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집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9

음악집 - 문학과지성 시인선 599

$12.00
저자

이장욱

저자:이장욱

1994년『현대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내잠속의모래산』『정오의희망곡』『생년월일』『영원이아니라서가능한』『동물입니다무엇일까요』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이곳은아름다운곳이고선생님이없어요
더멀고외로운리타|왼손에돌멩이|극적인삶|내생물공부의역사|깊은어둠속에서휴대전화보기|개이전에짖음|친척과풍력발전기|변절자의밤|무지의학교|적응하는사람|월요일의귀|히치콕의밀도|신경정신과에서살아남기

2부양을세다가양을세다가이상한노래를
기도의탄생|슈게이징포에트리|인과관계가명확한것만을적습니다|내가저질렀는데도알지못한실수들|편지가왔어요!|전세계적인음악의단결|장미에게는왜가없다|적|일말의진실|닮은사람들|양의밤|뇌의혈류량|폭풍의언덕|몽두

3부누구의왕도누구의하인도아닌
지혜와거리두기|우리동네|거북의살을먹는들개의살을먹는호랑이의살을먹는……|스틸라이프|농담|정오의신비한물체|아무도어리석은삶을원하지않는다|누구의토끼뿔|소문과장례식|악마는디테일|죠스|겨울의높이|아이슬란드에흥신소|우주공간이아니라발자국

4부쉿!잠깐만,잠깐만,너는아직아무것도못들었다니까
무기여잘있거라|대관람차|적의위치|해변과영혼|의심하는마음|소염제구입|수도승의숲|뼈의도서관|반딧불이전화를|용서하기는불가능|불규칙하게도래하는것들의폭설|방학숙제|새로운공산주의의새로운과거|재즈싱어

후기postscript
빗소리수많은각자의시간들이떨어지는빗소리·이장욱

출판사 서평

“단지한사람이사라진세계에가까운,
우리는결국시제가없는편지를쓰는것이다”

이미죽은것같은기분으로
수많은각자의시간을살아가는이들에게전하는
이장욱의여섯번째시집

시는어쩌면이물질자체,의미이전에존재하는물질로부터시작되어야하는지도모른다.시인은그물질의어둠을생각하고,그그림자를느끼고,그그림자의내부로걸어들어가서,천천히,말하는사람에가까운지도모른다.그는심연에서온언어를이해하는사람이다.
―「2-2.그러나그럼에도불구하고그렇게시쓰기」,『영혼의물질적인밤』(문학과지성사,2023)에서

시인이장욱의여섯번째시집『음악집』이문학과지성사시인선599번째로출간되었다.이번시집은앞서『정오의희망곡』(2006)과『영원이아니라서가능한』(2016)의표지를장식한이제하작가의캐리커처가아닌시인의자화상이들어가있어특별함을더한다.그뿐만아니라작품해설대신들어간각시편에관한‘후기’는시인의단상을통해독자의상상력을확장하고시읽기의새로운즐거움을선사한다.일상에서외롭지않은순간을‘낯설다’라고감각하는시인은어떤상황이나행동의의미를좇기보단존재자체를들여다보는일에몰두한다.평범한사람의눈에는도무지보이지않는것,우리가이미알고있다고생각했으나사실은착각에불과했던순간들을살피는것만이시인의소임임을알기때문이다.그의시에는“빗소리수많은각자의시간들이떨어지는빗소리”가스며들어있고,천천히불어오는“먼곳의음악”은외로움의근원에대해부연하지않는다.이장욱에게시란세상의소리를일정기호로기록하는것이아닌,존재하는물질이훼손되지않게끔보관하는작업이기에.이는시집의제목이세상이무수히답습해온“악보집”이아닌시인의단한번숨결이닿은“음악집”이될수밖에없었던이유이기도하다.마치전생에들어본듯한음악을들려주듯시인은단정한외로움과쓸쓸함을곱게접어우리에게다시한번안부를묻는다.“당신,듣고있어요?”(「시인의말」).
현실과환상의경계를자유롭게유영하며시적언어의우아함과모던함의극치를보여주었던이장욱은이번시집에서작품전체를관통하는단일한화자가아닌다양한사람의각각의외로움속으로묵묵히걸음을옮긴다.배우,마술사,가수,살인자,우체국장,대학시절에쓴소설의주인공까지.시속의화자는“음악집”안에모여화음을만들어내기위한“엑스트라배우”가아니다.각자의삶이빗방울이되어후드득,시인의눈앞에떨어졌을뿐이다.시인은사람들이끝끝내털어놓지않은비밀까지헤아리기위해자기자신을삶이아닌죽음,살아있지않은상태와가까이두고한층더초연해진다.사랑에는각주가필요치않고,죽음에는변명이남아있지않은것처럼이미죽어있는시인의시선에서는어떠한구원이나저주를갈망하는태도를찾아볼수없다.무심히뒤를돌아보는순간,고요하고쓸쓸한시인과그의시(詩)만이남아삶의불안함에대해가만히고개를끄덕일뿐이다.이때진정한결별의의미를알게된독자는개인의외로움이짙어지고세계와는더욱가까워지는경험을비로소하게될것이다.

시인의꿈에는시제가없고
사랑하지못한리타만이남아있다

만나러와주어요.여기가불가능한곳이라도
만나러와주어요.나의먼꿈속으로
북극에내리는뜨거운비
열대우림에쏟아지는폭설
이곳에서새들은헤엄치고
펭귄은날아다니죠.
―「더멀고외로운리타」부분

인간무의식의발현인‘꿈’은이장욱시에서빼놓을수없는키워드중하나이다.이때꿈은시공간을구분짓거나그자체만으로어떠한기능을하지않는다.오히려시에서의‘꿈’은인간세계를초월한또다른현실,즉이데아(idea)에가깝다.이때시속의화자는“불가능한세계”에서기꺼이“시제가없는편지”(「깊은어둠속에서휴대전화보기」)를적어내려가며과거,현재,미래순으로흐르는시간의굴레에서벗어나그리움의대상과정면으로마주한다.사라진이후에도“북극에서/수유리에서/내귓속에서”시를읽는“더멀고외로운리타”는시인이“대학시절에쓴소설의주인공”이자이세계가아닌불가능한곳에서라도한번쯤마주치고싶은존재이다.시인은자신의귓속을맴도는그를바라보며“자가격리시절은영영끝나지않”았고,“리타는여전히먼데서이쪽을바라보고있”(「후기」)을것임을짐작한다.시인백석에게영원토록사랑한‘나타샤’가있다면,시인이장욱에게는끝끝내사랑하지못한‘리타’가있는것이다.이장욱시의문장이아득하고쓸쓸한까닭은“꿈이괴로워서꿈에서계속자살”(「무기여잘있거라」)을하거나“꿈에나타나백년후의아침을보여”주기때문만이아니다.그건꿈속에서사랑하는이의이름을불렀을때아무래도외로움이느껴지지않으면“이것은저주입니까”아니면“구원입니까”(「기도의탄생」)하고묻는화자의애달픈목소리에서비롯된게아닐까.

시인의말에는쉼표가있고
최초의목소리는아무도듣지못했다

슬프지.
슬프죠.
어디선가옛노래가들려왔는데……
낯익고그리운음색이었는데……
속삭이는목소리로가수는
검지를세워코위에올린채내귀에대고말했다.
들릴듯말듯
머나먼목소리로

쉿!
잠깐만,
잠깐만,
너는아직아무것도못들었다니까.
―「재즈싱어」부분

이장욱시속의화자들이똑같은말을반복하고끊임없이혼잣말을중얼거리는동안에도독자는산만하다거나수다스럽다는인상을받지못할것이다.구체적인청자를염두에두지않은독백은팽팽하게감아둔태엽이점차느슨해진오르골처럼한음한음연주를이어나간다.최초의유성영화「재즈싱어」(1927)의대사처럼시의화자는누군가를호명할때에도,그사람에게인사를건넬때도,그러다서로를영영잃은후에도쉼표를사이에두고천천히말을잇는다.“하지만이봐요,”(「더멀고외로운리타」)“내가아니라내사랑,”(「내생물공부의역사」)“다녹아버린팔을흔들며안녕,”(「개이전에짖음」)“그런건가요,”(「악마는디테일」)“아,그런,것이군요,”(「재즈싱어」).이때쉼표는앞뒤문장을연결하는것이상으로지금의순간이끝나지않았음을의미한다.시의탁월함은작품의‘완결성’이‘가변성’에서비롯된다는것이여실히드러나는순간이다.쉼표는언제든지그의미가달리해석될수있기에,그건철저히시인이아닌독자의영역으로접어들기에우리는그토록그의여섯번째시집을기다려왔는지도모른다.잘벼려낸문장으로축축한외로움을해부하면서도위트를잃지않은채로가장먼곳의소리부터귓속에내리는겨울비까지듣는시.우리가이장욱의시를사랑하는이유다.

599번.숫자가마음에들었다.600번처럼딱떨어지지않는,어딘지불균형한,위태위태한,한끝이모자란,그런숫자다.한때는시란그런것이어야한다고생각한적이있다.말하자면599번처럼위태로워야한다고,한끝이모자라야한다고,그렇게안타까운것이있어야한다고.
―「문학과지성시인선통권600호기념―축하합니다」,『문학과사회』2024년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