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문지작가선 5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문지작가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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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흥길

1942년전북정읍에서태어나전주사범과원광대국문과를졸업했다.1968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단편「회색면류관의계절」이당선되어등단했다.1995년부터2008년까지한서대문창과교수로재직했다.소설집『황혼의집』『아홉켤레의구두로남은사내』『무지개는언제뜨는가』『꿈꾸는자의나성』『쌀』『낙원?천사?』,연작소설『소라단가는길』,장편소설『완장』『묵시의바다』『에미』...

목차

황혼의집|집|엄동|아홉켤레의구두로남은사내|땔감|무지개는언제뜨는가|오늘의운세|매우잘생긴우산하나|쌀

출판사 서평

문학과지성사의새로운소설시리즈<문지작가선>

오늘의눈으로다시읽는어제의문학,<문지작가선>이지난7월첫발을떼었다.또한번의10년을마무리하는2019년,문학과지성사는한국문학사,나아가한국현대사에깊은족적을남긴작가와그들의작품을가려뽑아문학성을조명하고새로운의미를부여해나갈목록구성이필요한때라고판단했다.진지한문학적탐구를감행하면서도폭넓은독자들의지지를받으며한국문학의중추로서의미있는창작활동을이어온작가들을선정한다음,그들의작품을비평적관점에서엄선해독자들에게선보이고자한다.또한권별책임편집을맡은문학평론가들의해제를더하여해당작가와작품이지니는문학적?역사적의미를상세하게되새길계획이다.

<문지작가선>의시작점은억압된시대속정치적격변기를거치며권력과사회에대한비판과저항을문학의언어로표현한‘4?19세대’작가다.타계1주기에맞추어특별히먼저출간한최인훈중단편선『달과소년병』외에,김승옥중단편선『서울1964년겨울』,서정인중단편선『귤』,이청준중단편선『가해자의얼굴』,윤흥길중단편선『아홉켤레의구두로남은사내』를1차분으로출간한다.이어서2차분으로한국현대여성소설의원류인오정희,박완서의중단편선을내년1월선보일예정이다.

본문에서

사흘아니면나흘만에,어떤때는하루도거르지않고며칠을계속해서,언제나집채를사를듯한붉은햇살이주막창문에번득이기시작하면할멈은하늘을올려다보며처참한소리로울부짖었다.여우의목청마냥길고날카로운부르짖음으로시작하여밑도끝도없이계속되는그울음은누구의도움을받을욕심으로일부러그처럼엄살을피우는것같이들렸고,누구의잘못을호되게나무람하는것같기도했고,어떤참을수없는아픔을아무에게나호소할때사람의입에서당연히흘러나오는그런무시무시한비명으로생각되기도했다.그울음소리가들리면나는벌레먹은어금니하나가쑤셔서견딜수가없었다.처음얼마동안나는할멈의얼굴이항상붉은이유가늘마시는술때문인줄로알았었다.그러나차차로그것은기우는햇살과유리창에번득이는저녁놀이얼굴에묻어지워지지않는탓이라고믿게되었다.
「황혼의집」(pp.20)

“오선생,이래봬도나대학나온사람이오.”
그것뿐이었다.내호주머니에촌지를밀어넣던어느학부형같이그는수줍게그말만건네고는언덕을내려갔다.별로휘청거릴것도없는작달막한체구를연방휘청거리면서내딛는한걸음한걸음마다땅을저주하고하늘을저주하는동작으로내눈에그는비쳤다.산고팽이를돌아그의모습이벌거벗은황토의언덕저쪽으로사라지는찰나,나는뛰어가서그를부르고싶은충동을느꼈다.돌팔매질을하다말고뒤집어진삼륜차로달려들어아귀아귀참외를깨물어먹는군중을목격했을당시의권씨처럼,이건완전히나체화구나하는느낌이팍들었다.
「아홉켤레의구두로남은사내」(p.165)

아,나는모르겠다.참으로알수가없는일이다.쌀에대한장인장모의그병적인집착이조상전래의도령신앙에서유래한것인지,아니면기독교신앙에바탕을둔것인지나로서는헤아릴재간이없다.옛날우리할머니가그랬던것처럼두노인의고향재령산인양행세하는,자그마치10년씩이나케케묵은그가짜배기이북쌀로믿음을다해잠밥을먹임으로써아내말마따나장모의회향병이진짜로완쾌할수있을지어떨지도나로서는당최알수가없다.만일통일의그날이형편없이늦어진다면,만일그날이영원히오지않는다면,만일장모의여생이늦어지는통일의날만큼이나오래지속된다면,만일이인모또는리인모노인의송환같은충격적인사건이앞으로도심심찮게일어난다면우리장모님은두고두고얼마나더많이회향병을앓아야되고,그럴적마다얼마나더자주전능하신여호와하나님의은총아니면이북쌀속에깃들인도령의그신통력에의지해야될것인가.
다만,내가확실히알고있는한가지사실은,어떤사람에게는그냥뱃구레를채우기위해입안으로꾸역꾸역들여보내는단순한음식물에지나지않는쌀이다른어떤사람에게는쌀아닌그어떤것,쌀이상의그무엇,다시말해서사람의영혼구석구석까지스며들어때로는병을고치기도하고또때로는슬픔을어루만지기도하다가종당에는구원마저가능케만들어주는,놀라운신통력을지닌,영검한존재로,초자연적인존재로매우황감하게받아들여질가능성도있다는바로그점이다.
「치과의사의죽음」(pp.45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