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일기

짐승일기

$16.00
Description
난다에서 김지승 작가의 〈짐승일기〉를 출간한다. 주간 문학동네에 21년 9월부터 22년 1월까지 5개월간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여성, 글쓰기, 엄마, 몸과 질병, 나이듦, 소수자성에 대해 밀도 높은 문장으로 써내려간 실험적인 구조의 텍스트이다.
연재분을 단행본으로 묶는 과정에서 요일별로 문장과 장면을 재조립하고, 쓰여진 과거에 쓰는 지금과 쓰여질 미래를 동시에 기입하면서 연재 당시와는 몇 겹의 다른 질문을 지니게 되었다. 김지승 작가는 전작 〈아무튼, 연필〉에서 사랑하면 닳아버리고 소모되어버리는 연필을 통해 낡고 병들고 결국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동료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와 함께 질문했다.
김지승은 〈짐승일기〉를 통해 과거에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이라는 하나의 실을 잘라내어 매 편마다 새로운 방향성과 시작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존재 조건, 언어의 기반을 질문하고 시작과 끝을 다시 설정하는 128번의 실뜨기/쓰기 실험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대신 인과를 재구성하고 전유하는 이 쓰기의 스타일은 회복할 길 없는 우리의 상처, 상실, 애도를 쓸쓸하고 우아한 유머로 물들이며 이제껏 보지 못한 김지승이라는 매력적인 장르를 직조해낸다.
저자

김지승

읽고쓰고연결한다.『100세수업』『아무튼,연필』『짐승일기』를썼다.

목차



금요일들│집안에서도발끝을들고걷는다―11
토요일들│내가나의타인이다―51
일요일들│아픈몸이꼽는건날짜가아니라요일이에요―93
월요일들│화를따뜻하게내는사람이고싶어―137
화요일들│사람은사람에게왜그렇게까지할까요?―177
수요일들│가장무구한존재는지워진여자야―221
목요일들│눈을뜨면당신이거기있어라―261
작가의말―307

출판사 서평


그애가안심한듯웃는소리가들렸다.한번씩웃음이오고갔으니된거였다.성급히슬픔을취소하지도않았다.전화를끊고우리는괜찮은줄알았던어떤자리에서밀려나울고싶어질지모른다.
그럼어쩌죠.
다시전화하면되지.언제나언제나다시하면되지._본문중에서

이렇게하루를끝내기로하자
누구도아닌채로무엇도하지않고

전작보다더내밀하게개인적인기억과체험속으로독자를끌어들이는짐승일기에는독특한검은색채가감돈다.이는가부키극에서없음(無)으로존재하는쿠로코(黑子)와같다.쿠로코는검은천으로온몸을감싼채무대위에서배우들의옷을벗기거나입히고소품을전달하거나이동시키는이들이다.극의사건에어떤직접적인영향도주지않고캐릭터도될수없는존재.관객은이들을보고있지만암묵적으로합의된무존재이기에아무반응도하지않는다.짐승일기를읽는경험은우리가그동안목격해온삶이라는무대에서보이지않음으로존재했던이들을다시읽고그들의눈으로되살아보는시간이될것이다.

스토리상한여자가자결한다.여자의죽은몸은여전히무대위에있고,나머지배우들이극을진행하는가운데쿠로코가홀연히나타난다.그는자신이두른것과꼭같은검은천을여자의죽은몸앞에드리워관객들의시야를가린다음,여자와함께천천히무대밖으로움직인다.한여자가쿠로코,바로그처럼‘없음’의세계로옮겨지는것을나는조금전율하면서지켜보았다.아무것도보지못한척위장하면서._「Thursday4」중에서

어정쩡하게피하거나비스듬히기대거나다친,어색한존재의흔적이멍이나상처로남겨진몸,못알아듣는척,무지한척,의도적으로오독해야만살아남을수있는몸,규격에서벗어나둘곳없는몸,침묵혹은웃음을종용당하는몸.그몸둘곳을마련하는쓰기.나라는존재와상관없이내가‘여자’라명명될때작가는그들의필요에따라조형된‘여자’라는개념에서탈출할수있는언어를고심하며세상에없던문장을써내려간다.화자가자기힘을믿어야만세상에서이야기가그존재를배정받게됨을기억하면서.『짐승일기』는작가김지승이어떤글을쓸수있고또써야하는지선언하는책이기도하다.

견딘다는게종종후렴구를만드는일같았다
반짝이는사탕껍질을모으는것처럼

이책을편집하는과정에서염두에두었던것은주어의자리를마련해두기였다.‘나’를주어에둘것,당당하게자리를요구하고차지할것.말할수없고표현할수없고잃어도되고폭력의대상이되어도되는짐승.말할수없다고일방적으로가정된존재가입을열기시작한다면우리는어떤눈으로세상을체험해야할까.주간문학동네에연재된5개월간SNS상에서이어진독자들의지지와애정은이세상의주어가아니었던짐승‘들’에게,타자였고스스로말해진적없던몸들에게눈과귀가되어주려는공감이아니었을까.자신을말로설명하기너무어려워서글을쓰기시작했지만글로는실패조차실패하는이들,잘못된장소,잘못된시간에틀린존재로있는듯한어떤인간,세상어딘가에자신을겨우감당하고사는같은존재들이겁을내면서도전진하고있을지모른다는기대를놓지못해서작가는쓴다.그들이외롭지않았으면해서,서로를알아봐줬으면해서.“누군가를웃게할수있다는건그사람의불안을이해하고있다는의미일지도모른다”는사실을이해하고있는이들처럼.짐승일기의곳곳엔손바닥만한볕이한조각씩들어있다.누군가앉았다가일어난의자에떨어지는빛같은온기다.그따뜻함은울고싶어지게하는슬픔을독자에게선물로남긴다.그게용기와닮아있다는사실도함께.

내게오는말들과내게서나가는말들을떠올린다.어제친구는내배를쓸어주면서너는고통에재능이있어,라고말했다.내일나는누구에게어떤사람이될까.그렇게나로와서내가되는말들,내게서나가네가되는말들의세계가있다.오늘그세계가지구를한바퀴돌았다.
_「Sunday17」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