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도 혼합 공간 - 문학과지성 시인선 571

투명도 혼합 공간 - 문학과지성 시인선 571

$11.54
저자

김리윤

2019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1년김지연에서김리윤으로활동명을변경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재세계reworlding
평범한대낮의밝음
근미래
사실은느낌이다
전망들
이야기를깨뜨리기?
작고긴정면
영원에서나가기
유리를통해어둡게
듀얼호라이즌
라이프로그
물기둥

2부
그것이선인것처럼
글라스하우스
중력과은총
거울과창?
환송
얼굴의미래
파수
장소성
생물성
투명성
사물은우리를반대한다
펼쳐지는집
얼마나많은아이가먼지속에서비를찾고있는지
흰개

3부
비결정적인선
모든사람같은빛
애도캠프
전망대
검은개
미래공원의사랑
환등기
얼굴의물성
레이어링
냄새를비추는
잠밖에
빛의인과
얼린온기
간격속
관광객

4부관광觀光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관광

해설
모서리허물기·소유정

출판사 서평

언어는너무넓어서앞과뒤가,왼쪽과오른쪽이,천장과바닥이계속뒤바뀌는대기처럼느껴진다.[……]이곳에서믿음의근거는끝에부딪히면다시돌아오는시선으로부터,눈앞에없다면등뒤에있을거라고믿는믿음으로부터온다.나에게시를쓰는일은이런시선을,믿음과마음을가능한것으로만든다.
-2019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당선소감에서

“모든사람같은빛”
시선을가로지르는다정한상상력

여름을기억해내기위해여름에관한것이라면무엇이든보고무엇이든말해보기로했다창문을가로지르는수평선,보도블록을따라늘어선야자수,수영장바닥의물그림자,그을린피부위로맺힌땀방울

이것봐,땀흘리는피부와닮았어
작은물방울이열리고무너지는유리잔표면을쓰다듬으며말하는사람이있다
-「근미래」부분

길고긴추위속에서여름을기억하려애쓰는화자가가장먼저떠올린것은“창문을가로지르는수평선”이다.“모두다른마음으로모두다른창문을보고있”지만그시선을가로지르는수평선이있다고기억하는사람은유리잔표면의물방울에서피부위에맺힌땀방울을떠올린다.순진하리만치맹목적인이상상력은‘먼바다가바닥을감추고있다는’믿음,‘바닷속으로던진돌이바닥에부딪히고다시튀어오르길기다리는’마음에서나온다.어쩌면섣부른이해보다더큰용기를필요로할,이단단하고도다정한상상력의근거는언어에있다.
‘언어’를재료삼아다시쌓아올린정교한세계,김리윤의‘재세계’는빛과어둠,흑과백의이분법을거부한다.시인은검은모래로이루어진해변에서이색을검은색이라불러도될지의심하고(“백사장이라는말을몰랐더라면우리는/검지도희지도않은모래를뭐라고부를까골몰할수있었겠지”,「이야기를깨뜨리기」),“새하얗다는말”은이미밟혀더럽혀진눈다음에만존재한다고(「비결정적인선」)말한다.기어코시인은여지없이투명한공간,사면이유리로만들어져“포개진풍경이모두같은질감으로요약되는세계”(「글라스하우스」)에도달한다.그러나이런인공적인투명함이새와개같은동물에겐“허공이아니라투명한유리로막힌벽이라는것”(「장소성」)을인식하는순간,‘투명도혼합공간’을벗어날수없는인간의운명을또다시마주한다.
그씁쓸한깨달음을주지할때,“미래는공간으로열린다”(「얼마나많은아이가먼지속에서비를찾고있는지」)는선언은다소의미심장하다.이시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소유정은이문장에서“시간보다공간에한껏기울어져있는”‘미래’의가능성을읽어낸다.그리고시집에인용된바있는아감벤의말을빌려,“시간의지속성이단절될때,인간은과거와미래사이에현존하는고유한공간을다시발견할수있”다고말한다.

“희고빛나는온기를나눈다는것”
빛의미래를꿈꾸는단단한발걸음

우리는창문안쪽에서서열매가주렁주렁열린커다란나무를보고있다
과일과설탕을2대1의비율로끓여걸쭉한상태의액체로만드는것은과일을보존하는가장오래된방법이다

집이불에타오를때만비로소건축구조를목격할수있다는말이사실이라면……

열매들이나무에매달린채로썩어갈때
우리는꽃의모양을본다
-「영원에서나가기」부분

‘미래의공간’을그리려는이는영원의시간을찾아헤맨다.유한한시간에대한인식은상대적으로긴시간을가진자연물에대한관심으로이어진다.유년기가지나면‘다자란’존재가되는,즉점점노화가진행되는사람이나동물과달리자연의시간은마치무한한것처럼끝없이이어지기때문이다.“우리가자라온시간/늙어갈시간보다오래된꽃나무밑에서”“질문으로만답할수있는질문을잔뜩”들고선우리는열매를가장오래보존할수있는방법을이야기하던중“열매들이나무에매달린채로썩어갈때/우리는꽃의모양을”볼수있음을자각한다.온전한미래는영원에서나갈때비로소가능한것이다(“모두타버린다음의시간이올거야.그런것을우리는미래라고부를거야”,「라이프로그」).
소멸의풍경이가득한이시집을가득채운것은그러나말간온기다.종말이오지않는한미래는없느냐는익숙한비관은이런대답앞에서맥없이흩어진다.“미래는무엇이든될수있는시간의이름이다/종말은미래보다상상하기쉽다”(「평범한대낮의밝음」).필연적으로절망을향할수밖에없는현실속에서시인은“잡은손에만온마음을쏟”(「애도캠프」)기로결심한다.“나는작은개의목줄을잡고너는네어린이의손을잡고”(「파수」)발걸음을옮긴다.
4부의〈관광觀光〉연작은동명의시열두편을묶었다.‘관광’은볼관(觀),빛광(光)자가합쳐이루어진단어로,말그대로‘빛을본다’는의미를담고있다.우리가빛의반사에의해무언가를본다고인식한다면,우리가보는대상은시시각각갱신되는과거인동시에,빛의미래로서눈앞에놓여있다.그빛은“흔들리고점멸하는아주작은빛.한걸음한걸음뗄때마다조금씩커질것이라는믿음을심어주는그런빛”이다.언제고그빛을상상하는시인은작은존재들의“투명한손을잡고투명한발등을파고드는어둠을들어올리며”(「관광」,pp.193~94)걸어간다.그렇게분명하고묵직한시간과함께미래의문을열고자한다.『투명도혼합공간』은김리윤의첫시집이다.이첫번째문을지나시인은멀리,더멀리나아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