든, 우신영만이 낼 수 있는 맛의 소설은 그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저자

우신영

저자:우신영
서울대학교국어교육과를졸업하고동대학대학원에서석박사학위를받았다.명지대학교와인천대학교에서교수로재직했다.2024년장편소설『시티뷰』로혼불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이종수이야기
-부고
-재킷
-냉장고
-노트북
-루즈앤누와르
-케이크

허자은이야기
-떡집
-구멍
-공주
-책
-손수건
-요강

정하늬이야기
-거미여인
-문학의밤
-단식광대
-개밥
-뱀의이빨
-슈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그저아름다운것을동경한한여자의
죽음에가까운형상이던삶에관하여

[부고]고산대학교국어국문학과허자은교수본인상

한대학교에재직중인여교수가죽었다.자신의연구실화장실에서변기통에머리를박고.권태로운지방대에파장을일으킨자극적인사건에교수고학생이고눈을빛내며입을열었다.뭘얼마나먹었길래,괴물처럼살이쪄서,숨쉬기도힘들었지…….명복을앞서는조롱섞인평가는그녀의죽음이삶과비슷한모양임을증명했다.
허자은은혼자사는여자라는점을높이평가받아교수면접을통과했다.동료교수들은허자은의큰덩치를강의시간조는학생들을깨우는용도로활용했다.허자은은돼지고기를못먹는다는이유로동족에대한연민이냐는질문을받았고,남자조교와성적으로얽는농담도습관적으로들어야했다.학생들은강단에선교수를비난하고조롱하기를넘어광대취급하며유희적쾌감을취했다.열심히강의하는것이,동료를배려하는것이,제자를존중하는것이그모든폭력의당위가되는것을아는듯모르는듯허자은은가장큰몸집으로가장작은몸짓을해댔고,그것은부동과도같은취급을거뒀다.

씹어넘기기힘든것들로만가득찬곳
오직보드라운크림을탐한허기진영혼

허자은의외로운삶은그유서가깊다.떡집을운영하는부모아래서여자이기에오빠의밥을차렸고,여자이기에호기심을해소하는놀잇감이되었고,여자이기에살림밑천효녀노릇을요구받았다.착한딸,착한동생,착한학생,착한아이…….부모가형제가학교가사회가만든가늘고얄팍하지만날카롭게조여오는잣대에허자은은기꺼이맞추고따르고응했다.
힘든부모가밥짓지않도록팔다남은딱딱한떡을매일먹은작은소녀.밤마다예쁜여자아이가되는꿈을꾸던어린허자은은그렇게하루가다르게뚱뚱해졌다.또래보다빨리글을깨치고공부를열심히해좋은성적을받았지만허자은을바라보는시선엔거북함과우스움이따라붙었다.그때붙은비열한그것들은허자은의평생을장식했으니,허자은도세상도참한결같고올곧다고해야할까.
사람은본능적으로갖지못한것을좇는동물이어서인지허자은은늘아름다움에현혹됐다.인형같이생긴얼굴,길게뻗은팔다리,나긋한목소리만으로도충분한데-그어느것도허자은은가진적이없는데-그애는자기만의방과하얀테이블보와교양있는엄마까지갖고있었다.그애의집에서보고겪은여러‘처음’중생크림에찍은카스텔라는소녀의이상이혀에닿는순간을선물했다.거칠고질기고단단한것만씹어온작은턱이처음맞은,입에넣는순간으스러져사라지는달고부드럽고폭신한그것은어쩌면허자은에게다신없을행복의기갈을초래하는불행의단초였을지도모른다.


헛것에길을들인나쁜입맛
견딜수없이잔혹한폭식연대기

아름다움을좇는삶은그것에기꺼이이용당하는달콤한부조리를가져왔다.부모가가져온떡처럼주어진텍스트를씹어넘긴미친소화력은허자은이자발적시녀가되는데탁월한도구가되었다.예쁜대학동기를위해자처한대리시험,예쁜제자를위해대신쓴대학원발표문.그것들이허자은을병들게하다못해죽음까지불러왔다고한다면그탓은누구에게있는걸까.유혹한것과유혹당한것중무엇의죄질이더클까.
소화의총량은정해져있는지텍스트를과도하게먹어대기시작하며허자은의섭식에는문제가생겼다.먹고토하기를반복,모든걸소화하던여자는그무엇도소화시키지못한채변기를붙잡는일이잦아졌다.한번도채워지지않은마음처럼,이제는위장역시빈상태로내내허자은을허기지게했다.
몸피가부풀수록허기진마음만커졌던,검은재킷안에시리고여린것들을감추느라바빴던,바로서있어도늘역류하는속엣것에울부짖던여자는이제거꾸로처박힌채모든부자연스러움을흘려보내기로했다.아무도이해못할세상가장이상한안락의형상으로.

저자의말

어떤달콤한세계를동경하며다가갈때의두려움,그세계가끔찍이부패해있는걸목격할때의놀라움,어느새자신이그세계의일부가되었음을인지할때의구역감.그리하여완성되는수치심의삼각형.철회와환멸과자기파괴,세개의꼭짓점을돌아온뒤도형밖으로탈주하고자그은선분이이소설이었다.삶과죽음,그사이의구멍을탐구하는세인물에대해쓰며비로소그안으로빨려들어가지않을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