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예쁜 종아리 - 문학과지성 시인선 575

내 삶의 예쁜 종아리 - 문학과지성 시인선 575

$11.06
저자

황인숙

시인,에세이스트.1958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예대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1984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시「나는고양이로태어나리라」가당선돼시단에나왔다.해방촌에살면서길고양이를돌보고시를쓴다.펴낸시집으로『새는하늘을자유롭게풀어놓고』,『슬픔이나를깨운다』『우리는철새처럼만났다』『나의침울한,소중한이여』『자명한산책』『리스본행야간열차』『못다한사랑이너무많아서』...

목차

시인의말

내삶의예쁜종아리
이렇게가는세월
전철을기다리며
Spleen
친구의엑스와이프
오늘할일
빈사의백수
죽은사람은외로워
11월
11월
검고붉은씨앗들
겨울이야기
공허와공간
그동네어느심야
아까운밤이간다

여름같은여름


나도모르는사람
장터의사랑
내집앞
누수타임
빈자貧者의숲
시간이뭉게뭉게
대로의모차르트
나는잘지내요
또사라져가네
링링9월
지나간다
월광
발이푹푹빠지는밤
동자동,2020겨울
밤의발자국
방파제에서
봄의욕의왈츠
북향
멜랑콜리아1
삶과개
시쓰기의어려움
공허와공간
야속하고애석한
심란하고심각하고심심한시
강가에서
어둠의빛깔
어디사는지모른다
어떻게사는지모른다
에세이의탄생
여름의목록2
오늘도비
우리애틋한소설가김소진
장마를견디는법
이렇게또한여름이
새의눈
슬픈열대
하얀복도
광장
봄기운
행복한노인
후회는없을거예요
11월
어떤저녁
수수께끼
입동

해설
밤에사는사람들고종석

출판사 서평

“그의시들은‘스테레오타입’이아니라‘스테레오’다.틀에박힌것들이아니라,입체음향들이거나입체사진들이다.그리고황인숙은그입체적시세계를‘약한것들’‘사라져가는것들’과함께끈기있게일구고다져왔다.입체는고스란히되풀이되기는커녕끊임없이새얼굴을보여준다.그래서황인숙의시들은익숙하면서도낯설다.”―고종석,해설「밤에사는사람들」에서

쓸쓸한생의단면을환하게뒤집는
매일의사랑과명랑

당신자신은물론이고다른사람들,
어떤동물,어떤식물,
바다,바위,조약돌,모래알,
천공,구름,노을,바람……
당신은그들을,혹은그속에서
살기를시도하고
그러면서새로삶을발견할것입니다
뛰어드세요!
―「에세이의탄생」부분

“마음가는대로시작되는곳에서시작하고그치고싶은데서그쳐도그만”(「에세이의탄생」)이라는구절을반영하듯부를나누지않은채흐르는시편들사이로“-ㄹ까”혹은“(-겠)지”등의종결어미가드문드문눈에들어온다.그러나시속에서그러한화자의물음이나추측은대개사실의확인이나응답을기다리지않는다.존재의근원을헤집어놓는아픔이기도(“엄마는왜나를버렸을까/그것은일생을지배하던/내궁금증이었습니다”―「월광」),약한존재를향한측은지심이기도(“얼마나기다렸을까/나보다먼저다녀간고양이”―「밤의발자국」),지난시간에맺힌그리움이기도(“어디로갔을까/해당화꽃떠다니던/그봄날의바다”―「방파제에서」)하지만종내에는이기(利己)를버린,“한모금도꿈없는/시/하하,무념무상!”에가닿는다(「꿈」).스스로“나도모르는사람같”(「나도모르는사람」)아진다.
황인숙의시에서이처럼세상을비껴난나(화자)의무지(無知)는무기력한비탄에빠질때가없는데,

누군죽어지내는맛도있다지만
나는그런맛몰라

무식한건무서운거야
벽을문처럼
까부수고나가는거야

난그렇게
이겨왔다우
―「장터의사랑」부분

오히려내면에서솟구친“무서운”힘이바깥세상으로,소음과움직임이득시글한“장터”로나를이끈다.그리하여낮아지고낮아져소리조차내지않는것들의목격자가되며,가냘픈“소리”와도심을울리는“음악”사이의드넓은간극한가운데걸음을멈춘사람이된다.그때의슬픔은무지가아닌“나는모차르트를잘모르지만/그래도이음악이모차르트라는걸안다”―(「대로의모차르트」)는분명한‘인식’에서비롯된다.동시에이러한식자(識者)로서의앎은어둡고외딴곳을디디며“소리없이”,음악이아닌것으로존재하는작은생명(이를테면“비둘기”)의존엄을역으로더욱크게일깨우는구실을한다.화자는숱한물음과추측끝에나를잃고,나를모르게되고,기어이나아닌것들에게안을내주고만다(“나도아이를낳았으면/너만큼이나대책없는어미였을거라는생각을했다/너나나나”―「겨울이야기」,“그밤에당신이너무배가고팠으면/나는어쩌면좋은가”“낮고외롭고쓸쓸한/당신,우리”―「동자동,2020겨울」,“종일올건가,비?/그래,그런마음도있지/쏟아져라,쏟아져!”―「오늘도비」).

세계의수면위로힘껏내던지는시니피앙
수수께끼로주고받는내일의삶

아이의호기심과어른의피로가얼크러진황인숙의시세계는삶이던진패러독스의난장(亂場)이다.“아직오지않은고양이생각을하면서고양이밥을꾸려담”(「동자동,2020겨울」)고,주린비둘기에게“내가건네는한두줌낟알”(「어떻게사는지모른다」)의무게를실감하는사이나는서민이었다가이주노동자였다가,고양이였다가,비둘기가된다.고단한몸을이끌고“비틀걸음옮기며”“비몽사몽스치며”(뒤표지글)걸음을떼는황인숙의세계에서는어두운밤조차신체를얻고펑펑쏟아지는눈속에푹푹빠진다(“밤이푹푹빠지는/눈이펑펑쏟아지겠지”―「발이푹푹빠지는밤」).끝없이죽음너머의안부를묻지만생의울타리를넘는법은없다.시집의해설을맡은고종석의말처럼“시니피앙들을세계의수면위로힘껏내던지는물수제비뜨기의달인”으로서,시인이풀어놓은시어들은시종일관재재거리며싱그럽게빛난다.감각으로빚어진선천적자질이라고밖에부를길없는매일의명랑이슬쩍들춘자리엔즐거운“수수께끼”가여지없이숨어있으며답을찾기위해골몰하는동안내일이온다(「수수께끼」).“울어도삶은이어질”것이므로(「누수타임」),죽음보다삶의슬픔을나누는것이최선이라는믿음이거기에있다.

무아지경으로흐르는
자타불이의세계

해는새의눈
모든새의눈
밤에는
부엉이눈에
들어가있지
―「새의눈」전문

황인숙의시에서는이렇듯물음이나추측이,저간의사정을궁금해하는동안돌돌뭉친걱정과헤아림이,시간의일부를차지하고끝내‘나의삶’이되어버리는과정이고스란하다.대상을억지로주무르고자하는집착과욕망이없다.시공간을비트는인위적인재구성이나드라마틱한의미부여또한그흔적을찾기어렵다.그저있었다가사라진존재와사라짐후에도착한마음이시인의입을통과할뿐이다.우리는마을이흘러가는소리를엿듣고백지에안착한몇자의외침을본다.모양을숨긴채밤에사는사람과생물들을목격하며그들과혼연이된시를읽는다.‘너’와‘나’의구분이무화된지점에서싹트는숭고한사랑.그것은종류를막론한신앙의근본교리와정서에가깝다.사랑의형체로사랑의빛깔을띠고이곳에서저곳으로,무아지경으로흐르는자타불이(自他不二)의세계.황인숙의시는이를환하게열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