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것도더할것도없”이“살아보라”
지금,여기,우리는한줄의시로살아있다!
사소한일상을다독이는김용택의든든한손길
따뜻한아랫목에앉아엉덩이밑으로두손넣고엉덩이를들었다놨다되작거리다보면손도마음도따뜻해진다.그러면나는꽝꽝언들을헤매다들어온네얼굴을두손으로감싼다.(「울고들어온너에게」전문)
섬세한시어와감성이돋보이는정감어린서정시로많은독자들의사랑을받아온‘섬진강시인’김용택의신작시집『울고들어온너에게』가새롭게단장한창비시선401번으로출간되었다.‘하찮은존재들의무한한가치’를노래하며서정시의새로운진경을보여준『키스를원하지않는입술』(창비2013)이후3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시인은“온갖비루와원망이사라진가장깨끗한가난의미학”(김정환,추천사)을선보이며삶의소중함을일깨운다.평범하기이를데없는사소한일상속에서도“대자연의섭리에순응하”며“지금-여기의살아있음을최대한이행하는데에서삶의가치와행복을찾는”(김수이,해설)시인의소박한마음이오롯이깃든간결하고단정한시편들이오래도록가슴속에서여울지며깊은감동을선사한다.
나는/어느날이라는말이좋다.//어느날나는태어났고/어느날당신도만났으니까.//그리고/오늘도어느날이니까.//나의시는/어느날의일이고/어느날에썼다.(「어느날」전문)
김용택의시는우리가살아가는이야기를친근한목소리로들려주는‘삶의노래’이다.“사랑의아픔들을겪으며”(「오래한생각」)그날그날“있는힘을다하여”(「받아쓰다」)살아온이야기이며,“새벽에일어나/시를쓰고,쓴시를고쳐놓고나갔다와서/다시고치”(「베고니아」)며살아가는일상의이야기이다.“내가산오늘을/생각하”(「아버지의강가」)며“한줄의글을쓰고나면”“다른땅을밟고있”(「한줄로살아보라」)는‘낯선나’가말한다.“그래,어디,오늘도/니들맘대로한번살아봐라.”(「가을아침」)김수이는해설첫머리에서이시집을“‘살다’의활용에의한,‘살다’의활용을위한시집”이라고명명한다.그렇듯시인에게시를‘쓰는’일은곧‘사는’일이다.
농부의아들로태어났다./초등학교선생이되어살았다./글을썼다./쓴글모아보았다./꼬막껍데기반의반도차지않았다./회한이어찌없었겠는가./힘들때는혼자울면서말했다./울기싫다고.그렇다고/궂은일만있었던것은아니다./덜것도/더할것도없다./살았다.(「그동안」전문)
그렇게시인은‘어느날’에는“내방에/반듯하게앉아/시를쓰”(「포의(布衣)」)고,‘어느날’에는“한편의희미한길같은시와/애초에길이없었던한편의시”(「어제는시를읽었네」)를찾아읽기도하면서“덜것도/더할것도없”이“살았다.”(「그동안」)그리고이제,더는“여기저기기웃거리거나/뭐가옳고그르다고/어디다쉽게/고개끄덕이지않겠다”(「10월29일」)고다짐하면서‘어떻게사느냐’의문제에골몰한다.그리고한걸음더나아가시인은“산같이온순하고/물같이선하고/바람같이쉬운시를쓰고싶다”(「오래한생각」)는소망을간직한채,미래의삶을꾸리는구체적인행위로서‘자연’으로돌아가는일을예비한다.
내가죽은후/이삼일기다리다가/깨어나지않으면화장해서/강건너바위밑에묻어라./사람들이투덜거리지않도록/표나지않고간소해야한다./내곁에어린나무나풀들이/자라도록내버려두어라./지금그생각이나서/생각난김에적어둔다.(「생각난김에」전문)
어느덧고희를바라보는나이가된시인은“갈라진발뒤꿈치틈으로외풍이찾아드는지”“자꾸아랫목콩자루밑을찾는”“어머니의발”과“밖으로밀려”난“굳은살박인아버지의복사뼈절반”(「아버지의복사뼈」)을회상하며자신에게다가올노년의삶을차분히곱씹어보기도한다.시인은“몸이자꾸한쪽으로기울어지는”어머니의눈에서“깊고도아득한,/인류의그무엇”(「우주에서」)을발견해내기도하고,“몇해를걸”어자신이도착한곳이결국은“도로여기”임을확인하면서“또다른생”(「도착」)의가능성을담담히응시한다.시인은이번시집에서“아버지에대한시를쓰면서편안함을얻었다”(「시인의말」)고말한다.
도착했다./몇해를걸었어도/도로여기다./아버지는지게밑에앉아/담뱃진밴손가락끝까지/담뱃불을빨아들이며/내가죽으면여기묻어라,하셨다./살아서도죽어서도여기다./일어나문을열면물이고/누우면산이다./무슨일이있었는가./해가떴다가졌다./아버지와아버지그아버지들,실은/오래된것이없다./하루에도몇번씩물을건넜다./모든것이어제였고/오늘이었으며/어느순간이되었다.비로소/나는아버지의빈손을보았다./흘러가는물에서는/달빛말고건져올것이없구나./아버지가창살에비친새벽빛을맞으러/물가에이르렀듯/또다른생인것처럼나는/오늘아버지의물가에도착하였다.(「도착」전문)
시인은최근에고향진메마을로돌아가정착했다.한국현대시사에한획을그은명편「섬진강」연작의발원지인그곳에이르러시인은“귀환은평화롭고안착은아름답다”(「익산역」)고고백한다.“인생이시작되었던”그곳에서시인은“속셈없는외로움”(시인의말)을찬찬히가다듬으며,어머니가그러했던것처럼,“자연이하는말”을겸허한마음으로고스란히“땅에받아적으며”(「받아쓰다」)살아갈것이다.그리고‘어느날’저물녘,묵묵히낮은곳으로흘러가는저섬진강가를거닐며끊임없이순진무구한시심을길어올리는시인의뒷모습을보자니,순간세상이환해지는듯하다.
나는많은것을배웠다./그러나/배운대로살지못했다./늦어도한참늦지만,/지내놓고나서야/그것은이랬어야했음을알았다./나는모르는것이많다./다음발길이닿을/그곳을어찌알겠는가./그래도한걸음딛고/한걸음나아가낯모르는사람들과함께/신호를기다리며/이렇게건널목에/서있다.(「건널목」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