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내그대를생각함은항상그대가앉아있는배경에서해가지고바람이부는일처럼사소한일일것이나언젠가그대가한없이괴로움속을헤매일때에오랫동안전해오던그사소함으로그대를불러보리라.'일명'국민연애시'라고할수있는'즐거운편지'의작가.등단작인'즐거운편지'로주목을받았지만안주하지않고,쉼없고경계없는사유로발전을거듭해온시인이다. 본관은제안(濟安)이다.193...
시인의말제1부불빛한점/서촌西村보다더서쪽/마주르카/오늘하루만이라도/진한노을/초겨울밤에/첫눈내리는저녁/있는그대로/죽음의자리와삶의자리/초봄개울에서/서달산의마지막꿩/산것의노래/봄저녁에/우리의백년한세기가/발라드의끝/자작나무,이어린것이/두물머리드라이브/밟을뻔했다/나팔꽃에게제2부화끈한냄새/바가텔Bagatelle2/바가텔3/바가텔4/또다시겨울문턱에서/날테면날아보게/너는지금피어있다/은퇴/오이도烏耳島/가파른가을날/맨땅/죽음아너어딨어?/한여름밤달빛/안개/매화꽃흩날릴때/눈이내린다/침묵앞을지나가기만해도/솔방울은기억할까?/베토벤마지막소나타의트릴제3부허리꺾이고도/손놓기1/손놓기2/손놓기3/화양계곡의아침/네가갔다/너는두고갔다/체감온도영하20도/대낮에밤길가듯/안구주사를맞고/종이컵들/봄진눈깨비/강원도의높은산들/강원도정선/날개비벼펴고/쇠기러기소리/자귀씨날다/수평선이담긴눈동자/시가사람을홀리네/조그만포구제4부나의마지막가을/홍천구룡령九龍嶺길/오늘은날이갰다/차와헤어지고열흘/새로만난오솔길/선운사동백/이겨울한밤/사람에게서사람을지우면/이런봄날/지우다말고쓴다/무엇이건고여있는곳이면/한밤중에깨어/아직저물때가아니다/어디로?/차마시는동안/늦겨울밤편지/여기가어디지?/일곱개의단편斷片/시간의손길/삶의앞쪽산문나의문학25년×2.5/나의베토벤
황동규시에서‘거듭남’의시간은미묘할수록아름다웠고,리듬은중력을잊은것처럼분방해졌다.이연극성과음악성이시쓰기의‘수행성’이었다.“은행잎하나날아들어”와“손바닥에올려놓는”장면은“떨어지기직전필사적으로아름”다운시간이다.오래살고있는아파트에서무거운발걸음의위층남자의미소를만난우연한순간,「볼레로」처럼“발걸음바꿔가며올라가보자”라고다짐한다.이선언은발화자체가행위가되는수행문이다.이수행문이삶의순간을극적으로바꾸며,작은현재를홀연히‘무한’으로옮겨놓는다.시는발걸음의변속을통해삶의감각을재연주한다.“한층은활기차게한층은살금살금,한층은숨죽이고한층은흥얼흥얼”.그리하여“노을의절창”은끝없이변주된다.(이광호)“나뭇잎은대개떨어지기직전결사적으로아름답다.”오늘하루만이라도내집8층까지오르는층계일곱을라벨의「볼레로」가악기바꿔가며반복을춤추게하듯한층은활기차게한층은살금살금,한층은숨죽이고한층은흥얼흥얼발걸음바꿔가며올라가보자.「오늘하루만이라도」부분앞서인용된이광호의해석처럼표제작「오늘하루만이라도」는황동규시의힘을명확하게보여주는시다.엘리베이터가고장나서계단으로오르내려야하는어느날,올라가는계단참마다한층무거워진육신을실감하던화자는창밖에서날아든은행잎을보며절정에대해생각한다.고단하게오르던화자의발걸음을즐거운춤으로변화시키는극적동력.뒤의산문「나의문학25년×2.5」에서시인이“연극처럼무슨일이일어나시적자아를변모시키는”“거듭나게하는,시를쓰려했”(p.154)다고밝힌극(劇)서정시의진면모를엿볼수있는지점이기도하다.이러한‘거듭남’으로살아나는시의활력은“진하디진한”“노을의절창”(「진한노을」)으로,생생한아름다움으로오늘을충만하게채워간다.“철새도날지않고눈도내리지않는겨울밤도별들이빛나면견딜만합니다.”달은있어도좋고없어도그만입니다.오리온의붉은별이이미폭파되어빛만남아지구의현재로오고있는과거의별이라해도좋습니다.우주가변하지않는다면인간이변하는꿈은어떻게꿉니까?「늦겨울밤편지」부분그동안황동규는바싹마른나무,겨울밤,적막,추위등에주목하곤했다.잘려나가하얗게말라버린자작나무(「자작나무,이어린것이」)에서,혹은곧사라져버릴별빛(「늦겨울밤편지」)에서,시인은더빛나는생명력을발견해낸다.언젠가끝이있음을받아들일지언정오늘을허투루보내지않는절실한생의자세가갖는아름다움이여기있다.이는“해진줄모르고/독서안경끼고도잘안뵈는잔글씨를/죽음아너어딨어?하듯/읽을수있는마지막글자까지읽어내는인간이있다”(「죽음아너어딨어?」)라고말하는황동규시인의건강함과도연결된다.동전의양면처럼끝에서시작을,죽음에서생을길어올리는시들이모여있기에‘마지막’이암시되는수많은장면이슬픔대신희망과기대로차오른다.“시인과독자들의짐을별빛무게만큼씩이라도덜어”주려했던극서정의탄생기이번시집의마지막은해설이나발문대신시인본인의산문두편으로채워졌다.「나의문학25년×2.5」에서는1950년대우리문학이처했던상황과연동하여황동규시인이시작한‘극서정시’가무엇이었는지,그본뜻과지향이해설되어있다.김소월과한용운,김영랑,서정주등을극복하고시안에서변화하는자아를구사하고자노력하며이러한“극서정시가마련해주는조그만‘거듭남’들을통해시인과독자들이짊어지고가는삶의짐을별빛무게만큼씩이라도덜어주”고자했던의지의시력이잘정리되어있다.「나의베토벤」에서는황동규시가줄곧보여주었던음악적성격의뿌리를알려준다.한국전쟁이후서울에서음악실을오가며한국의베토벤을꿈꾸었던고등학생황동규를엿볼수있다는점도재미있다.절묘한소나타의트릴도“끝남이있어서/천국의한토막”(「베토벤마지막소나타의트릴」)이될수있더라는깨달음의시와도겹쳐읽게되어음악과예술을탐독해온시인의깊이감을함께느낄수있다.황혼의잔잔한일상에서발견한소중한생의기미들을활력넘치는변주곡으로연주해내는『오늘하루만이라도』.어쩌면시인의말처럼이책이생전의마지막시집이될지는모르지만아직황동규의펜이움직이고있음또한우리는기억할것이다.인간과사회,산천의풀포기하나에까지책임감을느끼며,끝내“못가지고가는시”(뒤표지글)를세계에남겨주고자골몰하는시인.일신우일신의표본처럼매번거듭나고변화하여성장에이르는황동규시의아름다움이오늘하루도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