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 문학과지성 시인선 576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 문학과지성 시인선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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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자세’
미남의 나라에서 돌아온 이우성 신작 시집 출간

‘너’를 알기 위해 씌어지는 시
사랑하는 이들에게 달려간 10년의 기록
사랑하는 이들에게 달려간 기록
-시인의 말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우성의 두번째 시집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에서 ‘소년의 나르시시즘과 아이의 미니멀리즘’으로 어른의 세계를 들여다본 이후 꼭 10년 만의 신작이다.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던 시인은 이제 “내가 이유인 것 같”다고 말한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주변의 타인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이 불가해한 세계를 껴안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짧지 않은 10년의 시간 동안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길어 올린 예순한 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이번 시집에 오롯이 묶였다.
첫 시집의 부족하고 결핍된 ‘왜소-자아’는 여전히 희미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거듭 발명되는 존재로서 이 세계의 일부를 구성한다. “나를 알기 위해 시를 썼”(첫 시집 뒤표지 글)던 시인은 이제 ‘너’를 알고 싶어 글자를 적는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에 도저한 ‘나’의 흔적을 더듬는 과정은 곧 “사랑하는 이들에게 달려간 기록”을 돌아보는 일이 될 것이다.

비가 멈추었다
내가 그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가능하면 구름은 지워지려 하고」 전문

이번 시집 서시의 자리에 놓인 시는 이우성의 시적 지향점을 보여준다. 시의 화자인 ‘나’는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가 그린 것이 ‘비가 내리는 모습’인지 ‘비가 멈추는 모습’인지 명확하지 않다.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나영은 이 시집의 ‘나’가 “현재에 없는 많은 것을 그리워하며 ‘그것’들을 그리거나 적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의 이미지나 의미로 고정하려는 순간에 그것은 더 이상 ‘그것’이 아니게 된다”고 설명한다. 1부의 제목이 “움직이는 그림 그리기”라는 점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기록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상을 포착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음을, 따라서 근원적인 불완전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

이우성

시인이우성은2009년『한국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나는미남이사는나라에서왔어』가있다.크리에이티브크루미남컴퍼니대표다.

목차

시인의말

1부움직이는그림그리기
가능하면구름은지워지려하고
슬픔의거리를지나는바람을납득시키기위해
영원
미래의나무
새들을세다가
자라는이름
움직이는그림그리기
나뭇잎새
미안엄마
시간의아이들
종이보다하얀단어로말하기
떠오르는것
우리는날개가부러져서추락한다
열매와노래
구름일기
계속
무덤과구름

2부어둠이계속되면물위도단단해질까
내가이유인것같아서
그녀의얼굴은그녀가그린밤같았다
풍선
재미와알리바이
바다와바닥
나무와나
그때
마음의마을
소멸을이해하는항해
진심과친구
슬픔은까맣고까마득하고
부끄러워서그래
기억
기억
우리는벽을두드리고들어갔다
꽃피는소리
작은새꽃
계절
사랑의자세

3부그래야전설이되니까
날개와시
1980년6월2일
나무가모여바람을부르듯
그림과거리
아직자란다
아이런사십세
괜찮아보이려고움직이는거예요
군자라서
안타깝게도
부릉부릉
이것도희망이라고
무너지는것
부역

아빠
성묘
잘살고있니너는
학생과시인
무신론자는아니지만
폭탄꽃
빛이오는건빛의일
죽을만큼아프진않아
바다로간다는말을믿어본적이없는데
영원히인사
흐름과바람을안고

해설

‘나’의기록,쓰지못하는기억·김나영

출판사 서평

“너랑내가갖고싶은단어”
지워지고또지워져도하고싶은말

엄마가내집에와서말했다
이머리카락은길어서네것같지않구나
당연한말이었다아무리잡아당겨도내머리카락은저렇게길어질수없다
이머리카락도길어서네것같지않은데
너무길어아까그것같지도않구나
[……]
그래서사랑에관해조언하자면
거실소파밑을들추지말자
거기아직기억하는무엇인가있다
-「아직자란다」부분

엄마가찾아온‘나’의집에는서로다른길이의머리카락이떨어져있다.그것이내집에다녀간타인의것인지,혼자자라난머리카락인지알수없다.“거실소파밑”이가장가깝지만좀처럼살펴보지않게되는공간이란점을염두에둘때,“나도모르는”사이에“불현듯나타”나는머리카락은가까운곳에있기에더종잡을수없는,손에쥐려고해도잡히지않는‘비밀’같은것이다.

숲으로가는길은좁고선명했는데친구는그길을비밀이라고불렀다친구의머리위로형상이어렴풋이피어났다
소외감이라고
발음해보았다친구가지워졌다
-「영원」부분

‘나’와함께비밀의숲으로향하던친구가어느덧지워진다.친구가사라진자리에서‘나’는친구의“가방을둘러메고다시걷는다”.비밀에대한정보를누설한순간없어지는친구는다른시에도등장한다(“슬픔을만드는공장에서비밀을만들거야/얼굴을지우며친구가말했다”,「열매와노래」).그러나이시의뒷부분에서“사라지기싫어서”“입을닫”은‘나’는되려“부서져버”린다.존재하기위해말할수밖에없는시인의숙명이다.

비밀을탐구할수록자꾸만지워지는존재에대한의문은그것을구분하는것이의미없다는깨달음,“지우는사람이었니그리는사람이었니”(「빛이오는건빛의일」)하는자문에이르러비로소해소된다.이우성이탄생시킨‘나’들의감각은수시로변하고,그렇기에스스로의의식을끊임없이회의한다.‘나’는이렇듯스스로를세계에서소외시키는방식으로,자기부정을통해자신을긍정하는방식으로존재한다.

“가자궁금한것들을모으러”
끈질기게‘나-너’를탐구하는시

빛이흩어지고있다잡으려고손을대니투명해진다
눈이부신건슬픈것이아니다
-「소멸을이해하는항해」부분

이번시집에는“구름”“빛”“새”“양떼”와같은자연물이자주언급된다.이들은분명존재하지만쉽사리잡히지않는다는공통점을갖는다.기록의주체와객체모두점멸한다는점에서현실을살아간다는것은“소멸을이해하는항해”와같다.

이우성시에서마주하게되는‘나’의이러한속성은이시대의수많은청년을떠올리게한다.취업준비생이나비정규직노동자처럼“타인의기준을제삶의것으로취해살아가는”“현재를담보로잡힌채망연히흘러가는인생”(문학평론가김나영)을연상시킨다.비단청년들뿐일까.지난10년사이한국사회가답보해온혐오와불신의경험은공동체로부터고립된개인을양산해왔다.

이같은압박에도불구하고그는오래도록끈질기게‘나’에대해말한다(“머릿속에떠오르는이우성을지웠다이우성을지우자다른이우성이떠오른다지겨운놈”,「부끄러워서그래」),앞으로도역시계속해서‘나’에대해말할것같다(“다음엔나는,으로시작하는시를써야지”,「날개와시」).그가알고자하는대상,가닿고자하는슬픔은‘나’에서‘너’로,다시‘우리’로움직인다.이제그와함께떠날차례이다.“가자궁금한것들을모으러”(「무덤과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