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간 한국전쟁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마을로 간 한국전쟁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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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 '마을'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재조명한다. 한국전쟁기에 종교나 이념, 친족과 신분 등의 갈등으로 인해 마을에서 벌어진 상호 학살 사건에 대해 치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아직까지도 짙게 드리워진 한국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확인하게 된다. 10여 년간의 답사와 연구를 모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것이다.

저자

박찬승

저자박찬승은서울대학교국사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미국하버드대학한국학연구소방문교수,역사문화학회회장,한국사회사학회회장,목포대학교와충남대학교교수,한양대학교동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을역임했다.현재한양대학교사학과교수로있으며,한국사연구회이사,역사학회편집위원,『KoreaJournal』편집위원,한림대학교한림과학원개념사프로젝트의연구진으로활동하고있다.
저서로는『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1992),『한국의역사가와역사학』(편저,1994),『민족주의의시대―일제하의한국민족주의』(2007),『근대이행기민중운동의사회사』(2008),『언론운동』(한국독립운동의역사33)(2009),『한국근현대사를읽는다』(편저,2010),『민족ㆍ민족주의』(한국개념사총서5)(2010)가있으며그밖에도다수의논문을발표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총론마을에서바라본한국전쟁
1.프롤로그
2.전쟁과마을주민간의갈등구조
3.마을지도자·국가권력과전쟁
4.전쟁이후의마을
5.에필로그―복합적갈등구조론
1친족간학살의비극,진도동족마을X리
1.진도에서X리는어떤마을인가
2.1930년대X리청년들의민족·사회운동참여
3.해방직후X리현풍곽씨의동향
4.한국전쟁기친족내갈등의폭발과학살의반복
5.맺음말:친족내갈등과배후의국가권력
2‘영암의모스크바’,한양반마을의시련
1.두양반가전주최씨와거창신씨
2.한말·일제강점기영보마을의민족·사회운동
3.해방에서한국전쟁기까지격동의영보리
4.맺음말:전쟁은마을에무엇을남겼나
3양반마을과평민마을의충돌,부여군의두동족마을
1.부여군두동족마을의역사와흔들리는신분제
2.한국전쟁기두동족마을의충돌
3.전쟁의상처와강호동지회의발족
4.맺음말:신분간투쟁으로서의마을전쟁
4땅과종교를둘러싼충돌,당진군합덕면사람들
1.전쟁이전지주·마름과소작인간의갈등
2.한국전쟁기마을주민간의갈등
3.맺음말:계급·이념간대립으로서의마을전쟁
5두명문양반가의충돌,금산군부리면의비극
1.금산군부리면의명문가해평길씨와남원양씨
2.두가문의좌우분화
3.한국전쟁기두가문의동향과11·2사건
4.끝나지않은이야기:전쟁을기억하는사람들
5.맺음말:좌우이념대립으로서의마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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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마을에서벌어진갈등과상호학살을통해살펴본한국전쟁의미시사
한국전쟁기간에마을에서는무슨일이일어났을까.한국전쟁발발60년을맞는올해,마을이라는공간을중심으로한국전쟁을조?명한책이출간됐다.저자는마을에서벌어진상호학살사건의과정과원인을치밀하게파헤침으로써한국전쟁의미시사를제시한다.이책에실린사례는진도의현풍곽씨동족마을,금산군부리면의해평길씨동족마을등전라남도와충청남도의다섯마을이다.저자가10여년간해당지역을현장답사하며관련자구술을채록하고희생자씨족...
마을에서벌어진갈등과상호학살을통해살펴본한국전쟁의미시사
한국전쟁기간에마을에서는무슨일이일어났을까.한국전쟁발발60년을맞는올해,마을이라는공간을중심으로한국전쟁을조명한책이출간됐다.저자는마을에서벌어진상호학살사건의과정과원인을치밀하게파헤침으로써한국전쟁의미시사를제시한다.이책에실린사례는진도의현풍곽씨동족마을,금산군부리면의해평길씨동족마을등전라남도와충청남도의다섯마을이다.저자가10여년간해당지역을현장답사하며관련자구술을채록하고희생자씨족가문의족보까지꼼꼼히조사하여얻은연구결과물이다.
기존한국전쟁에관한역사학계의연구는한반도를중심으로전쟁의발발배경과진행과정을분석한거시사연구가주류를이루었다.그러나2005년출범한‘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조사한한국전쟁사망자통계에서알수있듯실제희생자규모는전선(戰線)이아닌후방에서훨씬더컸다.그것은남북한군간의직접적인교전과는별개로마을이라는공간에서벌어진주민들간의크고작은학살이적지않았기때문이다.이책은한국전쟁을바라보는시야를한반도전체에서마을공동체라는구체적공간으로좁힘으로써,그동안거시사연구가놓쳐왔던마을주민들간의신분·이념·종교·토지소유등의갈등까지세밀하게짚어낸다.이들사례연구는학살사건의마을들이동일한농촌마을이었다고하더라도해당지역의씨족구성,마을지도자의계급성향과주민장악력등에따라그충돌양상은많이달랐음을보여주고있다.또한이책은한국전쟁기마을에서의갈등원인을주로이념과계급갈등으로한정지어왔던기성학계의통념을재검토하는계기가될것이다.이는불모지와다름없던한국전쟁의미시사분야에새로운가능성을보여줄것이다.
한국전쟁기간동안마을안에서는어떤일이벌어졌던것일까?
마을로내려간국가권력,전쟁전마을갈등의폭발
‘왜한마을의주민들은서로를죽이려고했을까?’,저자의일차적인연구동기이기도한이물음은이책의다양한사례연구를관통하고있는중심적인문제의식이다.
저자는마을에서벌어진주민들간의상호학살의일차적인책임을마을로침투한남북한국가권력에돌리고있다.1950년한국전쟁이터지면서남쪽으로내려온인민군은점령지역의면단위부터내무서를두고인민위원회,농민위원회,부녀동맹등의단체를만들어마을단위까지통제했다.토지개혁을내세워하층민들의호응을이끌어내고인민재판으로마을의주요우익인사를처형함으로써마을의질서를해체시켰다.반대로인민군이빠져나간뒤에는국군과경찰이들어와인민군에협조한부역자들을색출하여처단했다.특히우익단체인치안대와청년단이조직되어부역자대부분을경찰에넘기거나경찰의묵인하에직접처단했다.
그렇다면남북한의국가권력은왜이와같이마을공동체에깊숙이침투하려했을까?저자는국가권력이마을단위까지침투하려고애쓴이유가분단정부의불안한위치를빠르게극복하기위한방편이었다고주장한다.그렇게국가권력은마을주민들에게상호학살이라는돌이킬수없는선택을강요함으로써,자신들의체제에대한충성도를높이려했다는것이다.저자는이같은국가권력의개입이없었다면마을에서그렇게까지대규모의민간인학살은없었을것이라고주장한다.
“1948년남과북에는각각정부가들어섰지만,아직국가에대한국민들의충성도가그리높은상황은아니었다.그것은양쪽모두분단정부라는한계를안고있었고,남북모두국민들사이에좌우대립이있었기때문이다.따라서남과북의국가권력은전쟁상황을이용하여마을주민들에게어느한쪽을분명히선택하도록함으로써충성도를높이고자했다.남북의국가권력이마을주민들을동원하여직접학살에나서도록몰아간것은주민들로하여금돌이킬수없는선택을하도록만들기위한것이었다.어느한쪽편에서서다른쪽편을학살하는행위는곧자신의목숨을어느한쪽에맡기는것과마찬가지였기때문이다.”(본문p.49~p.50)
그러나저자의또다른고민은아무리한국전쟁기남북의국가권력의침투가강력하고치밀하게이뤄졌다고하더라도,수백년간견고하게유지됐던마을공동체가그렇게쉽게국가권력에조종당했을까하는의문점에있다.저자는20세기초일제식민지하의국내환경변화에서그점을이해해보려고시도한다.당시신분제와지주제,친족관계에기반을두고그나름의질서와규율을갖고있던농촌마을은신분제의이완과함께마을내의위계질서가무너지기시작했다.또1910년대에일제가면사무소를설치하고부락연맹과애국반등인적·물적자원의수탈을위한말단조직들을만들면서국가권력의의지가마을단위에서까지강력히관철될수있게되었다.바로이런농촌마을의환경변화가국가권력의침투에유리한조건을마련해주었다는것이다.
그러나저자는그보다더근본적인이유로전쟁이전각마을공동체가안고있던갈등이현명하게해소되지못하고한국전쟁기간에서야비로소상호학살의형태표출되었다는점을지적한다.예컨대이책에소개된반촌마을과민촌마을이충돌했던부여군의두동족마을의사례를보면,제도로서의신분제가없어졌음에도불구하고반촌주민들은공공연히민촌주민들을하시(下視)하고그들의노동력을착취해왔던사실을알수있다.결국민촌주민들의불만은한국전쟁기에폭발했고,좌우익으로갈라선두마을은거듭된학살로많은사람들이목숨을잃어야했다.또한당진군합덕면의주민들간의대립은지주와머슴간의갈등,마을간의농수와소작지를둘러싼갈등,경쟁집안간의갈등등해묵은갈등들이전쟁기에한꺼번에터져나온것이다.저자는이처럼잠재되었던마을주민들간의갈등의틈을남북의국가권력이잘파고들어이용했다는사실을지적한다.실제인민군들은마을의하층민과소외됐던신분계층을이용하여자주인민재판을진행시키곤했다.
기성학계의한국전쟁기민간차원의충돌원인연구는재검토필요
계급·이념갈등보다는친족·마을·신분간갈등이더중요
저자는마을학살사례를연구하는과정에서,기존한국전쟁연구가들이민간차원에서벌어진학살을주로계급·이념갈등으로국한하여설명하고있는것을보고강한의문을갖게되었다고한다.실제저자가연구한마을의사례들은지주―소작인간의계급갈등외에도,친족내부의갈등,마을간의갈등,기독교도와사회주의자간의종교·이념갈등과같은‘복합적갈등구조’를띠고있었던것이다.심지어저자는한국전쟁연구의고전이된브루스커밍스의『한국전쟁의기원』이남부지방에서일어난지방봉기의원인을지주―소작인간의계급갈등으로기술하고있는것에대해재고가필요하다고주장한다.부르스커밍스가주장한갈등관계를증명할수있는관련연구를여전히찾을수없기때문이다.
브루스커밍스는『한국전쟁의기원』에서일제하의지주-소작관계에주목하고,이러한오래된계급관계에기초한깊은원한은해방이후남한에혁명적정세를조성하였다고보았다.특히1946년10월남부지방의봉기에대해이를‘추수봉기’라고이름을붙일정도로지주-소작인간의계급관계를중시하였다.하지만1946년의10월봉기는지주-소작인간의갈등과는별관계가없었다.그것은오히려미군정의공출제실시나친일경찰의횡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