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서동욱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유물론 (서동욱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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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만질 수 없는 영혼 대신 단단한 존재들을,
다가올 미래 대신 눈앞의 순간들을 응시하기
시인이자 철학자로서 깊은 사유와 이를 담아낼 적확한 언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서동욱의 네 번째 시집 『유물론』이 민음의 시 330번으로 출간되었다. 사랑과 종말이라는 시제를 우주적 존재들과 결합시켰던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이나, 철학자 스피노자가 등장하여 시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던 『곡면의 힘』 등 철학적 주제를 시적 언어로 사유하던 전작들로부터, 시인은 좀 더 삶의 현장과 가까운 공간으로 이동하였다. 『유물론』의 화자는 일상적인 공간들, 즉 서재, 결혼식, 놀이공원, 병원, 수영장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러하듯, 공간마다 마땅히 해내야 할 일들을 한다.
서동욱의 시는 치열한 삶의 공간과 그 안의 인물들로부터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감각을 길어내는 대신 외로움과 일그러짐의 순간, 지리멸렬함과 슬픔의 순간을 포착한다. “시인의 말하기는 태초의 신의 말을 흉내내 사물에 이름을 붙이려는, 하나의 보기 좋은 세계를 일으키려는 행위가 아니다. 시는 불타는 플라스틱의 나쁜 냄새나 검은 연기처럼 구불거리며 움직인다.”는 시인의 시론처럼 『유물론』은 삶의 구석진 곳에 불을 밝힌다. 우리가 목격할 수 있도록, 시를 경유하여 다시 한번 사유할 수 있도록.
저자

서동욱

저자:서동욱
1995년《세계의문학》으로등단하였으며시집『랭보가시쓰기를그만둔날』『우주전쟁중에첫사랑』『곡면의힘』이있다.

목차


서재에서빗소리9
홀로그램10
호르몬12
일요일14
고아17
해열제18
자연20
충실한삶의어느순간22
뇌의행복24
하나의세계26
칼로리28
유의미30
풍림각32
북미34
나라비36
가스전기수도38
국가의리부트40
산책42
빛44
개들에게지구를주다46
캔맥주47
우유48
사랑50
꽃집양동이속의구세사52
여름서정54
내복55
무용,생명의새디자인58
평화의야채59
족보의독해60
풀밭위의식사62
여행63
인간의구조64
초겨울67
빛의박해자68
이성의거짓말70
애인71
중심72
새벽에73
초여름74
정원75
한해의마지막저녁76
밤이물고있는보석79
병원밥80
제갈량이죽은나이를지나며82
유물론84

시론85

출판사 서평

섣불리이다음을약속하지않는시

영혼은고독한물질이다
몸이죽은뒤잠깐어리둥절한시간
기회가된다면소멸을자각할것이다
눈도귀도사라져아무것도보이지도들리지도않고
모양도없이그저존재한다

(……)

이생을어디로도넘길수없다
사라지는모든것을여기서붙잡아야한다
죽어가는자들의지혜가시작될수있다면
여기서부터
-「유물론」에서

시집『유물론』은생생히살아있는동안의이삶구석구석을비춘다.시라는장르와유구한세월동안친밀한관계를맺어온‘영혼’이라는존재는서동욱의시안에서는“그저없는것”이된다.영혼에게는맛을느낄혀도,불로그슬려타버릴피부도,추억을간직하고있을만한지성도없기때문이다.화자의삶을구성하는면면들은오직현재에속하므로,지금치열하게목격하고느끼고붙잡지못한다면영영대상에대한감각이불가능하리라는사실을시인은이미알고있다.시인은섣불리이다음을약속하지않는다.눈앞을둘러싼현상에최선을다하고그것을시적언어로치열하게벼려말하는일이바로시가해야할일이라는듯,현상의변화와뒤섞임을예리하게관찰하여전달할언어를개발하는일이시인이짊어질책무라는듯.『유물론』은이토록강한생명력으로우리의손안에서펼쳐지기를기다리고있다.

충실한삶

삶에충실하자고
강아지는공을쫓아달리고
까치는떨어진반지를물고달아난다
삶에충실하자고
에이에게비도양보했는데
내삶은과연잘될까?
요즘읽은기사중가장부러운게
잉글랜드목초지에서로마시대금화를주운농부였는데
금화를주웠을경우
어디로가지?경찰서에가져가면
순경들이아이스크림사먹는다고
집에피아노배우러오는초등학생들이얘기해주었다
그들은아주열심히귀띔해주었는데
아,쓸데없이이야기를옮기며삶에충실하지못했구나
어른이되면씁쓰레할것이다
-「충실한삶의어느순간」에서

“시쓰기는결코바벨이전의최초의말,사물의본질을간직한말,신의숨소리로거슬러올라가는순수한말을찾아헤매는모험이아니다.그것은오히려변동하는상품가격속에서절망하며매번다른답을찾는주부의장보기같은것이다.”시인서동욱은시집말미에쓴「시론」에서이렇게밝힌다.언어의본질에다다르고자노력하는일보다는오늘을살아내고자하는치열한고민이보다더시에가깝다고말하는시인의선언은낯설고도단단하다.『유물론』에는빛이사위는순간무릎위에서곤히잠든아기의모습이있다.공실이된상점하나를가만히바라보는화자도있으며,바람이불자칭얼거리듯휘날리는내복빨래도있다.이토록충실한삶의모습들을읽어내려가며우리는어느새시의한장면이되어있는우리의생을발견할수있을것이다.삶을시에복무시키기보단시를삶에스미도록만들며『유물론』은어느새독자들의곁에스르르다가가있을테다.

「시론」에서
시작(詩作)은,어떤것이든주어진언어를깨트리고언어를생성하는창조행위다.시인은어머니대지의흙이아니라그냥시멘트에던져진씨앗이소리를내며구르듯글을쓸뿐이고,그러니시쓰기는시작(始作)부터가죽음인이상한창조행위다.당연히이런시인의말하기는태초의신의말을흉내내사물에이름을붙이려는,하나의보기좋은세계를일으키려는행위가아니다.시는불타는플라스틱의나쁜냄새나검은연기처럼구불거리며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