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3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 문학과지성 시인선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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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현실의 틈새를 오가는 경쾌한 발걸음
어긋나는 일상을 포착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경쾌하지만 슬프고, 단정하지만 발칙한 언어를 구사하며 독보적인 시 세계를 선보여온 이다희의 두번째 시집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03번으로 출간되었다. “언어의 재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삶을 끝없는 재현 속에 위치시키”(신용목)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첫번째 시집 『시 창작 스터디』 이후 4년간 꾸준히 쓰고 다듬은 시 42편을 4부로 나누어 묶었다. 이번 시집에서 이다희는 조금쯤 엇나간 현실의 틈새를 시적 장면으로 변모시키며 한 발짝 더 멀리 나아간다. 지난 시집에서 발랄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꿰맞추던 화자들이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충돌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 되는 것처럼 사뭇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감각함으로써 이 세계의 예외적 존재들에게 반짝이는 왕관을 씌워준다.
저자

이다희

저자:이다희
1990년대전에서태어나2017년『경향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시창작스터디』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
입춘(立春)|충청도|신호라도되는것처럼|무화과나무여름바구니이름|겨울병|종과횡과사선으로|우리사이꽃|나날들|선악을초월한다리위에서

2부
렌드로카이프테|청소부천사|현대시|하이쿠|모든것과그밖의다른것|방안의집|오일페인팅|홍시와홍시|미인이하는게임|미인은자기얼굴이싫을거야

3부
우회전하면영화제|시티커피|121분|입모양을읽었거든|일기|시선을내려놓고|샌드위치시스템|머리카락은머리위의왕관|낯선거품과맥주잔|우유전구|열대어

4부
유령의집|적산가옥(敵産家屋)|지팡이|소파오페라|사라진대표님|모르는엉덩이|손을들어서|오렌지절벽|설탕물|놀이터|주공아파트|하루보다긴일기

해설
어른의성장통·김영임

출판사 서평

"물구나무를서면머리카락은머리위의왕관”

현실의틈새를오가는경쾌한발걸음
어긋나는일상을포착하는마술적사실주의

경쾌하지만슬프고,단정하지만발칙한언어를구사하며독보적인시세계를선보여온이다희의두번째시집『머리카락은머리위의왕관』이문학과지성시인선603번으로출간되었다.“언어의재현을보여주는게아니라삶을끝없는재현속에위치시키”(신용목)며독자들의공감을불러일으킨첫번째시집『시창작스터디』이후4년간꾸준히쓰고다듬은시42편을4부로나누어묶었다.이번시집에서이다희는조금쯤엇나간현실의틈새를시적장면으로변모시키며한발짝더멀리나아간다.지난시집에서발랄하고씩씩하게일상을꿰맞추던화자들이여전히자신만의방식으로세상과충돌하고성장해가는모습이담담한위로를건넨다.“물구나무를서면머리카락은머리위의왕관”(「머리카락은머리위의왕관」)이되는것처럼사뭇다른시선으로일상을감각함으로써이세계의예외적존재들에게반짝이는왕관을씌워준다.

“우린결코같은편이아니지.그렇지만난그저네편이야.”
무심하고비장하게세상과대면하는존재들

이번시집의첫머리에놓인「입춘(立春)」은봄의기운이약동하는이계절에더없이잘어울리는시다.갑작스레발효된대설주의보는여느날과다를바없는거리의속도와질감을바꾼다.“사람들이천천히걷”고“사람보다차가더천천히간다”.그러나눈은“언제그랬냐는듯”녹기마련이고,폭설이지난후에는“눈이아닌무엇인가가인간을사로잡는다”.분명무언가일어났는데마치아무일도없었다는듯굴러가는세상에묘한괴리를느껴본적있다면,“지나온길에꺾인꽃들”을그냥지나치지않고“얼음꽃”으로만들어기억하려는시인에게동질감을느끼지않을까.
이다희의화자들은세상의인과관계를납득하지못하고,그규칙에순응하지못하는모습을애써숨기려하지않는다.「샌드위치시스템」의화자는“주먹쥔손등위로돋은핏줄은파란색인데피는왜파란색이아”닌지고민한다.“피는왜파란색이아닐까눈은왜붉게충혈되는가붉은눈에서떨어지는눈물은어째서투명한가”하는물음이이어진다.“요며칠먹은것이별로없는데거울속뺨은붉고건강하니참이상한일”(「미인이하는게임」)이라생각하고,“죄송하다고말하면서도눈물이나게웃”(「입모양을읽었거든」)는다.그들은저마다다른이유로세상의질서와어긋나지만“이런기분을품고그냥사는일에도상당한각오가필요하”고“이렇게살지않는일에도각오가필요하다”(「사라진대표님」)는점에서일치를이룬다.실은모두가저마다의비장함으로세상과대면하고있는것이다.

나는이렇게말할수있다.태양아래서나는네편이야.너는무심하게내마음을밟고지나가.행성들을모아모래성을지어줄게.난널안타까워하지않아.우린결코같은편이아니지.그렇지만난그저네편이야.
―「하루보다긴일기」부분

“앞뒤다잘린단어가우리를절벽위에세워두지”
왕관을쓰고어디로든나아가는소녀들

발코니로나가담배에불을붙인다이제는담배를태우지않지만타고있는것을보고싶을때가있다바닥이큰나사못네개로고정되어있는것이보인다이곳도운동장이라면어떤초록이가능할까나는건물의소략한설계도를머릿속으로그려본다[……]

나는조용한흑백영화같은건반을들여다본다피아노는풍금이아니지만발에제대로힘을준다면연주할수있을것만같다건반위에손을올려놓고호흡을정리한다그런데누군가의손이어깨위로올라오고손을따라시선이올라가면주인은어디선가타는냄새가난다고도와달라며울먹인다나는발코니로뛰어나간다
―「적산가옥(敵産家屋)」부분

이시의화자는카페로개조된적산가옥에서한가로운오후를보내며어린시절아버지의모습과한때이집을거쳐갔을이들을떠올린다.두서없이이어지는화자의회상또는상상은발코니에서피어오르는탄내로인해급작스레막을내린다.이시집의해설을쓴문학평론가김영임은시중반부에서“발코니로나가담배에불을붙”인화자의행위를예상치못한결말과연결지으며,시가끝나고도이어지는시적시공간의연장을설명한다.그의말처럼“독자는시의장면에서풀려났다고생각하지만,여전히그안에잡혀있게된다”.
이처럼남은서사를독자에게맡기는시적전략은불안과외로움을겪어내고있는이들이저마다의상상력으로빈칸을채우게한다.“앞뒤다잘린단어가우리를절벽에세워”둘때,왕관을쓴“퀸은종과횡과사선으로움직일수있”(「종과횡과사선으로」)는자유를얻는다.그러므로『머리카락은머리위의왕관』을읽는일은이해에서상상으로,다시믿음으로나아가는일인지도모른다.“이해와상상과믿음은다르지만서로를서로에게덮어씌우면서소녀는성장한다”(「121분」).이절벽에서기꺼이뛰어내려“눈을뜨면항상맞춤인내가있”(뒤표지글)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