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 시대 (양장본 Hardcover)

사이코 시대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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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상국 중단편소설 전집 8권
『사이코 시대』는 이 타락한 세계의 갖가지 병에 대한 소설적 보고서이다. 그 병의 양상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그려 보여주고 과거를 파헤쳐 병의 원인을 찾아 드러내는 개성의 문학 세계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정확한 언어에 실려 여기 떠올랐다. 전상국이 구축한 소설 병리학의 앞머리에 놓인 작품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사이코 시대」이다. 저마다 견디기 힘든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며 고통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건너는 병인들로 가득 차 읽기 괴로울 정도로 어둡고 무거운 소설이다. 작가는 한 시대를 ‘사이코 시대’라 진단하고,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 보였다. 이 우울한 비관주의가 이념, 도덕적 가치, 이상 사회의 꿈 등 아름다운 것들을 앞세우는 당대 문학 일반과는 다른 개성적 세계를 열었다.
전상국 소설에는 어린 시절에 입은 정신적 외상 때문에 마음이 병든 인물이 자주 나온다. 「사이코 시대」의 땡삐, 「거울의 알리바이」의 르뽀 작가 변재동, 「시인의 겨울」의 주인공인 시인 김현세, 「이것은 기분 문제가 아니다」의 주인공 등. 그들의 정신적 외상은 전쟁·분단의 과거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바, 이 점에서 그들은 전쟁·분단 현실의 상징으로서 문학사에 올라 있는 ‘아베’(「아베의 가족」의 주인공)의 분신들이다. 영혼 깊숙이 낙인된 정신적 외상 때문에 지옥의 시간을 사는 인물에 대해 말하는 서술자의 태도는 안쓰러운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땡삐를 비롯하여 전상국 소설 곳곳에 나오는 아베의 분신들을 서술자는 언제나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다.
전쟁·분단의 과거와 무관한 정신적 외상 때문에 마음이 병든 인물도 있다. 「거울의 알리바이」의 윤혜선, 「개미거미들의 화음」 속 박한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윤혜선이 무당이 되어 녹두장군을 몸주로 섬기는 것, 많은 남성과 육체관계를 맺는 것, 언제나 죽음 충동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 죽기 전에 덫을 놓아 죽은 뒤에도 자신과 관계 맺은 이들을 구속한다는 것 등은 그 정신적 외상으로만 설명 가능하다.
「거울의 알리바이」, 「개미거미들의 화음」, 「시인의 겨울」에는 각각, 고발문학 작가, 소설가, 시인이 서술자로 등장한다. 문인인 만큼 당연하게도 글쓰기가 주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문학이란 무엇이며 문학 작품을 짓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문제를 향한다.
이런 근본 문제를 향하는 그들의 고민을 이끄는 것은 자신의 지난 글쓰기에 대한 반성이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작가로 갱신하여 ‘글쓰기의 신명’을 다시 찾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그 반성은 자신의 지난 글쓰기를 근본 부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거울의 알리바이」의 주인공인 고발문학 작가는, 독자들의 취향 및 요구와 타협하는 독자 추수의 글, 대상에 매몰되어 개연적 진실에서 멀리 벗어난 자극적인 고발의 글, 자기 삶의 실현으로서의 글이 아니라 “글 속에 나는 어디에도 없”는 “자기 배반”의 글을 써온 자신에 대한 통렬한 부정을 딛고 “나를 고발하여 처단하는 그 복수극”이라 명명한 새로운 글쓰기로 나아가고자 한다. 「시인의 겨울」 속 시인에게 시 쓰기는 “세상살이의 구체적인 던적스러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찾아낸 하나의 출구”였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그가 찾는 바람직한 세계는 “현실의 구체적인 삶 속에 들어 있”다는 것, 현실 너머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인간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생각의 변화를 따라 ‘아내와 두 아이들’이 그의 시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도 하였다.
전상국 문학은 사회비판적 성격을 뚜렷이 지니고 있다. 이를 제일 잘 보여주는 작품은 「퇴장」이다. 교장 교감을 비롯한 동료들, 학생들, 학부모들 그러니까 학교를 가운데 놓은 교육계 구성원 대부분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교사가 있다. 자기 나름의 교육관이 분명하여 온갖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옳다고 생각한 바를 실천하며 나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운명의 덫에 걸려 자살하고 만다. 그 자살은 인간의 이기성, 특정인의 배제를 통해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주의와 반민주주의 그리고 경쟁주의, 진실과는 무관한 자극적인 선동의 언어가 난무하는 언론 문화 등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고발 비판한다. 그 가여운 죽음은 다른 한편, “죽는 일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어떤 확신”을 딛고,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좇아 행해진 의로운 결단의 행위라는 것을 이 소설은 또한 말한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자신이 의미 있다고 믿는 가치가 실현되는 미래를 열고자 하는 이 강한 주체, 의로운 인물의 고귀한 결단은 비장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 맞은편에 「밀정」의 주인공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 전상국의 「밀정」 속 밀정은 우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윤리적 이분법 속에 놓인 밀정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열여섯 살 때부터 관청 급사 노릇하며 사찰계 일본 형사 끄나풀 노릇”을 한 그의 삶의 중심은 프로의식이다. 거짓 정보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결코 정보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철학, 정보 거래는 동등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 거래가 끝나면 관계도 끝내야 한다는 원칙, 정보는 오직 정보와 교환해야지 돈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돈과 여자를 원수로 여겨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원칙 등, 자신이 세운 원칙에 철저한 프로였다. 게다가 ‘일 자체에 탐닉하는 열정’, ‘밑바닥’을 보기까지 ‘편집증적’으로 ‘몰두’하는 성벽 등이 뒤를 받쳤으니 그는 몇 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프로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 수 있었다. 전상국은 「밀정」에서 우리 소설사상 처음으로 프로의식에 철저한 밀정이란 인물 성격을 창조하였다. 이로써 한국 소설은 문득 넓어지고 깊어졌다. 소설사의 새로운 의미강 하나가 1987년에 제시되었던 것이다.
저자

전상국

저자:전상국(全商國)
1940년강원도홍천에서태어나춘천고,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
1963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동행」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바람난마을』『하늘아래그자리』『아베의가족』『우상의눈물』『우리들의날개』『외등』『형벌의집』『지빠귀둥지속의뻐꾸기』『사이코』『온생애의한순간』『남이섬』『굿』,장편소설로『늪에서는바람이』『불타는산』『길』『유정의사랑』이있다.
그밖의저서로『김유정』『당신도소설을쓸수있다(소설창작강좌)』『우리가보는마지막풍경』『물은스스로길을낸다』『길위에서만난사람들』『춘천山이야기』『춘천사는이야기』『작가의뜰』등과콩트집『식인의나라』『장난전화거는남자를골려준남자』『우리시대의온달』등이있다.
현대문학상(1977),한국문학작가상(1979),대한민국문학상(1980),동인문학상(1980),윤동주문학상(1988),김유정문학상(1990),한국문학상(1996),후광문학상(2000),이상문학상특별상(2003),현대불교문학상(2004),경희문학상(2014),이병주국제문학상(2015),강원도문화상(1990),동곡상(2013),서울문화투데이문화대상(2024)을수상했고,황조근정훈장(2005),보관문화훈장(2018)을수훈했다.
현재대한민국예술원회원,강원대학교명예교수.

목차


사이코시대
거울의알리바이
개미거미들의화음
시인의겨울
이것은기분문제가아니다
퇴장
밀정

해설|타락한세계의소설병리학|정호웅
작가의말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전상국소설에는어린시절에입은정신적외상때문에마음이병든인물이자주나온다.「사이코시대」의땡삐,「거울의알리바이」의르포작가변재동,「시인의겨울」의주인공인시인김현세,「이것은기분문제가아니다」의주인공등.그들의정신적외상은전쟁·분단의과거와깊이관련되어있는바,이점에서그들은전쟁·분단현실의상징으로서문학사에올라있는‘아베’(「아베의가족」의주인공)의분신들이다.영혼깊숙이낙인된정신적외상때문에지옥의시간을사는인물에대해말하는서술자의태도는안쓰러운연민으로가득차있다.땡삐를비롯하여전상국소설곳곳에나오는아베의분신들을서술자는언제나연민의눈길로바라본다.

전쟁·분단의과거와무관한정신적외상때문에마음이병든인물도있다.「거울의알리바이」의윤혜선,「개미거미들의화음」속박한대가여기에해당한다.윤혜선이무당이되어녹두장군을몸주로섬기는것,많은남성과육체관계를맺는것,언제나죽음충동에시달리며계속해서자살을시도한다는것,죽기전에덫을놓아죽은뒤에도자신과관계맺은이들을구속한다는것등은그정신적외상으로만설명가능하다.

「거울의알리바이」,「개미거미들의화음」,「시인의겨울」에는각각,고발문학작가,소설가,시인이서술자로등장한다.문인인만큼당연하게도글쓰기가주된관심사일수밖에없다.자신의글쓰기에대한이들의고민은문학이란무엇이며문학작품을짓는일은무엇인가라는근본문제를향한다.

이런근본문제를향하는그들의고민을이끄는것은자신의지난글쓰기에대한반성이다.스스로인정할수있는작가로갱신하여‘글쓰기의신명’을다시찾고자하는간절한바람이만들어낸그반성은자신의지난글쓰기를근본부정하는데까지이른다.「거울의알리바이」의주인공인고발문학작가는,독자들의취향및요구와타협하는독자추수의글,대상에매몰되어개연적진실에서멀리벗어난자극적인고발의글,자기삶의실현으로서의글이아니라“글속에나는어디에도없”는“자기배반”의글을써온자신에대한통렬한부정을딛고“나를고발하여처단하는그복수극”이라명명한새로운글쓰기로나아가고자한다.「시인의겨울」속시인에게시쓰기는“세상살이의구체적인던적스러움으로부터도망치고싶은욕구가찾아낸하나의출구”였지만,생각이달라졌다.그가찾는바람직한세계는“현실의구체적인삶속에들어있”다는것,현실너머아름다운꿈이아니라인간삶의진실을추구하는것이진짜시라는생각을갖게되었다.이같은생각의변화를따라‘아내와두아이들’이그의시에자연스럽게들어오기도하였다.

전상국문학은사회비판적성격을뚜렷이지니고있다.이를제일잘보여주는작품은「퇴장」이다.교장교감을비롯한동료들,학생들,학부모들그러니까학교를가운데놓은교육계구성원대부분이싫어하고미워하는교사가있다.자기나름의교육관이분명하여온갖어려움에도물러서지않고옳다고생각한바를실천하며나아온인물이다.그런그가운명의덫에걸려자살하고만다.그자살은인간의이기성,특정인의배제를통해소속감과안정감을얻고자하는심리,우리사회를지배하는집단주의와반민주주의그리고경쟁주의,진실과는무관한자극적인선동의언어가난무하는언론문화등한국사회의부정적인측면을고발비판한다.그가여운죽음은다른한편,“죽는일이사는것보다더낫다는어떤확신”을딛고,“끝이아니라시작이돼야한다”는생각을좇아행해진의로운결단의행위라는것을이소설은또한말한다.

죽음으로써자신의생각을알리고자신이의미있다고믿는가치가실현되는미래를열고자하는이강한주체,의로운인물의고귀한결단은비장하고숭고한아름다움으로빛난다.그맞은편에「밀정」의주인공이어둠속에웅크리고있다.전상국의「밀정」속밀정은우리소설에자주등장하는윤리적이분법속에놓인밀정과는전혀다른성격의인물이다.“열여섯살때부터관청급사노릇하며사찰계일본형사끄나풀노릇”을한그의삶의중심은프로의식이다.거짓정보나정확하지않은정보는결코정보로쓰여서는안된다는철학,정보거래는동등하고공정해야한다는원칙,거래가끝나면관계도끝내야한다는원칙,정보는오직정보와교환해야지돈과바꾸어서는안된다는원칙,돈과여자를원수로여겨유혹에넘어가지않는다는원칙등,자신이세운원칙에철저한프로였다.게다가‘일자체에탐닉하는열정’,‘밑바닥’을보기까지‘편집증적’으로‘몰두’하는성벽등이뒤를받쳤으니그는몇차례위기에도불구하고프로로서의삶을충실하게살수있었다.전상국은「밀정」에서우리소설사상처음으로프로의식에철저한밀정이란인물성격을창조하였다.이로써한국소설은문득넓어지고깊어졌다.소설사의새로운의미강하나가1987년에제시되었던것이다.

“「사이코시대」등『중단편소설전집8』에함께묶은작품들은불신과증오,소외와좌절,억압과굴복등광기의모태를리트머스시험지삼아80년대말우리네의자화상을사회병리학적으로진단한,이른바‘사이코’연작에해당한다.

그시절작가로서내가즐겨다룬광기는성공하지못한악의한유형이라는발상에서출발하고있다.때로필요악이란말로그광기를미화하기도했다.부패와권태혹은맹목적이념보다는광기가한결창의적이요인간적이란생각에서였다.

어쩌면그광기는이제까지내작품의주요모티브였던6·25적악령이조금더디테일한모습으로현현된것이라봐도좋을것이다.분단으로인한동질의이질화혹은그정체성의파괴가낳은그늘속에서6·25악령이숨쉬고있었던것처럼그시대의광기는물질의풍요가불러온정신의피폐와희극화한정치상황이낳은말세적징후라고해도틀리지않을것이다.

가끔치미는,글쓰기에대한부정의정신도이연작의형상화에이바지했다고할수있다.‘사이코’연작을쓰는동안세상을보는뒤틀린심사만큼이나내가벌이는글쓰는행위에대해서도냉소적이었다.글쓰는신명,그불길이꺼질조짐,그런두려움까지.”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