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14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14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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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외집보
산곡시외집보권제삼(山谷詩外集補卷第三)
1.어부.2수【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漁父.二首【熙寧元年葉縣作】)
2.옛어부(古漁父)
3.양도인의묵헌에쓰다【숭녕2년융주에서지은작품이다】(題楊道人黙軒【崇寧二年戎州作】)
54.기복의운자를써서백씨의사당에쓰다【치평3년에지은작품이다】(用幾復韻,題伯氏思堂【治平三年作】)
5.기복에게주면서헤어지다(贈別幾復)
6.조령이술을실고방문했기에【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趙令許載酒見【熙寧元年葉縣作】)
7.조령에게화답하다.앞작품은운자와같다(和答趙令.同前韻)
8.조령의답시에서기녀를데리고찾아오겠다고약속했기에(趙令答詩約携山妓見訪)
9.조령이술을실고온것에사례하다【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謝趙令載酒【熙寧元年葉縣作】)
10.매화를감상한작품에차운하다(次韻賞梅)
11.차운하여이단숙에게답하다【원풍3년태화에서지은작품이다】(次韻答李端叔【元豊三年太和作】)
12.봄이다가오기에.칠언절구4수【희녕2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春近.四絶句【熙寧二年葉縣作】)
13.장난삼아보진각에쓰다【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戲題葆眞閣【熙寧元年葉縣作】)
14.혜남선사에게장난삼아주다【혜남은곧강서의늙은중으로,적취암청은이라부르는데,또한분녕에있었다】(戲贈惠南禪師【惠南卽江西老禪,號積翠庵淸隱,亦在分寧】)
15.갓생산된차를남선사에게주다【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寄新茶與南禪師【熙寧元年葉縣作】)
16.『진사』를읽다【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讀晉史【熙寧元年葉縣作】)
17.책을읽고기복에게올리다.2수【치평3년에지은작품이다】(讀書呈幾復.二首【治平三年作】)
18.물길때문에막혀,장난삼아기복에게올리다.2수(阻水戲呈幾復.二首)
19.열도에게주며헤어지다【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寄別說道【熙寧三年葉縣作】)
20.허씨의설문해자를익히고여러아우들에게주다【치평3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學許氏說文贈諸弟【治平三年北京作】)
21.이대부를불러술을마시다【원우3년비서성에서지은작품이다】(李大夫招飲【元祐三年秘書省作】)
22.남강자리에서유,이두군에게주다【원풍3년관직이바뀐태화에서지은작품이다】(南康席上贈劉李二君【元豐三年改官太和作】)
23.어부에게묻다【희녕원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問漁父【熙寧元年葉縣作】)
24.광산가는길에【치평4년섭현에이르러지은작품이다】(光山道中【治平四年赴葉縣作】)
25.방성을지나다가7대숙조가옛날에쓴작품을찾다【원풍원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過方城,尋七叔祖舊題【元年北京作】)
26.일찍길을나서며【희녕원년섭현에이르러지은작품이다】(早行【熙寧元年赴葉縣作】)
27.신식에서회수를건너다(新息渡淮)
28.비로소회산이바라다보이다(初望淮山)
29.광혜사에서자다【원풍7년에덕평에이르러지은작품이다】(宿廣惠寺【元豐七年赴德平作】)
30.비로소섭현에이르다【희녕원년에지은작품이다】(初至葉縣【熙寧元年作】)
31.관화15수【서문을덧붙이다.희녕원년태평주에서파직된후에,형주로부터돌아와집에거처하면서쓴작품이다】(觀化十五首【幷序.熙寧元年罷太平州後,自荊州居家作】)
32.왕세필에게화답하다【희녕8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和答王世弼【熙寧八年北京作】)
33.주도인이세상을떠나다【원풍6년태화에서지은작품이다】(朱道人下世【元豐六年太和作】)
34.진씨의정원에서대나무를읊조리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陳氏園詠竹【熙寧四年葉縣作】)
35.배중모가빗속에석당에서돌아오기에화답하다【희녕2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和裴仲謀雨中自石塘歸【熙寧二年葉縣作】)
36.배위가마안산을지나면서지은작품에차운하다(次韻裴尉過馬鞍山)
37.소재옹이초서로쓴벽뒤에쓰다【서문을덧붙이다】(題蘇才翁草書壁後【幷序】)
38.아내의죽음을애도하다【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哀逝【熙寧三年葉縣作】)
39.순보부부를맞이하다【공의누이는진소에게시집갔는데,순보가진소의자이다】(迎醇甫夫婦【公之妹適陳塑,醇甫其字也】)
40.하수의배위에서저물녘술을마시며진열도에게올리다(河舟晩飲呈陳說道)
41.임군이관사에서가을비를읊은작품에차운하다(次韻任君官舍秋雨)
42.번후묘에쓰다.2수(題樊侯廟.二首)
43.남사에서왕염이이름을쓴곳에쓰다【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題南寺王髯題名處【熙寧三年葉縣作】)
44.임중미가헤어지며보내온작품에화답하다【원풍5년태화에서지은작품이다】(和答任仲微贈別【元豐五年太和作】)
45.중모가밤에느낌이있어지은작품에화창하다【희녕2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和仲謀夜中有感【熙寧二年葉縣作】)
46.자다가일어나다.2수【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당시포성(蒲城)에도적이들끓어군(郡)이군교(軍校)의독촉을받고있었다】(睡起.二首【熙寧三年葉縣作.時蒲城佚盜,郡以校見督】)
47.수양의일뒤에쓰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書睢陽事後【熙寧四年葉縣作】)
48.맘껏써서중모에게올리다【희녕2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漫書呈仲謀【熙寧二年葉縣作】)
49.남선사에오르자배중모가생각나서(登南禪寺,懷裴仲謀)
50.임중미에게차운하여답하다【원풍5년태화에서지은작품이다】(次韻答任仲微【元豐五年太和作】)
51.여름날백형의꿈을꾸고나서강남으로부치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夏日,夢伯兄,寄江南【熙寧四年葉縣作】)
52.동손을만나지못하고곤양을지나다【곤양은섭협에속해있는데,광무제가왕망을격파했던곳이다】(同孫不愚,過昆陽【昆陽正屬葉縣,卽光武破王莽之地】)
53.돈이주부에게부치다.이때에고을의경계에서수부부가석당하를파고있었다(寄頓二主簿.時在縣界,首部夫鑿石塘河)
54.포원례의「병기」라는작품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蒲元禮病起)
55.봄제사를섭공묘와쌍부관에서나누어지내다【섭공묘와쌍부관은모두섭현에있다】(春祀分得葉公廟雙鳬觀【廟觀皆在葉縣】)
56.술마신손님을해정하자고장난삼아부르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戲招飲客解酲【熙寧四年葉縣作】)
57.진씨여제를전송하며석당하에이르다(送陳氏女弟,至石塘河)
58.장난삼아돈이주부에게주다【돈이주부가술을마련하지않았었다】(戱贈頓二主簿【不置酒】)
59.손불우가개원고사에의거해봄난간으로옮기길청하자,이로인해답을보내다(孫不愚引開元故事,請爲移春檻,因而贈答)
60.진열도가곤궁하기에채소한움큼을보내다【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陳說道約日送菜把【熙寧三年葉縣作】)
61.공상보가보내온시에답하며화창하다(答和孔常父見寄)
62.백씨의시에차운하여안석당의연화주를보내온것에사례하다(次韻伯氏,謝安石塘蓮花酒)
63.쌍부관에쓰다(題雙鳬觀)
64.진계장에게대나무통을구해물을부엌으로끌어들이다(從陳季張,求竹竿,引水入廚)
65.왕명복과진계장에게올리다(呈王明復陳季張)
66.새벽에임대부조행을따라석교를지나다가수보에게부치다【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曉從任大夫祖行,過石橋,寄粹甫【熙寧三年葉縣作】)
67.남선의매화아래에서술을마시다가장난삼아쓰다【희녕3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飲南禪梅下,戲題【熙寧三年葉縣作】)
68.소지재의「장유민과현백령균전」이라는작품에차운하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次韻邵之才將流民過懸帛嶺均田【熙寧四年葉縣作】)
69.진계장에게촉부용이있었는데,술을잘마시는손님이찾아와꽃이피자마자곧바로꺾어갔다.이에시를지어희롱하다(陳季張有蜀芙蓉,長飲客至,開輒翦去,作詩戲之)
70.거듭진계장에게거상화를보내다.2수(再贈陳季張拒霜花.二首)
71.두자경이서회로돌아가기에전송하다(送杜子卿歸西淮)
72.눈속에연일길을가다가장난삼아써서동료에게편지처럼보내다(雪中連日行役,戲書簡同僚)
73.이녀에서장자에게부치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離汝寄張子【熙寧四年葉縣作】)
74.원례의「춘회」10수에차운하다(次韻元禮春懷.十首)
75.거듭원례의「춘회」10수에화답하다【서문을덧붙인다】(再和元禮春懷十首【幷序】)
76.차운하여중모의「야화당사」라는작품에삼가화답하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次韻奉和仲謨夜話唐史【熙寧四年葉縣作】)
77.무양의서사에서예전글을썼던곳에쓰다【서문을덧붙이다.희녕2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書舞陽西寺舊題處【幷序.熙寧二年葉縣作】)
78.이씨의정원에서술을마시다.3수【원풍원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飲李氏園.三首【元豐元年北京作】)
79.황산에서자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宿黃山【熙寧四年葉縣作】)
80.계장의죽림촌에쓰다(題季張竹林村)
81.소지재에게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邵之才)
82.이경에게드리다(呈李卿)
83.6월비를애타게바라다【희녕7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六月閔雨【熙寧七年北京作】)
84.이미비를애타게기다라는시를지었다.그날밤에마침내비가내려,기쁨속에잠을이루지못했다.일어나비가내림을기뻐하는시를지었다(旣作閔雨詩.是夕遂澍雨,夜中喜不能寐,起作喜雨詩)
85.공익과차를맛보다【원풍원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公益嘗茶【元豐元年北京作】)
86.내가이미섭현의벼슬에서옮겨져마침내낙수의물가를지나다가며칠동안술에취해노닐었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予旣不得葉,遂過洛濱,醉遊累日【熙寧四年葉縣作】)
87.잡시【원풍2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雜詩【元豐二年北京作】)
88.조촌가는길에【원풍2년북경에서지은작품이다】(曹村道中【元豐二年北京作】)
89.멋대로써서기복에게드리다.3수【치평3년에지은작품이다】(漫書呈幾復.三首【治平三年作】)
90.기복을머물게하며술을마시다【치평3년에지은작품이다】(留幾復飲【治平三年作】)
91.거듭기복을머물게하다(再留幾復)
92.진정자가여지를보내주었기에사례하다.3수【원풍4년태화에서지은작품이다】(謝陳正字送荔枝.三首【元豐四年太和作】)

산곡시외집보권제사(山谷詩外集補卷第四)
1.용문의반수재가보내온작품에답하다【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答龍門潘秀才見寄【熙寧四年葉縣作】)
2.장중모에게차운하여부치다(寄張仲謀次韻)
3.나그네가담부에서왔는데명인사의중이라고했으며,정소당을짓고서는내게작품을요구했다(客自潭府來,稱明因寺僧,作靜照堂,求予作)
4.잡시.7수【희녕4년섭현에서지은작품이다】(雜詩.七首【熙寧四年葉縣作】)
5.한삼가에서술을마시고취한이후에야비로소밤비가내린줄알았다(飲韓三家,醉後始知夜雨)
6.장중모가강에서잡은잉어를보냈는데아직오지않았기에장난삼아시를지어재촉하다(張仲謨許送河鯉未至,戲督以詩)
7.장중모의「범주」라는시에화답하다(和答張仲謨泛舟之詩)
8.오이를먹다생각이일어(食瓜有感)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