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울음의 원무

웃음과 울음의 원무

$15.00
저자

허택

저자:허택
2008년『문학사상』신인상에단편소설「리브앤다이」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리브앤다이』『몸의소리들』『대사증후군』『언제나편하게』등이있다.부산작가상,이주홍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마른장마
영도와여의도사이
상실의흔적
붉은비닐노끈
부부의초상
야차LC
웃음과울음의원무
N번째살인미수사건

해설몸과욕망의서사와새로운수사학|정홍수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선명한대립구도를말해볼수있을것같다.한쪽에는도덕,윤리와무관하게자신의욕망을날것그대로추구하는인물이있고,다른쪽에는그로인해상처입은인물이있다.허택소설의많은이야기는이구도로부터시작된다.이번소설집을여는「마른장마」의중심인물정주와명희는고교동창인데,명희가재수를해서정주와같은대학에입학할정도로단짝친구였다.그러나명희는정주의남자친구민석을빼앗아결혼하고두사람의관계는파탄난다.이후명희는비교적성공적인길을달린남편과함께번듯한가정을꾸려가고,정주는배신의상처를안고고립된삶을살아간다.비슷한구도는「상실의흔적」에서도반복된다.여성화자‘나’는대학시절에만난‘훈이’와결혼했고,표면적으로는무난한가정을이루어왔다.그러나두사람사이에는남편의절친인고교동창A가있었고,‘나’는세사람이함께했던대학사진반여행에서A로부터성폭행을당한사실을숨기며살아왔다.우정을짓밟고폭력적으로틈입한몸의기억은끊임없이‘나’의평온을뒤흔드는트라우마적상처로남게된다.가혹한생존경쟁의논리를내면화한남성가부장의일그러진욕망이아내나자식들에대한폭력적억압으로표출되는이야기들도있다.「웃음과울음의원무」,「N번째살인미수사건」이그런경우인데,가족내에서이루어지는가해와억압의또다른선명한대립구도를보여준다.남근적욕망의자기파멸의서사를환상적우화로그려낸「야차LC」,남편의성적착취에맞선아내의끈덕진처벌을담아낸「붉은비닐노끈」에서도가족관계에서내연하고있는대립구도의변주된양상을읽어내기는어렵지않다.「영도와여의도사이」에서는집과경제관념을둘러싼세대간대립구도가뚜렷하다.

물론대립구도를풀어내는방식은작품마다다르며,가해나억압의세부적양상또한단선적이기보다는중층적으로뒤얽혀있다고할수있다.그러나이같은대립구도의반복적활용이얼마만큼은현실에대한작가나름의해석적프레임으로작용하고있다는느낌을받게되는것도사실이다.그리고이점이허택소설을통상의리얼리즘과는다른소설적좌표로이동시키는것같다.허택소설은세부적현실의재현으로부터하나하나이야기를쌓아가는방식을취하지않는다.그보다는인물이나상황을압축하는환유적표현에힘을기울이면서그환유의수사학을소설의전체적구도,전언으로확장하려고한다.이때소설의서사는환유의수사학을중심으로구축된다.가령「마른장마」에서자신의욕망에거침이없는명희라는인물을그릴때,작가는명희의‘높고날카로운목소리’에주목한다.소설에서명희의목소리는‘소프라노솔음’이라는환유의수사학으로표현된다.비슷한수사학의예는‘집’에대한생각을둘러싼부자세대간의갈등을다룬「영도와여의도사이」에서도만나게된다.노년의문턱에이른‘나’와아내에게‘집’은영도산동네의자그마한재개발아파트가전부라고할수있다.그집은‘나’가고등학교2학년때아버지가해상사고로세상을뜬후어머니와함께힘겹게장만한것으로,영도조선소에서‘깡깡이아지매’로일한어머니와대학진학을포기하고곧장생활전선에나서야했던‘나’의고단한세월이담겨있는곳이다.그집은‘나’에게어릴적부터오르내리던‘달빛아래벚꽃가로수길’로기억속에남아있다.

「N번째살인미수사건」에서우리는대립구도의자기분열/증식을본다.이작품에서소설화자‘나’가거듭죽이려고시도하는존재는생존경쟁의내면화,폭력적인남성가부장의허위의식속에서‘괴물’로변해버린자기자신이다.혹은괴물이되어버린내면의욕망이다.소설에는거듭‘놈을죽여야한다’는표현이나온다.평범한중산층의삶을벗어나고싶었던‘나’는은행원으로일하면서주식투자에빠졌고,주식에중독된채삼십대를보냈다.그러는동안집안의경제를책임지고자식들을키운것은아내였다.‘나’는음악을하고싶어한아들의뜻을마구짓밟기도했다.이소설에서흥미로운지점은‘나’의자기분열,자기대면이피해자이기도한아내의적극적인조력을통해이루어지고있다는사실이다.

이번소설집에서허택소설의개성적구도와화법이가장집약적으로표현된작품은표제작인「웃음과울음의원무」다.평생집안의폭군으로군림했고,함께입사한절친을배신하면서까지직장에서최고의지위에오른소설화자‘나’는허택소설의전형적인남성인물이다.소설은2년전세상을떠난아내의추도식날하루를담고있다.어머니의사고와죽음에아버지의책임이크다고믿는아들과의관계가특히좋지않지만,권위적이고억압적인아버지에대해두딸도소원하기는마찬가지다.‘나’가막내딸의8개월된외손녀를이날처음으로보게된상황에‘나’를둘러싼가족의현재가압축되어있다.아내가떠난후‘나’가군림해온집이라는성채는기실‘공허’와‘적막’뿐이었다는게드러난다.추도식날가족들로부터소외된‘나’는자신만의철옹성이라믿었던서재에고립된다.구원의계기는외손녀로부터찾아온다.서재로들어온아기가할아버지를보고는울음을그치고방실방실웃음을짓는다.아이의웃음이‘나’에게뜻밖의몸의반응을불러일으킨다.스스로를가혹하게다그치며앞만보고질주해왔던‘나’는눈물을모르는삶을살아왔다.그런데아기의‘너무도깨끗한웃음’에대한‘나’의첫반응은자신도모르게흘러내리는눈물이다.눈물은그렇게잊었던몸의기억을일깨우며찾아온다.몸의기억은연쇄적이다.허택소설은예의‘몸의시학’을통해‘나’에게찾아온반성과구원의계기를포착하려한다.

허택소설에는전쟁통에태어나힘겨운시대를살아낸어떤세대의초상이겹친다.현직치과의사라는작가의이력은몸에대한각별한소설적상상력으로이어지면서인간욕망의미로를탐사하는많은이야기를빚어왔다.이번소설집에서도확인할수있는바,욕망을둘러싼선명한대립구도는허택소설의중요한서사적동력이면서그구도를허물고넘어서는소설화법의다양한가능성을시도하는원천이되고있다.‘다르게말하기’는알레고리라는소설화법의특징과도연결되지만,문학적새로움을추구하려는작가적의욕의표현이기도한것같다.허택소설에서‘몸’은끊임없는소설적탐구와발견의대상이면서그자체소설의새로운형식,새로운화법을요구하는동인이되고있다.늦은등단에도불구하고벌써다섯번째에이른소설집의상재(上梓)가보여주는것처럼,작가의지칠줄모르는열정에는젊음의시간을방불케하는경이로움이있다.그열정의힘으로펼쳐질앞으로의세계가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