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촌 (강경애 중단편선)

지하촌 (강경애 중단편선)

$13.00
Description
한국 근대 여성주의 리얼리즘의 선구자
강경애의 대표 중단편소설 11편 수록

배제된 존재들을 마주하는 여성의 다양한 얼굴
올곧은 작가 의식과 예리한 포착력으로 근대의 풍경을 핍진하게 그려내 한국 여성문학사의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한 강경애의 중단편선 『지하촌』이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마흔아홉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가 소설가로서 내디뎠던 첫걸음에 해당하는 「파금」부터 일제강점기 빈궁문학의 수작으로 회자되는 「지하촌」, 작품 활동 후기의 경향이 잘 드러나 있는 「어둠」과 「마약」까지, 엄선된 대표 작품 11편을 묶었다.
일찍이 한글을 깨치고 어릴 적부터 탁월한 작문 실력을 발휘했던 강경애는 1924년 「책 한 권」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점차 평론과 수필, 소설 등으로 그 폭을 넓혀나갔으며, 장편소설 『인간 문제』를 비롯한 많은 걸작을 남겼다. 참담하고 곤궁했던 일제강점기 민중의 삶을 여성의 다양한 얼굴로 형상화한 그의 작품들은 한국 근대 여성문학을 논함에 있어 결코 제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강경애는 일제 치하에서 성적ㆍ지리적ㆍ계급적ㆍ민족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을 때로는 공부한 신여성의 얼굴로, 때로는 처절한 어머니의 얼굴로, 또 때로는 미친 여자의 얼굴로 똑바르게 마주한다. 강경애가 빚어낸 얼굴들은 전부 당대를 실제로 살아낸 이들의 것이므로, 그들이 통과하는 작품 속 현실 또한 실로 ‘리얼’할 수밖에 없다.
‘강경애식 여성주의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번 중단편선의 책임 편집은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국문학자 김양선이 맡았다. 작품 발표 당시의 원본과 현대어 저본, 연구 자료 등을 꼼꼼하게 참고하고 작가 특유의 표현과 작품의 분위기를 최대한 고스란히 살림으로써 텍스트의 정확성을 기했다. 일상화된 이주 경험과 여성의 돌봄 노동, 약자와의 연대 등이 여전히 사회적 의제로 오르고 있는 요즘, 강경애가 평생토록 몰두했던 문제의식을 충실하게 담아낸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유의미한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강경애

강경애는1906년황해도송화에서태어나,어릴적부터많은소설을읽으면서한글을깨쳤다.장연여자청년학교를거쳐장연보통학교에입학후가난으로고통받으면서도두드러진작문실력을발휘했다.1921년평양숭의여학교에입학했으나2년뒤인1923년10월에학생동맹휴학사건관련자로퇴학당했다.이무렵,장연태생의동경유학생양주동을만나연애를시작하면서서울동덕여고보에편입하기도했으나,이듬해9월그와헤어지고난뒤장연으로돌아왔다.1924년부터본격적인문학공부를하며시를발표하기시작했고,야학에서학생들을가르치기도했다.1931년에는『조선일보』부인문예란에단편소설을투고하였으며,같은해에결혼한뒤6월경에간도로이주하였다.1934년에『동아일보』에장편소설『인간문제』를연재한뒤꾸준히작품활동을하다가1939년에는『조선일보』간도지국장을역임하기도했다.그러나이때신병이악화되어고향장연으로돌아오게되었고,1944년4월지병악화로결국사망했다.1999년8월,중국용정에‘녀성작가강경애문학비’가건립되었다.

목차

일러두기

파금破琴
그여자
채전菜田
유무有無
소금
모자母子
원고료이백원原稿料二百圓
번뇌煩惱
지하촌地下村
어둠
마약痲藥


작품해설
식민시대여성주의리얼리즘의성취/김양선
작가연보
작품목록
참고문헌
기획의말

출판사 서평

이주(移住)와이산(離散)의공간
간도에살다간‘입체적’어머니들

강경애의작품세계를이루고있는수다한여성인물중특히나눈에띄는것은‘어머니’들이다.온갖어려움아래에서끈질기게삶을일구어나가는강경애소설속어머니들은모성을동력으로삼는데,이때작가는“출산과양육을신비화하거나여성의보편적인자질로추상화하지않”으며“가부장제이데올로기가덧씌운이상적인어머니노릇,주어진모성성에대한통념을우회적으로비판”(작품해설「식민시대여성주의리얼리즘의성취」)한다.납작한모성신화로부터빠져나와생생한현실로뛰어드는그들의‘입체적’인모성은생존과계급투쟁에대한의지로도,당세에만연했던부조리에대한고발로도읽힌다.

당대민중의물질적,정신적결핍을깊이있게다룬「소금」은친자식들에대한책임감과젖어미로서키운아이를향한그리움사이에서갈등하는봉염어머니를등장시킴으로써모성의현실적인국면을보여준다.“산사람은먹어야”하며“그러구살도리를또해야”한다는용애어머니의말과(검열로인해지워진)무산자계급의단결과결속을강조하는결말은그모성을난국타개의물꼬로변주하여풀어내고자한작가적시도로도읽힌다.한편이번중단편선의표제작인「지하촌」은가사와농사일이라는이중노동에시달리면서도악착같은모성애와생명력으로삶을버텨내는칠성어머니의모습을통해낙관적인전망마저불가한극악의현실을환기한다.

강경애작품속어머니들이맞닥뜨리는수난에는당시간도의현실이깊숙이끼어들어있다.예컨대「소금」의봉염어머니가겪는가족의해체와가없는유랑은항일무장운동쇠퇴이후의간도상황과맞닿아있고,「모자」의승호어머니와「마약」의보득어머니를위기에빠뜨리는가부장의부재및타락역시당시의간도정세에기인한다.이주와이산을거듭하고작가생활의대부분을간도에서보낸그의생애를고려해볼때,강경애는식민지현실의비참과이를돌파하기위한투쟁의필요성을간도라는공간적배경에효과적으로펼쳐놓았던것이다.

허위와가장의얼룩한점없도록……
폭로와각성으로닦아낸성찰의거울

차라리이붓대를꺾어버리자.내가쓴다는것은무엇이었느냐.나는이때껏배운것이그런것이었기때문에내붓끝에씌어지는것은모두가이런종류에서좁쌀한알만큼,아니실오라기만큼그만큼도벗어나지못하였다.그저한판에박은듯하였다.
―「간도를등지면서」(『동광』,1932.8)

수필을통해밝히고있듯,강경애는문사(文士)로서의역할과소명에비추어끊임없이자기자신을성찰한참된지식인이었다.허위를물리치고가장을거부하고자했던작가의치열한고투의기록은그의소설에도또렷하게새겨져있다.

부르주아신여성의허울을신랄하게풍자한「그여자」에서주인공마리아는노동자농민을향해‘내땅’‘내동포’를외치면서도그들의처지에진실로공감하지못하는부정적인인물로묘사되며,‘미라’‘흡혈귀’와같은그로테스크한이미지에견주어진다.연설을들으면서곧장밭의소중함과직접겪어온지주의착취를떠올리는군중과달리,마리아는그저“자연미를구경하는호기심”과“어떤명작이나하나얻을까하는바람”으로농촌을바라본다.이러한대비를통해강경애는마치서로“딴인종”처럼느껴지는이들사이의간극과한계를선명하게짚어낸다.

작중인물의후일담을귀기울여듣는여성지식인청자가등장하는「유무」와「번뇌」그리고강경애의자전소설「원고료이백원」은작가의자기반성적태도와좀더밀접하게맞닿아있다.그는특히「원고료이백원」을통해사적인욕망과공동의대의를두고벌어지는여성지식인의내적갈등을솔직하게내보이는한편,이를“모던껄”“일류문인”“입으로만아!무산자여하고부르짖는그런문인”이되지않겠다는단호한선언으로매듭짓는다.직접번돈으로“평생의원이던반지나혹은구두나를선선히해신”는대신동지들을돕기로결심하는「원고료이백원」속‘나’의모습은실제강경애가‘성찰적지식인’으로서보였던행보와포개어진다.글을쓰는문학인으로서“참말인생의그어느한부분이라도진지하게그려보았”(「유무」)는지스스로에게엄중히묻는,그럼으로써다시금결의와각오를다지는강경애소설속여성지식인들의진정성은지금이시대를살아가는독자들의마음에도큰울림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