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누비는생生의퍼포머
우리는불가능을담보로공연을계획했다.
무대는벌판이어도좋고지평선이어도,간이정류장또는당근밭이어도좋았다.중간에무산된다해도우리의목표는사실,거기까지였음을주제로공연을했다.빈의자가있는데면어디라도좋았다.
―「여름공연」부분
시적언어로자신의세계를펼쳐보이는시인이자독특하고아름다운선율로좌중을압도하는음악인인이린아는그야말로‘퍼포머performer’다.이번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김보경은이에주목하여“이린아의시에서무대는삶자체의은유”이며그무대위의배역은“외적강제로주어진것이아니라‘나’의존재증명을위한필연적인일”임을짚는다.수다한가면을바꿔써가며무수한페르소나를선보이되결코‘진짜’얼굴은잃지않는,유려한퍼포머이린아의공연이무대위에펼쳐진다.
이때무대의형태는아무러하여도상관없다.누군가앉았다갈빈의자만있다면,관객의자리만마련되어있다면그것으로충분할뿐관객의유무또한상관없다.“노래를부르는사람은언제나기다리는역할”(「언니의노래」)이고,“관객이없는가수가되거나/음역을갖지못한악기의/연주자”(「양동이」)가될지도모른다는각오도하고있으니까.그러나이토록결연한태도로정성껏꾸린무대에매료되지않을이가어디있으랴.독자라는이름의관객들은곧천천히객석을채워나간다.
한껏끌어안은기억으로단단해진몸
빗줄기아래서도이어지는완전한춤
나는인간이자신의신체능력을정할수있다고믿어요.이건선천적인것들에대한잔인한비평은아니에요.내가말하려는건,정말로,자기몸에어떻게받아들일지어떤것도자기몸에어떻게받아들일지모두자기자신만결정할수있다는거예요.
―「비가오기전춤을추는새」부분
이린아에게시는“붕붕거리던노래가다빠진그때까지도여전히남아있던것”(2018년『조선일보』신춘문예시부문당선소감)이다.노랫소리가사그라진뒤에도무대위에여전히남겨지는것은,마지막까지“배역을벗어나선안”(「최초의공연」)되는것은‘몸’일터.이린아의시는곧몸의시이기도하다.
우리몸은“1층을단단하게안정”시켜야하는“집”(「필라테스언니」)이어서,무너지지않으려면끊임없이경험이라는재료를골고루쌓고다져나가며손보아야한다.보드랍고연한경험만으로세워진집은오래버틸수없기에,다루기까다롭고위험한재료라고해서내던질수는없다.결국중요한것은이재료를적극적으로주무르는방식인‘기억’이며,“나의몸에어떻게”좋고나쁜경험들을“기억할지결정하지않으면안된다”(「비가오기전춤을추는새」).이에“정말로잊을수있다면,/네상처를포기할수있”(‘시인의말’)느냐는시인의물음은의미심장하게다가온다.
편식하지않고“기억하기좋은”단맛도“기억하기싫은”(「별안간의팬케이크」)쓴맛도전부삼켜단단해진몸으로,시인은노래가다빠져나간뒤에도무대를떠나지않고춤을춘다.이몸짓은“비가오든말든마음껏”(「비가오기전춤을추는새」)계속된다.“아프지않으면,/빗방울은으스러지는고통이되고말”(「아픈공기」)테지만,시인은이미상처마저껴안았으므로괜찮다.소리높여노래부르고,노래가끝난뒤에도끝까지춤추는것.이것이삶이라는무대를향한이린아의사랑이다.이제,또한번이린아의사랑을시작한다.
시인의말
정말로잊을수있다면,
네상처를포기할수있니?
2023년9월
이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