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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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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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박서영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시인이 출판사로 최종 원고를 보내온 날은 2017년 10월 18일이었다.
저자

박서영

1968년경상남도고성에서태어나,1995년[현대시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좋은구름』이있다.고양행주문학상을받았다.2018년2월3일작고하였다.

목차

시인의말

1부다옛날일이잖아요
미행/소금창고/입김/홀수의방/숲속의집/하얀흑인소녀/의자/방문/방,물속에가라앉은/홀수를사랑한시간/잉여들/파도속으로/불과얼음을만들었다/창문닦는사람/눈사람의봄날/페인트공의구두/태양극장버스정류소

2부영원을껴안았지만영원히사라져버린사랑이있다
버스정류소에앉아있는셋/키스를매달고달리는버스/참새/월력/별/성게/슬픈치,슬픈/달의왈츠/거미줄에걸려있는마음/누구의세계입니까?/종이배를접지못하여/섬/공터/삵/혀의지도/어항/구두

3부다알고있으면서아무것도모른다는문장을쓰고있어요
혀/입술,죽은꽃나무앞에서/숨겨진방/난로/기러기/황금빛울음/오늘의믿음/울음이텅빈뼛속을흘러갈때/타인의일기/안부/해운대밤풍경/항구의아침/해양극장버스정류소/꿈속의비행/구름치버스정류장/삼월/유서깊은얼굴

해설|사랑은서로에게망명하는일-박서영의시세계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책소개

“당신을만난후부터길은휘어져
오른쪽으로가도왼쪽으로가도당신을만나요”

서로에게번져서생긴상처의시
사랑이남긴마음의찬연한무늬와이야기를드러내는숲


1995년『현대시학』으로등단해마멸되어가는몸에대한치열한자의식으로‘시간’과‘죽음’의상상력을선보여왔던박서영시인의세번째시집『연인들은부지런히서로를잊으리라』가문학동네시인선118번으로출간되었다.2018년2월3일지병으로세상을떠난시인의1주기에맞춰출간된유고시집이다.최종원고를보내온2017년10월18일에맞춰시인의말을덧댔다.빼어난심미적사유와감각을견지하고사물들의소실점에내재된고통을탐사했던그의초기시에는‘수채처럼번지고뒤섞인시간들을가슴깊이각인한사랑의심장’(유성호)이뛰고있었다.박서영은5년만에펴내는이번세번째시집에서사랑은없고사랑의소재만남은방에서사라진손으로일기와편지를써내려간다.눈송이가내려앉아두뺨을잠시차갑게만지고떠날때시인은찰나가영원이되는시를,자신이가질수있는단하나의방을생각한다.
고통스럽고비참한풍경에빛의뿌리를끌어당겨환한몸살을앓았던시인은시적화자가놓인그독특한위치성과주저하는힘으로예정된비극을더욱극적으로드러낸바있다.그에게산다는것은무덤으로내려가기로약속된엘리베이터앞에서‘삶’을누를지‘죽음’을누를지서성이는일과같았다(「혼자서는무덤도두려운내부다」,『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천년의시작,2006).상가(喪家)로향하는화살표를보며생이란누구도피할수없는죽음을향해가는과정임을절절하게노래한바있던그.울면서도졸면서도왔고사랑하면서도아프면서도왔던길,와보니또가야하고하염없이가야하는이길(「죽음의강습소」,앞의책)이었지만누구의손도잡을수없이혼자마주해야하는것이죽음이기에두려웠으리라.
살수도죽을수도없이세상한쪽으로떠밀리고있다는느낌.사라지는것은완결되지않고사라지는중이며,아무리손흔들어도이별할수없다.추락해야하는데나뭇잎은,가지에서떨어져바닥에닿아야하는데거미줄에붙잡혀허공에매달려있다.10년,20년이지나도아직서로를잊고있는중이며,죽음으로처리되지않는실종의세계에서화자는영원히기다리고있다.눈을떠당신의부재를확인하기전까지당신은떠난것이아니다.이이별을받아들이는과정은첫시집부터시인박서영이천착해왔던삶과죽음에대한은유가아니고무엇이랴?
이번세번째시집은사랑과이별에대해말한다,그사랑을나의몸과이번생과작별하는과정이라불러도될까.모든것이눈물에젖은세계에서둥글고향긋한즙이묻어있던,지구에서내게유일한사람처럼아름다웠던그와이별하는과정이라고.시인의눈에목숨있는모든것은상처없이사라지지않는다.몸을얻은것들은다시태어나기위하여그몸을잃기까지짓물러터져야한다.살아있음은상처입을가능성의다른이름이다.산것들의고통을집요하게따라붙는시인의시선에비친육체는관(棺)이었으나이제거기에서한발더나아가울음을다발라낸매미의황금빛허물을비춘다.시인은이제텅빈괄호가되어뒤편의세계를엿본다.그에게있어우리의몸은정확한노선을따라여행하는버스이자예정된도착을기다리는하나하나의정류장이다.삶에서죽음으로가는그사잇길에서우리는가끔스쳐가기도하는얼굴처럼서로를바라본다.시인의시선은이제마땅히올것에대한방향을함께바라보는이의옆얼굴로향한다.혼자일수밖에없는외로움과두려움은곁을따스한인기척으로물들이는힘이되어준다.
총3부로시들을나누어담아낸이번책에서시인은자신의죽음을예견한듯생의시작과끝을오가며끊임없이제삶을반추하는과정을반복한다.놀라운것은여기가끝이아니라는정신의붙잡음으로계속어딘가를향해가고있구나하는길의재확인을지침없이해내는열정이다.미련도없고후회도없고연연도없이그저뚜벅뚜벅제몸이가자는대로하자는대로걸어가고있는와중에보고듣고느끼고말하는것을뜨겁게받아낸시편들.그래서부제목들이인생의어떤표지판처럼읽히는지도모르겠다.“다옛날일이잖아요”“영원을껴안았지만영원히사라져버린사랑이있다”“다알고있으면서아무것도모른다는문장을쓰고있어요”……아프지만은않은것이시로깨닫게해주는마음의태도랄까정신의자세랄까이런일깨움에눈이확열려서일터.부지런히서로를잊으리라,라고할때잊었다는것이아니라잊을다짐을살피니이전에얼마나사랑했을까하는그진심이그전심이바로느껴진다아니할수없다.보고싶음다음이보고싶지않음이고기억다음이망각이고만남다음이헤어짐일진대이당연함,이순리가이시집의정공법에묘하게힘을주는연유가아닐까생각도해보게된다.
사람이어렵고사랑이어려운이들에게큰해답이되어줄시집이다.삶이두렵고죽음이두려운이들에게도맞춤할테다.“가까운사람은치욕적으로가깝고먼사람은애초에다가온적없으니아름답지않았나.모르는집마당에죽은목련나무를보러갔었던어느저녁의일처럼서러워진다.”(「참새」)이구절에다시밑줄을긋게되는오늘같은날의마음.비단남녀만의사랑을넘어서이시집이사랑이라는말로대신한세상살이의겪음에있어주체성,그능동적이면서유연한의연함을모두가되새겨봤으면하는마음이크다.이시집을시인이손에쥐었다면좋아했을까홀로두근거려보게도되는밤이다.시인의명복을다시금빈다.

박서영의이아름답고슬픈시집을읽는내내마음이아팠다.깨진사랑의노래이기때문이아니라없는‘당신’을끌어안은그사랑의끝간데없는지극함때문이다.사랑은저마다의환상이다.사랑이삼킨것은대상이아니라사랑함그자체다.그러므로“누가사랑에얹힌맨발을/씻어주며노래를할것인가”(「울음이텅빈뼛속을흘러갈때」)라는구절에서슬픔은극에달하고문득마음의금(琴)이떨며울었다.
―장석주해설「사랑은서로에게망명하는일─박서영의시세계」중에서

일러두기
*이책은박서영시인의유고시집이다.시인이출판사로최종원고를보내온날은2017년10월1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