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연당 이갑성 추모 논문집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총서 4호(통권 8권))

3·1운동과 연당 이갑성 추모 논문집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총서 4호(통권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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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거짓을 넘어선 진실
이갑성의 독립을 향한 올곧은 길
저자

이태룡

경상국립대학교대학원(문학박사)
 국립인천대학교인천학연구원독립운동사연구소장(현)
 의병정신선양중앙회의병연구소장(현)
 전해산기념관설립위원회자문위원장(역임)
 신암선생기념사업회사무처장(역임)
 국가보훈부공적검증위원회위원(역임)

 주요논저
 「운강이강년의도체찰사제수와순국과정연구」
 「의열단창단과정과김상윤의사의반일투쟁」
 『의병찾아가는길』(Ⅰ·Ⅱ)
 『한국의병사』(상ㆍ하)
 『우리의역사,이것이진실이다』
 『이성기·용기형제와남원3·1독립만세의거』
 『일제침략기의병장73인의기록』(1~5)
 『일제침략기호남동의단결성전후66인의호남의병장』
 *논문30여편,단행본46권

 세계인명사전등재
 2011년영국국제인명센터(IBC)‘올해의국제교육자100인’,미국인명정보기관(ABI)‘21세기위대한지성’
 2012년IBC‘세계톱교육자100인’,ABI‘세계훌륭한지도자500인’

목차

■화보
■차례
■서문


Ⅰ.3·1독립운동,33인의민족대표,그역사적위상
  -김창수/전동국대학교명예교수

  Ⅰ.머리말
  Ⅱ.3·1독립운동과민족대표33인의역할
  Ⅲ.민족대표33인의의거준비와그성격
  Ⅳ.맺음말


Ⅱ.이갑성의항일독립운동과문화투쟁
  -유준기/전총신대학교명예교수

  Ⅰ.머리말
  Ⅱ.이갑성의생애와3·1독립운동에서의활동
  Ⅲ.3·1운동이후의문화투쟁
  Ⅳ.‘친일관련설’에대한검토
  Ⅴ.맺음말


Ⅲ.3·1운동배경과연당이갑성의역할
  -이태룡/국립인천대학교인천학연구원독립운동사연구소장

  Ⅰ.들머리
  Ⅱ.기미년독립선언
  Ⅲ.「선언서」배부와독립만세시위
  Ⅳ.마무리


Ⅳ.3·1운동이후연당이갑성의독립운동
  -이정은/(사)3·1운동기념사업회장

  Ⅰ.머리말
  Ⅱ.1920년대민족운동시기
  Ⅲ.1930년대상해활동시기
  Ⅳ.맺음말


Ⅴ.해방후연당이갑성의삶재조명
  -허동현/경희대학교후마니타스칼리지교수·국사편찬위원장

  Ⅰ.서론
  Ⅱ.해방후정치활동
  Ⅲ.“친일밀정설”의제기와유포경위
  Ⅳ.결론

출판사 서평

연당(硏堂)이갑성(李甲成)은1919년2월경성의학생대표를규합하고,종교지도자들과연계하여마침내민족대표33인의이름으로「선언서」를내고,경성뿐만아니라함남함흥,경북대구,경남김해·마산,전북군산등지에도학생을보내「선언서」를배부하여3·1운동을성공적으로이끌었다.

연당은그후붙잡혀1922년5월까지3년여옥고를겪은후1924년민립대학설립을위해전국각지로다니면서강연하다가또붙잡혀2년(1928-1930),신간회간사로활동하다6개월(1931)고초를겪고상하이(上海)로망명하여‘제중약방(濟衆藥房)’을경영하였다.그러나일제관헌에붙잡혀1년(1937-1938),흥업구락부활동으로7개월(1940),상하이에서독립운동한여러혐의로11개월(1941),8개월(1942),4개월(1943),3개월(1945)등오랜기간경찰서와감옥(형무소전신)·형무소에서고초를겪었다.

광복후연당은초대민의원과2대국회의원을역임하고,‘광복회(光復會)’초대회장을거쳐제2대회장에당선된직후난데없는“친일밀정설”에휩싸였다.
1967년5월11일자「대한신문」광고란에“광복회비상총회회원일동”명의로실린「변절및민족반역자이갑성의죄상일부를공개함」이란성명서였다.
광복회는「대한신문」을통해반박문을싣는등공방이법정으로까지번져광고를내었던조경한등이명예훼손죄로벌금50만원을선고받고마무리되었다.
그런데,1981년연당이작고한직후「자유」3월호에다시이내용들이그럴싸하게포장되어다시실림으로써연당을“친일밀정설”에빠지게하였고,이어임종국은1988년과1990년에‘이갑성은상하이에서밀정했다는설이끈질기게따라다니는사람’이라고하는등,‘설(說)’이확대재생산되자,광복회와학자들은진실규명을위해심혈을기울였다.
그결과경성공업사는일부에서주장하듯일본의군수공장이아니고,미국인모리스(J.H.Morris)가사장으로자동차와그부품을제조판매하는회사였고,연당이1922년5월5일출옥한후1924년까지조선총독부경무국장마루야마쓰루키치(丸山鶴吉)의촉탁으로활동했다는설은국사편찬위원회홈페이지에탑재된「조선총독부직원록」의‘촉탁관련자명단’에李甲成이없어진실이아니었다.

연당이상하이프랑스조계(租界)샤페이루(霞飛路)에서경영하던‘제중약방’은「上海韓聞」(한국독립당기관지)창간호(1932.01.04)‘근하신년’란에‘濟衆藥房李甲成’이란기사가나와있고,김구·안창호등독립운동가들이수시로드나들고머무는곳이었음이밝혀졌다.

광복회와학자들의노력으로2006년「민족대표33인의재조명학술회의」와2023년「민족대표硏堂李甲成추모학술회의」를통하여연당에게들씌워진“친일밀정설”이아무런근거가없는한갓낭설임을입증한것이었다.

이에국립인천대학교인천학연구원독립운동사연구소는연당이갑성선생의행적을철저히규명하는것은한사람의명예뿐만아니라당시민족대표33인전체의명예에영향을끼친다고판단하여주요논문5편을묶어총서로출판한다.


2024년(대한민국106)8월15일

국립인천대학교인천학연구원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