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가 : 아는 사람도, 어떤 전제도 없는 시간들의 기록

짧은 휴가 : 아는 사람도, 어떤 전제도 없는 시간들의 기록

$19.80
Description
여행에 뒷모습이 있다면
오성윤은 그걸 포착하는 사람이다
〈론리 플래닛〉 〈에스콰이어〉 에디터 오성윤의 첫 에세이집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오성윤의 첫 책 《짧은 휴가》가 출간됐다. 여행에 매혹돼 여행잡지 〈론리 플래닛〉에서 일을 시작했고, 익명의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며, 필름카메라로 여행 사진을 제법 그럴듯하게 찍으면서도 SNS에 뽐내기를 꺼려 하고, 바에서 여행수첩을 끄적이며, 그럴 때면 필시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나누는, 오성윤 작가는 우리가 처음 만나는 스타일리스트다.

저자

오성윤

연필로여행수첩을쓰는사람.필름카메라로낯선도시를찍는사람.어릴때학교에서돌아오면책상아래로기어들어가눈을꼭감았다.그러면아무도없는것같은세상의고요가그렇게달콤했다.자라서는멀리떠나는사람이되었다.이국의도시에서익명의존재가되어어떤전제에도속하지않은채세상을마주했다.그런여행을자주하고싶어서여행잡지<론리플래닛>에서일을시작했고,지금은<에스콰이어>에서피처에디터로일하고있다.멀리떠나면그도시의재즈클럽과바에들르고,공동묘지에서달리기를한다.

목차

서문
1옥상담배와낯선아침과이국도시에서의달리기에부쳐
2선지자들이모두떠나간후에는
3그후
443일
52차와3차사이에이라와디강변에다녀올수있다면
6대추야자숲의눈
7먼곳에서
82019년12월4일
9지난공항사진이우리에게묻는것들
10마지막로드트립
11서유西遊
12달과뉴욕사이에서
13도시와여행자사이의일
14한점
15<도라지타령>과<원더월>
16카운트다운
17델로니어스몽크플레이즈온솅헤이
18현실보다탁월한
19바올리아래서
20(로딩중)
21아무것도하질않네
22그섬에서는무엇이보이나요
23젊은날의우리가여전히카오산로드에남아
24두바이라는농담
25아스타나라는신탁
26지난날의홍콩
27재회
28걸어서()속으로
29LastScene
30뒤
31외로운바와외로운방
32남쪽으로간다
33묘지의러너
34기다린이들과초대한자들
35러시아인이야기
36지구끝의구루와안방의신
37다음에또만나요
38언젠가는모든곳이여행지가될것이다

출판사 서평

낯선도시에가면재즈클럽을꼭찾는,
공동묘지에서달리기를하는

나는내가삶그자체라혼동하는내일상,내직업,내관계들에서벗어나보려시시때때로멀리떠나곤했으나,모르는동네에서며칠보낸다고그런게가능할리만무했다.하지만예기치못한몇몇순간에는비로소마음속깊은곳까지어떤전제에도속하지않은채세상을마주했을것이다.그런순간을떠올릴때면마치그순간내가온전히나자신으로서존재했던듯한느낌이드니까.(27쪽)

그에게여행은아는사람없는낯선곳에서어떤전제에도속하지않은채세상을마주하는일이다.그래서그의책『짧은휴가』는여행에세이라기보다강렬하고순전하게감지되는어떤심상들에가깝다.그의글안에서사진과문장과분위기는구분없이끈끈하게한덩어리로엉겨있다.그렇게해서오성윤작가가빚어낸아스타나(도시명이바뀌어지금은‘누르술탄’이라불린다)여행은우리는무엇으로여행지를결정짓는가와관련한짓궂은농담이되고(256쪽),상트페테르부르크‘과학자의집’방문은거짓말로이뤄낸비밀스러운호사가펼쳐지는아름다운역설이되며(154쪽),밀라노바의어느싱어송라이터공연은현실과비현실이명확히경계지지않은영역에서일어나는신비로운작용이된다.

오성윤작가는여행지에서공동묘지를찾아달리기를한다.그는도쿄의야나카레이엔,교토의오오타니혼뵤,밀라노의시미테로모누멘탈레,카파도키아의위르기프,뉴델리의인디언크리스천묘지,괌의피고가톨릭묘지를달렸다.공동묘지와달리기라는어울리지않는조합은그의글안에서꽤설득력있는여행의행위이자어떤심상을향한꾸준한추구가된다.

장례식과결혼식.이글을이해하기위한전제는,그런부류의인간이존재한다는것을당신이납득할수있는가하는것이다.세상에는결혼식장보다장례식장에있을때더소속감을느끼는사람도있다는것을.이때소속감이란‘있어야할곳에내가존재한다’는감각이다.지인이잘알지못하는사람과2인공동체를맺을때,그것을축하해야할때,어떤사람들은사회성과당위의힘을필요로한다.어느정도는축하해야하는일이라고알고있기때문에축하한다는뜻이다.그에비하자면상실과부재에유대하는건그저인간으로서자연스레작동하는기능과같다.(342쪽)

일상과직업,관계들에서벗어난나와일상의나는멀고도다르다.그때문에아는사람도,어떤전제도없는시간들에쓰여진오성윤작가의글은자주소설같다.낯선도시,호텔,재즈클럽,칵테일바,공동묘지가배경인소설을,혼자있음으로써더풍요로워진다는,이해하고싶은아이러니를지닌한사람이등장하는소설을읽는듯하다.『짧은휴가』에언급되는지역에가게된다면여러분은여행지를찾는기분보다는소설속등장인물을만나게되리라는예감을갖게될것이다.

나도혼자여행하며아름다운것을마주하는순간에으레누군가를떠올리곤한다.‘아무개가이걸봤으면좋아했을텐데’하고.다만그렇다고지금혼자인순간을불완전하게여긴다거나‘다음번에는누군가와함께여행을하자’고생각하는식으로자라지않았을뿐이다.그순간을먼곳에서누군가를절절히생각하고마음속에서편지를쓸수있었던시간으로,혼자임이아쉬워서더완벽한시간으로여기는사람이되었지.(91쪽)

한편『짧은휴가』는여행에세이가분명하다.다만『짧은휴가』는여행을계획할때우리가기대하는바의가장구석진자리에놓인,정말로일어난다면그이야기를다른사람과나누기위해적막에가까운몰입의시간과적확하고세심한언어를담보해야하는,그런여행의장면들로이루어진여행에세이다.앞으로도오성윤작가는글을쓸것이다.그리고그의글은책이될것이다.『짧은휴가』는여러분이그를처음만나는책이자,자신에게있는줄도몰랐던자신의한순간을다시만나게해줄책이다.어떤전제에도속하지않던,한순간의여러분을.

추천사

“항공권을사면환불규정을살핀다.숙소잡기어려워서,지하철이끔찍해서,좋아봐야얼마나일까싶어서.오성윤작가의글을읽으면서는마음이좀달라졌다.경로를일부러벗어나보는재미를원한거였는데.개구진상태가되면모르는사람과말하는것도가능하다.헤이데이재즈클럽이든중저가호텔에서든.그걸원한거라면가야지.봐야지.만나야지.불만족속에서흡족하게웃는법을알게될것이다.”
-서한나(『사랑의은어』작가·<보슈>공동발행인)

책속에서

나는내가삶그자체라혼동하는내일상,내직업,내관계들에서벗어나보려시시때때로멀리떠나곤했으나,모르는동네에서며칠보낸다고그런게가능할리만무했다.하지만예기치못한몇몇순간에는비로소마음속깊은곳까지어떤전제에도속하지않은채세상을마주했을것이다.그런순간을떠올릴때면마치그순간내가온전히나자신으로서존재했던듯한느낌이드니까.
---p.27

“모를리야있나.그렇게어두운방에기대어있는동안사람들이하나둘결혼을하고,아이도낳고,집도산다는걸.그런데그사실이그냥너무나아무렇지가않은거야.아무래야하는일이라는건귀에딱지가앉도록들었는데,글쎄.한번도스스로와사람들을동일선에놓고생각해본적이없는사람이기때문에그런걸까.그렇다고딱히저항감같은것도없고,그냥오빠는멀리서그사람들을구경해.그들이좋은사람을만나결혼하고,둘사이에태어난생명에감격하며,부단한노력으로가족의보금자리를마련하는과정을.마치신처럼말야.나는있잖아,그런건대단한능력이기도하다고생각해.진심으로.아무것도안하는것,따로떼어서생각하는것.그런건노력으로얻을수있는능력은아니거든.하지만정말로는걱정이되기도해.결국우리는신이아니니까.음악하나를,영화한편을가슴절절히아름다워할수있을때까지만신인거야.무슨말인지알겠지.더이상춤을근사하게추지못하면그사람이어떻게신일수가있겠어.”
---p.50

나도혼자여행하며아름다운것을마주하는순간에으레누군가를떠올리곤한다.‘아무개가이걸봤으면좋아했을텐데’하고.다만그렇다고지금혼자인순간을불완전하게여긴다거나‘다음번에는누군가와함께여행을하자’고생각하는식으로자라지않았을뿐이다.그순간을먼곳에서누군가를절절히생각하고마음속에서편지를쓸수있었던시간으로,혼자임이아쉬워서더완벽한시간으로여기는사람이되었지.
---p.91

어떤시절의여행에서당신은끝없이걷는수밖에없다.도망치듯타지로떠나왔으나근사하고아름다운여행명소들에서당신은스스로가투명인간이된듯느낀다.그렇다고호텔방에틀어박혀있자면당신은견딜수없을만큼당신자신이다.앉지도서지도못하는사람이걷기시작하는것은거의자연적인인과관계라,대도시에는언제나곳곳의골목을기웃거리는이방인들이있게마련이다.나는이따금눈을감고그들의잠행을지도위빛나는점들로상상해보곤한다.찾아헤매듯걷는사람들.떨치듯걷는사람들.
---p.121

그때,7번출구끝에이르러,놀라운일이벌어졌다.출구옆에서있던한여인이뒤를돌아보다나와눈이마주치고는활짝웃어보인것이다.꼭기다리던남자친구나남편이라도발견한것처럼.정말로내뒤에그녀의지인이서있었다면안타깝기라도할것같은미소였다.아무맥락없이도질투를만드는미소가있다는것,꼭그것과연결된게내존재였으면하는미소가있다는것.그건나도그때처음알았다.당황해눈을피하지도못한찰나그녀는입을뗐다.“비소식을못들었어요.우산좀씌워줄수있어요?”(라고말했을것이다.아마도.)나는답했다.“저는중국어를못합니다.”그녀는잠깐당황했다가다시영어로말했다.“비소식을못들었어요.우산좀씌워줄수있어요?”그런종류의부탁을거절하는법을알지못하는나는단번에승낙했다.내심은인류애만이아니었겠지만.나는우산을펴면서그녀의첫마디가내마음에퍼뜨린파장을곱씹었다.중국어의성조라는것은모르는사람에게도그리멜로디컬하게말을걸게끔되어있구나.아니면그건성조의문제라기보다중국인의성정이려나?혹은상하이사람의,혹은이사람의성정.
---p.191

나는때때로은둔의욕망에사로잡히곤한다.후미지고조용한어느구석에가서속세를잊고살고싶다는이야기가아니다.은둔의욕망이란어디서어떻게살고싶다는마음이아니라오히려그반대,내가차지해온세계에서감쪽같이사라지고싶다는충동에가깝다.그리고그건우울이나도피와도성격이다르다.적어도내경우에는그렇다.나는아주어릴때부터,초등학생때부터아무이유없이종종그런상상을하는아이였다.부모님은맞벌이셨고,우리집은해질녘이면창으로새어들어온빛에부유하는먼지까지다보일정도로낡고큰집이었다.그리고나는학교가끝나고집에돌아오면곧장내방책상밑으로기어들어가있곤했다.그러면꼭집에아무도없는것같았고,내가꼭그무無에속한것같았다.의자를슬쩍당긴후눈을감고집안곳곳을떠올리면,그리고귀를기울이면그게그렇게달콤했었다는게지금도선명히기억난다.
---p.282

혼자여행할때의나는새벽에숙소로돌아가며맥주몇캔을산다.숙소에도착할즈음이면십중팔구는만취상태지만,뻗어눕기전에는내가무엇을아쉬워하게될지도무지알수없으므로.지금껏내가까놓고마시지못한채곯아떨어져침대사이드테이블에방치됐던맥주들,그것만다모아도드럼통한개는족히채울것이다.아깝긴하지만그것은말하자면하루의끝을받아들이는의식차원의공물이다.침대에풀썩누워TV를틀고맥주한캔을따는일련의의식을위한공물.물론이국의TV방송에서내가이해할수있는건별로없다.다만내가이해할수없는외국어에둘러싸여서도그것을이해하려노력할필요가없다는것,그것만으로얼마나위안인지모른다.하루종일그런것들에쫓기고나서는말이다.
---p.326

장례식과결혼식.이글을이해하기위한전제는,그런부류의인간이존재한다는것을당신이납득할수있는가하는것이다.세상에는결혼식장보다장례식장에있을때더소속감을느끼는사람도있다는것을.이때소속감이란‘있어야할곳에내가존재한다’는감각이다.지인이잘알지못하는사람과2인공동체를맺을때,그것을축하해야할때,어떤사람들은사회성과당위의힘을필요로한다.어느정도는축하해야하는일이라고알고있기때문에축하한다는뜻이다.그에비하자면상실과부재에유대하는건그저인간으로서자연스레작동하는기능과같다.
---p.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