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에서기억전쟁으로
우리는과거를어떻게기억할것인가
오늘날우리는과거비극의가해자와공범자가희생자로둔갑하고,누가더큰희생자인지를놓고희생자와희생자,희생자와가해자가경쟁하는웃지못할소극을마주하고있다.가해자와희생자,희생자와방관자,희생자와희생자사이에서,그리고과거에연루된전후세대사이에서복잡다단한기억전쟁이벌어지고있는것이다.‘우리는과거를어떻게기억해야하는가?그리고비극의역사에대한책임은누가지어야하는가?’
이책은그동안트랜스내셔널히스토리의관점에서탈민족담론을주도하며한국지식사회를흔들어온역사가임지현교수가‘기억활동가’로변신을꾀하며내놓은것이다.그는‘기억연구(MemoryStudies)’를통해홀로코스트,식민주의제노사이드,일본군‘위안부'문제등을둘러싸고어떠한기억전쟁이일어나고있는지를살피며,‘기억’과‘책임’에관한근본적인질문을던진다.또한이책을통해한국과동아시아를넘어전세계의기억문화를되돌아보고,민족과국경에갇힌기억을넘어전지구적기억의연대로나아갈길을찾는공론의장을마련하고자한다.
1."역사가과거와현재의대화라면,기억은죽은자와산자의대화이다"
-역사연구의새로운지평으로서의‘기억연구(MemoryStudies)’
‘기억연구’,‘기억전쟁’이라는말은우리에게아직생소하다.역사학방법론이문서와기록을근거로산자가죽은자를심문하고재단하는데치우쳐있다면,기억연구는산자가죽은자의목소리에귀기울이고그에응답해죽은자의억울함을산자들에게전해주는영매역할을자임한다.문서와기록이중심이된공식기억보다개개인의경험을바탕으로한사적이고친밀한영역에있는풀뿌리기억에주목하는것이다.이로써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기억문화와실증의이름으로진짜와가짜,가해자와희생자로나누는이분법에서벗어나역사를볼수있게된다.
그렇다면기억연구에서’증언‘은왜중요한가?기억연구는기존의실증주의적역사방법론에회의를품고이를성찰하는데서시작된다.대체로힘있는가해자가역사적서사와관련문서를독점하고있는데비해,힘없는풀뿌리희생자가가진것은경험과목소리,즉기억과증언뿐이다.그런데증언은불완전하고감정적이며때로는부정확해서,홀로코스트부정론자들과일본군‘위안부’나난징대학살을부정하는일본우익들에의해‘실증’의이름으로무시되거나그가치가훼손되기도한다.하지만희생자들의증언은문서와기록에서는찾아볼수없는‘진정성’을품고있다.저자는“기억연구는타인의아픔에‘공감’할줄아는역사가들만이할수있는일”이라고말한다.실증주의적역사에비추어기억연구에는다른무엇보다윤리적감수성이필요하다는의미이다.
1961년에는공교롭게도이스라엘에서아돌프아이히만(AdolfEichmann)재판이열렸다.재판을지켜본연구자들은홀로코스트생존자들의증언에주목했고,이를계기로홀로코스트연구는문서자료에서생존자들의증언으로서서히중심이이동하기시작했다.……기억의관점에서본다면,아이히만재판은홀로코스트생존자들을증언에대한두려움에서해방시켰다는데의의가있다.아무도자신들의이야기에관심을갖지않거나믿어주지않을것이라는두려움말이다.……이는훗날역사연구에‘감정의전회(emotionalturn)’라는패러다임적전환을가져오는계기가되기도했다.감정의전회는홀로코스트생존자들의증언을연구하는과정에서기존의실증주의적방법론에회의를품고이를성찰하는데서출발했다.문서만이과거를입증할수있는유일한증거라는실증주의의폭력에서증인들을보호할장치들을어떻게마련할것인가하는고민이그밑에깔려있었다.―〈아우슈비츠의아포리아〉중에서
심리학자인도리라우브(DoriLaub)는……‘지적기억’대‘깊은기억’이라는대조법을통해‘사실’과‘진실’에대한아주흥미로운통찰을제시한다.사건을기록한문서보다부정확한증언이더진정한과거를말해줄때가있다는것이다.예컨대1944년10월아우슈비츠수감자들이폭동을일으켰을당시“굴뚝네개가폭파됐다”는어느생존자의증언은역사가들에게거짓이라고무시되어왔다.이증언은폭파현장에굴뚝이하나뿐이었던사실과분명어긋나는것이었다.그런데라우브는오히려사실과어긋나기때문에이증언이더진정성이있다는신선한해석을내놓았다.라우브에따르면도저히일어날것같지않던일이눈앞에서벌어질때,인간은그것을과장되게기억하는경향이있다.굴뚝하나가사실에부합하는‘지적기억’의영역이라면,사실과모순되는굴뚝네개는‘깊은기억’의영역인데,아우슈비츠생존자들처럼트라우마를겪은사람들의기억은대개‘깊은기억’에속한다.아우슈비츠폭동을목격한생존자의증언은사실과부합되기때문이아니라오히려어긋나기때문에더진정성이있다는것이다.‘사실’과‘진실’이일치하지않는이재현의역설은증언과문서자료의역사적진정성에관해많은시사점을던져준다.―〈아우슈비츠의아포리아〉중에서
2.제대로된기억문화를위해무엇을질문할것인가?
―전지구적기억의연대를위하여
누가더큰희생을치렀는지경쟁하는희생자민족주의와나치의공범자가피해자로둔갑하거나일제침략의역사위에히로시마?나가사키원폭피해의역사를덮어쓰는등기억의정치가난무한다.그러나다른한편에서는홀로코스트생존자와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만나서로의상처를쓰다듬고,터키계독일인들이아우슈비츠에서아르메니아학살을떠올리고,미국의흑인민권운동가가파괴된바르샤바게토에서흑인노예들의아우성을듣는등뜻밖의장소에서생면부지의기억들이만나소통하고연대한다.이렇게민족과국경에갇혀있던기억들이서로만나얽히고경합하고연대하는‘기억의지구화’가이루어지고있는오늘날,제대로된기억문화를위해무엇을물어야할까?
이책에서는‘가해자가어떻게희생자로둔갑하는가?’,‘민족주의는어떻게공범자를희생자로만드는가?’,‘전사자숭배는누구를위한것인가?’,‘선량한학살자는있을수있는가?’,‘죽음을무릅쓰고탈영한자들은죽기살기로싸운자들보다비겁한가?’,‘국적이나민족을기준으로가해자와희생자를나누는것은정당한가?’같은날선질문들을던지며전후기억의문제를직시한다.
이러한성찰적질문이야말로민족과국경을넘는기억의터를만들고,전지구적기억의연대를이끌어내는힘이다.이로써전후역사를풀뿌리기억을중심으로재구성하고,희생자의억울함을풀고,역사적비극을되풀이하지않을수있을것이다.
2014년10월24일,오스트리아의수도빈에서색다른비(碑)의제막식이열렸다.……이비는특이하게도나치의군사재판에희생된오스트리아인탈영병을위한기념비였다.……전후오랫동안오스트리아인들은자신들을‘히틀러의첫번째희생자’로기억해왔다.그러나이기억은조작된것이다.통계를보면적어도인구비율상으로는오스트리아인들이독일인들보다도더적극적인히틀러협력자였다는사실을알수있기때문이다.……흥미로운것은오스트리아인들이스스로를‘히틀러의첫번째희생자’라고규정하면서도히틀러의군대에복무한자국병사들을의무를다했다거나심지어영웅적이었다고까지여겨왔다는점이다.반면히틀러의군대에서탈영한병사들은‘전우를버린배반자’로인식해왔다.그런오스트리아가수도의중심부에탈영병을기리는비를세웠다는것은어쨌거나사회적기억에변화가있었다는징표이다.―〈전사자추모비와탈영병기념비〉중에서
폴란드인은때때로소극적방관자를넘어그이상으로행동했다.나치점령기폴란드에서는숨어있는유대인을밀고하거나사라진유대인이웃의재산을탐하는일이자주일어났고,심지어유대인을사냥하듯잡으러다니는사람들(일명슈말초브니치szmalcownicy)도있었다.더욱이일반범죄자를대상으로거리의치안을담당하는폴란드인‘청색경찰’의존재는폴란드가개인의차원을넘어조직적으로나치에협력했음을의미한다.그러나이렇게일부나마폴란드인이홀로코스트의공범자였다는사실은희생자민족이라는폴란드의역사적이미지에재앙이나마찬가지였다.파시즘에영웅적으로맞서싸운사회주의전사들의나라라는폴란드의국가적이미지도크게흔들릴것이었다.이들에게홀로코스트에협력한과거는자기비판적성찰의대상이아니라침묵하고말소해야할기억이었다.―〈공범자가된희생자〉중에서
히틀러와나치수뇌들에게홀로코스트의책임을묻는것은매우중요하다.그러나그들에게만책임을전가한다면곤란하다.동유럽의학살현장에서실제로유대인을죽인것은나치수뇌부의펜이나명령이아니라평범한독일병사의소총이었다.구조가사람을학살할수는없다.오직사람만이사람을학살할수있다.나치의학살기계도현장에서그것을효율적으로운영하는사람이없다면작동할수없었다.그러나학살명령을내린권력자뿐만아니라학살기계를작동시킨아주평범한실행자에게도책임을묻는다고해서문제가다해결되는것은아니다.그들을‘평범한독일인’으로볼것인가,아니면‘평범한사람’으로볼것인가의문제가여전히남는다.……나는(나치의)‘101예비경찰대대’의평범한아저씨들이유제푸프에서저지른유대인학살과그에얽힌기억을힘들게돌아보는내내광주를생각했다.
―〈1942년유제푸프와1980년광주〉중에서
2013년7월30일,미국에거주하는한인기억활동가들이미국최초로캘리포니아주글렌데일시립도서관앞공원에‘평화의소녀상’을세웠다.……왜하필글렌데일이었는지물어야한다.이는해외에서가장큰아르메니아인공동체가글렌데일에있다는사실과무관하지않을것이다.……아마도아르메니아제노사이드에대한기억이글렌데일의아르메니아인들로하여금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고통에예민하게반응하도록만들었을것이다.……일본군‘위안부’의기억이미국의버건카운티와글렌데일에서아르메니아제노사이드나미국노예제,홀로코스트등의기억과만난것은,이기억이민족의기억을넘어서트랜스내셔널한보편기억으로나아가는첫걸음을뗀것이라는점에서주목된다.……일본군‘위안부’,아르메니아제노사이드,미국의노예제,홀로코스트의희생자들이실제역사속에서만난적은없겠지만,생존자들과그자손들은글렌데일의소녀상프로젝트나버건카운티의‘위안부’기림비처럼그아픔을기리는기억속에서만났다.―〈아르메니아제노사이드와일본군‘위안부’〉중에서
2006년11월‘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신고접수된조선인B·C급전범86명가운데83명이‘일본의전쟁책임전가행위에따른피해자’로위원회로부터인정을받음으로써,한국사회의공식기억에서이들은일본제국주의의희생자가되었다.전범으로몰려처벌받은조선인군무원들을단지조선인이라는이유만으로일본제국주의의희생자로기억하려는한국사회공식기억의논리는자기방어적이다.……개별가해자가민족의이름으로희생자집단에숨어희생자로둔갑하는기억의마술은위험한속임수다.식민지피지배민족혹은피점령국가의일원이었다는이유로개인의반인도적범죄행위에면죄부를줄수는없다..……국적이나민족을기준으로가해자와희생자를나누는기억의코드는위험천만하다.……지원병으로나갔다돌아오면순사나면사무소서기가될수있다는희망으로제국의제도를타고넘으려했던식민지조선의가난한청년들에게‘친일파’딱지를붙이자는게아니다.조선인군무원이든지원병이든개개인의가학행위를따지지않고어쨌든식민지조선인이므로그들도모두피해자였다는주장이문제라는것이다.그들을모두친일행위자로몰거나반대로피해자로뭉뚱그리는양극단은모두풀뿌리기억에대한공식적기억의폭력이다.―〈경계의기억,기억의경계인〉중에서
한국언론이《요코이야기》에과민한반응을보인것은‘일본=가해자’대‘한국=희생자’라는이분법이흔들리는상황에당혹했기때문이아닌가싶다.이책에그려진‘가해자한국인’이라는이미지가‘희생자의식민족주의’의역사적정당성을저해하는데대한불편함도있었을것이다.……한국의희생자의식민족주의가보여준과잉반응은의도치않은결과를낳기도했다.《요코이야기》가‘한국때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