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의특징은
-이책은서울의역사를다룬해외연구서로서는단연독보적인학문적경지를개척하고있으며,20세기한국사를다룬해외한국학저서들중에서도단연빼어난학술적성취를달성하고있다.이책은한국근현대사연구자뿐만아니라서울학이나한국학의협소한범위를넘어서근현대일본이나동아시아의사회·문화사나도시·지역사연구자에게도큰지적자극을주고도움이될것이다.무엇보다도이책은다년간국내외학계뿐만아니라사회적으로도뜨거운이슈가되어온‘식민지근대’문제를재조명하는독창적인시각을제공하고있어,연구자들은물론양식있는일반독자들의지적욕구를충족시키고역사의식을고양시킬것이다.
-이책에서는‘무단통치-문화통치-병참기지화(또는황민화)’로이어지는통념적인정치사적시기구분을깨고,1920년대중반을중요한분기점으로설정하는도시사혹은사회·문화사적관점에서새로운시기구분법을도입하고있다.따라서이책에서는1910년에서1925년까지,1925년에서1937년까지,그리고1937년에서1945년까지등이세시기를경성의공공공간을탐사하는시간적좌표로설정하고있다.
-이책의주된연구대상은‘정책’이나추상적인‘제도’가아니라도시민들의삶이펼쳐지는길거리,전시장,마을,집안과같은일상생활의현장,즉‘살아있는공간’이다.특히저자는식민지시기에지배권력의동화주의프로젝트에의해여러가지형태의공공공간이새롭게출현했으며,그공간에서다양한도시적주체들이마주치고뒤섞이는‘접촉지대(contactzone)’가형성되었다는점에주목하여,이러한공공공간에서벌어진‘접촉’의구체적양상을분석하고있다.이를통해저자는‘침울했던민족사의암흑기’,‘일제의억압과수탈’,‘친일과반일의유혈적드라마’로통념화되어있는지배와피지배의식민지시기역사적서사를,각양각색의인생군상들이빚어내는예측불가의왁자지껄한스펙터클로그려낸다.따라서이책에서는총독부당국자들,재경성일본인유력자들,친일파조선인들,민족주의지식인들,잇속에밝은각종장사치들과모리배들로부터게이샤와기생들,샐러리맨과소시민들,학생들,빈민들,고아들,소매치기와날품팔이꾼등이비중있게등장한다.저자는이다양한주체들을적재적소에배치하고,이들이애써의식적으로연출한표면적행태의이면에감춰진그들의주관적체험과내면정서까지포착해내고있어,역사연구서의성격과한계를훌쩍뛰어넘어역사교양서의흥미로운시각에서스토리텔링이발휘되고있다.
-이책에서는식민지동화프로젝트라는하향식일방통행정책이결코의도대로관철되지않았음을보여준다.동화프로젝트에의해창출된공공공간에서이루어진실제양상은제각기다른속셈과아비투스를지닌각계각층의다양한주체들이속고속이는역동적인한편의다중상황극을연출하고있는데,이는식민지동화주의정책이그구체적인실행에있어서는대개예상치못한암초에부딪혀차질을빚을수밖에없었고,따라서‘식민지통치성’은한계에직면하고있었다는것을실감나게입중하고있다.
-이책은광복이후‘반공’과‘반일’을국시로하여등장한대한민국정부가그들의통치이념을현대서울의도시공간에새겨넣는과정에서벌인(그중일부는여전히진행형인)국가주의적프로젝트들이과연일본식민주의자들이‘한양’을‘경성’으로탈바꿈시키기위해저지른‘만행’과얼마나다른것인지,혹은얼마나닮은것인지성찰할것을요청하고있다.지난세기한반도가경험한격동과풍파의역사에대한통찰력을바탕으로그것이현대서울에무엇을남겼는가하는심대하고도복합적인질문을제기하고있는것이다.물론이러한탈식민주의적문제제기가새로운것은아닐수있지만글로벌초거대도시로성장한현대서울의심장부에도사리고있는유형·무형의‘식민지유산’의문제를예리하게겨냥하여,친일과반일,식민지수탈론과근대화론과같은익숙한선악이분법적역사관을뒤흔들고있다.
이책의구성과내용은
<제1부경성건설하기:식민지수도의불균등한공간>에서는조선총독부가어떻게한양/황성이라는왕도(王都)/제도(帝都)를일본의식민지수도로전환시켜갔는지그궤적을추적한다.초기식민지계획자들은대한제국시기(1897∼1910)지도자들에의해추진되었던근래의변화를무시하고,메이지일본(1868∼1912)에서끌어온도시개혁이라는자신들나름의재공간화프로그램을추구했다.하지만사람과상품의순환을용이하게하려고도로를격자로만들고로터리를설치하려는그들의시도는이도시의원래동맥구조에서그저작은부분만을바꿨을뿐이다.이러한시구개정(市區改正)의시도는‘공익’의추구라고치장되었지만토지몰수라는손이많이가는정책을필요로했으며,공덕심을지닌주민들의공동체를만들려는일련의노력을깎아내렸다.제1장후반부는1920년대중반부터1930년대초반까지의도시계획운동이토지구획정리와수익자부담금과같은최신방법을도입하는한편,조선인거주자와같은새로운대상에주목하면서어떻게도시계획의범위를넓혀갔는지를검토한다.하지만재정적인제약과계속되는저항으로인해경성은고도로불균등한방식의발전을지속할수밖에없었으며,순환과위생이라는근대적논리또한이도시의주요간선도로만을관통하는데그쳤다.다른식민도시들과마찬가지로이들간선도로는조선총독부의과잉된주권적권력을구현하게되었는데,이는특히태평로를따라늘어선건축양식들을통해잘드러난다.
<제2부정신적동화:남산의신사와제전>에서는신토신사와이들의문화적활동이천황가에대한충성의감정을주입하는데어떻게사용되었는지를살펴본다.최근까지도식민지신사연구자들은1937년의신사참배강요가그이전시기에도특징적이었다고가정하는경향이강했다.그러나이책에서는이런전시(戰時)현상에대해서,식민지신토의내적모순들을이용하려는사회적행위자와문화적대행자들사이에갈등과경쟁이이전부터광범위하게전개되어왔으며,그역사로부터파생된것이라고본다.특히정신적동화프로젝트가1925년조선신궁이건립되기이전경성의유일한신사건축이었던경성신사의일본인관리자들이고안한잠정적인조치에서시작된것임을보여주는데,이들이이런조치를마련한것은총독부의동화주의레토릭을따라서라기보다는이들의제전(祭典)에서식민지사람들을배제하려는의도가컸음이드러난다.1925년이후에야식민지인주민들은참배를위해조선신궁을방문했다.하지만많은조선인들은여전히숭배의장소보다는관광의장소정도로취급했다.제2장후반부는신사에대한이와같은색다른관행이,갈수록경쟁적으로되어가는신토정치의분위기를어떻게반영하게되는지밝혀낸다.총독부가어떻게규모가작은경성신사의대체물로남산위쪽에매머드급신사인조선신궁을설치했는지를묘사함으로써,이두드러진전환을설명한다.경성신사의일본인지도자들은자신들의권위에대한이와같은유례없는도전에맞서,종속적인조선인들을자신들의제전에훨씬더빈번하면서도훨씬더선별적으로포섭하기시작했다.이것은식민국가에대해자신들의권력을유지ㆍ강화시키는것을목적으로하는몇가지새로운전략들중하나였다.이처럼신토신사들이식민화된주체들을일본혼의이상화된형식을구현하도록이끌었다.
<제3장물질적동화:경복궁과식민지박람회>에서는옛경복궁터(조선총독부건물이신축된터이자두차례의중요한박람회가개최된장소)를통해‘물질적동화’를검토한다.‘물질적동화’라는용어를통해식민지관료들이제국일본의내부에서조선경제의불균등한발전을추진하는과정을보여준다.정기적으로개최되는박람회는조선인방문자와일본인관광객들에게근대적‘진보’를드러내보일뿐아니라,근면,성실,검소와같은부수적인윤리를이들에게심어주는데에도중심역할을했다.가령1915년의박람회에서주최자들은서구건축물과기계라는보편적인표현양식을통해근면성의이미지를고취시켰는데,이들서구건축물과기계는‘시대착오적’인궁궐의공터와신중하게병치됨으로써강력한발전의상징으로작용했다.물론일부교육받은조선인들은이런근대화의비전을제대로읽어내고조심스레수용할수있었지만,엘리트가아닌이들중에서는박람회를오락과상업의흥미로운세계와결부시키려는경향이훨씬더강했다.1929년대공황기간에개최된조선박람회는원래는조선총독부시정(施政)15주년을기념해서1925년에열릴계획이었던행사였는데,식민지의발전상을전시하여관객들에게감명을주려는의도가강했다.동시에주최자들은한반도의발전이제국의경제내부에서보다제대로자리매김되기를바랐으며,이를범아시아블록과같은자급자족적형태로생각하려는패턴은1930년대를거치면서서서히형성되었다.부분적으로는식민모국에서온일본인관광객을매혹시키려는목적으로디자인되었던이1929년박람회의하이라이트는행사장중앙대로를따라늘어선전시홀들이,이를만든건축가들이‘순수조선스타일’이라고부르길좋아했던양식으로만들어졌다는사실이다.궁궐과흡사하게만들어진이러한구조물들은새로운동서(東西)의축을만들어냈는데,이축은남북방향이었던궁궐의원래공간성을바꾸어버렸다.이처럼뻔뻔스러운경복궁의재공간화와모조품미학의재창조는이를식민지폭력이자문화통치의책략이라고규탄했던민족주의논자들이거세게비판했다.이들의날카로운비평에따르면,이런‘조선스타일’을수긍하려는움직임은부의분배에관한차별적논리를은폐하고있는데,사실이것은일본인실업가들과결탁한조선총독부가지휘ㆍ조율하고있다는것이다.조선박람회는농촌의가난한조선인들에게이처럼큰비용이드는기념행사에참여하도록설득하고심지어강요하기도했으며,이는식민주의의빈곤화효과를악화시킬따름이었다.산업박람회가이들에게식민지적진보의착취적논리를받아들이도록북돋우었다.
<제4장공중적동화:주민생활의청결과위생>에서는경성주민들의삶에주목하면서,계절별정화(淨化)및기타지역캠페인들이개인신체의건강을어떻게보다큰공동체의건강과연결시키려고지향했는지살펴본다.특히위생규칙과관련한경찰의단속활동과값비싼서양의학처방및그것의환영받기어려운결과에대한대중적저항이초기경성(1910∼1915)에서공중위생이성공적인체계로정착하는것을가로막는장벽으로작용했다.일본인식자층들은한때경성을조선의“똥의수도”라고경멸했는데,실제로경성은1920년대후반부에서1930년대초반사이제국의“병든도시”라는수치스런명성을떠맡고있었다.당시의의학리포트를통해지금도확인할수있듯이,재조선일본인들은이른바‘비위생적인’조선인들보다도훨씬더전염병발병률이높았으며,치사율도훨씬높았다.또한이장에서는위생적근대성을둘러싸고일본인식민주의자들과조선인민족주의자들이경합하면서추진된의제들이어떻게도시위생과공중복리라는정치적으로비난받는문제와더불어수렴하게되는지보여준다.식민주의자와민족주의자어느쪽의캠페인도이병든도시를치유하는데성공하지못했지만,그들의노력은서로결합하여경성의거주민들을가로질러권력의그물망을더넓게펼치는데기여했다.그리고하층민들조차도이값비싼그물망에서완전히벗어나기란불가능했다.
<제5장황국신민화:전시체제기도시공간의재편>에서는태평양전쟁(1937∼1945)의개시와더불어이처럼서로달랐던동화의프로젝트들과장소들이한데뭉쳐지면서이도시의공간성에서유래없는순간을낳게되는것을보여준다.특히천황가에의충성을확인하려는새로운압력들은공공공간의사용에있어서중요한변화를이끌어내며,‘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전시목표를추진할수있는새로운공간을창출했다.예컨대갈수록군사화되어가던남산신토신사의엄숙한공간적영역은가미다나(神棚.집안에두는작은신사)를설치하고이세신궁의부적(符籍)을보급함으로써조선인가정으로침투해들어갔다.이러한수단들은물론완벽하게성공하지는못했지만,조선인들이천황이주도하는전쟁에더욱강력하게일체감을갖도록강요했다.1940년의기념행사는일본국탄생2600주년을축하하기위한무대이기도했는데,조선인들을고취시켜이들대다수가후방에남아있더라도태평양전쟁의적극적인참여자가될것을독려했다.이러한목적을달성하기위해이루어진성화(聖火)봉송이나대경성박람회같은이벤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