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노장 시인의 ‘천년 시름’ 끝에 보여주는 서정시의 극치”
노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모든 예술인의 마지막 소망이 아닐까. 그 반증이 노령에 이르게 되면 좋은 작품은커녕 생산이 꾸준히 이루어지는 사례조차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어느 예술 부문이든 노령의 생산력 저하는 자연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노령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을 넘어서서 노익장을 구사하는 예술인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정춘 시인이 아닐까. 80대 중반에 이른 시인은 여전히 고도로 응축된 순도 높은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춘 시인이 제7시집 〈랑〉을 펴냈다. 시집에는 어떤 곁들인 글도 없이 시 3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들은 대부분 10행 미만의 짧은 시들이다. 시도 짧을뿐더러 수록 편 수가 평균적 시집의 절반가량이다. 시인은 시집 권두의 ‘시인의 말’에서 “아하, 누군가가 말했듯이 / 나도 “시간보다 재능이 모자라 더 짧게는 못 썼소.””라고 한다. 이전 시집 〈이슬에 사무치다〉의 ‘시인의 말’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반복을 통해 말하고 있는 바는, 자신의 시는 더 이상 응축할 수가 없다는 것일 게다. 언설을 뒤로하고 시를 보자.
“랑은/이음새가 좋은 말/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사랑하기 좋은 말”(「랑」, 전문)
시집의 표제시 〈랑〉이다. “이음새가 좋은 말”이라는 것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 주는 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만나서 사랑하”게 하는 잇고 엮어주는 말 ‘랑’. 우리가 늘 사용하는 조사 하나에서 놀라운 세계를 펼쳐내는 노익장의 경지다. 계속 시를 보자.
“〈피아노랑〉은 피아니스트 박지나 님이 서정춘의 시 「랑」에서 영감을 얻어 여러 또랑물 소리를 모시고 연주 동아리 이름을 지은 거다//정녕, 랑은 이음새가 긴 온음표 같은 것”(「피아노랑」, 전문)
‘랑’은 이렇게 ‘너랑 나랑’을 넘어서 세계를 계속해서 이어주고 확장시키며 온전하게 만드는 접속 조사의 힘을 발휘한다.
시인이 노령에도 여전히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소망이라면, 독자의 소망 가운데 하나는 노시인의 절창을 듣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시인이랑 독자랑’ 함께 ‘또랑물 소리’로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시집 〈랑〉에서의 만남이라고 해도 좋겠다.
시인이 첫 시집에서 “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죽편 1」)고 했는데 이번 시집 〈랑〉에서는 “이승살이 끝난 뒤 그 집 찾아 들어가/도로 아미타불 빈털터리 목탁도 때리며/대나무 나이로 한 백 살 가까이 살아볼 거”(「未生」)라고 말한다. 대꽃 피는 마을까지 시인과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거기서부터 다시 백년의 시를 시인은 쓰고 우리는 읽게 될 것이다.
서정춘 시인이 제7시집 〈랑〉을 펴냈다. 시집에는 어떤 곁들인 글도 없이 시 3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들은 대부분 10행 미만의 짧은 시들이다. 시도 짧을뿐더러 수록 편 수가 평균적 시집의 절반가량이다. 시인은 시집 권두의 ‘시인의 말’에서 “아하, 누군가가 말했듯이 / 나도 “시간보다 재능이 모자라 더 짧게는 못 썼소.””라고 한다. 이전 시집 〈이슬에 사무치다〉의 ‘시인의 말’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반복을 통해 말하고 있는 바는, 자신의 시는 더 이상 응축할 수가 없다는 것일 게다. 언설을 뒤로하고 시를 보자.
“랑은/이음새가 좋은 말/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사랑하기 좋은 말”(「랑」, 전문)
시집의 표제시 〈랑〉이다. “이음새가 좋은 말”이라는 것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 주는 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만나서 사랑하”게 하는 잇고 엮어주는 말 ‘랑’. 우리가 늘 사용하는 조사 하나에서 놀라운 세계를 펼쳐내는 노익장의 경지다. 계속 시를 보자.
“〈피아노랑〉은 피아니스트 박지나 님이 서정춘의 시 「랑」에서 영감을 얻어 여러 또랑물 소리를 모시고 연주 동아리 이름을 지은 거다//정녕, 랑은 이음새가 긴 온음표 같은 것”(「피아노랑」, 전문)
‘랑’은 이렇게 ‘너랑 나랑’을 넘어서 세계를 계속해서 이어주고 확장시키며 온전하게 만드는 접속 조사의 힘을 발휘한다.
시인이 노령에도 여전히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소망이라면, 독자의 소망 가운데 하나는 노시인의 절창을 듣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시인이랑 독자랑’ 함께 ‘또랑물 소리’로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시집 〈랑〉에서의 만남이라고 해도 좋겠다.
시인이 첫 시집에서 “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죽편 1」)고 했는데 이번 시집 〈랑〉에서는 “이승살이 끝난 뒤 그 집 찾아 들어가/도로 아미타불 빈털터리 목탁도 때리며/대나무 나이로 한 백 살 가까이 살아볼 거”(「未生」)라고 말한다. 대꽃 피는 마을까지 시인과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거기서부터 다시 백년의 시를 시인은 쓰고 우리는 읽게 될 것이다.
랑 (양장본 Hardcover)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