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이안류

팔월의 이안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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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은영

저자:임은영
부산에서태어났다.동아대학교문예창작과대학원을졸업했다.2022년영남일보신춘문예에소설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8년한국소설신인상,2022년현진건문학상추천작수상.북아트와쇼트스토리를좋아하고현재독립서점을운영중이다.

목차

오해의기하학
블랙잭나이프
자정의질주
야행
드림파크
어디
팔월의이안류

해설이안류의평등|이철주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임은영의문장이만들어내는마음의이안류는기본적으로부끄러움을그공통된기저로삼고있지만,그한겹밑바닥에는조금만방심해도기어코일어나고야마는필연적불행에의두려움이이안류내부의이안류가되어흐른다.전자가맹목적삶의질서를멈추어세우는부끄러움의감각에초점을둔다면,후자는어떻게해도도저히손쓸수없는절대적삶의실재와그로인해촉발되는원초적불안감에주목한다.이안류의두흐름은얼마쯤상반된것처럼보이기도하지만실제로는서로긴밀히조응하며하나로흐르는데,‘부끄러움’은불행을피하기위해선택한타협적행위들로인해촉발되며,‘부끄러움’에대한응시는궁극적으로이절대적실재로서의삶에대한성찰과응시를요청한다.

일례로「오해의기하학」을이끌어가는핵심서사는부끄러움의발견이지만,이는“누군가뒤따라오는것같”은불길한느낌과“화단앞에서어슬렁거”리는그림자,“그치지않는고함”,망가진“차량차단기”등일련의적대적행위와그것이불러일으키는불안의기미들로점철되어있다.외부의폭력에노출되어있다는불안감은화자를더방어적이고폐쇄적이게만든다.이폐쇄적서사는세입자‘제이’에의해가까스로변화를맞이하게된다.제이는고등학교시절화자가학교폭력으로고발한적이있었던불어교사P의사촌동생으로,그의증언에의해제이,‘사내’,‘나’,‘P’모두의도치않은오해로얽힌가해자,혹은피해자였음이드러나게된다.소설은지극히사소한사건과행위들이어떻게“의도와관계없이어떤일이일어나고,오해의고리에엮”여돌이킬수없는파국으로이어질수있는지찬찬히들려준다.어찌할수없는절대적삶의실재가‘오해의기하학’이만들어낸‘불안의이안류’로형상화되고있다면,자신역시그가해자였음을깨닫게되는일련의사건과계기는‘부끄러움의이안류’로형상되어화자를그중심으로강력히끌어당긴다.

「야행」의서사역시불안의이안류와부끄러움의이안류가만들어내는힘의역학사이에서흘러간다.어린시절아버지로부터버림받았으며그로인해부모의손길이필요했던순간,자신은늘혼자였다는자각은화자로하여금자신도모르게늘긴장과불안,두려움속에서살아가게한다.어린시절돈독했던친구용하와선배에대한태도도이와같은감정적허기로인해점점방어적으로변해가게된다.그렇게불행에끌려들어가지않으려온힘을다해자신의경력을꾸리고있을즈음,이제는심해의어둠으로부터어느정도벗어났다고간신히믿기시작할무렵,돌연용하의부고소식을듣게된다.무엇에든진심으로생각하고행동했던용하는,대학시절부터아버지병원비며여동생용돈에생활비까지온갖책임감에짓눌려살면서도,자신에게결코호락호락하지않았던세상을늘긍정하던아이였다.아르바이트를두탕이나뛰면서도시간을쪼개노인들을위한야학일을했고,직장후배가어떤불량배무리로부터얻어맞고있자이를구해주려다그만사고로이어져목숨을잃게된것이다.어느날용하가불쑥결혼할사람이있다고말한것이화자가그에대한감정을서둘러정리하게된직접적인이유가되었다고는하지만,화자가용하에게느끼는서먹한감정의근원은그가오래도록부정해온과거의자신을끊임없이떠올리게했기때문일것이다.생존을위해꿈같은건일찍포기해버린‘나’와달리,용하는꿈을좇아경영학과에서문예창작과로전과까지했었고,공사판에서막일을하면서도시쓰는걸결코포기하지않았다.오래전용하네집에서잃어버렸던머리핀역시,‘나’에게는가족을버린아버지를떠올리게해그저버리고싶은물건에지나지않았지만,용하는그것마저도소중히간직하여‘나’에게돌려주려했다.그러니“하루하루가팍팍하고내일은알수없고,주위를살필겨를이없었”다는화자의말은,살아남기위해부정해온그모든순수했던시절을이제는도저히마주할자신이없다는,어딘가조금어긋난고백이자서글픈변명처럼들린다.

이번소설집에수록된작품중,부끄러움에대한성찰과불안에의응시가함께강조된서사들에서는인물의적극적인의지나저항적인태도가상대적으로잘드러나지않는편이다.반면두마음의이안류중어느한쪽에좀더강조점을둔일련의서사들에서는인물의능동적인목소리가더두드러지게나타난다.

「블랙잭나이프」는아버지를끝까지돌보지못했다는죄책감에사로잡혀살아가는인물의이야기이다.화자‘나’는태풍으로모든것을잃고아버지마저도거동과인지력에문제가생기는데,오빠는경제적지원을핑계로아버지돌봄을전적으로‘나’에게떠넘겨버린다.이후화자의삶은점차질식할듯위축되어간다.이후화자는청소용역일을하며,의미도희망도없이이곳저곳을전전하며살아간다.화자는늘아버지의잭나이프를지니고다녔는데,이는아버지가유일하게부탁해화자가직접해외주문까지했던물건으로비극이일어나기이전,손상되지않은삶의순간들을상징한다.잠깐의부주의로잭나이프를잃어버린화자는이를되찾으려자신이청소했던집에다시방문하게되는데,이집엔자신의힘으로는어떤것도할수없는“잠자는공주”와병든아내에게지극히무심한남자,그리고여자를오직돈벌이수단으로만생각하는간병인이거주한다.아무도주인여자를한명의사람으로조차생각하지않는모습을보며,화자는홀로외로이누워자신의손길을기다렸을아버지를떠올린다.그런화자에게여자는그때의아버지와똑같이다만기다리겠다는말만을남긴다.가릴수도숨길수도없던부끄러운마음과기억들이생의이안류가되어자신을깊숙이끌어당기는그순간을,그러나동시에어딘가포근히끌어안는듯했던그서글픈감각을화자는어떤변명도저항도없이묵묵히받아들인다.

「자정의질주」는좀더적극적인응답을보여준다.화자는필리핀인어머니와한국인아버지사이에서태어난다문화가정출신여성이다.어머니는화자가열두살때미안하다는말만남긴채필리핀외가로도망치듯떠났고,‘나’는다문화지원센터에서일하며이런자신과비슷한어려움을겪고있을사람들을돕고자한다.그러나아무리노력해도혼자만의힘으로는어찌할수없는한계역시분명히느끼는데,급기야수강생들의취업을도와주던연인‘장’이수강생들을불법적으로팔아넘기고있었다는사실을알게되며큰혼란에휩싸인다.화자는한동안장의부정을외면하며,자신이해온모든일이여전히의미가있기를바라지만,더이상이를의심하지않을수없는상황에이르자함께바로잡기로결심한다.
「드림파크」,「어디」,「팔월의이안류」는반대로삶의절대적실재로서의불행과그것이불러일으키는불안의감각에좀더집중한다.이들소설의화자들은멀리서자신을끌어당기는이안류의심연에속절없이휘말리지만,포기하지않고꿋꿋이저항하며자신을살아있게만드는의미의세계와기억의자리를기꺼이긍정하고회복하려는모습을보여준다.

일례로「드림파크」의초점화자‘원’은열두평짜리빌라에서‘엄마’와살지만엄마는원을자식으로여기지않으며‘원’역시엄마를‘그여자’라고만부른다.아빠는오년전유람선사고로세상을떠났고,이후‘원’의시간은아빠가남기고간고장난시계처럼어디로도흐르지못한다.‘원’은학교에도가지않은채집에서주로컴퓨터만하며시간을보내는데,메타버스플랫폼‘드림마을’에서원은‘재크’라는아바타로가상의삶을살며현실의결핍을채운다.물론이아름다운가상의삶은한낱백일몽에불과하다.‘원’은파티에참석한사람들과의관계치조차치트키를눌러임의적으로조절하는데여기에는물론‘타자’가존재하지않는다.그러나자신을괴롭혀온동창생‘카알’의등장으로이무해한꿈같은행복마저도곧산산조각나고만다.

「어디」의이야기는가족-보호장치로부터의추방이라는손자‘수오’의서사와가족-굴레로부터의해방이라는‘할머니’의서사가중첩되어진행된다.수오는할머니를집에서유일하게관계의호칭으로부르지않고‘정원씨’라고부르는데,이때문인지할머니도유독수오에게만큼은자기자식들에게하지못하는얘기까지도선뜻들려주곤한다.수오의할머니‘정원’은평생을가족을위해서만살아왔지만,칠십을앞두고서야비로소자기자신을위한삶을살기로마음먹는다.

위두작품이불안의이안류를아무리노력해도쫓아내거나부정할수없는삶의절대적실재이자,화자가견디고버텨야할시련으로서그려내고있는것과달리,「팔월의이안류」는이를주변부삶에내몰린인물들에게만국한하지않고힘과권력을지닌누구에게라도찾아올수있는보편적삶의실재로확장시킨다.화자는행방불명된아버지를대신해아버지의빚을갚기위해횟집을운영하고있다.‘박’은불법적인요양원사업을통해돈을버는인물로,사람들의약점을이용해권력을행사한다.박은화자의가게를자신의이익을위한장소로활용하는데,그런용의주도한박의손아귀에서벗어나기는어려워보인다.그러나그렇게모든것을통제할수있는것처럼보였던박도“취하면바다주위를어슬렁거리는”그의습관때문에느닷없이이안류에휩쓸려사라져버리게된다.화자는이안류가모두에게언제라도찾아올수있음을거의본능적으로알고있으며,자신이할수있는일이라곤유혹하듯일렁이는그이안류의중심을향해끝까지시선을거두지않는것뿐임도명확히자각하고있다.이견고한시선들덕분에「팔월의이안류」는의미의세계나기억의흔적에의지하지않고도지금-여기를견딜수있는서사적가능성을찾아낸다.어떠한흔들림도망설임도없이이안류의중심을응시하며,이안류와함께살아간다.이안류의호흡으로이안류의삶을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