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제국의 도시생활 (황제부터 노비까지, 화려한 제국 시대의 모든 것)

대명제국의 도시생활 (황제부터 노비까지, 화려한 제국 시대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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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도시를 중심으로
대명제국의 일상생활이
베일을 벗다
세밀화처럼 복원된 물질문명의 겉과 속
저자

천바오량

저자:천바오량
저장성사오싱紹興출신으로베이징사범대학역사학과에서학사,석사를마치고싱가포르국립대학에서철학박사학위를받은뒤,싱가포르국립대학중문학과,베이징사범대학역사학과교수를거쳐현재시난대학西南大學역사문화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베이징대학명청사연구센터연구원과중국명사학회,중국사회사학회이사를겸하고있다.중국사회사를전공했으며중국전통사회의구조와계층간생활이어떻게변화했는지연구해왔다.최근에는명대사회변혁을중점적으로연구하고있다.『중국유맹사中國流氓史』『광환시대狂歡時代』『명대사대부의정신세계明代士大夫的精神世界』『명대사회생활사明代社會生活史』『중국의사와회中國的社與會』등의저서가있다.『명대사회생활사』는2004년‘10대사회과학도서’로선정되었다.

역자:이화승
1960년전북전주에서태어나서울고등학교를거쳐1988년타이완국립사범대학교역사학과를졸업했다.같은해역사연구소에입학해중국근대사연구에탁월한성과를이룬리궈치(李國祁)교수에게사회경제사를배웠다.1991년에는석사학위논문〈淸末民初東北民族資本中聯號的硏究〉가타이완교육부의‘중국근·현대사우수논문’으로선정되어1년반동안미국연수기회를얻었다.이때하버드,미시건,프린스턴과테네시대학교에서왕이에지엔(王業鍵),위잉스(余英時),황런위(黃仁宇),하오옌핑,폴코헨(PaulA.Cohen)교수등미국에서활동하는역사학자들과직접대화를나눌수있었다.특히황런위(黃仁宇)에게배운1년은이후학문연구에큰지향점이되었다.왕이에지엔,하오옌핑두교수는석사논문에서논의한금융시스템과상인조직에대해실질적인조언을해주었으며,위잉스교수와황런위교수는사회와상인계층의내면세계에대한철학적인충고로사고범위를넓혀주어향후연구방향에중요한실마리를제공해주었다.
1992년다시타이완으로돌아와박사과정에들어갔다.이때부터는전통체제에서국가의정책과제도의완만한변화속에끊임없이요동치는변화와그속에서중국인들이만들어가는내부동력이무엇인가라는화두에매달리면서자연스럽게상인과상업문화에관심을갖게되었다.1997년경제변혁기인명·청시기상인들의활동을다룬논문<明淸時期中國傳統商人的區域化現象硏究>로박사학위를받았다.귀국후중국의전통경제정책과이에따른사회변화,특히상인의조직화와문화적활동그리고18세기이후중국이세계경제와만나이루어지는일련의상업활동에대해연구하고있다.저서《상인이야기》외에《중국의상업혁명》,《동양과서양,전통과근대를잇는상인매판》,《성세위언》,《중국경제사연구의새로운모색》,《제국의상점》,《장거정평전》,《조총과장부》,《중국과미국,무역과외교전쟁의역사》등역서와다수의논문을발표했다.현재서울디지털대학교중국학과교수로재직하고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서문

제1장도시풍경
거리의풍경
호동(골목)에들어서다
도시사람과시골사람

제2장일상생활
궁정의차림새와민간의차림새
진수성찬과거친음식
황궁의위세,사대부의여운,백성의실용

제3장세밀한예의제도
사교예의
가례:관혼상제

제4장시정민속
명절과의식
인생의즐거움
대중언론:민요
분장하고무대에오르다
여행
무료함을달래다

제5장조정에서강호까지
황제와관료들의심리
황제후손들의일상
태감의일상
사대부들의백태
시정공간의이모저모
강호에살다
부녀자의면면

제6장흔들리는전통
도시의경계선
문화변혁의충격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도시를중심으로
대명제국의일상생활이
베일을벗다

세밀화처럼복원된물질문명의겉과속

얼마전탕웨이주연의「대명풍화」라는중국드라마가인기리에방영되었다.손약미라는여인이아버지의원수를갚는것을포기하고명나라황태손주첨기에게시집을가서그를도와자신의총명하고지혜로운자질과재능을발휘해위기에빠진명왕조를구해내는이야기다.눈길을끄는것중하나는황궁사람들의화려한차림새였다.현대적으로꾸민것도있겠지만사료를기초로되살린명대의의복문화는당시의물질문명이어느정도의세련됨을구가하고있었는지를보여준다.
그간명나라시대의삶을다룬문화사,사회사서적으로는레이황의『1587,아무것도없었던해』,티모시브룩의『쾌락의혼돈』,우런수의『사치의제국』등이번역되어나왔다.이가운데『쾌락의혼돈』이사회의변화를이끈구조적문제에천착하고,『사치의제국』이사대부문인층과상인재력가들의정체성경쟁에중점을두었다면이번에나온『대명제국의일상생활』은‘도시’라는공간을구성하는요소로서다양한계층과민속,의식주,이를구속하는사회체제와일탈,사상의변화와함께나아가는물질문명의양상등을짚어낸책이라할수있다.저자천바오량은『중국유맹사』로일찍이우리독서계에알려진사회사전공자로서명나라의세부를그려내기위해매우광범위한사료를운용했다는점은앞서나온책들에비해압도적인면모라할수있다.

7대대도시의풍속:소주의호고好古취미와개봉의성인용품점까지

이책은크게보면도시를하나의권역으로삼아권역끼리의문화적표현양상을비교하는방식으로쓰였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북경,남경,개봉,소주,항주,광주,양주등이주요도시들이다.소주사람들은옛것을좋아해서골동품들을모방한고서화나각종제기류를만들어냈고책상과침대도특별한기교없이수수하게만들면서고품격을추구해전국의유행을이끌었다.항주풍속은허황되고경망하며각종소문이난무하고사람들이서로의명예를존중하지않기로유명했다.북경은바둑판처럼만든계획도시로많은마차와사람,정월대보름날등록의화려한모습,궁중주변의궁시에서나온진귀한골동품,전국각지에서모여든특산품,후퉁골목에서흘러나오는경쾌한소곡등으로유명했다.남경은호랑이와용의형세를지닌육조六朝의수도였고진회하양쪽천변의건물들과노젓는소리,이름난기생들로유명했다.양주揚州는소금의고장이었다.양주권역으로묶이는휘주상인들은소금장사로큰돈을벌었고,화려한유흥을즐겨서더유명해졌다.이곳문인들은거문고,바둑,서화를즐기는것으로유명했다.개봉은북송시기부터번성한도시로,명대사람들은개봉의‘성인용품상점’에서살수있다던기괴한성인용품이나회춘약등에기억이머물곤했다.

도시문화를이끈두계층:상인과기생

도시는성곽으로둘러싸인공간이다.성안에는의관을정제한사대부,관료로부터악기를두드리며골목을누비는소매상들,소맷자락을펄럭이며흉기를휘두르는무뢰한들,걸칠옷도없어비전원悲田院(수용소)을들락거리는거지들,온몸을금은보화로치장하고요염함을자랑하는미녀와기생들로가득했다.
도시에서가장눈에띄는존재는상인과기생이었다.전통사회에서상인은사·농·공·상중사회적지위가가장낮았다.명대중기이후상인들은사회적지위가점차높아져전국을돌아다니며유명기생집을찾아다니는즐거움에푹빠졌다.
그렇다고명대의상인들이풍족한생활,엄청난재력,일확천금,일시적인쾌락만을추구한것은아니었다.자신의경제적능력을바탕으로여러방법을이용해서사회적지위,가문의명예를높이려고노력했다.왕도곤汪道昆은『태함집太函集』에휘주상인왕汪씨가자식교육과관련해남긴“우리집안은대대로평민이었지만이제유학을배워집안을빛내려하니,앞으로자손들은교육을시키고장사는시키지마라”고한말을수록했다.상인들은돈을버는것에서멈추지않고자손들을과거시험으로정계에진출시켜가문의정치적입지를굳히는데힘을기울였다.동시에다양한문화활동에참여하며사회명사들과교류를맺었다.진계유陳繼儒는『만향당소품晩香堂小品』에서“휘주의돈많은상인들이헛된명성을좇아지식인들과교류를즐겼다”고했는데상인들은더높은수준의정신적만족을위해연극과노래를즐기고책상위나행낭에는항상통속소설류를소지했으며화려한정원을가꾸고골동품과서화로장식하거나스스로능숙하게시문을지어높은문예적수준을내보이기도했다.
가정(1522~1566),융경(1567~1572),만력(1573~1620)연간,상인들의사회적지위에는현저한변화가발생했다.당시문단의거두인왕세정王世貞이휘주출신친구인첨경풍詹景風에게“휘주상인들이소주문인들을보면마치파리떼가양노린내에꼬이듯달려든다”라고비꼬자,첨경풍이“소주문인들도휘주상인들을보면파리떼가양노린내에꼬이듯달려든다”라고답하니왕세정은할말을잃고말았다.스스로인품이고결하다고자부하던왕세정은휘주상인들이경제력을앞세워문화적욕구를채우려한다는것을지적했지만,첨경풍은한수더높게성인임을자처하면서도이익을좇는문인들의배금주의적비열함을간파하고맞받아쳤던것이다.

정덕에서만력에이르는전성기의소비문화

정덕부터만력에이르는100여년동안도시는최고의번성기를구가했다.정덕초년남경의물가는매우낮았다.장작·거위·오리·생선·고기등생활용품가격이저렴해지자,고관대작이나거상가문에서는주지육림의사치를즐겼다.식구가여럿인집에서매일고기를먹어도은2~3전이면충분했다.짐을나르는서민들도하루20~30문을벌었으니,저녁마다술에취해노래를부르고이야기꾼의우스갯소리를들었으며계절이바뀔때마다계절놀이를즐겨태평성대의호사를누렸다.
숭정연간(1628~1644),이자성이병사를일으켜사방이소란스러웠지만소흥紹興사람들은여전히취생몽사에빠져있었다.장대張岱는『장자시비張子詩枇』「우산사녀유춘곡寓山士女游春曲」에서아직도태평성세라는환상속에서쾌락에탐닉하고있는상황을기록했다.“동이트기전,들뜬젊은남녀들을태운유람선은교외우산寓山(산양山陽기씨祁氏명원名園)으로떠났다.아가씨들은옷을곱게차려입고짙은화장에기름기가번뜩였으며경박한젊은이들이아가씨들사이를바쁘게비집고다니며시답잖은농담을건네자아가씨들은볼을빨갛게물들인채,고개를숙여키득거렸다.해가서산으로넘어갈때까지놀다가배에서재촉하는북소리가들리면아쉽게귀갓길에오르곤했다.”
이자성의군대가성을공격하는포성이울려퍼지고나서야북경사람들은깜짝놀라서비로소엄청난시련이다가왔음을깨달았다.
북경이함락됐다는소식이강남에전해지자인심은극도로불안해져어쩔줄을몰랐다.뒤이어여진족팔기병의말굽이산해관을넘어도시의골목골목을유린하기시작했다.

연기처럼사라져버린번화함

갑신과을유(1644~1645)사이왕조가바뀌어사대부들이즐겼던풍족하고화려했던시대는막을내리고곤궁과혼란의구렁텅이시대가시작되었다.남경과항주는쇠락하여가슴아픈이야기들만떠돌았다.과거금릉金陵(남경의옛이름)과항주의호화롭고방탕한생활은흔적도찾을수없고,북경의번화함역시연기처럼사라져버렸다.진회하천변에는잡초만무성하고,생기가득하고여행객이끊이지않던서호는드문드문말이물을먹는황량한곳으로변했다.한때이곳을방문하던여행객들은이제청산에뼈를묻었고,미인들도찾지않아옛정취는감히돌이켜볼수도없었다.
명청변혁기에살았던대부분의사대부에게왕조의교체는아픈기억으로남았다.과거의번성을간직한진회하천변에는아무것도남지않았다.누군가부서진판교옆에서퉁소를불자무너진집터에서할멈이문을열고나와“유망했던젊은장괴관張魁官의퉁소소리아닌가!”라고했다는말이떠돌았다.어렴풋하고아련한기억속에사람은간곳이없고애잔한악기소리만허공을맴돌았다.

기존도덕에대한반발을자신의문화로삼은명대도시

청나라초,명나라유민들은감상주의적인문학작품들을쏟아냈다.여회余懷는『판교잡기板橋雜記』에서과거의생활을그리워하며슬픈정서로진회하의흥망사를기록했다.모양冒襄은『영매암억어影梅庵憶語』에서자신의첩이었던동소완董小宛을생각하며풍류와운치가득했던시절을떠올렸다.『여몽록如夢錄』은번성했던개봉이이자성에의해둑이무너지자아름답던중원도시가하루아침에물에잠겨화려했던풍광이꿈이되어버린과정을묘사했다.장대는『도암몽억陶庵夢憶』『서호몽심西湖夢尋』에서남경,소주,양주,항주,소흥의연극계·화류계소식과명절모습등을산문형식으로기록했다.
사대부들이그토록그리워하던명대도시의풍광과화려한모습은과연어떠했는가?물론원대,몽골족이만들었던‘머리를풀고옷깃을왼쪽으로여민다被髮左’던‘호풍’의과거풍습을완전히씻어내고한·당시대의문물을회복했었다.이는훗날만주족이중원을지배하며정착시킨‘변발剃髮’‘정재화령頂載花翎(붉은솔이달린관모)’‘기포旗袍(옆깃이허리까지트인치마)’로대표되는청대문화와도다른것이었다.명대도시는한·당이래중원의전통에새롭고독특한특징을더해,기존전통에대해서는일종의반발로‘반도난덕反道亂德(도에어긋나고덕을그르친다)’의모습을보여주었지만,근대화라는세계적추세와발을맞추는모습을보여주었다.
이책에서는어렴풋이남아있는명나라도시의모습들을다양한측면에서살펴본다.마치문자로긴그림을그리는것과같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