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눈부시기 (서윤후 시집 | 반양장)

나쁘게 눈부시기 (서윤후 시집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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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끊어질 각오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은 어때?”

흘러가는 시간과 사라지는 것들
기억의 파편으로 빚어낸 서늘한 아름다움
존재의 균열을 끌어안는 서윤후의 다섯번째 시집
2009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예민한 감수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시, 에세이, 그림시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온 서윤후 시인이 전작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문학동네, 2021)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2018년 “낯선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세대적 감각을 드러낸다”(심사위원 김기택·고봉준·김윤정)는 평을 받으며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랑보다 상처를 앞서 배운 소년의 복잡한 내면, 죽음을 앞둔 노인이 보낸 여름 해변에서의 자취, 일상과 관념을 오가며 선보인 묵직한 통찰, 슬픔과 공존하며 타인을 보살피는 다정을 그린 네 권의 시집을 차례로 내놓았던 시인은 다섯번째 시집인 『나쁘게 눈부시기』에 이르러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유실된 ‘나’로부터 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며 서늘한 아름다움을 도출한다. “자신이 공간화한 기억의 안과 밖을, 그리고 그 경계에 놓인 자신을 조감함”(문학평론가 송현지)으로써 시간의 흐름이 품은 존재의 상실과 새로운 차원의 복원을 기록한 총 51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묶었다.
저자

서윤후

저자:서윤후
2009년『현대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어느누구의모든동생』『휴가저택』『소소소(小小小)』『무한한밤홀로미러볼켜네』등이있다.박인환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햇빛이모두에게좋은게아니라면
근하신년
흑백판화
미도착
조용히분노하기
무늬는조금더걷고싶어해
나빠지길기다린다
이야기의괴로움
독화살개구리
사프란
햇빛램프
하엽시간
파본

2부즐거운난기류
고독지옥(孤獨地獄)
그다지슬프지않은
겟세마네
들불차기
물길빈티지
유리가미
대공황
사랑의천재
블랙아웃

3부아무도없는우리
아무도없는우리
아무도없는우리
겨울의연인에겐간단한언어가있다
견본생활
체크인
겨울밀화
오토리버스
여름테제
망아와유과
Glitter
얼어붙는포옹들
님만해민
사랑이보이지않는시대의연인들
커다란얼굴로부터
우연과재회
하록수림

4부여긴따뜻한이야기가망쳐버린혹한이었지
킨츠기교실
유리문진
여진속으로
비산화
귤창고
만년작
[tsu]
시립수영장
흑설(黑雪)
그라운드제로
영과거품
나이트글로우
무조(撫棗)
비로소함께할것

해설
우리들의킨츠기교실·송현지

출판사 서평

“끊어질각오로다시태어나는기분은어때?”

흘러가는시간과사라지는것들
기억의파편으로빚어낸서늘한아름다움
존재의균열을끌어안는서윤후의다섯번째시집

2009년『현대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해예민한감수성과자유로운상상력으로평단과독자의주목을한몸에받으며시,에세이,그림시등다양한장르를소화해온서윤후시인이전작『무한한밤홀로미러볼켜네』(문학동네,2021)이후4년만에펴내는다섯번째시집이다.시인은2018년“낯선이미지들의병치를통해세대적감각을드러낸다”(심사위원김기택·고봉준·김윤정)는평을받으며제19회박인환문학상을수상한바있다.사랑보다상처를앞서배운소년의복잡한내면,죽음을앞둔노인이보낸여름해변에서의자취,일상과관념을오가며선보인묵직한통찰,슬픔과공존하며타인을보살피는다정을그린네권의시집을차례로내놓았던시인은다섯번째시집인『나쁘게눈부시기』에이르러흘러가는시간속에서유실된‘나’로부터공동체의가능성을확인하며서늘한아름다움을도출한다.“자신이공간화한기억의안과밖을,그리고그경계에놓인자신을조감함”(문학평론가송현지)으로써시간의흐름이품은존재의상실과새로운차원의복원을기록한총51편의시를4부로나누어묶었다.

더이상기억을보존하는것혹은특정기억의상실을바라는것자체에만관심을기울이는‘나’는여기에없다.그대신이제우리가마주하는것은기억을현재의것으로변환하려는새로운‘나’의모습이다.
―송현지,해설「우리들의킨츠기교실」에서

아름답고쓸쓸한고독의입장
사람들과빛이한데흘러가는풍경의보온

불행이스스로갖춰입은어둠을눈부시게바라보는사람도있으니까
이야기마저버리고간이야기는누가들을까
나는어디에묻은얼룩이라지워지지도않고
희박해지는풍경속을헤매고있을까
―「조용히분노하기」부분

햇빛이관념적으로연상시키는것들을떠올려보자.밝음,따뜻함,회복,희망,진리.그러나이를반박하듯시인은“햇빛이모두에게좋은게아니라면”이라는가정을달고1부를연다.서윤후의시는막연한다정을지운채나를움직이는아름다움이품은‘치명’을이해함으로써세계를재조직한다.과거에펴낸시집에서시인은소년과노인화자를통해시간을일주하고상처의속살을열거나굳히며성숙해왔다.마침내현재시점에서존재의변형없이,지나온어둠을반추하는그의눈에들어온풍경은어떠한가.시인은아름다워서눈부신동시에현상을직시할수없게만드는빛의속성을감지한다.“손전등을가지고있었지만/가볼만한어둠이없”어서“여전히밝은쪽에서있”는‘나’의“두눈을향해”스스로“겨누어”보는빛.“숨길수록커지는”“숨을곳이의외로많”(「흑백판화」)은세계는다시금지울수없는의심에서출발한긴여정속에있다.
「나빠지길기다린다」에서“내가아는이야기를/모두가다알고있을것같다고생각하던날”,‘나’의비밀이자시원(始原)인이야기들이절대적으로희소한무엇이아님을알게된때의미묘한절망.그러나심상한일상의풍경속에서“계속만들어지”는균형이있다.“여기저기출렁이면서”“부러진일순간을잡아주”는“세상의부목”을시인은놓치지않는다.“교회전단지”와함께나눠받은“자일리톨캔디”를입에물고믿음마저몰래반으로접었던시의화자가끝내마주한것은“자일리톨캔디를입에물고/반으로접은”“종이비행기날리며노는아이들”이다.그렇게서윤후의시는절망이후에마주한유희의발견으로“왔던길을다시또박또박걸어”간다.“갈곳이없어오래걷기로”“맑은물이담긴눈동자를흘리지않으려”,화자는존재의구멍으로쏟아지는햇빛을받으며찡그린얼굴로“가도가도끝이없는시원한땅속을걷는다”(「독화살개구리」).“풍경을점거하기위해”“외우고있던창문을모두깨뜨”(「하엽시간」)린다.
이러한깨어짐으로,서윤후는먼길을돌아왔으나여전히불가해한시의전면에새로이선다.2부의제목에서보듯“즐거운난기류”에부딪친아이들의종이비행기를좇아,스스로들불을기다리는들판이되어“내가한번더사랑한것들”“나를한번더죽이는것들”(「그다지슬프지않은」)을노래하는동안“이야기가익어”간다.“비밀은넓어질수록편안해지는법”(「겟세마네」)이라는깨달음은‘나’로한정된세계의바깥으로독자의시선을돌리고,“들꽃”처럼표표히흔들리는시상(詩想)으로강렬한아름다움을발산한다.

흘러가는시간속에서잃어버린수많은‘나’
기억의재생으로그려낸단한사람

방패연나비연가오리연반달연삼동치마연……그사이로
나의연이창백하게펄럭인다
주름을당기며
기다린시간만큼실은물레에감겨있어

바람을기다린다

중심을갖지않으려고
끊어질각오로다시태어나는기분은어때?
―「유리가미」부분

간절히기다리지만“한꺼번에오지않는일”그리하여“나의슬픔을아껴주”(「물길빈티지」)는시적질료는“내기억의뒤뜰에모여”“연을날리”는사람들이쥐고있고,형상화된그들의유희는묵묵히관찰하는시인의눈을통해“깨끗한습자지한장”(「유리가미」)위에씌어진다.“깨진것중가장날카로운유리가미(‘가미’는연싸움을할때실에입히는유리혹은사기가루를가리킨다)를”골라절망에맞서는화자의태도는깊은울림을준다.“끊어진연을주우러또올”지모를사람들을기대하며서윤후시의화자는영혼의뒤뜰에제몫의연을들고서있다.온힘을다해“끊어질각오로”,기다림을다시기다림으로이으며.
이야기가말라버린자리에서고독이피워올린기억들은잃어버린아이(였던‘나’)를찾아내고,풍경에스며있던사람들을찾아낸다.시간이은폐한‘비어있는숲’을거닐며서윤후시의화자는아마도생명의새로운시작이자꽃눈일“가장뾰족한것을”찾아“쏟아지는햇빛”과싸운다.자리에“오롯이멎”어“시간을완성”한다.시인은짧은여름과긴겨울을보내는냉온대에서우거지고시드는하록수림처럼웅장한윤곽을그리며“한여름에도입김을꿈꾸는혼잣말이나겨울에도끝나지않는목마름”(「하록수림」)으로시의부재를메워간다.3부의제목인“아무도없는우리”는시절마다아로새겨진무수한‘나’의총칭이라읽어도좋을것이다.그러나“너와나는가야할길이다르”므로,만나고헤어지는사이에‘정전’을겪으며,더는‘우리’로움직일수없는서로의행위를견딘다.그렇게“우리가없어도계속재생되는것들”(「아무도없는우리」,p.63)속에서“우리가살아내고있는단한사람”을향해나아간다.다시만나리라는기약도없이,수많은‘나’를상실한상태에서“약속의묘지”(「오토리버스」)인세계를껴안는다.슬픔의“바닥을겪고”「아무도없는우리」,p.66)더높은비상을꿈꾸며,이시집의이야기는“다른이야기로번져나”(「오토리버스」)간다.
4부의첫시「킨츠기교실」에서깨진접시를“붙여메우는”공예기법인킨츠기는시집전체를아우르는강력한상징으로등장한다.시인이집요하게추적해온뒤엉킨‘나’들의곁에서같은하늘을공유한사람들.“녹차밭언덕에누워있는”자신의캐릭터를그리고“비웃지마.내가스스로넘어진거야!”라낙서한선생의수업은오랜기다림끝에마음의산산조각을이어붙인자만이취할수있는쓰라린유머를담고있다.앞서1부에서교회전단지로아이들이접어날린종이비행기는,정교한공예로재탄생시킨깨진접시를빗댄“영원히날고있는비행접시”와조응하며시인이올려다본하늘에떠있다.이긴여정의출발은‘혼자’였지만대단원에이르러‘함께’로이어진다.시절마다떨어뜨리고온‘나’들을기억속에서한눈에알아보는서윤후시의화자는,나아가‘선생’처럼균열을품은존재들을알아보고“빛이도착하지않는”(「나이트글로우)곳에서그들과이마를맞댄다.어둠속에서서로의이마가충돌할때비로소번쩍이는빛.흉터를드러내는킨츠기의‘아름다움’에대한정의와“이어붙인대로다시깨질수있”(「킨츠기교실」)는접시의운명은절박해서더욱빛난다.
시집의해설을맡은송현지의말처럼,“여러‘나’들의합으로이루어진‘서윤후식우리’는사라졌지만,같은문제를고민하며앞으로나아가려는이들이모여만들어진새로운‘우리’를시인은내보인다”.‘우리’에게는제각각의몸짓으로뒤엉켜함께“끄덕여온”(「대공황」)시간이있다.“앉아있던자리에돌을올려두고떠나면”“더크고무거운돌을올려놓”(「유리문진」)는누군가처럼,홀로인존재에노크하는사물과타인이수많은‘함께’를이루며(「비로소함께할것」)“새로운기다림을”(「귤창고」)연다.“날씨와시간을잃”(「만년작」)어도“겨우다시제자리로돌아오는일을하려고가라앉지않”(「시립수영장」)을것이다.“가파른언덕”([tsu])을가르며순응하지않음으로써침묵하지않음으로써새로이씌어진서윤후의시는나쁘게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