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 장편소설)

3월의 마치 (정한아 장편소설)

$16.80
Description
『친밀한 이방인』(드라마 〈안나〉 원작소설) 이후 8년 만의 신작 장편!
모두가 기다려온 스토리텔러, 정한아의 귀환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대학교 4학년생 신분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린 지 20년, 정한아는 어느덧 한국문학의 탄탄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소설로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의 성취를 꾸준한 속도로 이뤄왔다.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2009), 『애니』(2015), 『술과 바닐라』(2021)를 통해 인생이라는 오묘한 심연을 단편 속에 압축적으로 길어냈고, 장편소설 『달의 바다』(2007), 『리틀 시카고』(2012), 『친밀한 이방인』(2017)으로 한 편의 긴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갖춰야 할 구성의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친밀한 이방인』이 수지ㆍ정은채 주연의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로 드라마화되며 차기작에 이목이 쏠린 지금, 정한아가 8년 만의 신작 장편 『3월의 마치』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지만 불가능한 방법을 실행에 옮긴다. 바로 과거의 나와 직접 대면하는 것. 이를 위해 정한아는 성공한 노년의 여성 배우 ‘이마치’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무수한 파도를 넘으며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한 그녀는 세월이 남긴 깊고 묵직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마치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마지막 파도로 들이닥치고, 그녀는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한 가상현실을 누비며 유실된 기억을 되찾고자 한다. 과연 이마치는 수많은 예전의 자신과 재회하며 삶의 강렬했던 순간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처럼 밀려오는 상실과 망각의 물결을 막아내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까지 간직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피엔딩일까. 『3월의 마치』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가상의 무대 위로 우리를 초대한 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갖가지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도록 유도한다.
저자

정한아

저자:정한아
장편소설『친밀한이방인』『리틀시카고』『달의바다』,소설집『술과바닐라』『애니』『나를위해웃다』가있다.문학동네작가상,김용익소설문학상,한무숙문학상,김승옥문학상우수상,심훈문학대상을수상했다.『친밀한이방인』이쿠팡플레이시리즈<안나>로드라마화되었다.

목차

3월의마치_007

작가의말_285

출판사 서평

『친밀한이방인』(드라마<안나>원작소설)이후8년만의신작장편!
모두가기다려온스토리텔러,정한아의귀환

2005년대산대학문학상을수상하며대학교4학년생신분으로문단에이름을알린지20년,정한아는어느덧한국문학의탄탄한기둥으로자리매김했다.그는지난20년간소설로수행할수있는최선의성취를꾸준한속도로이뤄왔다.소설집『나를위해웃다』(2009),『애니』(2015),『술과바닐라』(2021)를통해인생이라는오묘한심연을단편속에압축적으로길어냈고,장편소설『달의바다』(2007),『리틀시카고』(2012),『친밀한이방인』(2017)으로한편의긴이야기가독자의흥미를끝까지유지하기위해갖춰야할구성의모범답안을보여주었다.
『친밀한이방인』이수지.정은채주연의쿠팡플레이시리즈<안나>로드라마화되며차기작에이목이쏠린지금,정한아가8년만의신작장편『3월의마치』로돌아왔다.이작품은한인간이자기자신과화해할수있는가장확실하지만불가능한방법을실행에옮긴다.바로과거의나와직접대면하는것.이를위해정한아는성공한노년의여성배우‘이마치’를주인공으로삼는다.삶이라는바다에서무수한파도를넘으며살아남은‘생존자’이기도한그녀는세월이남긴깊고묵직한상처를지니고있다.그런이마치에게알츠하이머라는병이마지막파도로들이닥치고,그녀는과거의시공간을복원한가상현실을누비며유실된기억을되찾고자한다.과연이마치는수많은예전의자신과재회하며삶의강렬했던순간들을지켜낼수있을까.자연의섭리처럼밀려오는상실과망각의물결을막아내는것이,그렇게고통스러운기억까지간직하는것만이진정한해피엔딩일까.『3월의마치』는매력적이고환상적인가상의무대위로우리를초대한뒤,행복과불행에대한갖가지고정관념을벗어던지도록유도한다.

평생에걸쳐명망과재력을그러쥔배우,이마치
세월의흐름에기억을유실하기시작한그녀를위해
인생전체가오롯이담긴특별한세트장이제작된다!

복원된과거속에서,영화보다강렬했던삶의순간들을되찾으며
자기치유로나아가는사이코드라마

이마치는매일아침눈을뜨자마자몸무게를쟀다.그녀의몸무게는55킬로그램이었다.특별한일이있을때를제외하고는변함없이그몸무게를유지했다.그녀는배우였다.
(…)
생일날아침이마치는평소대로몸무게를재고깜짝놀랐다.59라는숫자가깜빡거리다가사라졌다.전날까지분명55킬로그램이었는데하루아침에이렇게몸무게가늘수도있는걸까?(7~8쪽)

이야기는이마치의60세생일날아침으로부터시작된다.그녀의생일은3월이고,그이유로평생을‘마치(March)’라는독특한이름과함께살아왔다.그런데예순번째생일은평소보다더이질적이다.배우로서엄격히관리해온체중이하룻밤사이크게달라진것이다.이마치의일상에감지되는이상신호는그뿐만이아니다.그녀는몇달전이사를한후로기묘한일들을겪는중이다.갑작스럽게기억력이감퇴해연기경력에차질이생기더니,혼자사는집에서낯선이의목소리가들리기도하고,급기야집안을배회하는유령을목격하기에이른다.

그날밤이마치는유령을봤다.한밤중에침대에누워있는데이상한소리가들렸다.쾅,쾅,쾅,문이닫히는소리.이마치는자리에서일어나집안곳곳을살피고다녔다.모든문이굳게닫혀있었다.다시침대로돌아오자이번에는발걸음소리가들렸다.그리고다시금문이닫히는소리.쾅,쾅,쾅.저벅,저벅,저벅.쾅,쾅,쾅.저벅,저벅,저벅.천둥이울리는것같았다.지독한냄새,부패의냄새가방안을뒤덮었다.이마치는극심한공포로얼어붙었다.침대맡에누군가서있는것이보였다.길고뾰족한얼굴을가진그것,축늘어진몸으로젖은옷을질질끌고다니는그것,손발이썩어흘러내리는그것.그것이웃고있었다.(33~34쪽)

하지만이마치는저주가깃든듯한그집을포기할수없다.어려서실종된아들이돌아오기를기다리며수십년째지켜온집이기때문이다.최근재건축을마친그집은그녀의사회적지위에걸맞은고급아파트이기도하다.이마치는거액을들여서라도일상을되찾으려뇌의학클리닉을찾아가고,그녀의기억을기반으로맞춤제작된VR을활용한치료를권유받는다.VR을제작하기위해클리닉을수차례방문한끝에마지막미팅을앞둔그날,이마치는60세가되었고몸무게가전날과달라져버렸으며클리닉에서는미팅이취소되는등어딘가낯선하루를보낸다.아파트로돌아온이마치는연이어악몽같은일을맞닥뜨린다.엘리베이터가전부고장나꼭대기층인60층에있는자신의집까지계단으로걸어올라갈수밖에없게된것이다.

그때그녀는삶의큰가르침을하나얻었다.불가능하리만치먼길을갈때는절대로목표지점을바라봐서는안된다는사실이었다.앞을봐서도,위를봐서도안된다.시선은아래로,발끝만보면서걷는것이다.(…)한없이느리게올라마침내30층을통과했을때어떤여자아이가계단을뛰어내려가면서그녀의어깨를살짝쳤다.교복을입은긴머리의여자애였다.이마치는이상한기시감에여자애를흘긋바라보다가,다시계단을올랐다.숨이가빠고통스러운느낌이밀려왔다가또밀려가기를반복했다.마침내60층에도착했을때,다리에는아무감각이느껴지지않았다.(72~73쪽)

평소와같은듯미묘하게이질감이느껴지는아파트건물을한층씩힘겹게오른끝에거짓말처럼60층에다다른이마치는내친김에찾은옥상에서43층에산다는이웃여자를만난다.그런데이웃여자와대화를나누던어느순간이마치는온몸이하얗게굳어버린다.43층여자는다름아닌마흔세살의이마치자신이었던것이다.
이것은꿈일까,환각일까,아니면스스로도의식하지못한채진입해버린가상현실일까.만약가상현실이라면,대체언제부터그안에들어와있었던것일까.방황하던이마치는우연히아파트의관리인‘노아’와마주친다.그녀는이건물의비밀을알고있는듯한노아와함께아파트를처음부터끝까지살펴보기시작한다.

삶은어디까지적나라하게그려질수있는가
한인간의고유한재능과가치를이루는희로애락과고통의파노라마

이마치는점차아파트의구조를파악해나간다.한층을한세대가차지하고,현관문을열면그안에는층수에해당하는나이의이마치가당시거주했던집에살고있다.아들을잃고비통에빠진이마치,커리어를포기하고원치않는임신과출산을반복하던이마치,갓데뷔해천부적인연기능력을인정받던이마치,모친에게학대당하던이마치,그리고갓태어난이마치……현재의이마치는과거의이마치들을만나그들에게전하고싶었던마음을꺼내놓는다.또한충분히사랑해주지못했던자녀에게애정을표현하고,증오스러웠던어머니에게복수하기도하면서,이마치는전에없던충만함을느낀다.그러나이마치자신조차모르고있던과거의비극적진실이서서히드러나면서,이마치의전생애가담긴세트장은무너질위기에처한다.
이마치가되찾아가는과거는이마치의기억과완벽히일치하지않는다.때로는그녀곁의누군가가이마치의삶을거짓으로꾸미기도하고,때로는이마치가스스로현실을받아들일수있는형태로왜곡하기도한다.그렇다면우리가인생이라여기곤하는기나긴기억을얼마나신뢰할수있는것일까.삶이라는것에실체가있기는할까.정한아는삶이란지나간시간에대한회상이아니라매순간을채우는행위와감정과고통그자체로만감각할수있다고말하는듯하다.그순간순간의고유한경험이합쳐져유일무이한가치를지닌단한명의인간을완성한다고.하지만어떤순간도현재성을잃고빛바랜후에는더이상삶을휘두르지못한다고.그러니과거에더는얽매이지말라고.현재의강렬한기쁨과슬픔,즐거움과고통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흘려보내다보면우리는완성될거라고.그렇게정한아가소설속인물의입을빌려건네는말앞에서삶의무게를짊어진우리의어깨는한결가뿐해진다.“그냥놔버려요.당신이가진모든기억.당신이인생이라고붙들고있는것들.별대단치않은실패들,성공들,전부다요.”(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