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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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도서관은 어떻게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되었을까?
도서관 덕후가 소개하는 ‘역사 속 도서관’과 ‘도서관 속 역사’
1899년 6월에 지어진 덕수궁 중명전(重眀殿)의 원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다. ‘황실도서관’이었던 이곳은 대한제국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외부 대신 박제순과 일본 정부의 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수옥헌에서 을사늑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굴욕적인 조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고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1979년 10월 16일 시작된 부산대·동아대·경남대 재학생들의 유신 철폐 시위는 곧 부마민주항쟁으로 확대되었다. 독재 시대를 끝내기 위한 열망은 10·26, 5·18 광주민중항쟁,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민주화에 이르렀는데 당시 세 대학교의 시위는 각 교내 중앙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그저 단순한 책 보관소나 대여소, 혹은 문화센터로 여기지만, 실제 우리 도서관들은 당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영향이 빚어낸 결과물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사건들의 무대였다. ‘역사책을 소장한 공간’인 동시에 ‘역사를 바꾼 공간’인 것이다. ‘도서관 덕후’를 자처하는 저자는 우리 역사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던 도서관과 만날 때마다 수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왜 어떤 도서관에서는 아직도 친일파와 독재자의 동상이 당당히 서 있을까? 일제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은 왜 지금도 남아 있을까? 부마민주항쟁과 6월 항쟁의 무대였던 도서관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사서는 누구였고,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은 어디일까?’ 그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전국 500여 곳의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관련 서적과 자료, 논문을 뒤졌고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렇게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답사 경험, 그리고 자신의 단상을 엮어 한 편씩 글로 풀어내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과 다르게 ‘도서관 속 역사’와 ‘역사 속 도서관’ 이야기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약 1년 반 동안 소개한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도서관들, 현대의 국립도서관, 공공도서관, 국회도서관, 대학도서관, 교회도서관, 사찰도서관이 소개하는 역사 이야기는 그 어느 것보다 묵직하고 울림이 있었다. 역사학자 심용환의 말처럼 ‘역사와 공간을 묶는 참신한 시도’는 곧 독자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자들의 요청과 성원에 힘입어 가장 인기 있고 유익했던 에피소드만을 추리고 내용을 수정·보완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백창민 저자의 첫 단독 저서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은 근현대사의 무대가 되었던 30개 도서관의 역사와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았다. 덕분에 독자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지닌 색다른 매력과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책 말미에는 현재에도 운영 중인 도서관과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도서관의 옛터를 답사하고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정리해 부록으로 실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우리 역사를 애정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느끼고, 뜨겁게 경험해 보길 바란다.

저자

백창민

저자:백창민
책을좋아해‘책사냥꾼’으로일했다.전자책회사,출판사에서디지털과아날로그분야를넘나들며일했다.북헌터대표로한겨레교육과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한성대학교,전국의여러도서관에서강의와답사를하고있으며,《퍼블리싱마케팅트렌드》(공저)를펴냈다.도서관을애정하면서‘도서관덕후’의길로접어들었다.《오마이뉴스》에〈도서관그사소한역사〉와〈세상과도서관이잊은사람들〉을연재했다.‘도서관스토리텔러’로도서관유산과이야기를찾아전국을누비고있다.언젠가이나라모든도서관을둘러보겠다는꿈을가지고있다.
이메일:bookhunter7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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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bookhunter_kr

목차

들어가는말:역사의현장에서‘도서관’은무엇인가?

1부도서관의정치학
우리가유서깊은대학도서관을갖지못한이유:성균관존경각
‘용산대폭격’으로사라진식민지조선의3대도서관:철도도서관
친일파동상이도서관에서있는이유:종로도서관
김일성은왜서울대도서관책을가져가려했을까?:경성제국대학부속도서관
도서관이름에새겨진‘박통’의흔적:정독도서관
공수처비판으로소환된‘사직동팀’의추억: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
도서관은어떻게정치적으로이용되는가?:용산도서관
말죽거리,신화와잔혹사사이에서:도곡정보문화도서관

2부혁명과민주화투쟁의무대
‘도서관’을통해국권을되찾고자했던시도:우현서루와경북대학교중앙도서관
이승만에게도서관이름을바친대학총장:중앙대학교학술정보원
‘혁명’을기념하는단하나의도서관:4·19혁명기념도서관
유신체제의종말을부른부마민주항쟁의불꽃:부산대·동아대·경남대도서관
‘스파르타의300’은알지만,‘광주의300’은모르는당신에게:빛고을광주의도서관
‘도서관점거농성’은어떻게‘6월항쟁’으로이어졌나?:서울특별시청을지로별관
‘대학의심장’이초토화된사건:건국대학교언어교육원
도서관이‘민주주의보루’였던시절은언제일까?:도서관앞광장

3부제국부터민국까지,국가도서관이야기
조선은왜‘쉽게’망했을까?:경복궁집옥재
도서관으로흥한나라,도서관에서망한나라:덕수궁중명전
‘책없는도서관’은언제부터시작되었을까?:조선총독부도서관
‘제국의사서’이재욱과박봉석은‘친일파’인가?:국립도서관
국가도서관에자리한독재자의‘하사품’:국립중앙도서관
의회는왜‘도서관’이필요할까?:국회도서관
한반도에서가장큰도서관이평양에있는이유:인민대학습당

4부사서도모르는도서관의숨은역사
최초의‘사서’를찾아서:경성도서관과경성부립도서관옛터
도서관이‘산’으로간까닭은?:남산도서관
도서관을‘세습’합니다?초대형교회의두얼굴:명성교회도서관
‘독립운동가’윤동주를끝까지증명한사서들:윤동주문학관
‘라이브러리’는왜‘도서관’이되었을까?:삼청공원숲속도서관
‘친일’하면3대가흥하고,‘반일’하면3대가망한나라에서:청운문학도서관
천억이백석의시한줄보다못하다:길상도서관과다라니다원

이책에나오는도서관과답사지정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도서관,투쟁과민주화의무대가되다

우리근현대사의가장큰화두중하나는민주화다.민주주의의정착은해방이후오랜독재·군사정권에맞서벌인치열한투쟁의결과다.민주화운동의무대하면시청·도청같은관공서나광장·공원·시장같은공공장소가먼저떠오른다.최근에는비상계엄과내란의위협을막아낸여의도국회앞과응원봉집회의광화문이있다.하지만이들못지않게‘민주주의의보루’가되었던도서관들이있다.어느곳보다정적이고고요했지만시대의요구에따라격렬하게요동쳤던도서관들은과연어디일까?

1960년3월15일자유당정권은이기붕을부통령으로당선시키기위해유권자매수와깡패동원,대리투표,투표함바꿔치기,득표수조작등불법선거를자행했다.마산에서시작된항의시위는들불처럼전국으로번져나갔고4월19일이승만정권은비상계엄을선포했다.시민저항이거세지자마침내이승만은대통령사임성명을발표했다.부정선거의주역이기붕이살던저택은이후4·19혁명유족단체가사무실로사용하다가4·19혁명기념도서관이되었다.혁명을기념하는도서관이자리하기에이보다더상징적인곳은없을것이다.(165쪽)

1970년대들어한국은경제적풍요를누렸지만동시에자유와권리가가장제한되기도했다.박정희정권의유신체제때문이었다.1979년10월부산대·동아대·경남대재학생들은각학교의중앙도서관에서유신철폐시위를시작했다.규모가커지고시민들이합류하고다른지역으로확산되면서‘학생시위’는‘민중항쟁’으로바뀌었다.‘한국민주주의의디딤돌’로평가받는부산마산민주항쟁의시작이었다.왜대학도서관이항쟁의시발점이되었을까?“학우여!”의‘학’자만외쳐도경찰과정보기관원이달려드는상황에서,대학도서관은학생들이공개적으로모일수있는유일한장소였기때문이다.(175쪽)

1980년에도전두환의신군부에맞선민주화운동이거셌다.5월21일옛전남도청앞금남로에모인10만여명의시위대를향해공수부대는조준사격을실시했다.시민을죽여서라도권력을잡겠다는신군부는광주가아니더라도어딘가를희생양으로삼았을것이다.광주는대한민국전체가겪었어야할희생을대신했다.전남대와조선대중앙도서관,당시헬기사격을받았던전일빌딩6층에위치했던사립전일도서관,5·18민주화운동을기리기위한무등도서관과5·18민주화운동기록관등광주의수많은도서관이당시의참상을기억하고있다.(198쪽)그리고1987년1월서울대생박종철군의고문치사사건은대통령직선제개헌과군부독재타도를요구하는6월항쟁으로이어졌다.이후대한민국은‘민주화이후의민주주의’시대로접어들었고,그중심에는수많은시민의염원과눈물,그리고도서관이있었다.(244쪽)

도서관,정치적격변의무대가되다

우리근현대사를돌아보면저항과민주화의장으로서역할을한도서관이있는가하면,정치적격변과정쟁의소용돌이에휩쓸려이용당하고소모된도서관들도있다.전자의도서관들이간직한피땀의역사는민주주의정착이라는환희와긍지를되새겨준다.반면후자의도서관들이겪었던일은우리가결코되풀이해서는안될정치적오점과실패를짚어줌으로써역사적교훈을선사한다.어느곳보다도정치적이었던도서관이꽁꽁감추어둔흑역사는무엇일까?

존경각은조선최고교육기관인성균관에서도서관역할을한,조선시대유일의대학도서관이었다.과거시험준비에필요한책위주로수만권이있었는데그러다보니이용자는주로성균관유생이었고,관원이나다른관청에서책을빌려가기도했지만일반백성은이용할수없었다.성균관은1894년갑오개혁으로과거제도가폐지되고,일제가대한제국국권을강탈하자대학의기능을상실했다.이에따라존경각도대학도서관이아닌‘책보관소’로전락하고말았다.존경각은조선왕조의운명과명맥을함께한안타깝고쓸쓸한공간인셈이다.(19쪽)

철도도서관은일제의식민통치기구중하나였던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운영한도서관으로,식민지조선의3대도서관중하나로불릴정도로규모와위상이어마어마했다.하지만한국전쟁발발초기인1950년7월철도를이용한북한군병력과보급품수송을차단하기위해미군은용산폭격작전을감행했다.이과정에서용산철도도서관도폭격을피하지못했고,23만권이넘는장서가모두불타버리고말았다.철도도서관은식민통치를위한인프라인동시에근대문화시설이라는이중성을지닌유산이었다.우리는해방이후식민통치의‘잔재’를청산하지못한채식민시대의‘유산’도제대로챙기지못했다.이런불행의역사가압축된곳이바로철도도서관이다.(31쪽)

잘못된정치의결과로사라진도서관과다르게정치적목적에서탄생한도서관도있다.바로정독도서관이다.1970년대들어박정희정권은고등학교평준화정책을시행했고많은명문고가강남으로이전했다.그중경기고는학교측과동문의큰반발이일었고그래서유서깊은교정을도서관으로바꿔유지하겠다는타협책을이끌어냈다.정독도서관은그렇게개관했다.이때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정(正)’과독서의‘독(讀)’을한글자씩따서이름을지었다.한도서관의탄생과정에강남대개발,강남8학군탄생으로이어지는굵직한정책이닿아있는것도흥미롭지만,더놀라운것은정독도서관자리가《독립신문》을창간하고독립협회를조직했으며독립문을세운서재필의집터라는사실이다.그럼에도정독도서관에는이런내용을알리는표석하나없다.독재자의이름을품고있으면서말이다.(83쪽)

1979년5월문을연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현재이름은서울특별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의역사에도의외의반전이숨어있다.이어린이도서관은1983년청와대지시로수상한‘세입자’를받았는데사직동팀이라는비밀경찰조직이었다.1972년에탄생한치안국특수대는정치인과고위공직자,기업인에대한특수수사를담당하며막강한권력을행사했는데사직동어린이도서관건물에입주하면서‘사직동팀’으로불리게되었고,무려18년동안건물하나를차지하고안가(安家)로사용했다.2000년10월김대중대통령은사직동팀의해체를지시했고안가는2001년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의품으로돌아왔다.아이들이책을읽고뛰노는공간에무시무시한공권력의어두운과거가숨어있었던것이다.(102쪽)

도서관,삶과사랑의무대가되다

우리도서관은격변과정치의무대이기도했지만때로역사속인물의삶의무대가되기도했다.도서관인으로서평생을바친이를기억하는도서관이있는가하면,어느위인의업적을기념하는도서관도있다.각기등장인물은다르지만우리가미처알지못했던역사현장을엿보여준다는점에서색다른재미와유익함을발견할수있다.

우리나라최초의사서는누구였을까?1937년일본문부성이주최한사서검정시험에서가장먼저자격증을취득한‘조선인1호사서’는최장수라는인물이다.일제강점기전후에근대도서관제도가도입되다보니일본이번안한도서관개념과용어를그대로받아들여쓰기시작했다.하지만그보다일찍,자격증없이사서로일했던조선인도있다.1929년《조선총독부직원록》에사서로이름을올린이긍종이다.하지만이긍종은경성도서관을세운삼촌이범승과나란히《친일인명사전》에이름을올린친일파다.그는조선은행원과경성부립도서관종로분관장을거쳐,친일언론사와친일단체에서두루활약했다.(393쪽)
친일파사서가있었던가하면반대로우리역사를새롭게밝힌일본인사서도있다.1970년10월윤동주서거25주년과국립중앙도서관개관25주년을동시에기념하는‘시인윤동주유고전’이열렸는데,당시한국을방문중이던일본국립국회도서관사서우지고츠요시는이전시회를살펴보고윤동주의독립운동관련기록이없음을알게되었다.일본으로돌아간그는,윤동주와그의절친송몽규가독립운동혐의로체포,투옥되었다는내용이담긴일본정부서류를발굴해한국에전했다.‘일본인’으로서그가겪었을고심에도불구하고‘사서’로서양심에따라한행동덕분에우리는윤동주와송몽규의진실을알게되었다.(446쪽)

사서는아니지만누구못지않은사랑으로도서관이라는결실을맺은이도있다.바로서울을대표했던요정대원각의주인김영한이다.1936년4월경성을누비던모던보이백석은함흥에서기생김영한을만나사랑에빠졌고‘자야’라는별명을붙여주었다.하지만집안의반대,한국전쟁과분단등의이유로만남과헤어짐이반복되었고결국백석은북에남게되었다.남에서자야는정치거물이드나드는요정을운영했는데,법정스님의《무소유》를읽고감화를받아1995년대원각부지7000여평의땅과40여채의건물을법정스님에게시주했다.약1000억원대에이르는전재산을시주한게아깝지않느냐는물음에자야는이렇게답했다.“천억이백석의시한줄보다못하다.”1997년12월대원각은‘길상사’라는도심사찰로새롭게태어났고이곳에는국내에몇안되는사찰도서관인길상도서관이들어섰다.(492쪽)

북한의김일성도책과도서관에진심인인물이었다.해방직후김일성은도서관사업과정책을기본과업중하나로삼았다.1950년한국전쟁이터지자서울대학교도서관의장서와규장각귀중본이그대로방치되고말았는데,서울대학교를점령한북한인민군이귀중본과장서를트럭에실어평양으로가져가려할정도였다.하지만다행인지불행인지미군의폭격때문에의정부에버려두고떠나버렸단다.1982년에새로운이름으로문을연인민대학습당은단일건물로는세계최대도서관으로꼽히는데남북을통틀어한반도에서가장규모가크다.인민대학습당은도서관에대한북한정권의관심이그만큼컸음을방증하지만한편으로는사회주의체제선전과유지를위한수단이었음도부정할수는없다.(368쪽)이처럼우리도서관은책,지식,배움이라는기능외에도자유,평등,사랑이라는보편적가치가가득한공간이다.이는근현대사의장면장면을통해확인할수있다.우리는또‘이토록역사적인도서관’에서누구를,어떤이야기를만날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