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뭐래 - 창비시선 489

모래는 뭐래 - 창비시선 489

$11.00
저자

정끝별

1988년『문학사상』에시가,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평론이당선된후시쓰기와평론활동을병행해오고있다.시집으로『자작나무내인생』,『흰책』,『삼천갑자복사빛』,『와락』,『은는이가』,『봄이고첨이고덤입니다』,시학서로『패러디시학』,교과서시다시읽기책으로『시심전심』,평론집으로『천개의혀를가진시의언어』,『오룩의노래』,『파이의시학』,『시론』,시해설...

목차

제1부·이시는세개의새시입니다
디폴트값
칠할의칠일
이시는세개의새시입니다
아무나는나이고아무개는걔이다
이시는다섯발톱의별시입니다
모래는뭐래?

제2부·누군가는사랑이라하고누군가는사랑이아니라고한다
고양이시간
회복기
버뮤다삼각지
누군가는사랑이라하고누군가는사랑이아니라고한다
뽀또라는이름의
그루밍블루
사막거북
이건바다코끼리이야기가아니다
동물을위한나라는없다
이건좀긴이야기
조나단리빙스턴시걸의후예
무구와무고
이건좀지옥스러운이야기
우리가넘치나이다!
떼까마귀날다

제3부·이건좀오래된이야기
너였던내모든
소금이가고
모방하는모과
모과타투
두부이야기
강릉점집
네눈동자를보는내눈동자
폭풍의언덕
청파동눈사람
곡우
조나단,리빙스턴,시걸,
갈매기의꿈
이건좀오래된이야기
여름이야기
언니야우리는
응암동엔엄마가산다
가을장마

제4부·방구합니다
분홍설탕장미
고로쇠한철
방구합니다
바다와절벽
시는어디에?
시인은누구?
이중섭의「소」를보면
노시인과의카톡
애착시어사전
시다시,다시다!
어느시인의인터뷰에서
처음에서다음까지
한줄농담
저주받은걸작

해설|황인찬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다르면서같게,같으면서다르게몇번이고다시!
반복되는질문으로‘시’를만나고‘너’를만나다

시집을펼치면절묘하게짜인애너그램을활용한시들이단연눈에띈다.애너그램은‘라임의미학’을이루기도하여,마치랩을듣는듯시의운율을만끽하게한다.그러나정끝별의시에서애너그램은단순히시적리듬감을위한형식이나언어유희에그치는것이아니다.이를테면동일한모음과자음을재조합해연결한“정교한적요”“무한한하문”“살벌한발설”“미망의마임”(「시다시,다시다!」)같은표현들은‘시’자체를은유하고있다.“우직한궁지에몰린염소의소명”“고통의옥토에서응전하는증언”(같은시)등의시구또한언어를통해대상의본질을포착하기위해치열한사투를벌이는‘시’의모습을탁월하게묘사한다.시의“형식과내용이이토록정교하고아름답게,우발적이며감각적인방식으로결합하며시가무엇인지,시가어떻게존재하는지보여주”(황인찬,해설)는시집이있을까.이번시집에서시인의애너그램기법은가히장인의경지에이르렀다고할만하다.

시집에서도드라지는또다른특징은반복되는시어들을질문의연쇄로쏟아낸다는점이다.“모래는뭘까?”하고모래의정체를탐구하는질문들이연속되지만,붙잡으면손아귀에서빠져나가는모래들처럼“뿔뿔이흩어”(「모래는뭐래?」)질뿐답을들을수없다.여기서시를통해존재의본질을꿰뚫으려는노력,동시에본질을완전하게담아낼수없는시의한계가드러난다고도할수있겠지만,시인은실패를내정한질문을멈추지않는다.끊임없이세상을탐구하고질문하는어린아이와도같은무구한목소리로계속해서묻는다.시의지향과그로인한숙명적인좌절,그럼에도포기하지않고계속시를쓰고존재에다가서고자하는이“끝내실패할수밖에없는외곬의믿음”(「누군가는사랑이라하고누군가는사랑이아니라고한다」)은시의도전이필연적으로실패할지언정절대무의미하지는않음을,또무의미하게두지않겠노라는시인의결기를의미한다.모래에접근하기위해변주되며반복되는질문들은그리하여“모래가너일까?”(「모래는뭐래?」)라는새로운질문에다다른다.무의미로와해되는질문의반복끝에마침내‘나’는‘너’와만나게되고새로운의미와접속하게되는것이다.시쓰기를,‘너’와만나기를멈추지말기를주문하는시인의우직한태도를엿볼수있는대목이다.

그러니까이건너와나,우리모두의이야기

정끝별의시는시종일관또렷하게“인간에닿아있”(추천사)는데,여기서‘인간’은‘비(非)인간’을포함한생명전체로확장된다.‘지금-여기’에서‘저기-너머’의세계를바라보는시인의시선에는살아숨쉬는모든존재에대한경외가서려있다.“지느러미를팔다리삼아/기다란송곳니를지렛대삼아”(「이건바다코끼리이야기가아니다」)살곳을찾아해안가절벽을기어오르다최후를맞는바다코끼리,몸속이“쓰레기로꽉찬폐기물”이되어“죽어서도썩지못하”(「조나단리빙스턴시걸의후예」)는갈매기등각종오염과생태계파괴로인해세계가감당하고있는죽음과도같은현실을생생하게묘사함으로써시시각각스러져가는운명을인간또한피할수없음을엄중한목소리로선포한다.지진과태풍등기후재난이수챗구멍의역류하는하수처럼쏟아지는“소멸의풍경”(「떼까마귀날다」)은동물의멸종뿐아니라“제이빨로저마저물어뜯어모두의끝을보고”(「이건좀지옥스러운이야기」)마는탐욕스러운인류에대한경고이기도한것이다.

시인은한인터뷰에서“만인의평등,만물의상생,만유의자유는시가꿈꾸는아름다운가치들”이며,“불가능의가능성을꿈꾸는것이야말로시의가치이기도하다”고피력한바있다.그렇기에시인은“남자들을위해씻고닦고빨고삶고낳고먹이”(「언니야우리는」)는부조리한사회구조에맞서야하는타자화된주체로서의여성을비롯해사회적약자,소수자들에게가해지는온갖형태의강요와폭력에도저항의몸짓을내보인다.차별과편견의거대한장벽을무너뜨리기란절대쉬운일이아닐것이다.하지만시인은“자세가바뀌면지평이바”뀌고,“지평을바꾸다보면탈출할수있으니무엇이든돼!돼!돼!무엇이어도괜찮아”라고북돋우며아직은우리에게“두발로써야할길의역사”와“타들어가면서도마주해야할빛의역사”(「이시는세개의새시입니다」)가있음을직시한다.‘사랑의마음’과‘믿음의연대’로“참담한허무와실존적고독의세계”(해설)을헤쳐나간다.

세상모든것이모두시라고정의하는시인은계속해서시를써나가리라는소망을피력한다.삶이남루하고고통의연속일지라도“끝나지않는희망이시”라서시인은순결한시심을가다듬으며언제나“시를살고자한다”(「어느시인의인터뷰에서」).그러하기에견결하고생기로운“시의언어들이내딛는안간힘”(「이건좀긴이야기」)을그러모아희망의서사를향해한걸음한걸음나아간다.소외된곳,죽어가는곳,억압받는곳을지치지않고응시하며만물을향한애정이담뿍담긴시를써나간다.세상을향해끊임없이질문을던지는간절하고애절한시인의노래에귀기울여보자.“첫눈처럼참았다눈물처럼녹아”(「노시인과의카톡」)들듯시를,삶을,사람을속절없이사랑하게될것이다.

시인의말

한날개는금세도망칠쪽으로
한날개는끝내가닿을쪽으로

기우뚱,

날개밖풍파의서사를
날갯짓의리듬에싣고
깃털까지들썩이는
그새에대해

누가노래할까?

다행이야
응,아직울수있어서

2023년5월
정끝별