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저격

독자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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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언어는 만방이며 세계는 곧 책이다.
세계가 책이 아니라면 우리 역시 존재가 아닐 것이다. [...]
독자를 저격하는 것은 구원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 없다.
살리는 것은 영원의 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은 독자를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비평가이자 번역가, 서양인문학자로 이름을 알린 조효원(연세대 독문과 교수)의 비평 에세이 『독자 저격』이 출간되었다. 벤야민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주력하면서, 야콥 타우베스, 조르주 아감벤, 칼 슈미트, 베르너 하마허, 대니얼 헬러-로즌 등의 저작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등 활발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해온 조효원의 『독자 저격』은 전작이었던 『다음 책-읽을 수 없는 시간들 사이에서』를 낸 지 꼭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2010년대 이후 계간지 『문학과사회』 『인문예술잡지F』 등의 지면에 발표했던 길고 짧은 글 16편을 모았다. 저자는 언어와 문학, 독자와 저자, 책과 세계, 종교와 정치, 역사와 미래 등에 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지적이고도 흡인력 있는 글을 완성했다. 수수께끼를 내포한 듯한 저자 특유의 정연한 문장들이 겹겹이 포개어지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한편, 글의 구성 및 형식상의 실험에서 위트와 유머 감각이 드러난다.
표제작 「독자 저격」은 0과 1, 즉 없음과 있음의 숫자를 번갈아 부여하면서 찰나의 책과 영원의 책을 대비시키고 제멋대로 읽을 자유, 막강한 독해의 자유라는 힘을 지닌 독자를 어떻게 저격할 수 있을까’를 물으며 독서 행위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시도한다. “책은 독자를 쏠 수 있지만, 독자는 책을 쏠 수 없다. […] 책은 오직 준비된 독자만을 쏠 수 있다. […] 어떤 계기로든 한 번이라도 책에 의해 처참히 거꾸러져 본 독자는 생의 길목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책의 문맥과 행간을 독자적으로 주파할 힘을 얻는다”(55쪽). 이 글이 ‘독자’들을 끌고 가는 곳은 현실의 독서 연마술 따위가 아니라 영원의 책이 존재하는 이념의 차원이다. “찰나의 책은 아무런 문제도, 아무런 마찰도 일으키지 않는다. 찰나의 책의 세계는 실로 평화롭다”(70쪽). 반면 영원의 책은 고통의 불길을 내리꽂는다. 오직 죽이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영원의 책은 모든 생의 근본적 리듬인 연속성을 무너뜨리고, 타격을 입은 독자는 주어진 삶의 감각에 충실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쏘는 시늉만 할 수 있을 뿐 독자를 타격하지 않는 찰나의 책만을 읽을 것인가. “찰나의 책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활자가 바로 영원의 책을 망각으로 뒤덮는 미세먼지인 셈이다. 우리 시대가 먼지와 활자를 구별할 수 없게 된 시대라는 사실을 살벌한 현실로서 지각한 독자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필시 그는 숨통을 조여오는 고독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61~62쪽). 찰나의 책, 휘발성 콘텐츠들이 시선을 강탈하는 시대에 독자를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책이란 어떤 것일까? 작금의 시대에 대한 자조 섞인, 어딘가 비관적인 전망 속으로 가라앉은 저자의 글 끝에는 ‘그럼에도’가 매달려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을진대 그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저자

조효원

저자:조효원
비평가.번역가.서양인문학자.성균관대독문과를졸업하고같은과대학원에서발터벤야민의초기언어이론에관한논문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독문과박사과정을수료한뒤미국존스홉킨스대유럽어문학부와독일베를린자유대독문과에서방문학생으로수학했다.미국뉴욕대(NYU)독문과에서바이마르정치신학에대한논문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서강대유럽문화학과교수로재직했고,현재연세대독문과교수로재직중이다.주요논문으로「ACloudofWords:AReflectionon(Dis)appearingWordsofBenjaminandWittgenstein」「HumororDyingVoice:HamletbetweenWalterBenjaminandCarlSchmitt」「VergangeneVergangnis:FureinePhilologiedesStattdessen」등이있고,지은책으로는『부서진이름(들):발터벤야민의글상자』『다음책:읽을수없는시간들사이에서』가있으며,옮긴책으로는조르조아감벤의『유아기와역사』『빌라도와예수』,야콥타우베스의『바울의정치신학』,대니얼헬러-로즌의『에코랄리아스』,칼슈미트의『정치신학2』『정치적낭만주의』,베르너하마허의『문헌학,극소』가있다.

목차


겸멸
Prologue죽음의죽음
1.언어외과의사의편지
2.이어쓰기와베껴쓰기?위조문헌학을위하여
3.독자저격
4.이론과무한의식
5.영혼의저자
6.문학과결의론의미래
7.일방통행국
Interlude주저앉음
8.궁지窮地에서궁진窮盡하기?학문과탐구와웃음에대하여
9.약속의땅과내전의끝
10.문헌학의파레시아?상아탑의(재)건축을위하여
11.자유주의의자유의지
12.두명의독일인과세명의유대인?바람과역설과아브라함에대하여
13.말하는천재
Epilogue죄없는자들의천국
출전

출판사 서평

서양인문학자조효원교수의신작비평에세이
‘알게뭐람’의시대정신과문학의미래그리고문헌학에대하여

문학장이총체적무관심속에서공론장으로서의기능을상실하고있다는우려가제기된지오래다.“이제세계는문학과관련하여아무것도알고싶어하지않는사람들로우글거린다”(128쪽).이책의저자역시많은부분위기에대한인식을사유의출발점으로삼고있다.「프롤로그」에서저자는“정말로비극적인것은,기준을조율하고확립하려는모든노력이‘알게뭐람’의정신앞에서일거에수포로돌아간다는사실”이라고하면서이책은“그비극에대한인식의기록”이라고밝힌다.오늘날‘근대의사회적상상’을지탱해온거의모든주요개념이무화되고있는위기상황을비판적으로독해한7장「일방통행국」에서도이와같은인식이명료히드러난다.

바야흐로세계는전대미문의‘일방통행국’으로재편되었다.국가라는명칭을장식으로만달고있는이‘세계국가’에서는모든것이오직일방통행하게되어있다.하지만대관절어디로향하는일방통행이란말인가?아마누구든직감적으로답을떠올릴수있을것이다.복잡하고어렵고심각한모든문제가말끔히사라진공간,‘구독’과‘좋아요’의각축이모든눈과귀를지배하는세상,요컨대모든일이카메라연출에의해통제되는예능만능의낙원으로.(130쪽)

그밖에도이책에는현실을조망하고역사와소통하는가운데다양한방식으로문제의식을고찰하고비평을시도한진중한글들이수록되어있다.4장「이론과무한의식」은파산의운명에처한이론의여정을따라가본다.투쟁,패권,음모,운동,제휴,해석,위조,이름,역사,무한,착오등으로이어지는사유가흥미롭게전개된다.6장「문학과결의론의미래」는한때유행한사사키아타루의논의와대결하면서문학의근원적본질을재사유한다.저자는푸코가말한‘말할수없지않은것’으로서의문학을‘결의론’과연결지어되돌아보면서,그미래를생각해본다.

8장「궁지에서궁진하기」에서는베버의‘세계의탈주술화’테제,즉계산될수없는것은무가치,무의미하다고간주되는사회의도래에맞서천천히읽을것을가르치는문헌학의가치를옹호한다.이를위해니체,세스토프,부르디외,로티등의사례를통해탐구주의자와아이러니스트의사유방식에대해이야기한다.문헌학의그리스어어원은‘로고스에대한사랑’을가리킨다.이를다시번역한다면‘글을바치는법을배우는일’이다.따라서로고스에대한성찰을전개하는과정에는“‘어떤존재에게어떤글을어떻게바칠것인가’라는근본적-상황적고민이시종일관활시위처럼팽팽하게당겨져있어야한다”(203쪽)고저자는말한다.10장「문헌학의파레시아」는프로이트,아우어바흐,하마허의저술을문헌학적투쟁의사례로바라보면서독해한다.이들의사례를통해‘상아탑의(재)건축’을위한힌트를얻을수있다.11장「자유주의의자유의지」는「사도행전」속아나니아와삽피라일화와마키아벨리의『군주론』을통해,자유주의의본질을이론적차원에서숙고한다.파레시아(진실말하기)에는거짓말의자리가없고아첨에반대된다고규정되었으나,오늘날에는“가장뛰어난아첨꾼이가장존경받는파레시아스트로등극”하고자하며,“자유주의의자유의지는파레시아의가능성을끝까지압살”하고자한다고지적한다.

13장「말하는천재」는세계의질서와폭력에관한슈미트와벤야민의사유와입장차이를독해해본다.“탁월한통찰력을갖추고평생문학을탐독한법학자”와“독일최고의비평가를꿈꾼자유기고가”사이에서햄릿을두고또한번의논쟁이벌어진다.슈미트가가톨릭주의와프로테스탄트주의가대립하던시대의분열상을표현하는인물로서햄릿을바라본다면벤야민은결의와양심이라는두극단에서분열한햄릿을텅빈내면을지닌인물,일종의기독교적섭리안에서반전된인물로가정한다.1장「언어외과의사의편지」에서는카프카에서발레리,발레리에서벤야민으로건너가며지속이자단절로서‘하이픈’의의미를고찰해본다.저자는헤벨의우화속“칸니트페르스탄”이야기를통해“불가해성으로전락하지않고이해의지평을뚫을수있는”가능성으로서하이픈에새로운의미를부여한다.

조효원의『독자저격』은독자와저자와텍스트에대한오랜독서와연구,비판적성찰이응축된책이다.다시표제작인「독자저격」으로돌아가본다면,저자는독자세계와저자세계사이에존재하는‘심사위원회’에관해이야기한다.항시진실할것을명하는검문이이루어지는곳.때를잘못만난‘영원의책’은이심사위원회에회부되어신권재판내지여론재판을받고화염속으로던져질수있다.그럴때영원의책은더이상쏠수없게된다.이는비단먼과거의일만이아니라지금도심심찮게벌어지는현재진행형의사건일것이다.더욱이“우리시대는진실을검문하는연옥이무한대로팽창하고있는시대다.모든개인이제가끔심사위원회를만들어운영하기때문이다.작금에심사위원회명패를달고활동하는모든집단은무한히자유로운‘바깥’으로뒤집힌모든개인의무정형한‘내면’에의해구석으로내몰린상태다”(63쪽).“중요한것은진실을향한본능적인집착을정확하게타격하고분쇄하는일이다.심사의연옥을철저하게거부할수있어야한다는말이다.그렇지않으면,거대한개인-심사자들의리바이어던이종내세계의책마저완전히불살라버릴것이다”(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