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경전 -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5

이형경전 -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5

$18.00
Description
사회적 자아실현을 꿈꾼
참신하고 진취적인 여성영웅의 첫 등장!

문무를 겸비한 강직하고 유능한 관리 이형경
가부장제와 젠더의 틀을 깨부수다!
『방한림전』 『홍계월전』 『박씨전·금방울전』 등 조선시대를 뒤흔든 다양한 여성영웅담을 소개해온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이 이번에는 ‘최초의 본격적 여성영웅소설’ 『이형경전』을 처음으로 현대어역해 대중에게 선보인다. 18세기 초로 창작 시기를 추정하는 『이형경전』은 이후 이어지는 여성영웅소설의 서사 모형을 확립했다는 의의도 있지만 우리 고소설에서 보기 드문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 현대 로맨스 소설을 연상시키는 남녀 주인공의 결연 과정, 섬세하면서도 탁월한 심리 묘사 등에서 여타 여성영웅소설과 차별화된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여성은 사회에 나설 수 없는 유교 사회에서 불세출의 능력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간 이형경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된 현실 속에서 빛나는 문학적 상상력의 힘과 매력적인 서사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인정받는 다른 여성영웅소설 속 인물과 달리 이형경은 문무의 소양을 두루 갖췄을 뿐 아니라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사회적 자아실현을 위해 온몸을 던진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여성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서사하고, 가부장제나 젠더를 부정하는 등 성평등을 지향하는 의식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시가와 가장의 권위를 무엇보다 절대시한 18세기에 여성을 능력에 따라 대우했다는 점,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딸’이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한 개인을 인정했다는 점 등을 통해 당시 민중 의식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다. 고소설은 물론 근대소설에서도 찾기 힘든 참신하면서도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낸 『이형경전』은 우리 소설사뿐 아니라 사회·문화사적으로도 다양하게 해석해볼 만한 작품이다.

저자

이상구

역자:이상구
고려대학교문과대학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에서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현재순천대학교사범대학국어교육과에재직하고있으며,순천대학교사범대학장,한국고전여성문학회장,한국고소설학회장등을역임했다.
주요저역서로는『17세기애정전기소설』『숙향전·숙영낭자전』『방한림전』『박씨전·금방울전』등이있으며,논문으로는「숙향전의문헌적계보와현실적성격」「구운몽의형상화방식과소설미학」등40여편이있다.

목차

머리말

이형경전
형경이남장을하고과거에급제하다
장연이형경을흠모하다
형경이국구왕세충을징계하다
형경이위영의구애를거절하다
형경이천자시해기도를예견하다
형경이주왕을죽이고,장연과함께남만을평정하다
유모가장연에게형경이여자라고밝히다
장연이형경의본색을밝히기위해형경을압박하다
영경이형경에게본색을밝히라고권유하다
형경이천자에게본색을실토하다
형경이장연의청혼을거절하다
천자의계교로형경과장연이혼인하다
위영의참소로형경이시가를나오다
위영이형경을죽이려자객을보내다
위영의소행이밝혀지고,형경이돌아가다
후처고씨가형경을존경하며따르다
형경과장연이같은날세상을떠나다

원본『이형경전』

해설.사회적자아실현을최우선으로여긴여성,이형경

출판사 서평

『이형경전』은적어도18세기초에창작된초기여성영웅소설이면서후대의여성영웅소설과가문소설등에도많은영향을미친작품이다.『이형경전』의의의와가치는최초의여성영웅소설이라는말만으로는부족하다.여주인공이형경은젠더를거부하거나무시하고사회적자아실현을강력하게추구하는인물이다.남주인공장연은여주인공의탁월한능력을기꺼이인정하고그를흠모하는인물로형상화되어있다.이런남녀주인공의형상은여느여성영웅소설에서는쉽게찾아볼수없다.또한『이형경전』은시가(媤家)의절대적권위를부정하는등가부장적이념과체제에대해서도새로운의식을표출한다.단순히새로운캐릭터의등장이아니라당시이러한의식을가진이들의흐름을볼수있다는면에서『이형경전』은우리소설사를넘어서사회·문화사적으로도진지하게다뤄야할작품이라하겠다._해설에서

시대를앞서간주체적인‘가모장’의탄생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말로대표되듯조선사회에서는무엇보다남녀의구분이엄격했다.아무리능력이뛰어나도무릇여자라면규방에서지아비를섬기고시부모를공경하며집안일을돌봐야했다.그런시대에『이형경전』은주체적인삶을살고자한조선시대여성의욕망을환상적으로그려낸다.

이형경은세살때부터글읽기에힘쓰고여덟살때부터는부모의반대에도불구하고남자옷을입고남자처럼행동한다.가문의부흥을위해혹은부모의원수를갚기위해어쩔수없이남자행세를한것이아니라직언과정론으로임금과부모를섬기는것이사람된도리라고믿었기때문이었다.즉형경은사람을남녀로구분짓는사회적분류체계나관념을인정하지않겠다는의지로남장을선택했다.『이형경전』속에서이형경은당대최고의문장가,백성을수탈한다면상대가누구든주저없이징치하는올곧은관리,정치적식견,결단력,정세를읽는센스까지두루갖춘‘육각형인재’로그려진다.부득이하게여성임을밝힌뒤에도형경의행보는남다르다.

처음에는‘누구의아내’로살고자하지않으나천자의계교로절친인장연과결혼을하게된다.하지만그후에도한달중절반은시가에,나머지절반은친정에머무르면서먼저세상을떠난부모님을대신해가장처럼이씨집안을이끌어간다.간통남과편지를주고받았다며장연의첩위영이자신을모함하자구차하게이를해명하기보다는아예짐을싸서친정으로돌아갈정도로형경은순종과인고와거리가먼인물이다.부당한일을당해도참는게여성의미덕이었던가부장제사회에서이러한형경의모습은수평적인부부관계에대한당대독자들의열망을가늠케한다.언제든당당한형경의모습을통해사회활동이가로막힌여성은대리만족을,억압된삶을살아간여성은카타르시스를느꼈을것이다.여성영웅의첫등장이라는의미뿐아니라근대적의식을가진여성캐릭터를만날수있다는면에서도그의의가남다른작품이라하겠다.

“너는여자가되어마땅히길쌈등여자가해야할일을다스릴따름이거늘,어찌하여남자의일만하느냐?”
이에,형경이대답했다.
“사람이세상에태어나성인(聖人)이남긴기풍에따라붓아래문장을이루고,입가운데직언(直言)과정론(正論)을머금어임금과부모를섬기는것이즐거운일일것입니다.소녀가비록여자이나뜻은세상의용렬한남자를비웃나니,이제부터여자옷을벗고남자의모습으로부모를모셔자식의도리를다하고자합니다.”

부모가처음에는망령되다고꾸짖었으나형경이여러번간절하게요구하니,부친이‘이아이가어려서여자의도리를몰라그러는것이니,아직자기가하는대로두고보자.나이가차면자기스스로부끄러워하리라’하고남장을허락했다.그러나부모는다만형경의거동을살펴보려고한말이나형경은진심으로남장하기를원했다.그리하여형경이여덟아홉살무렵부터남장을하고부모를모시니,벼슬아치들이모두그를이영도의아들로알고여자가남자처럼행세한다는사실을알지못했다._16쪽

남장여자로맨스소설의원조를만나다

〈성균관스캔들〉〈연모〉〈체크인한양〉등조선시대를배경으로한남장여자로맨스물은꾸준히대중의사랑을받아왔다.『이형경전』속이형경과장연의로맨스는이러한상상력의근원을보여준다.“이형같은아내를얻으면한이없으리라”라고이야기할정도로장연은형경을남자로알던어릴때부터그에게남다른애정을드러낸다.여성임이드러난뒤장연은좀더적극적으로구혼을하고형경의애정을갈구하며‘원조사랑꾼’으로서의면모를보여준다.

대표적인여성영웅소설로알려진『홍계월전』이나『정수정전』의남주인공은탁월한능력을가진여주인공을인정하지않고여주인공과공을다툰다.하지만『이형경전』속장연은형경의처지나상황이변해도시종일관형경의능력을인정하고존중한다.학문적지식면에서도,검무등의잡술면에서도뛰어난형경을깊이사랑하면서그에게신의를지키려고애쓴다.고소설에서는남주인공이여주인공에게애정을직접적으로표현하는일이드물지만『이형경전』에서장연은형경때문에상사병이걸리기도하고,첩을멀리하는애처가로서의모습을보인다.가부장적인태도가아니라여주인공형경의사랑을희구하는남주인공장연의모습을통해『이형경전』은‘남존여비’로대표되는조선시대남녀간역학관계를뒤집는통쾌함을선사한다.남장여자를사랑하면서느끼는혼란한감정뿐아니라연인의마음을얻기위해애쓰는여러에피소드를읽어가다보면전통적인애정서사와차별화되는이색적인로맨스서사의맛도느낄수있다.

여성영웅의활약상을보여주며통쾌함만선사하는이야기가아니라가부장제사회하에감춰진남성의허위를폭로하고,역전된애정구도로여성의주체성을드러낸다.근대의식이어떻게민중사이에퍼져갔는지를보여준다는점에서도선구적인작품이다.여성영웅소설의핵심요소인입신양명구조의완성상뿐아니라이전보다진전된여성의식,가부장제에대한비판,소설의대중화와통속화로이어지는시대의변화상등이두루담겨있다는점에서우리가미처몰랐던새로운고전소설이라할만하다.

슬프다!옛날죽마고우로같은나이에같이벼슬길에올라관포지교를배우고,유비,관우,장비가같은날죽지않은것을안타까워했습니다.같은방에서함께지내면서그대가자면나도자는등서로뜻이통하고우정이돈독해,오륜가운데둘을겸하고삼강가운데하나에참여했었나이다.그런데너무나뜻밖에도그대가규방가운데여학사가되었다고하니,저는간담이무너지는듯황홀하여아무런말도할수가없었나이다.또한그대와같은절친을잃게됨을슬퍼하며탄식하고,하늘을우러러그대를여자로태어나게한것을원망했나이다.그대의화사한용모와장강대해같은재주는말할것도없고,그대처럼갑옷과투구를갖추고창검을춤추듯휘두르며활을메고적진을향해말을달려나가는여자는옛날부터지금까지단한명도없었나이다.그런데하늘은어찌이런재주를지닌사람을남자로태어나지못하게하여십년의공명이그림의떡이되고,제가특별히정해서만난절친을잃게하셨는고?저는요즘그대와함께지내던날들이하나하나생각나는지라,한번밥을먹을때마다여러번탄식하며,한번잠잘때마다세번흐느끼곤하나이다.그러다가이또한천명인가싶어저도모르게매우놀라며기뻐했나이다.어린소견에아뢰건대,바라건대제청혼을기꺼이허락하여애초그대와더불어절친이되었던일을헛되게하지마소서._79~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