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경
저자:서보경 인류학자.대전에서태어나속리산깊은곳에서어린시절을보냈고도서관이매우훌륭한고등학교를졸업했다.이후서울,캔버라,치앙마이,베를린에서공부하고일했으며,현재는연세대학교문화인류학과에다닌다. 이주여성의출산과출생등록경험에관한연구로미국의료인류학회에서수여하는루돌프피르호상을,포퓰리즘과민주주의를구성하는돌봄의미시정치에대한논문으로미국문화인류학회의컬처럴호라이즌스상을받았다.현장에서함께하며기록한한국의HIV/AIDS이야기『휘말린날들』(2023)로제65회한국출판문화상학술부문,2024‘한국에서가장지혜로운책’대상,제18회무지개인권상콘텐츠부문을수상했고2024국제앰네스티추천인권도서,세종도서교양부문에선정되었다. 감염병의이동성에대한국제공동연구를진행하고있으며,생명과정치사이의관계를인류학의기반위에서새롭게해명하고자한다. 역자:오숙은 서울대학교노어노문학과를졸업하고,한국브리태니커편집실에서일한뒤지금은전문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옮긴책으로는『게으름예찬』,『정글북』,『사랑학개론』,『단테의신곡에관하여』,『공감연습』,『위작의기술』,『브루클린』,『프랑켄슈타인』,『노예12년』,『궁극의리스트』,『추의역사』,『수학이자꾸수군수군』,『섬뜩섬뜩삼각법』등[앗,시리즈]여러권과『가볍게읽는시간인문학』[주니어론리플래닛]시리즈『여행만으로는알수없는런던』외파리,뉴욕,로마,『식물의힘』『회색세상에서』등이있다.
한국어판서문고치고고쳐서새롭게바꾸기1장침상위의발2장병원이정부와같다면3장기다리는힘덧붙이기공공의료의몇몇구성요소들4장존재를새겨넣기5장여린삶,어린죽음6장집에서의투쟁7장인간너머의돌봄8장지금여기함께의정치감사의말주참고문헌찾아보기
“진료부터우선하겠습니다.”기술과자본대신돌봄이의료를이끄는희망의풍경들제65회한국출판문화상수상작가『휘말린날들』서보경신작그저죽게내버려두기만하는정부/국가앞에서나는이단단하고곡진한돌봄의수행에깊이감응하며,돌봄으로공진화하는우리모두의내일을뜨겁게꿈꾼다.―김영옥(노년인권문화연구자,『흰머리휘날리며,예순이후페미니즘』저자)보살피기와다스리기,버티며나아가기가어떻게이루어지고있는지가궁금하다면그의전작『휘말린날들』과함께이책을읽으면된다.―조한혜정(문화인류학자,연세대명예교수)치료비와보험이없어도,시민권과이름이없어도아픈사람은누구나필요한보살핌을받을수있는곳―우리가상상하지못한병원의미래를경험한이들지역의한응급실,구급차에실려온환자가7시간대기끝에결국의사를만나지못하고사망한다.아이의열이40도를넘겼지만근처소아과는최근폐업했고,다른곳으로‘오픈런’을해도진료를받기까지6시간이걸린다.9000명의전공의가병원을떠나자한달넘게기다려야하는수술이속출하고예정되어있던수술도취소된다.남은의사들은과로로쓰러지고환자들은몇배의시간을기다린다.지금당장교통사고를당한다면수술할수있는의사가없을지도모른다.국민건강보험제도를통해보편적건강보장을달성했고뛰어난기술로해외환자를유치하는‘의료선진국’의현주소다.지금한국의의료시스템은전례없는붕괴를겪고있으며,의료대란은가정이아니라이미현실이다.그러나이러한파국은2024년정부의의과대학정원확대발표라는단일한사건으로촉발된것이아니며,징후는오래전부터나타나고있었다.의료가시장논리에따라제공되는서비스에가까워진지금의방식이과연최선인가.병원과의료는어떤모습이어야하는가.의료인류학자서보경의『돌봄이이끄는자리』는우리가상상하지못한미래를현실로경험하고있는이들의이야기를통해건강권과의료를둘러싼새로운시각을제시한다.HIV/AIDS인권운동의현장에서함께하며감염인들의삶을기록하여제65회한국출판문화상,2024‘한국에서가장지혜로운책’대상,제18회무지개인권상을수상하고2024국제앰네스티추천인권도서로선정된『휘말린날들』의저자서보경은이책에서다시한번질병과건강,개인과공동체의문제를파고든다.태국은아시아금융위기의여파속에서도2002년의료보험개혁을단행해전국민에게포괄적인혜택을제공하기시작했고,특히가난한이들의의료서비스접근성을개선하면서공공의료시스템을탄탄하게구축한국가로손꼽히게되었다.이곳태국북부치앙마이의지역거점병원을중심으로2년간현장연구를진행한저자는‘누구나조건없이필요한의료서비스를받을수있어야한다’는이상이현실에서어떻게적용되고있는지를가까이에서관찰한다.전작에서연구대상과객관적인거리를두기보다는기꺼이‘휘말리는’방식을택한것처럼저자는병원에서마을로,환자의집으로걸음을옮기며치유와돌봄의현장을깊숙이들여다보고,모두를위한무상에가까운의료가어떻게실현되는지,각각의주체들이어떤관계를맺고돌봄을주고받는지섬세하게기록한다.따라서이책의인물들은정책분석서속의환자나의료진,보호자라기보다는누군가의보살핌을필요로하거나타인의그러한요구에마땅히응답하는구체적인존재로서조명된다.저자는의료가지금여기함께존재하는사람들사이에서이루어지는행위이며,그핵심에는결국기술과자본대신돌봄이자리해야한다는전제를다시금상기시킨다.누구나삶의어느순간에서는타인의돌봄과의료적처치를필요로한다.인간의근본적취약성과의존성으로부터비롯된이이야기들은외국의특별한사례에그치지않고우리사회가직면한문제를돌아보게하는거울이되어줄것이다.또한미국에서먼저소개된이책에한국어판서문을더하여이러한논의가지금우리사회에서어떤의미를갖는지밀착해살펴볼수있도록했고,더욱깊은이해를위해한국과태국의의료시스템을비교하는장을추가했다.자본이나기술이아닌돌봄이의료를이끌때벌어지는일들치앙마이시근교,도시와농촌의경계에위치한‘반팻병원’에서는누구도치료의자격을심사받지않는다.보험이없어도,시민권은커녕신분을증명할서류조차없어도누구든무상에가까운치료를받을수있다.입원과수술에앞서지불능력이되는지확인받지않으며,퇴원때병원비가부족해도훗날갚겠다고약속하는것만으로수속이마무리된다.설령약속이지켜지지않는경우에도병원은채권자가되기를거부하고환자의회복자체를성과로여긴다.병원담장을넘어서도살리고보살피는일은이어진다.만성질환자나첫출산을한산모,노인환자처럼지속적인관리가필요한경우에는퇴원후에도간호사들이집으로방문해건강상태를살피고주거환경을점검한다.이것은이병원만의일시적이고도특별한실험이아니다.태국전역의지역거점공공병원에서볼수있는일상적인풍경이다.1인당명목GDP가한국의4분의1밖에되지않는나라,현대사에서가장많은쿠데타가일어났고극심한빈부격차가커다란문제인사회에서어떻게이런것이가능할까?저자는시장의수요-공급논리대신‘사회의필요에따른공급’을기초로한태국의의료철학에서그실마리를찾는다.태국은각지역의공공병원을의료시스템의중추로설정하고사회적안전망역할을맡기면서이를지속가능한체계로유지해왔다.의료는개인의선택과책임에맡겨지는것이아니라사회가필요한형식과실천의방식을정하고공적자원을통해제공한다.의료인의양성과교육단계부터의료서비스는거래대상이아닌사회적책임의영역에속하는것으로강조되고,재정의운용방식역시이에따라결정된다.그결과의료행위의중심에는기술과자본대신돌봄의책무가놓인다.의료진은그저병원에고용된기술전문가가아니라공무원으로서국가의책임을구현하는대리인을자임하며사람들을보살피고,공공병원은지역사회의구심점으로기능하게된다.여기서저자는돌봄이라는힘의흐름을이해하는개념으로‘이끌어내기’를제안한다.돌봄과의료가그저특정전문가나기관의선의로제공되는것이아니라,환자와지역사회의구성원들이적극적으로참여해필요한자원이스스로에게도달하도록이끌어내는과정에서이루어진다고보는것이다.이렇게어느한쪽에서다른한쪽으로일방적으로제공되는것이아니라이끌고이끌리는과정에서생겨나는것으로돌봄과의료를이해할때‘공급자(의료진)’와‘수혜자(환자)’의이분법은해체된다.빈곤과이주,성역할에따른구조적불평등에내몰린이들은그저무기력하게상황을수용하는대신자신에게필요한의료적조치가스스로에게도달하도록이끌어내는주체로떠오른다.달리갈곳이없는가난한환자들은공공병원의응급실과대기실에서차례를끈질기게기다림으로써시스템에자신의자리를만들어낸다.미등록이주민임산부는병원에서권고하는산전검진을빠짐없이받으며자신을사회적존재로실재하게한다.태동시간을꼼꼼히기록하는과정을통해곧태어날아기의존재역시그관료제의시스템에각인시킨다.삶을억누르는그모든취약성에도불구하고자신과가족을보살피기위해작은도움이라도붙드는이들의노력에주목할때,의료는거래관계속에서제공되는상품도특별히선한누군가의헌신에서비롯된자선행위도아닌참여하는모든이들이함께이끌고이끌리며엮어내는돌봄의그물망속에서작동하는시스템으로보다총체적인시각에서파악된다.돌봄의회로망이확장될때열리는새로운희망의풍경저자가소개하는이들은모두“주변적이고자격이없다고여겨지는사회적타자들”로,특히난민과등록및미등록이주민의경우한국사회가이제껏외면해왔던문제에중요한시사점을던진다.치앙마이는대륙부동남아시아의중요한국경지대로서주변국의정치,경제적상황에따라모여든난민과미등록이주민,출생증명이없어국적을부여받지못한소수종족민의비중이높은곳이다.책에서등장하는반팻병원은국가와공공병원의도덕적책임을우선하여시민권자와비시민권자의구분을따지지않고이들에게의료서비스를제공하는최전선으로기능한다.한국에서는극히취약한상태에처한이들이가장기본적인의료서비스조차제공받지못하는경우가많지만,‘지금여기함께있는’존재들의존엄한삶의조건이더이상외면할수없는현실의문제로다가온지금태국의방식은이들에게의료접근성을보장하면서도안정적인시스템을유지할방안을구체적으로탐색하는데유효한참조점을제공한다.병원에서시작된이야기는환자의집으로,마을공동체로,나아가인간너머의존재가관장하는내세로까지뻗어나간다.‘돌봄’은흔히아동의양육이나노인혹은환자의수발처럼특정행위에한정되는것으로여겨지지만,저자는“자신과타자,공동체의삶이지속될수있도록주의를기울이고몸과마음을쓰는”모든활동으로그범위를확장하여이해할것을제안한다.그리고삶과죽음의경계에있는신생아환자가무탈히이번생을마무리할수있도록끝까지보살피는것,공덕을쌓아이제막태어난아기와자신을보호하기위해육식을엄격히제한하는것,질병으로세상을떠난아내의영혼을위해제를올리며남은가족의안녕을비는것역시돌봄의실천으로제시된다.주어진상황에서끈질기게관계를만들고그로부터돌봄을이끌어내어떻게든존엄한삶을지키려는이모든분투는깊은울림을안긴다.태국의의료시스템도나름의한계를안고있으며,저자는태국을유토피아로이상화하거나우리가그대로따라야할모범답안으로제시하는것은아니다.그러나의료를상품의논리가아니라인간이라면누구나마땅히누려야할삶의조건으로이해하고그로부터출발해제도를확립,적용해나가는방식은한국사회가마주한위기를넘어설사회적상상력을제공할수있다.세상에태어나생의마지막에이르기까지인간은누구나돌봄을필요로한다.가장위태로운자리에서있는이들에게까지가닿는돌봄이이끄는곳은,결국희망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