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홍정문 시인은 삶을 극복하고 “찬란한 하늘을/ 끝없이 날고 싶다”(「골다공증」). 끝없이 날아 ‘환한 숲’에 도달하고 싶은 것이다. 이때, 환한 숲으로 가는 주체는 자연을 닮은 모습이어야 한다.
시를 통해 사색하고, 시를 통해 아름다워지는 게 시인이라지만, 홍정문 시인에게 시 쓰기란 자기수양과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인지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갈고닦는 것,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 무엇보다도 소중한 꿈이 아닐 수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맑고 높은 시를 써야겠다. 지금까지 절차탁마切磋琢磨해왔듯 구부러지지 않는 시인의 길을 견지하기 바라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안현심, 시인, 문학평론가
홍정문 시인의 시작품은 ‘자전거’를 소재로 삼아 쓴 것이 많다. 시인은 휴일이나 여분의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모양이다. 시인이 라이딩을 즐기면 자전거가 소재로써 자주 차용될 뿐 아니라 자전거에 관한 철학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짙은 안개가 휘감은
강가 오솔길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헤드라이트는 안개를 가르며
좁은 길을 밝혔고
나는 환한 길을 주시했다
안개가 내 몸을
가로지를 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 「환한 길」 전문
시 「환한 길」은 매우 짧지만 주제를 전달하는 이미지가 명징하다. 제1연에서는 어떤 감정도 개입하지 않은 채 “짙은 안개가 휘감은/ 강가 오솔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 화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제2연에서는 헤드라이트가 “안개를 가르며/ 좁은 길을 밝”힐 때 “나는 환한 길을 주시”하며 앞으로 달릴 뿐이다.
제3연의 “안개가 내 몸을/ 가로지를 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라는 형상화는 현학적이지 않고 단순ㆍ담백하지만 작품의 품격을 높여주면서 주제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환한 길’ 혹은 ‘환한 숲’은 그처럼 오롯이 달리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이상향인 것이다. 여기서 ‘안개’는 ‘환한 숲’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 등 방해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로써 시 「환한 길」은 홍정문 시인의 시세계를 대변하면서 이번 시집의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이라고 언급할 수 있겠다.
망망대해에 빠진
칠흑의 숲
반바지 입고 쐐기풀 헤치며 한참을 질주했다
촘촘히 짜인 그물망이
상처로 흥건한 발목을 핥는다
… (중략) …
눈동자는 샛별처럼 빛났다
저 눈부신 숲까지 가야 하므로
- 「아침빛 눈부신」 부분
작품 「아침빛 눈부신」도 앞에서 살펴본 「환한 길」과 동일한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 시인이 ‘빛’을 향해 나아갈 때는 방해요소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망망대해에 빠진/ 칠흑의 숲”이 그것이다. 어둠이 망망대해에 빠졌다면 그 깊이와 넓이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처럼 어둔 숲을 화자는 반바지 차림으로 질주한다.
“촘촘히 짜인 그물망”은 가시덤불 엉클어진 숲을 은유하며, 그로 인해 맨 종아리와 발목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한편, ‘촘촘히 짜인 그물망’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세상으로 환기할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숲을 달리는 일이기에 그 틈바구니에서 상처받기도 할 것이다.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화자의 “눈동자는 샛별처럼 빛”나는데, 그것은 “저 눈부신 숲까지 가야 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중세의 ‘영웅담’ 혹은 ‘바리데기’ 서사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악마 혹은 괴물이 방해하는 고난을 뚫고 목표한 바를 얻으면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 구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눈부신 숲’은 앞의 작품에서 추구한 ‘환한 숲’과 동일한 공간이며, 고난을 이기고 나아가야 할 목표 즉 이상향이다.
너럭바위를 이마에 올리고
맑은 조약돌은 눈망울에 심었다
둥근 돌 하나 입술로 눕히고
볼엔 비바람을 견딘 호피석, 머리엔 눈 덮인 억새를 얹었다
무너지면 다시 쌓고 세우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바람, 어루만지는 햇살
나는
돌 속 깊이 스며들었다
- 「얼굴을 쌓다」 전문
시 「얼굴을 쌓다」의 표현 양상은 앞의 두 작품과 다소 다르지만, 삶의 여정을 통해 원하는 형상을 지어가려는 자세는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자연물을 닮아가고 싶은 소망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 방법으로는 “너럭바위를 이마에 올리고/ 맑은 조약돌”을 “눈망울에 심”는 것이다. 너럭바위는 넓고 반반한 바위로서, 넓고 반듯한 이마를 갖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약돌 같은 눈망울을 지니게 된다면 또렷한 이미지를 투사하며 자신감 있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둥근 돌”로 입술을 짓고, “볼엔 비바람을 견딘 호피석, 머리엔 눈 덮인 억새를 얹”기를 소망한다. 둥글고 도톰한 입술과 비바람을 견디느라 호피석처럼 거뭇거뭇해진 볼, 머리는 억새처럼 하얗더라도 자연을 닮은 모습은 화자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것이다. 이렇게 세운 형상이 “무너지면 다시 쌓”기를 반복하며 “돌 속 깊이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자연과의 합일이다. 자연물 닮은 형상이 되어 자연 속에 스며들고 싶은 소망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자연물과 닮은 경지는 앞의 작품에서의 환한 숲, 환한 길과도 동일한 지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환한 길 혹은 환한 숲은 자연과 이질적인 모습을 품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비슷한 주제를 지닌 작품으로 「건빵을 씹으며」가 있다. 건빵을 씹으며 등산하다가 건빵 가루가 목에 걸려 헛기침하면서도 “팍팍한 건빵의 턱을 끝까지 씹어 넘기로 했다”는 형상화가 있는데, 여기서 ‘건빵의 턱’은 삶의 여정에서 ‘고개’를 은유하며,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목표한 곳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시를 통해 사색하고, 시를 통해 아름다워지는 게 시인이라지만, 홍정문 시인에게 시 쓰기란 자기수양과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인지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갈고닦는 것,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 무엇보다도 소중한 꿈이 아닐 수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맑고 높은 시를 써야겠다. 지금까지 절차탁마切磋琢磨해왔듯 구부러지지 않는 시인의 길을 견지하기 바라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안현심, 시인, 문학평론가
홍정문 시인의 시작품은 ‘자전거’를 소재로 삼아 쓴 것이 많다. 시인은 휴일이나 여분의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모양이다. 시인이 라이딩을 즐기면 자전거가 소재로써 자주 차용될 뿐 아니라 자전거에 관한 철학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짙은 안개가 휘감은
강가 오솔길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헤드라이트는 안개를 가르며
좁은 길을 밝혔고
나는 환한 길을 주시했다
안개가 내 몸을
가로지를 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 「환한 길」 전문
시 「환한 길」은 매우 짧지만 주제를 전달하는 이미지가 명징하다. 제1연에서는 어떤 감정도 개입하지 않은 채 “짙은 안개가 휘감은/ 강가 오솔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 화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제2연에서는 헤드라이트가 “안개를 가르며/ 좁은 길을 밝”힐 때 “나는 환한 길을 주시”하며 앞으로 달릴 뿐이다.
제3연의 “안개가 내 몸을/ 가로지를 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라는 형상화는 현학적이지 않고 단순ㆍ담백하지만 작품의 품격을 높여주면서 주제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환한 길’ 혹은 ‘환한 숲’은 그처럼 오롯이 달리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이상향인 것이다. 여기서 ‘안개’는 ‘환한 숲’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 등 방해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로써 시 「환한 길」은 홍정문 시인의 시세계를 대변하면서 이번 시집의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이라고 언급할 수 있겠다.
망망대해에 빠진
칠흑의 숲
반바지 입고 쐐기풀 헤치며 한참을 질주했다
촘촘히 짜인 그물망이
상처로 흥건한 발목을 핥는다
… (중략) …
눈동자는 샛별처럼 빛났다
저 눈부신 숲까지 가야 하므로
- 「아침빛 눈부신」 부분
작품 「아침빛 눈부신」도 앞에서 살펴본 「환한 길」과 동일한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 시인이 ‘빛’을 향해 나아갈 때는 방해요소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망망대해에 빠진/ 칠흑의 숲”이 그것이다. 어둠이 망망대해에 빠졌다면 그 깊이와 넓이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처럼 어둔 숲을 화자는 반바지 차림으로 질주한다.
“촘촘히 짜인 그물망”은 가시덤불 엉클어진 숲을 은유하며, 그로 인해 맨 종아리와 발목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한편, ‘촘촘히 짜인 그물망’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세상으로 환기할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숲을 달리는 일이기에 그 틈바구니에서 상처받기도 할 것이다.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화자의 “눈동자는 샛별처럼 빛”나는데, 그것은 “저 눈부신 숲까지 가야 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중세의 ‘영웅담’ 혹은 ‘바리데기’ 서사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악마 혹은 괴물이 방해하는 고난을 뚫고 목표한 바를 얻으면서 영웅이 되는 이야기 구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눈부신 숲’은 앞의 작품에서 추구한 ‘환한 숲’과 동일한 공간이며, 고난을 이기고 나아가야 할 목표 즉 이상향이다.
너럭바위를 이마에 올리고
맑은 조약돌은 눈망울에 심었다
둥근 돌 하나 입술로 눕히고
볼엔 비바람을 견딘 호피석, 머리엔 눈 덮인 억새를 얹었다
무너지면 다시 쌓고 세우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바람, 어루만지는 햇살
나는
돌 속 깊이 스며들었다
- 「얼굴을 쌓다」 전문
시 「얼굴을 쌓다」의 표현 양상은 앞의 두 작품과 다소 다르지만, 삶의 여정을 통해 원하는 형상을 지어가려는 자세는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자연물을 닮아가고 싶은 소망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 방법으로는 “너럭바위를 이마에 올리고/ 맑은 조약돌”을 “눈망울에 심”는 것이다. 너럭바위는 넓고 반반한 바위로서, 넓고 반듯한 이마를 갖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약돌 같은 눈망울을 지니게 된다면 또렷한 이미지를 투사하며 자신감 있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둥근 돌”로 입술을 짓고, “볼엔 비바람을 견딘 호피석, 머리엔 눈 덮인 억새를 얹”기를 소망한다. 둥글고 도톰한 입술과 비바람을 견디느라 호피석처럼 거뭇거뭇해진 볼, 머리는 억새처럼 하얗더라도 자연을 닮은 모습은 화자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것이다. 이렇게 세운 형상이 “무너지면 다시 쌓”기를 반복하며 “돌 속 깊이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자연과의 합일이다. 자연물 닮은 형상이 되어 자연 속에 스며들고 싶은 소망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자연물과 닮은 경지는 앞의 작품에서의 환한 숲, 환한 길과도 동일한 지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환한 길 혹은 환한 숲은 자연과 이질적인 모습을 품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비슷한 주제를 지닌 작품으로 「건빵을 씹으며」가 있다. 건빵을 씹으며 등산하다가 건빵 가루가 목에 걸려 헛기침하면서도 “팍팍한 건빵의 턱을 끝까지 씹어 넘기로 했다”는 형상화가 있는데, 여기서 ‘건빵의 턱’은 삶의 여정에서 ‘고개’를 은유하며,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목표한 곳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저 환한 숲 (홍정문 시집)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