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을사랑한건축가들,
그들이남긴또다른이야기
일그러진근대에서‘일그러진’건축가들을만나다
〈암살〉〈밀정〉〈경성스캔들〉〈모던보이〉같은일제강점기를다룬시대극에빠지지않고등장하는배경이있다.바로근대건축이다.일본은죽도록싫어하면서도미쓰코시백화점앞에서는입이딱벌어졌던사람들,암울한현실을비관하면서도경성역에서들려오는문명의소리에들떴던사람들,카페와살롱에서벌겋게상기된얼굴로서구를동경했던민족주의자들….이들에게식민지의근대건축은이상과현실,이성과감성의불협화음이요동치던장소였다.
경성의근대건축은한국전쟁과개발논리에따라대부분사라졌지만,서울시내를걷다보면고층건물사이로묘한분위기를자아내며남아있는몇몇건물은아직만날수있다.경교장,명동예술극장,딜쿠샤,중명전,간송미술관,덕수궁현대미술관,서울도서관같은건물이대표적이다.최근몇년간‘역사적의미’가깃든근대건축에대한관심은꾸준히증가했다.그관심에걸맞게건물보존에관한대중의의식도높아져자칫철거될위기에처했던근대건축이등록문화재로지정돼역사교육의장으로이용되는가하면,원래형태를일부보존하는형식으로리모델링해공공건물로사용하는사례도많아졌다.근대건축의가치가재평가되고있다는것을보여주는긍정적인현상이다.근대건축의‘역사성’은두가지의미를내포하고있다.하나는건물의‘역할’이고,다른하나는‘건물’그자체다.이책《경성의건축가들》은우리가재평가하고기억해야할후자의이야기,곧그‘건물’을설계하거나시공했던건축가들의이야기를담고있다.그중에서도동경제국대학을나와총독부에서근무한,당시건축계의실세이자주류였던일본인건축가들이아닌,조선인건축가와비주류외국인건축가들의삶을조명한다.일제가세운학교에서건축을배웠던조선인건축가들,또는꿈을좇아조선으로온외국인건축가들은수많은차별과편견속에서도실력을쌓아나갔다.결국일제강점기후반민족자본가의등장으로백화점,공장,학교,주택,병원,극장같은건물을자신만의색깔로설계하기에이른다.그러나그들은이상과현실사이의간극이라는또다른벽을마주한다.건축이라는이상과일제강점기라는암울한현실사이의간극을이들은어떻게줄여나갔을까?
친일논란에서도배제된건축가들,그들은단지‘짝퉁’을만드는‘B급’기술자들이었을까?
일제가세운경성고등공업학교건축과를나온조선인건축가들이취직한곳은대부분총독부나경성부청같은관청이었다.그들이그곳에서했던일은일제의지배와수탈을위한건물을짓는것이었다.부업으로했던설계도건축주가해방직후반민특위에회부된사람들의것이많았다.이쯤되면친일논란이일어날만하다.그런데도건축주만논란의대상이었을뿐건축가는별다른주목을받지않았다.사람들에게건축가는단지기술자로인식된탓이다.기술자는가치중립적존재라는단순한도식이작용한것이다.그러나그것은편견일뿐그시대건축가들도자신만의목소리를내며식민지라는현실과마주했다.잠시건축을내려놓고항일운동에뛰어든이들도있었고,민족과조국의이름으로일본을극복하기위해건축에매진한이들도있었으며,현실을뒤로하고자신의꿈을실현하기위해만주나미국혹은일본으로떠돈이들도있었다.
그들작품의색깔도다양했다.유행하던모더니즘건축만을지향했던사람,옛것과새것을조화시키려했던사람,전통의정통성을어떻게든살려보고자노력했던사람….친일혹은저항이라는이분법적꼭짓점이아닌그사이의무수한회색지대를살았던사람들처럼그시대건축가들도타협과저항,동경과콤플렉스사이에서갈등하고싸우고변화하고좌절했다.일제가급하게모방했던서구건축을흉내만내는이른바‘짝퉁의짝퉁’을만든‘B급’기술자들이아니었다.
대한민국건축1세대들의자취를따라서
조선인최초로총독부건축기사가되었고,역시조선인최초로종로구에건축사무소를연박길룡,3ㆍ1운동에연루되어만주를떠돌다돌아와이후고려대학교여러건물군을남긴박동진,보리스건축사무소경성출장소일원으로교회,학교,병원,YMCA,복지시설같은선교관련건축을주로맡아진행했던강윤,조선인최초로미국에서정규건축교육을받은박인준,최고의구조계산전문가로서미쓰코시백화점,화신백화점,조지아백화점,경성제국대학본관들을구조계산한것으로알려진김세연,해방과전쟁이라는공백기에후배건축가들이모일수있는조직을세우는등보다큰틀에서역할을수행한김윤기,만주의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입사해일본인과함께다롄역사,신징역사,투먼철도공장들의설계와감독에참여한이천승,총독부내무국건축과기사로근무하면서문학에눈을뜬이상,우리말건축용어정리에평생을바친장기인,그리고한국에서새로운삶을연나카무라요시헤이,다마타기쓰지,오스미야지로,개신교건축선교사윌리엄보리스….
이책에등장하는이들은그나마자료가있어이야깃거리를남긴사람들이다.자료가없어서아예잊힌사람도많다.지은이김소연은시대를풍미했던혹은그러지못하고안타깝게저물었던이들의삶과그들이남긴건축물이라는유산을이제한번쯤되돌아볼때가되었다고말한다.아울러그들을통해그시대의또다른이야기들을알게된다면,개발에대한관점과건물의보존방식그리고언젠가역사가될이시대건축가들에대한관심과애정이조금은달라질수있지않을까하는희망을갖는다.
[책속으로추가]
경교장의원래이름은죽첨장(竹添莊)이었다.죽첨은일본말로다케조에(竹添)다.갑신정변때일본공사다케조에신이치로(竹添進一ㆍ,1842~1917)가그부근에살았는데,일제는그를기념하기위해그일대를다케조에마치(竹添町,죽첨정)라불렀다.
1938년7월죽첨정에서양고전주의양식으로지은대저택이준공되었다.죽첨정1정목1번지에들어선저택은죽첨장이라불렸다.지하1층지상2층규모의저택은정면이3분할된좌우대칭형이었다.정면현관포치의크기만봐도일반주택은아니었다.1층좌우에튀어나온원형창과2층중앙에들어간아치창은자칫밋밋할수있는입면에요철의깊이감을줬다.가운데돌출된지붕창도단조로움을덜어냈다.내부공간은훨씬호화로웠다.샹들리에가있는응접실과식당,당구실과전용이발실,썬룸에냉난방장치까지보통사람들은듣도보도못한시설이었다.
건축주최창학은일제강점기조선인최대의광업자였고‘광산왕’으로통했다.최창학은백만장자도아닌천만장자답게각종친일단체에가담했으며헌금규모도남달랐다.죽첨장은돈냄새,권력냄새를풍기는사람들이드나드는접대용건물이었다.〈조선과건축〉에는설계시공자가일본건설회사오바야시구미(大林組)로기록되었다.그러나실제로설계한사람은조선인건축가김세연이었다.
_100-101쪽
이천승은1950년대서울시도시계획과1960년대남서울도시계획을입안했다.1950년에는국회전문위원으로위촉되어건축법,건축사법,도시계획법초안을만들어건설관련법의기초를마련했다.1953년에는경성고공후배인김정수와‘종합건축연구소’를설립했다.‘종합’이란이름처럼건축계획,설계,구조,전기,설비,도시계획분야를종합적인시스템으로운영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